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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 이런, 중위님. 마이크에게 그런 걸 기대하시다니요. 마이크 사전에 존중이나 예의라는 단어는 아예 들어 있지 않을 겁니다.

평소 말수가 적은 존 웨인 상사마저 대화에 합류했다.

별일이 다 있군.

울프 팀 내에서 가장 과묵한 사람을 꼽자면 바로 존이었다. 유머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존이 평소와 다르게 대화에 끼어 들며 농담을 던지자 새로운 전투력을 얻은 울프 팀 대원들의 수다는 더욱 활개를 치며 끝없이 뻗어 나갔다.

헤드셋을 통해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남자 유형과 그에 반해 한참 수준 미달인 그의 무뚝뚝한 태도에 관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그는 무거운 한숨을 크게 내쉬며 스위치를 끄기 위해 손을 올렸다.

핑.

그러나 그는 헤드셋의 전원을 끄지 못했다. 손을 올리는 바로 그 순간 허공을 가르는 바람 소리가 울렸기 때문이다. 아니, 느껴졌다고 표현하는 게 더 올바르리라.

본능적으로 자세를 낮추고 엄폐할 만한 장소를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는 여전히 호텔 주차장의 정중앙에 있었다. 몸을 숨길 수 있는 사물은 몇십 미터 떨어진 위치에 주차된 차들뿐이었다.

― 저격수다!

― 총알이 어디서 날아드는지 당장 파악해!

헤드셋을 타고 마이크의 긴장 섞인 음성이 크게 울렸다. 조금 전까지 시시껄렁한 농담을 지껄이던 나른한 음성과는 180도 달라진 진지한 음성이었다. 그는 가벼운 모습을 지우고 특수 부대원으로 변신했다.

히버트는 총알이 날아온 각도를 계산한 다음 최대한 몸을 흔들며 주차된 차를 향해 뛰었다. 갑작스러운 적의 공격으로 몸속의 아드레날린이 빠르게 분출하며 그 어느 때보다 재빠른 속도를 내게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건 혼자만의 애처로운 상상이었다.

그는 아직 폭탄 해체 작업을 할 때 입어야 하는 특수복을 입고 있는 상태였고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무거운 특수복을 입고 빨리 뛰기란 불가능했다. 폭발의 위험에 대비해 만들어진 옷이었지만, 눈앞에서 폭탄이 터지면 이 옷을 입고 있다 한들 그의 몸은 바삭한 통구이가 될 뿐이었다. 총알의 위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걸 증명하듯 달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허우적대는 그의 움직임을 총알 한 방이 단번에 제압했다.

핑.

아, 젠장!

특수복 무게에 균형을 잃은 바로 그 순간 지랄맞게도 총알이 날아들었다. 그는 총알의 위력에 목적지를 바로 코앞에 두고 흙먼지가 잔뜩 쌓인 땅바닥으로 슬라이딩하듯 처참하게 고꾸라졌다.

세상이 기울어진 순간 눈앞이 아찔해졌다.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들더니 곧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중위님. 괜찮으십니까?」

몸을 흔드는 거친 손길에 히버트는 정신을 차렸다. 눈을 뜨니 존의 잘생긴 얼굴이 바로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기절하셨습니다. 다행히 총알이 특수복을 완전히 뚫지는 못했네요.」

존은 상사였다. 상사의 주특기는 의료가 아니었다. 더욱이 상사는 위생병을 맡고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존은 지금 그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 가며 빠르게 진단을 내리고 있었다.

「몇 개로 보이십니까?」

설상가상으로 존이 손가락을 펴 보이며 물었다.

「3개. 어지럽거나 구역질이 나지도 않으니 뇌진탕도 없어. 그러니 어설픈 진단 놀음은 그만두라고. 그리고 난 기절 안 했어. 저격수는 처리되었나?」

그는 존의 손가락을 밀어 내며 투덜거렸다.

「네. 힐이 잡았어요. 거리가 멀었던 탓에 명중률이 떨어졌어요. 사격 솜씨가 형편없기도 했고요. 운이 좋으셨던 겁니다. 그리고 중위님은 정확히 3분가량 기절한 상태셨습니다. 넘어지면서 머리를 심하게 부딪치셨어요.」

「잘됐군. 아얏!」

환장할 노릇이었다. 기절했다는 소식도 어이가 없는데 피부가 타들어 가는 아픔에 팔을 보니 왼쪽 팔꿈치가 완전 개판이 되어 있었다. 땅바닥으로 슬라이딩을 할 때 호되게 긁힌 모양이었다.

「어어, 움직이지 마세요. 소독하셔야겠어요.」

존이 구급함을 열더니 소독약의 뚜껑을 따고 그대로 그의 팔에 콸콸 부어내렸다.

「흐읍.」

미치고 환장하게 아팠다.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강렬하게 느껴지는 쓰라린 아픔에 그는 하마터면 존의 잘생긴 얼굴을 주먹으로 한 대 칠 뻔했다. 그러나 존은 그의 격한 반응에도 어깨만 한 번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빠르게 기지로 복귀하셔야겠습니다. 구급함엔 소독약 말고는 없으니까요. 일단 상처는 소독했으니 기지로 가서 나머지 치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이 정도 긁힌 상처는 대수롭지 않았다. 소독만 잘하면 문제 될 건 없었다.

「존…….」

「규칙은 지키셔야지요. 규칙을 만드신 분께서.」

존이 눈치 빠르게 선수를 쳤다. 물론 규칙은 지켜져야 했다. 작전 중 부상을 당하면 부상자는 작전이 끝난 즉시 곧바로 치료에 전념해야 한다. 이게 그가 울프 팀 대원들에게 누누이 상기시키는 규칙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까짓 긁힌 상처는 부상 축에도 끼지 못한다.

그러나 존의 맑은 눈동자를 대면하자 그는 반항을 포기했다. 존은 자신 못지않게 고집불통에 융통성이라고는 약에 쓰려도 없었다.

젠장!

임무의 끝이 상쾌하지 못함에 히버트는 속으로 욕설을 중얼거렸다. 아마도 그 욕설을 목사인 아버지께서 들으셨다면 근엄한 표정으로 그를 향해 설교를 시작하셨으리라.



2.


“김 대위님, 응급입니다. 헬기 이송 중이고 2분 후 도착이랍니다.”

태영의 급박한 음성이 들리자 진은 피로감을 느끼며 바닥에 처박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응급? 이렇게 갑자기?”

반나절 동안 정신없이 바쁘게 보냈더니 혼이 빠져나갈 지경이었다. 식중독 환자들이 발생하는 바람에 새벽부터 진료실로 출동한 후 한시도 쉴 틈 없이 뛰어다녀야 했다. 게다가 무장한 정체불명의 무리에게 공격을 받은 미군 부대에서 부상자가 속출해 부족한 일손을 도와야 했다.

시차로 인한 수면 부족의 피로가 몸에 켜켜이 쌓인 상태에서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나니 온몸에 힘이 쭉 빠지며 뻐근한 근육통이 느껴졌다. 몽롱한 정신을 깨우는 진한 블랙커피와 노곤한 피로를 가시게 해 줄 뜨거운 샤워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원래는 서북부 국군 병원으로 가던 미군 환자였는데 이송 시간을 버티기 힘들어 이곳으로 선회했답니다. 폭발 사고로 붕괴한 건물에 깔렸는데 콘크리트 철골이 복부를 관통해 철골을 꽂은 채로 긴급 이송 중이었는데 헬기가 흔들리는 바람에 철골이 빠져 현재 출혈이 상당하답니다.”

“일단 나가자.”

긴급을 요하는 태영의 설명에 벌떡 일어나 진료실을 나섰다. 하지만 벌써 기지에 도착한 호송 대원들이 응급 환자를 데리고 진료실이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어레스트입니다! 헬기에서 내린 후 이곳으로 오는 도중 심정지가 왔습니다!」

「CPR 준비해!」

호송 대원들의 긴박한 외침에 진은 태영에게 소리쳤다. 서둘러 진료실 문을 개방해 그들이 빠르게 집중치료구역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도운 다음 응급 환자를 살폈다. 바이탈 반응이 없었다. 하이포볼레믹 쇼크에 의한 심정지로 보였다.

「에피네프린 투여해.」

그녀의 오더에 의료진들이 신속하게 약을 투여하고 태영은 부상자의 군복을 잘라 냈다. 부상자의 몸에 심박을 체크하는 장비가 신속하게 연결되었고 그녀의 손에 제세동기가 전달되었다.

「100 충전해! 물러서!」

제세동기의 전류 자극에 부상자의 몸이 들썩였다. 하지만 반응은 없었다.

「200으로 올려! 물러서!」

다시 자극을 가했지만 여전히 반응이 없자 제세동기의 출력을 더 높였다.

「에피 하나 더.」

전류 자극을 가할 때마다 부상자의 몸이 거세게 요동쳤지만, 원하는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다. 한 번 더 자극을 가한 다음 직접 심장 마사지를 시작했다. 규칙적으로 심장을 압박하며 자극을 가했다. 의식이 없는 미군의 몸은 아직 따뜻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나이가 어린 병사였다. 이대로 죽게 할 수는 없었다.

점점 힘이 빠지는 팔을 악착같이 움직였다.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움직임에 호흡이 거칠어지며 땀이 흘렀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정신을 집중했다.

「어, 어, 바이탈 조금씩 돌아오고 있습니다.」

태영의 말대로 미약하게나마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재빠르게 삽관 후 앰보를 연결하고 다량의 혈액과 수액을 공급하기 위해 씨라인을 잡았다.

「수액이랑 패키드 셀(수혈) 걸고 웜 샐라인(따듯한 식염수) 준비해! 인씨젼(절개) 들어갈 거야.」

오더를 내리며 복부 열상을 살폈다. CPR을 하는 와중에도 출혈이 엄청났다. 한 번 더 출혈로 인한 쇼크로 심정지가 온다면 가망이 없을지도 모른다.

태영이 능숙하게 상처 부위에 베타딘(소독약)을 뿌리고 드랩(소독포)을 올렸다. 준비가 끝나자 메스를 쥐고 망설임 없이 부상자의 구멍 뚫린 복부에 손을 댔다. 부분 절개 후 들여다본 복부 상태는 좋지 않았다. 장기 파열로 응급 수술이 시급했다. 물론 그 전에 터진 혈관의 출혈을 잡지 못한다면 수술장으로 올라가기 전에 사망할 테지만 말이다.

“제발, 제발 좀…… 잡혀라.”

출혈 위치를 찾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였다. 석션기가 쉴 새 없이 피를 빨아들이고 있음에도 혈관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BP 다시 떨어집니다!」

태영의 다급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