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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아트로핀 투여하고 피 계속 짜!」
눈을 감고 모든 감각을 손끝에 집중했다. 부상자의 심장 박동과 혈압이 낮아지는 것과 반대로 그녀의 심장 박동은 점점 상승하고 있었다. 손의 방향을 틀어 조금 더 깊숙한 안쪽을 헤집었다. 그러자 출혈 위치가 잡혔다.
「BP(혈압) 조금씩 오르고 있습니다.」
그녀의 손이 출혈 부위를 세게 누름과 동시에 태영의 고함에 가까운 음성이 진료실을 가득 메웠다. 눈을 뜨고 찾아낸 출혈 부위에 클램프를 끼웠다. 출혈이 잡히자 바이탈이 조금 더 안정되었다. 최악의 상황은 면한 것이다.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밀려드는 안도감에 작게 숨을 몰아쉬었다.
「수술장은?」
「5분 전에 미군 측의 응급 수술이 끝났답니다. 출혈만 잡히면 바로 올린다고 했으니 세팅하며 대기 중일 겁니다.」
「다행이네. 바로 올려 보내.」
「넵. 고생하셨습니다.」
「너도. 계속 고생하고.」
태영이 의료 대원들과 함께 부상자를 수술장으로 올리기 위해 나가자 응급 상황에 잠시 활동을 멈췄던 피로가 다시 온몸을 덮쳐 왔다. 거대한 폭풍우에 한바탕 휩쓸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을 피해 갔으니 보람은 있었다.
「미군 환자 한 명 더 대기 중입니다.」
어깨로 몰려오는 뻐근한 통증에 얼굴을 찡그리다가 환자가 있다는 말에 고개를 돌리니 또 다른 미군 두 명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치료를 받기 위해 의료 베드 끝자락에 걸터앉아 있는 미군에게로 향했다.
거구의 남자였다. 거인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저절로 떠오를 만큼 평균치를 벗어난 덩치였다. 비스듬히 앉아 있는데도 서 있는 그녀와 눈높이가 비슷했다.
「오래 기다렸나요?」
방금 전 응급 상황에 모든 체력을 쏟아 피곤했지만, 환자를 돌려보낼 순 없기에 의례적인 인사를 건네며 상태를 살폈다. 겉보기에는 가벼운 찰과상 같았다. 피가 잔뜩 묻은 의료 장갑을 벗고 새 의료용 장갑을 꺼내 손에 끼웠다.
「아닙니다.」
덩치 큰 미군이 그녀의 물음에 짧게 답했다. 낮게 울리는 굵직한 음성은 무뚝뚝했다.
「팔을 긁혔네요. 이마 옆쪽하고. 그리고 머리 부상도.」
「네, 대충 소독은 한 상태입니다. 중위님께서 넘어지시면서 주차되어 있던 트럭 범퍼에 머리를 꽤 세게 부딪치셨는데 약 3분 정도 정신을 잃어버리셨습니다.」
옆에 서 있던 미군이 꼼꼼하게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부상자인 미군 장교보다는 다소 작았지만, 그 또한 키가 큰 편에 속하는 그녀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아야 할 만큼 키가 컸다.
「기지로 오는 동안 구토하거나 다시 기절하진 않았나요?」
X-ray 사진을 들여다보며 짧게 물었다.
「아뇨, 구토도 기절도 없었습니다.」
미들급 체격을 가진 군인에게 물었는데 대답은 헤비급 군인에게서 나왔다. 굵은 저음의 음성에는 못마땅해하는 기운이 가득 스며 있었다. 얼굴도 미세하게 찡그리고 있었다. 꼭 엄마 손에 억지로 병원으로 끌려와 투덜대는 아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미군 장교의 모습에 진은 웃음이 나와 빙긋 웃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얼굴은 의료용 마스크에 의해 절반 넘게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심기가 불편한 미군은 웃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두통이나 이명도 없었나요?」
「네,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찰과상을 치료할게요.」
드레싱 솜을 집게로 집어 팔과 이마를 깨끗하게 소독했다. 모두 긁힌 상처라 소독 후 약을 바르고 혹시 모를 감염에 대비해 주사만 놓으면 될 것 같았다. 팔꿈치와 이마에 박힌 모래 알갱이를 제거하고 상처에 연고를 바른 뒤 붕대를 둘렀다. 이마에 난 상처는 작았기 때문에 밴드만 붙였다. 다친 상처가 쓰린지 처치하는 동안 미군 장교는 이따금 몸을 움찔거렸다.
「아팠죠? 잘 참았어요.」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한 말이었지만 그다지 도움은 되지 않은 듯했다. 헤비급 미군 장교의 몸이 더욱 경직되었다. 다시 어르는 말을 하려다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아이를 대하듯 어르는 그녀의 말투에 미군 장교는 자존심이 상한 듯한 얼굴이었다.
다시 웃음이 나왔지만 이번에는 신중하게 입술을 깨물어 웃음을 참았다. 주머니에서 펜라이트를 꺼내 들어 미군 장교의 눈동자를 비췄다. 동공 반응은 정상이었다. 가까이서 본 미군 장교의 눈은 예뻤다. 짙은 갈색이 감도는 눈은 탁하지 않았다. 까만 동공은 조금의 찌그러짐이 없는 완벽한 원형이었고 촘촘한 배열을 가진 홍채의 무늬는 꼭 작은 우주를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뇌진탕은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오늘 밤은 상태를 잘 지켜보는 게 좋을 거예요. 증상이 나타나면 지체말고 도움을 요청하고요. 자, 마지막 관문인 주사 맞을 차례네요.」
그녀의 말에 중위의 표정이 다시 과할 정도로 딱딱해졌다. 대놓고 인상을 찌푸리는 건 아니었지만 무표정한 얼굴이 더욱 무표정해지니 꼭 화가 난 얼굴처럼 느껴졌다.
내 말투가 너무 명령적이었나?
잠시 생각했지만,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할 정도의 무례한 말투는 아니었기에 눈앞의 미군 장교의 딱딱한 태도에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몸에 쌓인 피로에 몽롱한 기운이 몰려들자 한시바삐 치료를 끝내고 싶은 마음에 쓸데없는 호기심을 잘라내며 주사기를 집어 들었다.
와…….
미군 장교의 팔뚝은 어마어마했다. 거대한 덩치와 어울리는 근육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손바닥으로 느껴지는 묵직한 단단함에 진은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반응에 또 한 번 놀랐다. 단 한 번도 타인의, 그것도 성인 남자의 신체를 보고 감탄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에게 타인의 신체란 그저 치료해야 하는 의료대상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랬기에 오늘 처음 본 낯선 미군 장교의 몸을 보고 감탄하는 자신을 인식했을 때 놀라면서도 신기한 마음마저 들었다.
미군 장교의 신체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봤을 때 매우 훌륭했다. 마치 강철로 만들어진 것처럼 어떤 것으로 힘껏 내리쳐도 부서지기는커녕 흠집 하나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이제 보니 트럭 범퍼에 머리를 찧고도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게 강철만큼 단단한 신체 덕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운동으로 얻어낸 인공노력의 훌륭한 결과물인지 아니면 고된 군 훈련으로 자연스럽게 다져진 자랑스러운 대가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단단한 근육으로 뒤덮인 육체는 보기 좋게 탄탄했다. 아마 태영이 보면 무척 부러워할 만한 엄청난 근육일 게 분명했다.
파상풍을 예방하는 약물까지 주사한 후 미군 장교의 몸에서 손을 뗐다. 주사를 맞는 모든 사람이 으레 그러듯 강철의 보디를 가진 남자 또한 주삿바늘이 들어가자 따끔한 통증을 느끼는 건지 움찔거렸다.
「치료 끝났습니다. 내일 다시 오세요. 한 사나흘 정도 소독하고 연고 바르면 될 거예요. 다시 이쪽으로 와도 좋고 아니면 미군 진료실로 가도 되고요.」
다 쓴 주사기와 빈 약병을 폐기함에 던져 넣고 짤막하게 말했다. 주사를 맞을 때 아파하던 것과 다르게 미군 장교는 처치가 끝나자 재빠른 몸놀림으로 일어섰다. 무뚝뚝한 음성으로 짧게 감사 인사를 내뱉고는 진료실을 나갔다. 진은 그제야 뻐근한 통증이 계속해서 일고 있는 어깨를 손으로 주물렀다.
“인계하고 왔습니다.”
나이스 타이밍이었다. 수술장에 올라갔던 태영이 다시 돌아왔다. 진은 서둘러 의료용 마스크와 장갑을 벗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다시 반듯하게 묶은 다음 군 모자를 집어 들었다.
“나 먼저 들어간다. 여기 정리 좀 부탁할게.”
“넵, 새벽부터 정신없으셨을 텐데 얼른 들어가 쉬세요. 지금 꼴이 말이 아닙니다.”
태영의 말처럼 그녀의 몰골은 처참했다. G-스탄에 온 후로 숙면을 하지 못한 탓에 그늘이 짙게 내려앉은 안색은 파리했고 피부는 거칠고 푸석푸석했다. 새벽부터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흘린 땀과 식중독 환자들이 게워 낸 토사물이 섞인 군복에선 불쾌한 냄새가 났다. 거기에 피 냄새까지 진동하자 가만히 있어도 속이 울렁였다.
“고마워. 혹시 또 응급 생기면 바로 무전하고.”
“넵!”
태영이 활기찬 음성으로 소리치며 요란스럽게 거수경례했다. 똑같이 정신없이 바빴음에도 지친 기색이 없는 태영의 체력에 감탄하며 진료실을 나왔다. 종종걸음을 치며 짧은 복도를 빠르게 지나 건물 밖으로 나가는 출입문을 열기 위해 손을 뻗으려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녀가 손을 다 뻗기도 전에 문이 활짝 열렸다.
고개를 돌리니 그녀보다 조금 더 먼저 진료실을 나갔던 두 미군이 서 있었다. 거구의 미군 장교는 그녀를 대신해 문을 열더니 먼저 지나갈 수 있게 한쪽으로 비켜섰다.
「감사합니다.」
미군 장교의 친절함에 고마움을 표시하며 문을 나섰다. 밖으로 나오니 아직 완벽하게 저물지 않은 태양 빛이 피부에 강렬하게 닿았다. 그녀는 들고 있던 군 모자를 머리에 눌러쓰며 따가운 태양 빛을 피했다.
「아트로핀 투여하고 피 계속 짜!」
눈을 감고 모든 감각을 손끝에 집중했다. 부상자의 심장 박동과 혈압이 낮아지는 것과 반대로 그녀의 심장 박동은 점점 상승하고 있었다. 손의 방향을 틀어 조금 더 깊숙한 안쪽을 헤집었다. 그러자 출혈 위치가 잡혔다.
「BP(혈압) 조금씩 오르고 있습니다.」
그녀의 손이 출혈 부위를 세게 누름과 동시에 태영의 고함에 가까운 음성이 진료실을 가득 메웠다. 눈을 뜨고 찾아낸 출혈 부위에 클램프를 끼웠다. 출혈이 잡히자 바이탈이 조금 더 안정되었다. 최악의 상황은 면한 것이다.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밀려드는 안도감에 작게 숨을 몰아쉬었다.
「수술장은?」
「5분 전에 미군 측의 응급 수술이 끝났답니다. 출혈만 잡히면 바로 올린다고 했으니 세팅하며 대기 중일 겁니다.」
「다행이네. 바로 올려 보내.」
「넵. 고생하셨습니다.」
「너도. 계속 고생하고.」
태영이 의료 대원들과 함께 부상자를 수술장으로 올리기 위해 나가자 응급 상황에 잠시 활동을 멈췄던 피로가 다시 온몸을 덮쳐 왔다. 거대한 폭풍우에 한바탕 휩쓸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을 피해 갔으니 보람은 있었다.
「미군 환자 한 명 더 대기 중입니다.」
어깨로 몰려오는 뻐근한 통증에 얼굴을 찡그리다가 환자가 있다는 말에 고개를 돌리니 또 다른 미군 두 명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치료를 받기 위해 의료 베드 끝자락에 걸터앉아 있는 미군에게로 향했다.
거구의 남자였다. 거인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저절로 떠오를 만큼 평균치를 벗어난 덩치였다. 비스듬히 앉아 있는데도 서 있는 그녀와 눈높이가 비슷했다.
「오래 기다렸나요?」
방금 전 응급 상황에 모든 체력을 쏟아 피곤했지만, 환자를 돌려보낼 순 없기에 의례적인 인사를 건네며 상태를 살폈다. 겉보기에는 가벼운 찰과상 같았다. 피가 잔뜩 묻은 의료 장갑을 벗고 새 의료용 장갑을 꺼내 손에 끼웠다.
「아닙니다.」
덩치 큰 미군이 그녀의 물음에 짧게 답했다. 낮게 울리는 굵직한 음성은 무뚝뚝했다.
「팔을 긁혔네요. 이마 옆쪽하고. 그리고 머리 부상도.」
「네, 대충 소독은 한 상태입니다. 중위님께서 넘어지시면서 주차되어 있던 트럭 범퍼에 머리를 꽤 세게 부딪치셨는데 약 3분 정도 정신을 잃어버리셨습니다.」
옆에 서 있던 미군이 꼼꼼하게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부상자인 미군 장교보다는 다소 작았지만, 그 또한 키가 큰 편에 속하는 그녀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아야 할 만큼 키가 컸다.
「기지로 오는 동안 구토하거나 다시 기절하진 않았나요?」
X-ray 사진을 들여다보며 짧게 물었다.
「아뇨, 구토도 기절도 없었습니다.」
미들급 체격을 가진 군인에게 물었는데 대답은 헤비급 군인에게서 나왔다. 굵은 저음의 음성에는 못마땅해하는 기운이 가득 스며 있었다. 얼굴도 미세하게 찡그리고 있었다. 꼭 엄마 손에 억지로 병원으로 끌려와 투덜대는 아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미군 장교의 모습에 진은 웃음이 나와 빙긋 웃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얼굴은 의료용 마스크에 의해 절반 넘게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심기가 불편한 미군은 웃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두통이나 이명도 없었나요?」
「네,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찰과상을 치료할게요.」
드레싱 솜을 집게로 집어 팔과 이마를 깨끗하게 소독했다. 모두 긁힌 상처라 소독 후 약을 바르고 혹시 모를 감염에 대비해 주사만 놓으면 될 것 같았다. 팔꿈치와 이마에 박힌 모래 알갱이를 제거하고 상처에 연고를 바른 뒤 붕대를 둘렀다. 이마에 난 상처는 작았기 때문에 밴드만 붙였다. 다친 상처가 쓰린지 처치하는 동안 미군 장교는 이따금 몸을 움찔거렸다.
「아팠죠? 잘 참았어요.」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한 말이었지만 그다지 도움은 되지 않은 듯했다. 헤비급 미군 장교의 몸이 더욱 경직되었다. 다시 어르는 말을 하려다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아이를 대하듯 어르는 그녀의 말투에 미군 장교는 자존심이 상한 듯한 얼굴이었다.
다시 웃음이 나왔지만 이번에는 신중하게 입술을 깨물어 웃음을 참았다. 주머니에서 펜라이트를 꺼내 들어 미군 장교의 눈동자를 비췄다. 동공 반응은 정상이었다. 가까이서 본 미군 장교의 눈은 예뻤다. 짙은 갈색이 감도는 눈은 탁하지 않았다. 까만 동공은 조금의 찌그러짐이 없는 완벽한 원형이었고 촘촘한 배열을 가진 홍채의 무늬는 꼭 작은 우주를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뇌진탕은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오늘 밤은 상태를 잘 지켜보는 게 좋을 거예요. 증상이 나타나면 지체말고 도움을 요청하고요. 자, 마지막 관문인 주사 맞을 차례네요.」
그녀의 말에 중위의 표정이 다시 과할 정도로 딱딱해졌다. 대놓고 인상을 찌푸리는 건 아니었지만 무표정한 얼굴이 더욱 무표정해지니 꼭 화가 난 얼굴처럼 느껴졌다.
내 말투가 너무 명령적이었나?
잠시 생각했지만,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할 정도의 무례한 말투는 아니었기에 눈앞의 미군 장교의 딱딱한 태도에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몸에 쌓인 피로에 몽롱한 기운이 몰려들자 한시바삐 치료를 끝내고 싶은 마음에 쓸데없는 호기심을 잘라내며 주사기를 집어 들었다.
와…….
미군 장교의 팔뚝은 어마어마했다. 거대한 덩치와 어울리는 근육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손바닥으로 느껴지는 묵직한 단단함에 진은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반응에 또 한 번 놀랐다. 단 한 번도 타인의, 그것도 성인 남자의 신체를 보고 감탄해 본 적이 없었다. 그녀에게 타인의 신체란 그저 치료해야 하는 의료대상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랬기에 오늘 처음 본 낯선 미군 장교의 몸을 보고 감탄하는 자신을 인식했을 때 놀라면서도 신기한 마음마저 들었다.
미군 장교의 신체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봤을 때 매우 훌륭했다. 마치 강철로 만들어진 것처럼 어떤 것으로 힘껏 내리쳐도 부서지기는커녕 흠집 하나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이제 보니 트럭 범퍼에 머리를 찧고도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게 강철만큼 단단한 신체 덕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운동으로 얻어낸 인공노력의 훌륭한 결과물인지 아니면 고된 군 훈련으로 자연스럽게 다져진 자랑스러운 대가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단단한 근육으로 뒤덮인 육체는 보기 좋게 탄탄했다. 아마 태영이 보면 무척 부러워할 만한 엄청난 근육일 게 분명했다.
파상풍을 예방하는 약물까지 주사한 후 미군 장교의 몸에서 손을 뗐다. 주사를 맞는 모든 사람이 으레 그러듯 강철의 보디를 가진 남자 또한 주삿바늘이 들어가자 따끔한 통증을 느끼는 건지 움찔거렸다.
「치료 끝났습니다. 내일 다시 오세요. 한 사나흘 정도 소독하고 연고 바르면 될 거예요. 다시 이쪽으로 와도 좋고 아니면 미군 진료실로 가도 되고요.」
다 쓴 주사기와 빈 약병을 폐기함에 던져 넣고 짤막하게 말했다. 주사를 맞을 때 아파하던 것과 다르게 미군 장교는 처치가 끝나자 재빠른 몸놀림으로 일어섰다. 무뚝뚝한 음성으로 짧게 감사 인사를 내뱉고는 진료실을 나갔다. 진은 그제야 뻐근한 통증이 계속해서 일고 있는 어깨를 손으로 주물렀다.
“인계하고 왔습니다.”
나이스 타이밍이었다. 수술장에 올라갔던 태영이 다시 돌아왔다. 진은 서둘러 의료용 마스크와 장갑을 벗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다시 반듯하게 묶은 다음 군 모자를 집어 들었다.
“나 먼저 들어간다. 여기 정리 좀 부탁할게.”
“넵, 새벽부터 정신없으셨을 텐데 얼른 들어가 쉬세요. 지금 꼴이 말이 아닙니다.”
태영의 말처럼 그녀의 몰골은 처참했다. G-스탄에 온 후로 숙면을 하지 못한 탓에 그늘이 짙게 내려앉은 안색은 파리했고 피부는 거칠고 푸석푸석했다. 새벽부터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흘린 땀과 식중독 환자들이 게워 낸 토사물이 섞인 군복에선 불쾌한 냄새가 났다. 거기에 피 냄새까지 진동하자 가만히 있어도 속이 울렁였다.
“고마워. 혹시 또 응급 생기면 바로 무전하고.”
“넵!”
태영이 활기찬 음성으로 소리치며 요란스럽게 거수경례했다. 똑같이 정신없이 바빴음에도 지친 기색이 없는 태영의 체력에 감탄하며 진료실을 나왔다. 종종걸음을 치며 짧은 복도를 빠르게 지나 건물 밖으로 나가는 출입문을 열기 위해 손을 뻗으려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녀가 손을 다 뻗기도 전에 문이 활짝 열렸다.
고개를 돌리니 그녀보다 조금 더 먼저 진료실을 나갔던 두 미군이 서 있었다. 거구의 미군 장교는 그녀를 대신해 문을 열더니 먼저 지나갈 수 있게 한쪽으로 비켜섰다.
「감사합니다.」
미군 장교의 친절함에 고마움을 표시하며 문을 나섰다. 밖으로 나오니 아직 완벽하게 저물지 않은 태양 빛이 피부에 강렬하게 닿았다. 그녀는 들고 있던 군 모자를 머리에 눌러쓰며 따가운 태양 빛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