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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정령사 1권(10화)
3 장 집을 나서다(4)


후욱.
무슨 말을 하려는지 갑자기 숨을 한번 고른 황 객주. 비장한 표정을 지은 그의 입에서는 다소 놀라운 말이 튀어나왔다.
“다섯 째, 각자 성의를 보여 주십시오.”
“서, 성의라고요?”
이 말은 제갈추도 예상하지 못했는지 다소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러나 이내 안정을 되찾고, 차근히 물어보기 시작했다.
“돈도 좋고, 무기도 좋고, 약도 좋습니다. 무엇이든 성의를 보여 주십시오. 만약 제 기대에 못 미칠 때에는 그 문파에 약간의 불이익이 돌아가거나 이 말들 자체가 없었던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흐음!”
그들이 조사하고 파악한 황 객주는 전혀 이럴 사람이 아니었기에 놀라움은 배가됐다. 또한 갑작스런 변화였기에 그의 기대치도 전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원래 돈을 밝히던 자라면 어느 정도 파악이나 가능하겠건만 이건 도무지 감도 잡히질 않았다.
그런데 기대에 못 미칠 경우에는 불이익이 돌아오거나 없던 일로 만든다고 하지 않는가? 이 중에 결코 그런 일을 당하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 그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자파가 끌어올 수 있는 모든 자금력을 총동원해야 할 판이다.
‘제길, 왜 갑자기 변한 거야?’
‘분명 팽가놈들이 명검과 거금을 잔뜩 안겨 줘서일 거야.’
지금으로서 생각할 수 있는 건 팽가에서 받은 돈들 때문에 돈맛을 알고 사람이 변했다는 것밖에는 없었기에 팽위천을 바라보는 무림인들의 시선이 곱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애써 시선들을 외면하는 팽위천.
그런 그를 압박하던 기운들은 곧 황 객주가 거두어 갔다.
“여기 지필묵을 드릴 테니 각서를 써 주십시오. 만일 이 약속들 중 하나라도 어길 시에는 만천하에 이 각서를 공개하고 관의 도움을 받을 것입니다.”
딱히 어길 만한 것도 없었지만 자신들이 주게 될 금화라면 황실과도 줄이 닿을 수 있을 것이기에 무림인들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관 정도야 어떻게든 무마시킬 수 있지만 황실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어길 일이 뭐가 있겠냐라는 생각과 자신에게 돌아온 지필묵을 보고 모두 잡생각은 떨쳐 버렸다.
“그럼 조만간 여러분의 성의를 본 뒤, 화영을 설득해 보겠습니다.”
“그, 그러시지요.”
각서를 품에 고이 접어 챙기고 돌아서는 황 객주를 보며 무림인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각 문파의 수장들이 본산, 본가로 보내는 십수 마리의 전서구가 소소객잔 인근 하늘을 뒤덮었다.

정확히 한 달.
황 객주는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에서 가져온 ‘성의’를 모두 점검했다. 소림의 소환단 세 알과 무당의 태을신단 한 알. 일곱 자루의 명검과 세 자루의 기병. 그리고 수백 장의 전표. 잡다한 기물들은 치워 버리고 추린 것이 이 정도였다.
합치면 상상도 못할 금액이 되는 전표는 제쳐 놓고 다른 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세상에 풀면 크고 작은 분란이 일어날 터였다. 때문에 황 객주 앞에 내놓으면서도 무림인들의 손은 덜덜 떨렸다.
담담한 척했지만 황 객주 역시 이 물건들의 가치를 짐작하고 경악했다. 전표에 적힌 금액이 고급 객잔 수십 개를 짓고도 남을 정도인데 그에 상응한다고 내놓은 물건들은 좀 대단하겠는가?
실제로 소림의 소환단이나 무당의 태을신단이라 하면 무가지보로 불릴 만큼 대단한 것이었으나 황 객주가 그것까지 알 수는 없었다. 대충 대단히 뛰어난 약이라 짐작만 할 뿐.
“이 정도면 나쁘진 않군요.”
“헐!”
속가제자들에게 파문까지 들먹이며 돈을 뜯어낸 장문인들인지라 아직도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한 황 객주의 말에 한 달 전 내상이 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데 이 약들은 뭡니까?”
“허험! 이 약은 소림 비전의 방법으로 만든 소환단이라는 것인데 내상을 치료하는 데 탁월하고 한 개가 10년 내공을 증진시켜 주는 영약이오.”
“이 약은 무당 비전의 연단법으로 제조한 태을신단이라는 것인데 한 알로 삼십 년 내공을 증진시킬 수 있는 귀한 영약이라오.”
자파에서 만든 영약에 대한 자부심 때문인지, 이제 황 객주에게 손바닥 비빌 일이 없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기둥뿌리 휘청일 정도로 무리하게 만든 것에 대한 불만 때문인지 무림인들의 말투가 조금 변해 있었다. 원래부터 무림인은 일반인들에게 하대를 했기에 황 객주는 별로 신경 쓰진 않았지만.
“쉽게 말해 속 안 좋을 때 먹는 약과 힘세지는 약이란 거군요.”
“허어! 이건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라…….”
“화영을 설득해 볼 테니 며칠만 기다려 주십시오.”
두 영약의 뛰어남을 아는 무림인들은 일제히 황 객주의 간단명료한 정의에 대해 뭐라 반박하려 했지만 화영을 설득하겠다는데 토를 달수는 없었다. 그저 화영만은 저 영약들의 능력을 알아줄 거라는 믿음만을 가질 뿐.
“끄응! 알겠소이다.”
네 알의 환약을 목함에 고이 담은 황 객주는 곧 자리를 파하고 일어섰다. 또한 모든 무림인에게 객잔에서 나가 주기를 요청했다. 그렇지 않아도 소소객잔에 머무르느라 기름진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무림인들이었기에 약간의 제자들만 객잔 주위에 남기고 흔쾌히 물러났다. 어차피 화영이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들이 있다 해도 막지 못할 것이라는 핑계였다.
객잔 주위에 남은 각 파의 제자들은 객잔 안에서 나는 작은 이야기 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만한 고수가 아니었기에 황 객주는 마음 놓고 화영과 이야기할 수 있을 터였다.
황 객주가 무림인들에게 받은 전표와 명검, 기병, 환약들을 정리하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때, 비밀통로를 통해 밖으로 나갔던 화영이 객잔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할아버지, 다녀왔습니다!”
해맑게 웃는 화영을 보며 황 객주는 가슴 한켠이 아려옴을 느꼈다.
‘무림인들의 꼭두각시라니, 이 작은 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도리가 없었다. 이대로 있으면 언젠가는 강제로라도 화영을 빼앗길 것이고, 그렇게 되면 상황은 더 안 좋아질 터였다.
어쩌면 마교도 행세를 하며 객잔을 불태우고, 마을 사람들을 몰살시킬 수도 있겠지. 그렇게 해서라도 화영의 분노를 이끌어 내고 이용해 먹을 수 있다면.
‘어차피 그리될 것이라면 이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을 만한 것들을 만들어 주는 게 좋겠지.’
마음을 굳힌 황 객주는 조용히 적고 있던 장부를 덮고 화영을 불러다 옆에 앉혔다.
“화영아, 이제부터 이 할아비가 하는 말 곡해 없이 잘 들어야 한다.”
“네, 할아버지.”
후욱.
황 객주는 다시 한 번 호흡을 가다듬었다. 가슴을 저미는 고통에서 몰려오는 신음. 그것을 간신히 집어삼킨 황 객주의 목소리는 작게 떨리고 있었다.
“화영아, 혹시 무공을 배워 보고 싶지 않느냐?”
“무공이요?”
“그래. 이 할아비가 언제까지나 네 곁에 있지는 못할 텐데 내가 가고 나면 이 험한 세상을 너 혼자 헤쳐 나가야 하지 않느냐. 무공을 한두 수 배워 두면 네가 힘을 허튼 데 쓰지 않는 한 네 몸 하나 성히 지키는 데는 문제없을 것이야.”
확실히 이번 일이 아니었어도 걱정되던 부분이긴 했다. 황 객주의 나이는 이미 오십하고도 둘. 화영의 나이가 대충 열셋 정도이니 장성한 모습 정도는 볼 수 있겠지만 아직도 세상 물정 모르는 화영인지라 걱정은 크기만 했다.
다행히 무공에 대해 들은 게 있어 동경을 품었던 듯, 화영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저 나이 때의 아이들이라면 무림을 질타하는 영웅이 되고자 하는 꿈은 한번쯤 꾸기 마련이니까.
‘아빠가 무공은 정령술의 극을 이루기 위한 보조 방편으로 4써클에 오른 후에나 익히라고 했지만 이미 3써클이고 4써클을 이룰 날도 머지않았으니 괜찮겠지?’
달랐다. 화영이 무공에 약간의 동경을 품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배우고 싶어하는 목적은 무림의 영웅이 되고자 하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잘됐구나. 한데 이 할아비가 알아보니 무공이란 것은 어릴 때, 딱 네 나이 때부터는 시작을 해야 한다더구나. 그렇지 않으면 뼈가 굳어서 쉽게 배우기 어렵다나?”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상승의 무공을 배울 경우에나 해당했다. 지금 황 객주가 화영에게 말한 대로 그저 남에게 얕보이지 않을 정도의 무공이라면 조금 늦게 입문한다 해도 큰 차이는 없을 터였다.
하지만 명문가의 자손들이 어릴 때부터 무공을 배우면서 세상에 알려지기는 무조건 어릴 때부터 배워야 한다고 알려졌기에 언뜻 들은 바 있는 화영도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할아비는 네가 세상에 나가 무공을 배우고 돌아왔으면 한단다. 마침 객잔에서 머물던 분들이 너만 좋다면 흔쾌히 거두어 주시겠다 하니 이참에 그분들 중 한 분을 따라가서 무공을 배우고 돌아옴이 어떠하겠느냐?”
“그 사람들을 따라가라고요? 그것도 지금?”
무공을 배울 생각은 했지만 황 객주의 곁을 떠날 생각은 아직 해 보지 않은 화영이었기에 놀란 토끼 눈이 되어 쳐다봤다. 더구나 자신을 숨어서 쫓아다니던 사람들을 따라가라니?
“혹시 저번에 할아버지가 납치됐던 게 저랑 관련 있나요?”
“아, 아니다. 그건 아니다!”
잠시 생각하던 화영이 불쑥 질문을 내던지자 황 객주는 손을 저으며 부정했다. 여기서 인정해 버리면 어린 화영에게 큰 짐을 지우게 될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그 정도 눈치도 못 챌 화영이 아니었다.
‘내가 이곳에 있으면 할아버지만 더 위험하게 만들겠구나. 그 납치범들, 할아버지를 노리기엔 마나가 너무 강했어. 그래, 어차피 4써클 마스터가 될 때쯤에는 세상을 돌아보고 오려 했으니 이참에 나가자. 조금 일찍 떠날 뿐이야. 그만큼 일찍 돌아오면 되니 변하는 건 없어.’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한 화영은 황 객주가 걱정하지 않게, 밝은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러겠노라고.
‘속이 깊은 아이다.’
황 객주도 어렴풋이 알아차릴 수 있었다. 화영이 납치 건에 대해 뭔가 짐작하는 바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알기 때문에 흔쾌히 수락했음을. 그러면서도 웃는 화영을 보며 황 객주는 가슴이 아팠다.
“언제든…… 돌아올 수 있을 때 바로 돌아오거라. 할아비가 언제나 여기서 이렇게 기다리고 있으마.”
“네, 할아버지.”
근심 가득한 황 객주를 향해 화영은 한 번 더 방긋 웃어 보였다.

화영이 떠나기까지 준비 기간은 정확히 삼 일이 걸렸다. 딱히 삼 일이라고 누가 못 박은 것은 아니지만 하나라도 더 챙겨 주기 위해 황 객주가 분주히 뛰어다닌 결과 그만큼 걸린 것이다.
무림인들에게 받은 전표 중 일부를 화영의 몫으로 돌려서 천하전장에 맡기고, 하오문에 의뢰해서 제법 세밀한 각 문파 정보를 책자로 담았다. 풍문으로 주워들은 무림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거나 전문 이야기꾼을 데려와 무림에 대한 기본 지식을 쌓게 하기도 했으며 무림인들과 한 약속 중 각 파의 무공 한 가지씩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하오문에서 받은 책자로 배울 무공을 미리 고르기도 했다.
물론 내공심법과 무공이 서로 어울리지 않으면 형편없는 위력을 발휘하거나 최악의 경우 시전자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기에 그런 것이지만 다행히 화영의 머릿속에선 황 객주의 말과 전혀 다른 비급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무당파는 면장, 곤륜파는 운룡대팔식이다. 모두 기억하겠느냐?”
“알았어요, 할아버지.”
문밖으로 나서기 전, 황 객주가 다시 한 번 각 파에서 배울 무공을 점검해 줬다. 그가 일러 주는 것은 하나같이 각 파의 유명한 절기들. 이야기꾼들과 대화하면서 ‘이걸 모두 익히는 자가 있다면 그자가 천하제일인이다.’라는 말을 듣고 욕심을 내본 것이었다. 화영이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강해지길 바라면서.
‘……남궁세가에서는 그게 좋겠군.’
하지만 화영이 원하는 것은 강한 무공이 아니었다. 무공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일 뿐, 그의 머릿속은 오직 정령술만이 차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황 객주가 정해 준 무공들은 다수가 다른 비급들로 교체되어 있었다.
따로 배울 무공들을 정리한 화영은 밖에서 기다릴 무림인들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준비가 다 되셨습니까?”
“네.”
황 객주가 무기 하나쯤은 있는 편이 좋을 거라고 우겨서 챙겨 둔 명검, 적풍검을 허리춤에 매어 차고 한발 앞으로 나섰다. 벌써부터 눈물이 글썽거리는 황 객주. 화영도 마음이 아팠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아주 가는 것도 아니고 금방 돌아올 거야. 정령술의 극을 이뤄야 하지만…… 일정한 경지에만 오르면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는 함께 있어도 괜찮아. 그래, 소풍 가듯이 잠깐 나갔다 오는 것뿐이야. 그러니까 울면 안 돼.’
화영은 자신이 울면 황 객주가 더 슬퍼할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때문에 울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 모습이 더 황 객주의 가슴을 후벼 팠지만 화영은 끝까지 울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어색하게나마 웃음을 지어 보였다. 화영은, 생각보다 강한 아이였다.
“아 참, 잊을 뻔했구나. 이것도 가져가거라.”
황 객주가 내민 것은 작은 목함이었다.
“이게 뭐예요?”
“여기 작은 환단 세 개는 속이 안 좋을 때 먹는 것이고, 여기 큰 환단 하나는 먹으면 힘이 세지는 것이란다.”
딸칵.
목함을 열자 청량한 기운이 코끝 깊숙이까지 느껴졌다. 향만으로도 범상치 않은 환단들. 화영은 직감적으로 이 환단들이 보통 약이 아님을 알았지만 연단술이라든가 무림기보에 대한 지식이 전무(全無)했기에 그냥 곧이곧대로 믿어 버렸다.
“휘유!”
화영이 목함을 건네받는 모습을 보며 무림인들은 일제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무가지보로 불리는 소환단과 태을신단을 단순한 배탈약과 보약 정도로 말하는 황 객주에 대한 것이기도 했고 다행히 그 효능을 알아보는 듯한 눈빛의 화영에게 보내는 안도의 한숨이기도 했다.
“할아비가 여기서 언제까지고 기다릴 테니 꼭 돌아와야 한다.”
“금방 돌아올게요, 할아버지.”
황 객주와 화영이 두 손을 꼭 맞잡았다. 기어이 눈물을 흘리고 마는 황 객주. 자꾸 시간이 지체되자 성격 급한 황보세가의 가주, 황보장천이 나섰다.
“험험, 이별은 짧을수록 좋다 하지 않습니까? 이만 가시지요.”
“할아버지, 그럼 다녀올게요.”
“그래, 그래…….”
아쉽게 손을 놓는 둘의 모습에 황보장천은 죄짓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 모든 게 다 세가를 위한 일. 좋지 않은 느낌이나 기분 따위는 털어 버리고 화영을 마차로 인도했다.
“자, 출발합시다!”
이미 각 파의 장문인들은 체면상의 문제로 모두 돌아갔기 때문에 화영을 호위하는 고수들은 전부 그보다 최소한 배분씩은 높은 자들이었지만 흥이 난 황보장천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시원하게 소리 질렀다.
덜컹덜컹.
화영과의 의견 조율에 따라 이 마차는 산동, 안휘, 하남, 호북, 귀주, 운남, 사천, 청해, 감숙, 섬서, 산서를 지나 다시 하북지방으로 오게 될 터였다.
소소객잔과 가장 가까운 하북팽가에 거취를 정하기로 이미 마음을 굳힌 화영이었지만 한 번씩은 각 파에 들러 보아야 한다는 무림인들의 강력한 주장 때문에 뜻하지 않은 중원 일주를 하게 된 것이다. 때문에 다시 하북으로 돌아올 핑계를 만들기 위해, 팽가를 가장 나중에 방문하기로 했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십여 명의 무림 최고수들이 호위하는 마차는 첫 번째 목적지. 산동성 제남지방, 황보세가를 향해 속도를 높였다.
“화영아…….”
점이 되어 사라지는 마차를 바라보던 황 객주는 마차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자 눈물을 닦고 급히 떠날 채비를 했다.
객잔의 운영은 오랜 친우인 약초상 한씨에게 이미 맡겨 놓았고 도둑이나 무림인들이 노릴 만한 전표와 명검들은 중원 최고의 자리를 다투는 천하전장에 전부 맡겨 놓았다.
서둘러 간단한 채비를 마친 황 객주는 아무에게도 목적지를 알리지 않고 길을 떠났다.
그가 다시 소소객잔으로 돌아온 것은 무려 다섯 달 뒤.
초췌한 모습으로 돌아온 황 객주는 단순한 여행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움직임이었는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