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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정령사 1권(20화)
7 장 무당파(2)
“헥, 헥!”
수십 번의 멈춤 끝에 산문에 도착하여 거친 숨을 몰아쉬는 화영을 보며 무림인들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신법을 사용하면 금방일 텐데 어째서 힘들게 걸어 올라온 것인가? 혹시 무공은 강하되, 신법을 모르는 건 아닐까?’
그러나 뛰어난 무공에는 그에 맞는 보법, 신법이 있기 마련인지라 금세 생각을 접었다. 하지만 궁금증을 못 참는 사람이 꼭 하나씩 있는 법. 화산파 고수, 진문수가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헌데, 화영님께서는 왜 그냥 걸어 다니십니까?”
“왜 걸어 다니다니요? 그럼 안 걷고 어떻게 움직여요?”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신법이든 보법이든 기를 이용해서 움직이는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면 더 편하고 빠를 텐데 왜 힘들여 걸어 올라오시냐는 거지요.”
“아…….”
알아듣는 듯했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그의 말을 듣고 화영이 떠올린 것은 실프를 이용한 부유이동. 당연히 대답도 뭔가 이상했다. 무림인들이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걸을 수 있는데 괜히 힘 빼긴 싫거든요. 자꾸 힘에만 의존하다 보면 몸이 약해지잖아요.”
마나의 사용은 몸의 피로로 이어지기 때문에 힘 빼기 싫다고 한 것이고, 정령술사는 조금 달랐지만 마법사의 경우 그 능력에만 의존하다가 몸이 약해져서 싸울 때 체력의 고갈이 쉽게 일어났다는 말을 아빠에게 곧잘 들었던 터라 뒷말이 나온 것이다. 물론 정령술사는 마법사와 달리 정령과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마법사보다는 체력적으로 우세했지만.
그러나 그런 것들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리 없는 무림인들이다.
‘아아, 신공절학을 익히고, 천하를 오시할 무의 경지에 올랐어도 육체의 단련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뜻이구나!’
갑자기 모두가 감탄한 표정을 지으며 멍하니 서 있자 화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입을 열었다.
“저기, 안 들어가요? 빨리 들어가서 쉬고 싶은데.”
“아, 예. 들어갑니다. 어서 가시죠.”
앞 다투어 안내하는 무림인들이 마치 점소이 같아 보인 건 비단 화영의 착각만은 아닐 터였다.
무당파에 들어서자마자 떼를 쓰는 화영.
결국 화영이 곧장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무당파 장문인인 소양진인은 꿔다 논 보릿자루가 되어 버렸다.
씻고 저녁까지 한숨 푹 잔 화영은 나가 봐야 도관이라 마땅히 재미있는 일도 없음을 알고 ‘그 비급’을 얻기 전, 오랜만에 마나 수련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몸도 마음도 편안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마나 수련. 그러나 화영의 자세는 불편하기 그지없는 가부좌였다. 불편하긴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가부좌를 좀 더 익숙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소림사에 도착하고 나서는 속성삼재심법을 수련하느라 마나 수련을 못했으니 근 한 달 반 만인가? 에구, 그것만 얻고 나면 마나 수련도 열심히 해야겠다. 더 이상 속성삼재심법으론 마나도 안 모이니까.”
그동안 마나 수련을 소홀히 했던 자신을 탓하며 마나 수련을 위해 정신을 가다듬었다.
주변의 마나가 크게 요동치더니 화영의 전신 모공을 통해 빨려 들어갔다. 평소보다도 월등히 많은 양의 마나. 과연 도교의 4대 성지 중 한 곳인 무당산이었다.
그러나 화영의 마나를 불리는 것은 비단 마나의 짙은 농도만이 아니었다. 흡수하는 도중에 전신 세맥으로 퍼진 태을신단과 소환단의 기운. 비록 예전처럼 전체를 흡수한 게 아니었지만 속성삼재심법의 영향을 벗어난 숨은 기운들은 결코 작지 않았다.
덕분에 화영은 평소의 두세 배는 되는 마나를 꾸준히 흡수할 수 있었다. 세맥에 숨어 있던 영약의 기운이 근 10년 내공을 넘어서는 것이다.
혈도와 전신 세맥. 각자 이용하는 통로가 다른 기와 마나를 병행한 덕분에 화영은 조금의 남김도 없이 영약의 기운을 흡수할 수 있었다.
“후아, 마나의 밀집도가 정말 높은데? 여기라면 다른 곳보다 훨씬 빨리 마나를 모을 수 있겠어.”
외부에서 빨려 들어오는 마나와 세맥에서 흡수되는 마나를 구분해 본 화영의 감상평이었다. 어지간한 산속보다도 3할은 많고 일반 도시보다 5할은 많은 마나.
마나에 민감하지 않은 일반인이나 무림인들은 그저 공기가 맑고 기분이 상쾌해진다라고만 느끼겠지만 화영은 충만한 마나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꼬르르륵.
“으, 배고파. 아침 식사 시간까진 멀었으려나? 에잇! 주방에라도 가 보자.”
힘들게 계단을 올라와 식사도 거르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 터라 날이 제법 밝은 지금, 배가 고프지 않을 수 없었다. 주린 배를 부여잡은 화영은 혹시나 뭐라도 얻어먹을까 하는 마음에 주방을 찾아 문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한 번 와 본 적도 없는 곳에서 원하는 장소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잠시 후, 서쪽에 있는 주방을 찾으려던 화영은 동쪽의 연무장 근처를 서성이고 있었다.
“여긴 또 어디지? 끄응, 그냥 실프한테 찾아 달라고 할 걸 그랬나?”
“하압!”
“응?”
팡! 팡!
잔소리 들을 걸 각오하고 실프를 부르려는 순간, 멀지 않은 곳에서 기합 소리와 함께 진각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맞춰 발동하는 호기심. 잠시 배고픔도 잊고 쫓아간 소리의 끝에는 십수 명의 무당파 제자들이 대련하고 있는 연무장이 있었다.
“차앗!”
유(柔)함을 중시하는 무당파답지 않게 제법 패도적인 무공을 펼치며 짓쳐드는 사내. 그러나 상대는 입가에 미소를 만연히 띠고 느릿느릿하게 움직였다.
‘바람?’
손날을 빳빳이 세우고 달려드는 사내를 가볍게 툭툭 침으로써 자세를 흐트러뜨리고 돌진력을 역이용하여 뒤로 날려 버리는 그의 손동작에서 화영은 바람을 느꼈다.
연약하고 부드러운, 그러나 누구도 베어 낼 수 없는 바람을.
‘사람들은 검을 휘두를 때 바람을 베어 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바람이 둘로 나뉘어 검을 타고 움직인 것에 불과하다.’
그의 움직임을 보며 화영은 예전에 아빠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자허풍뢰공(紫虛風雷功)과 태청산수(太淸散手)입니다. 저렇게 대련을 함으로써 이론만이 아닌 실전을 익히게 되는 거죠. 서로 번갈아 가며 수련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바람의 기운을 읽어 내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어느새 무당파 장문인, 소양진인이 다가와 설명해 줬다.
그리고 과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닥에 처박혔던 사내와 내던졌던 사내가 역할을 바꾸어 대련을 이어갔다.
“태청산수라면 무당파에서도 제법 알아주는 무공인데 화영님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좋아요. 바람의 속성을 잘 이용하는 것 같고.”
“허허허, 칭찬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요. 그런 의미에서 화영님이 한 수 가르쳐 주심이 어떻겠습니까?”
소양진인은 말을 하면서 슬쩍 화영의 눈치를 살폈다.
“글쎄요. 별로 내키지 않는데…….”
태청산수에서 느껴지는 바람과, 그 바람의 속성까지는 읽어 냈지만 마땅히 제압할 방법을 찾지 못했기에 화영은 거절의 뜻을 밝혔다. 그렇다고 정령술을 사용하자니 자칫 큰 상처를 입힐 수도 있었고.
“험험, 그러십니까? 그렇다면 별수 없지요.”
“그보다 식당이 어디예요? 배고파서 나왔는데.”
“아,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무안해 하던 소양진인은 냉큼 화영의 말을 받으며 다음을 기약했다. 기회가 이번 한 번뿐은 아닐 테니까.
식당에는 이미 다섯 명의 무림인이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밖에서 화영을 애타게 찾고 있지만 달려가 알려 주고 올 만큼 친한 사람은 이 중에 없었다.
“근데 소림사나 여기나 다 왜 반찬에 고기가 없어요?”
딱히 반찬 투정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금세 차려져 나온 반찬들을 보며 화영이 궁금한 듯 물었다.
그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무림인들.
“그야 살아 있는 것의 생명을 함부로 빼앗지 않기 위해서지요.”
“하지만 이 나물들도 살아 있는 거잖아요?”
“……?!”
이들은 막연하게 알고 있을 뿐이지만 화영은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풀과 나무의 생명력을, 그들이 가진 생명의 힘을.
그래도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던 이들이었기에 깨달음까진 아니어도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그리고 다른 이유를 댔다.
“허허허, 그렇지요. 하지만 고기를 먹으면 몸에 탁기가 쌓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희는 몸을 정갈하게 하기 위해 육식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탁기도 기잖아요? 다 같은 마나, 아니 기인데 꼭 가릴 필요가 있나요?”
“아?”
마나를 처음 느끼고, 모을 때 아빠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갸웃하는 화영이었지만 그것은 맑든 탁하든 모든 기운을 포용하는, 아니 모든 기운 그 자체인 마나를 모으는 자신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란 것을 알지 못했다. 삼재심법 또한 마나와 비슷했기에 알지 못한 것도 있지만.
하지만 무림인들에겐 이것이 커다란 깨달음의 한 자락과도 같았다. 아니다. 실제로도 까마득한 경지의 깨달음이었다. 다만 화영이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수위가 너무 높았던 것인지 깨달음은 무림인들의 머릿속에서 잡힐 듯 잡힐 듯하다가 달아나 버렸다.
“아아…….”
큰 기회를 놓쳤음을 안타까워하는 아쉬움의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화영을 보는 눈빛에 평소보다 짙은 존경의 빛이 담겨 있었다.
“당장 육류로 반찬을 준비하라!”
소양진인이 즉각 주방을 향해 소리쳤다.
“금방 고기반찬을 준비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화영님.”
“장문인, 창고에 고기가 없는뎁쇼.”
흡사 숙련된 점소이 같은 다소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화영에게 아부하는 소양진인에게 주방에서 불가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음, 그냥 먹을게요. 고기야 나중에 산을 내려가서 먹어도 되는 거니까.”
별생각 없이 한 말이었지만 소양진인은 ‘빨리 산에서 내려가 고기를 먹겠다.’라고 해석을 했고, 화영을 좀 더 머무르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흥분해 버렸다.
“화영님, 그럼 다음 식사 때부터는 고기반찬을 준비하겠습니다.”
“장문인, 여기서 마을까지 거리를 생각하면 점심때까지 준비하는 건 무리입니다만.”
“그럼 본산의 모든 제자들에게 당장 사냥해 오라고 해! 무당산을, 아니 이 근처 산을 샅샅이 뒤져서 뭐든 한 마리씩 못 잡아오면 폐관 삼 년이다! 장문인령으로 공표시켜!”
덕분에 무당산 일대에 때 아닌 사냥 열풍이 불어 닥쳤다.
후에 소양진인은 이 일을 제자들의 생존 능력을 길러 주기 위한 것이라 해명했지만 어디까지나 궁색한 변명이었다.
무당산이 한바탕 뒤집히는 사이, 이 일의 원흉인 화영은 배불리 밥을 먹고 여러 문파의 고수들과 상품(上品)의 용정차를 들이키고 있었다.
“아, 맞다. 비급 말인데요, 지금 말해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언제든 말씀만 하십시오.”
아직 어려서 차 맛을 몰랐기에 두어 모금 마시고 잔을 내려놓은 화영은 슬그머니 비급에 대해 운을 띄웠다.
여러 문파 중에서도 유독 어느 걸 골라야 할지 고민이 많았던 무당파. 그리고 마지막까지 후보로 남았던 네 가지 무공들.
하나같이 탐나는 것들이었지만 단 하나만이 선택 가능했기에 조금 전에야 겨우 마음을 굳힌 화영이었다.
“양의심공으로 주세요.”
“으음!”
화영의 말에 소양진인이 작지 않은 동요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화영과 함께 다닌 춘양진인이 보낸 전서구에 의하면 황보세가에서는 오행권, 남궁세가에서는 기관진식, 소림사에서는 금강경을 요구했다고 한다. 물론 남궁세가의 기관진식은 큰 것이라 할 수 있으나 무공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별 비중이 없다고 느껴지는 게 사실.
즉, 진짜 비급이라 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인 것이다. 더구나 특별히 보강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닌 만큼 아까운 마음이 슬그머니 드는 것이 현실이었다.
“안 되나요?”
“아닙니다. 당연히 드려야죠. 한데, 어째서 그걸 선택하셨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냥,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확실히 분심법의 일종인 양의심공은 어떤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소양진인은 어쩔 수 없이 비급을 내줬다.
비급을 받자마자 방으로 획 하니 들어가 버리는 화영. 또 한동안 방에만 틀어박힐 것 같자, 무림인들은 입맛만 쩝쩝 다셨다.
무림인들의 예상대로 화영은 식사시간을 제외하곤 방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았다. 나와 봐야 딱히 할 일도 없고 늙은이들만 자기 뒤를 졸래졸래 따라다니니 나가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긴다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이었다. 때문에 가끔은 식사마저도 방으로 가져다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그러는 사이, 끊었던 화기를 입에 댄 무당파 도사들은 몸에 미묘한 오차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몸과 단전에 미세한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은 물론, 몇몇은 갑자기 들어온 화기에 속이 뒤집히기도 했다.
그 깨달음도 얻지 못하고, 그렇다고 화영처럼 특이한 경우도 아니면서 무모하게 탁기를 유입시킨 벌이었다.
결국, 화기를 입에 댄 지 열흘 만에 장문인인 소양진인을 비롯한 모든 무당파 도사들은 다시 화기를 끊고 곡기만 섭취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주방은 손님들과 본산의 도사들 것으로 따로 요리를 준비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