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무림정령사 1권(23화)
8 장 점창파(1)


무당산을 떠나 운남성(雲南省) 대리시(大理市) 인근의 점창산(點蒼山)까지 가는 데는 꼭 지금까지 4개 문파를 도는 동안 걸린 시간이 걸렸다.
무려 두 달이라는 긴 시간.
여태까지처럼 한 성에서 다른 성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오대세가와 구파가 존재하지 않는 중경을 걸치고, 귀주를 가로질러 와야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점창산은 운남에서도 제법 깊숙이에 있었다.
그 두 달이란 지루한 시간 동안 화영은 마차 안에서 점창파에 대해 연구도 해 보고, 그동안 익힌 것들을 참오하기도 했다.
그러나 점창파에서 얻을 비급은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고 내공이나 마나의 변화도 그리 크지 않았다.
사실 중간에 남궁성아를 위해 캐 놓은 산삼 두 뿌리에서 잔뿌리를 몇 개 떼어 먹어 보기도 했다. 무림인들은 이런 걸 먹고 큰 내공의 증진을 본다는 얘기가 생각나서였다.
하지만 산삼은 조화롭지 못하고 기운이 양기에만 너무 치우쳐 있어, 정순하고 조화롭던 마나와 내공이 한쪽으로 치우칠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잔뿌리 몇 개를 먹어 본 이후로 화영은 산삼에 손도 대지 않았다. 마나에 민감한 덕에 미세한 변화를 알아차린 것이다.
사실, 비슷한 이유로 무림인들도 양강의 무공을 익히는 자가 아니라면 그것을 중화시킬 만한 음기를 지닌 영약과 같이 복용했지만 화영이 알 리 없었다.
다만 그녀에게는 도움이 되겠지 생각하며 고이 모셔 둘 뿐.
“화영님, 도착했습니다. 내리시지요.”
양의심공의 구결을 속으로 암기하며 되새기고 있을 때, 마차가 멈추고 문이 벌컥 열렸다. 내려 보니 또다시 까마득한 산길.
“……또 산이야?”
“대리시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어서 그냥 올라가시는 게 나을 겁니다.”
화영이 떼쓰기 전에, 누군가가 선수 쳐서 말했다.
꼼짝없이 산을 오르게 된 화영은 연방 투덜대긴 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발을 놀렸다.
역시나 무당파에서와 마찬가지로, 화영은 도착하자마자 안내 받은 방에서 씻고 늘어지게 자 버렸다.
그 모습에 점창파 장문인인 벽우사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미 경험이 있는 무림인들이 그의 어깨를 두드려 줬다.
화영이 다시 밖으로 나온 것은 저녁때가 지나서였다.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아 방 안에 마련된 과일과 전병들로 대충 배를 채우고 만 화영은 빨리 비급을 얻고 방에 틀어박힐 생각이었다.
그러나, 전서구를 통해 그간의 이야기를 조금 전해 들은 벽우사는 미리 꾀를 내어 기다리고 있었다.
“제일초, 일수초현!”
방문을 주시하던 자가 신호를 보내자, 장문인의 명으로 근처 연무장에 모인 일대 제자들이 발맞추어 사일검법을 연무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함께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진각 소리.
화영이 이미 몇 군데의 문파에서 연무장에 들른 바 있다 하니 이 정도면 무시하지 못하고 찾아올 거라는 계산이었다.
“제이초, 후예만궁!”
“제삼초, 반마만궁!”
“제사초, 사양…….”
“제오초…….”
자극하는 것은 소리만이 아니었다. 강호로 나가면 당장에라도 일류고수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자들이 단체로 절기를 펼치자 그 박력과 기파가 멀리까지 퍼져 그들의 존재감을, 그들의 실력을 확실히 인식시켰다.
“뭐지? 이 기분 나쁜 느낌은.”
방문을 열고 나온 화영은 몇 걸음 가지 않아 느껴지는 이상한 기운에 기분 나쁜 표정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일검법의 기파에 섞인 미세한 기운을 읽어 낸 것이다.
점창파가 도가 계열의 문파이긴 하지만 세속적인 경향이 강했고, 그 때문인지 검술 또한 살기가 배어 있었다.
이들의 검법에 살기가 배어 있는 것과 세속적인 것의 관계는 닭과 달걀의 관계처럼, 어느 것이 선행되었기 때문이라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사문을 나올 때 받은 검을 잃어버리면 죽어야 한다는 엄격하고 살벌한 계율이 있는 만큼 살기가 배어 있는 쪽이 먼저가 아닐까 추측해 볼 따름이다.
게다가 그들이 자랑하는 사일검법(射日劍法)은 사일검법(死一劍法)이라고 불리기도 할 정도로 상대를 해하려는 데 중점을 둔 무공이었다. 그래서 시전자가 특별히 살기를 품지 않았음에도 은연중에 검술에 배인 살기가 섞여 나온 것이다.
“가 보자.”
계속해서 기파가 강해짐에 따라 섞여 나오는 살기도 강해지자 화영은 호기심이 일었다. 그 기운이 자신이 감당해 내지 못할 만큼 큰 것이란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자들이 있었고, 기파는 실프로 어떻게든 해소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기파에 실려온 살기가 그리 크지 않았다.
“실프, 부탁할게.”
‘쳇, 이젠 마음대로 부려먹는군.’
투덜대면서도 조용히 바람의 막을 형성하는 실프였다.
기파가 확실히 전해지게 하기 위해서 화영의 처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연무장에 제자들을 모았기에 화영은 오래지 않아 기파의 근원지로 도달할 수 있었다.
“제칠초, 후예사일!”
이미 한 차례 끝까지 펼치고 난 후라 다시금 사일검법을 펼치는 일대 제자들의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최후 초, 구곡전척!”
‘큭, 이대로는 버티기 힘들다.’
마지막 초식이 펼쳐지자 기파를 해소하고 있던 실프가 경고를 보냈다. 두 번째 시연이라 조금 힘이 빠진 자들도 있는 덕에 어떻게든 버텨 냈지만, 한 번 더 펼치게 되면 막아 내기 힘들 거라 판단한 것이다.
“그만!”
벽우사가 소리치자 무공을 시연하던 일대 제자 전원이 절도 있게 자세를 가다듬고 정렬했다. ‘어떠냐?’라는 눈빛으로 화영을 쳐다보는 벽우사. 그러나 화영의 표정은 여전히 일그러져 있었다.
“으, 기분 나빠.”
혼자서 작게 중얼거린 말이었지만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무림인들에게는 뇌성벽력과도 같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 그런!”
아무리 상대가 천하를 오시할 수 있는 대단한 고수라고는 하나, 수백 년간 다져진 자파의 무공을 모욕하는 걸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보통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나쁘다고 표현하는 무공은 사파의, 그것도 사이한 기운이 잔뜩 흐르는 것들이 아닌가?
분노한 벽우사가 검을 빼어 들려는 순간, 검병 끝을 누르고 금나수의 수법으로 완맥을 제압하는 몇 개의 손이 있었다.
“함부로 움직이지 마시게.”
화영과 함께 온 각 파의 고수들이었다.
벽우사가 이상한 낌새를 보이자 검병 끝을 눌러 검이 뽑히는 것을 막고 금나수의 수법으로 완맥을 잡아챈 것이다.
그 와중에 마혈과 아혈을 찍은 손도 몇 개 있어, 그야말로 완벽하게 제압당했다.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는 벽우사.
한 문파의 장문인을 이렇게까지 핍박한다는 것은 그들과 전쟁이라도 벌이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으나 한 명도 아니고 구파 소속의 대부분의 고수가 나선 것이라 그로서도 눈만 껌벅일 수밖에 없었다.
“화영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데는 이유가 있을 터, 흥분하지 말고 들어 보게.”
“음, 그냥 그 기운 속에 실린 금방이라도 공격해 올 것 같은 느낌이 싫었어요.”
벽우사가 부릅뜬 눈으로 설명을 요구하는 눈짓을 하자 화영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살기로군.”
“하긴, 사일검법이 그런 경향이 강하지.”
“그럼 저들 중에 살기를 품은 몹쓸 자가 있다는 것인데…….”
“저, 저는 아닙니다.”
“저도요!”
운을 띄우자 뒤처리는 척척이었다.
순식간에 화살이 무공을 시연한 일대 제자들에게 돌아가자 벽우사는 화내던 게 무색해질 만큼 당황했다.
그리고 결국, 일대 제자 중 가장 무공이 떨어지는 한 명에게 책임을 물어 면벽시키는 것으로 어떻게든 무마했다.
무림인들은 벽우사의 의도를 알아차렸지만 그들이 시연할 때 자신들도 살기를 읽어 내지 못한 만큼 그냥 눈감아 줬다.
혹시나 화영이 정확히 한 명을 집어낼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러진 않았다.
제자들의 잘못이라 인정하기는 했지만, 사일검법이 다소 살기 짙은 무공임은 인정하지만 벽우사는 내내 뭔가 찜찜하고 미심쩍었다. 하지만 자신보다 높은 경지의 무인들이 살기로 단정하는 마당에 이견을 낼 수는 없었고 일을 이렇게 만든 화영을 몰래 노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음흉한 눈길로 쳐다보는 벽우사의 시선이 따끔따끔하게 느껴지자 화영은 배고프단 핑계를 대고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결국 식탁 앞에서 다시 만나기는 했지만, 젓가락과 밥그릇만 보고 얼른 먹어 치우니 체하지 않을까 걱정되긴 해도 불편함은 피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하지?”
벽우사의 부담스러운 눈길에 몇 번이고 자리를 피하긴 했지만 이대로 3일을 버티자니 비급이 못내 걸렸다.
무당파에 들르기 전이라면 아무 비급이나 훑고 떠나 버렸을 터였다. 하지만 자소봉을 오르며 건명의 신법을 보고 나니 무공을 경시할 마음이 싹 가셨다. 그리고 더불어 제법 대단한 문파라고 하는 이곳, 점창파에서도 뭔가 하나 좋은 걸 얻어 가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하오문이 작성한 책자에는 사일검법과 유운신법이 유독 강조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무공이라도 그런 기분 나쁜 것은 익히기 싫었고 유운신법 또한 운룡대팔식이 있으니 익힐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점창파를 대표하는 무공 둘을 제하고 나자 욕심 부릴 만한 무공이 마땅치 않았다. 다시금 책자를 훑는 화영. 약 반 시진 동안을 추리고 추리자 두 가지의 무공으로 압축되었다.
“양의검(兩儀劍)과 비천십이표(飛天十二飄)라?”
한 가지의 검술과 한 가지의 보법이었다.
사일검법과 유운신법, 그리고 사일검법과 맥을 같이하는 관일창에 묻히긴 했지만 두 가지 다 무림에서 상급으로 분류된 뛰어난 무공들이었다. 물론 화영이 그런 걸 알고 고른 것은 아니지만.
“양의검은 양의심공 때문에 끌리고, 비천십이표는 이름이 멋있고. 끄응, 고르기 힘드네.”
어린애다운 선별법이었다.
양의검은 단순히 양의심공과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였고 비천십이표는 이름이 멋있다는 단순명료한 이유였다.
하지만 당연히 무당파의 양의심공과 점창파의 양의검이 맥을 같이할 리는 없었다. 같은 도가 계열임은 맞지만 전체적인 무공 성향부터가 무당파는 온유하고 점창파는 날카로운 것을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차라리 근거 면에서는 비천십이표가 우세했다.
화영이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신법으로 운룡대팔식을 정했어도 보법으론 정한 무공이 없는 것이다.
마침 비천십이표는 상승의 보법이니 익혀 두면 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터였다.
‘비천십이표로 해라.’
“응?”
‘이름으로 보아 어떤 방식으로든 바람의 기운을 이용하는 것 같은데 그런 거라면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군.’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어느새 나타난 실프가 조언을 했다. 웬만하면 실프의 말을 따르는 화영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양의’란 단어가 못내 걸려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우웅, 만약 양의검이란 게 양의심공과 비슷한 거라면…….”
‘그럼 더 잘됐군. 확실히 양의심공이라는 것은 네 정령술을 진일보시켰다. 하지만 아무리 연습해서 마음을 둘로 쪼갠다고는 하나, 인간인 이상 결국엔 한계가 있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한다는 것은 그만큼 정신을 분산시킨다는 것. 흐트러진 정신으로 적을 상대할 만큼 무림은 만만하지 않다. 지금도 너의 친화력이 높아서 뜻대로 되는 것이지, 각 정령에게 전달되는 의지는 상당히 줄어든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미친놈처럼 정신을 더 분리시킨다고? 훗, 내 눈에는 죽여 달라고 애걸하는 걸로밖에 안 보이는군. 그렇게 죽고 싶으면 내가 죽여 줄 수도 있다.’
실프는 사정 봐주지 않았다. 생각한 그대로의 말을 여과 없이 화영에게 퍼부었다.
차가운 실프의 말에 상처 받을 수도 있고, 어린아이 특유의 고집으로 우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실프가 한 말이기에, 화영은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쌀쌀맞게 하지만 그보다 자신을 위하고 챙겨 주는 이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실프는 아빠와 자신을 이어 주는 연결고리이기도 했다.
“그럼 비천십이표를 익힐게!”
‘……그래. 하지만 지금 익힌 양의심법이란 것은 노력해서 완전히 네 것으로 만들어라.’
“응? 익히면 안 되는 거 아니었어?”
‘그것이 위험할 수 있지만 정령술을 발전시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차피 익히기 시작한 이상 마음대로 버릴 수도 없을 테고, 이왕 이렇게 됐다면 네 뜻대로 마음을 나누고 합칠 수 있도록 연습하는 게 좋다. 다만, 양의검같이 그것을 이용한 무공에는 손대지 말도록. 검이란 건 순간의 오차와 실수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마물이다.’
“응! 그럴게.”
실프는 버릴 수 없다면 완벽히 통제하라는 쪽으로 결론을 지었다. 그리고 어설프게 쪼갠 정신으로 쌍수검을 사용하다 화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엄포를 놓기도 했다.
다행히 화영은 실프의 말을 알아들었고, 비급의 종류는 비천십이표로 확정지어졌다.
목표가 정해지자 화영은 그 길로 같이 왔던 무림인들을 찾아가서 원하는 비급과 약간의 공간이 딸린 숙소를 요구했다.
아무리 무림인들의 배분이 높아도 이곳은 점창파이니 장문인인 벽우사를 찾아가는 게 도리에 맞았으나 그의 따가운 시선이 무서웠던 화영은 그나마 편한 무림인들에게 얘기한 것이다.
사실 비천십이표는 벽우사에게 배우는 편이 빠르고 좋을 터였다. 하지만 그에게 비급을 달라고 말하지 못한 것과 같은 이유로, 가르쳐 달라는 말 또한 하지 못했다. 게다가 할아버지와 이들이 한 약속은 비급을 ‘보여’ 주는 것이었지 않는가?
슬쩍 벽우사의 눈치를 본 화영은 비급만 받아서 그들이 정해 준 숙소로 줄달음질쳐 갔다.
“후유! 그 할아버진 너무 무서워.”
‘확실히 너에게 적의를 품고 있는 것 같긴 하더군. 하지만 널 해하진 못할 테니 걱정 말아라.’
“그건 알지만, 그래도 무서운걸!”
‘애는 애군. 어차피 이제는 별로 볼 일도 없을 테니 비급이나 펴 봐라.’
“응!”
비급을 펼친 화영은, 실프와 함께 한 장 한 장 정독해 나갔다. 비천십이표 또한 상승의 보법인지라 어린 화영으로선 이해하는 데 다소 어려움이 많았다. 때문에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고 조금씩 윤곽을 잡아 갔다.
그러나, 세월의 힘이라는 것인지 비천십이표를 먼저 이해한 것은 실프였다. 바닥에 약간의 표시를 한 뒤, 노움을 불러 발자국 형상을 뚜렷이 남긴 실프는 아직도 다 이해하지 못하고 뭉그적거리는 화영을 재촉하여 보법의 형(形)을 먼저 익히도록 했다.
사실 일개 하급 정령이 주인과 계약한 다른 하급 정령을, 그것도 자신과 다른 속성의 정령을 불러내고 부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화영의 곁에 있는 이 실프에게는 그런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이렇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일단 자세부터 정확히 하도록 하는 게 좋다. 무릎을 더 굽히고 턱은 좀 더 높이!’
바람을 움직여 화영의 자세를 교정하고 말로써 다독여 주는 실프는 화영에게 더없이 좋은 스승이었다.
그렇게 실프의 지휘하에 수련하길 21일.
화영은 제법 능숙하게 보법을 밟으며 이동할 수 있었다. 본디 모든 무공에는 그에 맞는 내공 심법이 따로 있었지만 축기 속도만 빼면 모든 것을 포용한다는 전설상의 혼원공과 비슷한 효과를 발휘하는 삼재심법, 아니 속성삼재심법이기에 문제될 건 없었다.
만약 무오선사가 이 자리에 있었으면 한 가지를 더 걱정했을지도 몰랐다.
그 걱정이란 바로 진기의 이동.
보법이 진정한 효과를 발휘하려면 형(形)뿐만 아니라 진기의 이동 또한 이루어져야 하는데 삼재심법, 속성삼재심법 둘 다 자신의 의지로 진기를 움직이는 것이 아닌 진기가 스스로 움직이는 게 아닌가? 때문에 보법이 아니라 요란한 발놀림에 그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그 문제는 화영이 일전에 소주천을 이루면서 모두 해결된 상태였다.
소주천을 이룬 화영은 지금 뜻하는 곳으로 기를 보낼 수 있는 경지. 그러니 실프의 비급 설명을 들으며 조금만 연습하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이 가능했다.
문제라면 적은 연습 기간과 내공이랄까?
물론, 보법이나 신법이 많은 내공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 연습하기에는 충분했지만.
‘이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군. 나머진 연습량에 달려 있으니 떠나도 되겠다.’
“정말?”
그리 많지 않은 시간이지만 하루 세 번씩은 벽우사와 마주쳤기에 내내 불편하던 화영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비급을 돌려주러 곧장 뛰어나가는 화영.
그런 화영의 뒷모습을 보며 실프는 스스로 역소환을 했다.
화영이 문밖으로 나오자 점창파의 제자들은 서둘러 몸을 숨겼다. 자칫 꼬투리 잡혀서 면벽하긴 싫은 것이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신이 나서 달려간 화영은 무림인들을 졸라 다음 목적지로의 출발을 서둘렀다.
화영이 앞장서서 산을 내려가자 막간의 회의를 연 무림인들은 무당산에서의 결론에 이어 또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 냈다.
화영에게 밉보이면 깨달음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