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PRE―]



2.


헨리에타는 해먹에 축 늘어지듯 누워 햇빛을 받다가, 문득 들려오는 마차 소리에 시선을 옮긴다. 그 안에서는 헨리에타의 새어머니가 나온다. 헨리에타의 새어머니, 카타리나와 헨리에타는 서로 살갑게 인사를 하는 사이는 아니다. 헨리에타는 다시 하던 대로 나른히 햇빛이나 받으려다가, 마차에서 이어 내리는 작은 소년의 모습에 그곳을 바라본다.

소년은 이제 열넷이 된 헨리에타보다도 더 어려 보인다. 헨리에타는 카타리나가 소년을 어디서 데려왔을까, 왜 데려왔을까를 조금 생각하다가, 이내 해먹에서 내려와 그 둘에게 다가간다. 생각할 것도 없다. 소년은 어리고 예쁘다. 무슨 용도인지는 뻔하다.

“헨리에타, 바깥에서 놀고 있던 모양이구나.”

카타리나는 꽤나 살갑게 웃으며 말한다. 헨리에타는 아무렇지도 않게 카타리나의 말을 무시하며 소년을 살핀다. 멀리서 얼핏 봤을 때도 예쁘장하다 싶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과하게 예쁘다. 짧은 머리가 아니었다면 남자애인지도 몰랐을 정도다. 아니, 남자애는 맞나? 카타리나가 데리고 왔으니 남자애는 맞겠지만.

“너 몇 살이니?”

소년은 겁을 먹은 건지, 주눅이 든 건지, 헨리에타의 물음에도 그저 헨리에타를 바라보기만 한다.

“헨리에타, 네가 관심 가질 만한 아이가 아니란다. 친구들이라면 이미 후작님이 잘 골라서 만들어 줬잖니.”

물론, 카타리나의 말대로 놀이 친구라면 있다. 비슷비슷한 집안의 아이들을 부모님들의 친분, 이해관계에 맞게 엮어 준 것이다. 하지만 헨리에타는 굳이 친구가 되고 싶다는 호기심에서 소년에게 관심을 두는 게 아니다.

“제가 관심 가질 대상을 왜 부인이 단정하는지 모르겠네요. 부인이 제 뭐라도 되신다고.”

헨리에타는 카타리나를 바라본다. 헨리에타는 키가 큰 후작을 닮아서인지, 또래보다도 키가 크다. 아직 덜 크기야 했겠지만, 키가 작은 카타리나와 시선을 맞추기에 크게 부족하지는 않다.

“부인께서 사창가를 드나드시는 거야 진작 알았는데, 이렇게 어린아이에게까지 손을 대는지는 몰랐네요. 거기다 이제는 저택으로 들이기까지 하다니. 후작님께서도 제 애인들을 저택으로 들이지는 않으세요.”

후작과 카타리나는 일단 결혼을 하기는 했는데, 그다지 서로에게 충실한 관계는 아니다. 후작과 카타리나는 대놓고 밖으로 나돈다. 끼리끼리 만났다는 점에서는 좋은데, 문제는 그러면서 카타리나가 저택을 제멋대로 다루려 한다는 것이다. 헨리에타는 제 아버지인 후작이 누굴 만나든 상관은 없었으나, 후작가의 안주인으로 누군가를 들여놓는 건 좀 상관이 있었고 그 사람이 저택에 영향력을 발휘하려 한다면 그건 싫다.

“천박한 거야 부부끼리 닮았다고 여기면 되는데, 멍청한 건 좀 문제가 있네요.”

이건 권위의 문제다. 바람을 피우는 건 괜찮다. 상관도 없다. 하지만 저택으로 들여오는 건 안 된다. 그건 권위의 침범이다. 솔직히, 헨리에타는 카타리나가 후작이 갖는 남편으로서의 권위를 침범하든 말든 상관은 없는데, 저택을 침범하는 건 싫다. 저택은 헨리에타의 공간이다.

“헨리에타, 예절 교육을 다시 받아야겠구나. 어머니는 조금 더 존중을 담아 대해야 한단다.”

헨리에타는 흘깃 소년을 바라보았다가, 바로 소년의 손목을 잡아채 달린다.

“헨리에타 콜튼!”

헨리에타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뛰다가, 조금 멀어졌을 때 뒤를 돈다.

“누가 누구한테 예절을 운운해!”

헨리에타는 한 번 소리를 치고는, 이내 숨을 고른다. 어차피 이제 카타리나에게 잡힐 일도 없다. 카타리나는 절대 뛰지 않는다. 예절 때문은 아니다. 그냥 그게 추하다고 생각해서 그렇다. 헨리에타는 카타리나가 모를 만한 저택의 구석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이내 제가 붙잡은 소년의 팔을 놓는다.

빨리 뛰어서 좀 힘들었으려나 싶었는데, 소년의 얼굴에는 힘든 기색이 없다. 헨리에타는 묻는다.

“너 몇 살이니?”

소년은 그 이전과 같은 시선으로 헨리에타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과 달리 입을 연다.

“열두 살이에요.”

헨리에타는 저도 모르게 말한다.

“미치겠네.”

카타리나가 정말 미친 모양이다. 아무리 아이가 예뻐도 이건 좀 아니다.

“너 어디서 왔어?”

헨리에타는 소년을 다시 돌려보내려 한다. 돌아간다면 소년은 카타리나와 비슷한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아니면 다시 찾아온 카타리나를 만나기는 하겠지만, 헨리에타가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수는 없다. 후작저가 아닌 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헨리에타가 상관할 범위가 아니다.

“말 안 할 거니?”

헨리에타는 다그치지는 않았지만, 그다지 다정히 말하지도 않는다. 소년은 그냥 그 예쁜 눈으로 헨리에타를 바라본다. 그 모습에 헨리에타는 괜히 마음이 약해진다. 차라리 고아원에라도 보내 줄까 싶다. 하지만 그래 봤자 결과는 같을 것이다. 소년은 너무 예쁘다. 그게 과하다. 어딜 가나 눈에 띌 것이다. 저를 지킬 힘이 없는 상황에서 그건 그리 좋은 게 아니다.

“혹시 아직 돈 못 받았어?”

그래서 말을 못 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돈을 챙겨 가지 못하면 돌아가서도 혼날 테니까. 당연히도 헨리에타는 이런 일로 사람을 데려올 때 데려오기 전에 돈을 주는지, 일을 치른 후에 돈을 주는지를 모른다. 아마 이 애는 끝나고 돈을 받기로 한 모양인가 보지.

헨리에타는 저가 지금 당장 소년에게 줄 수 있는 돈이 얼마인지를 생각한다. 당장 쓸 수 있는 현금은 얼마 없지만, 보석이라면 차고 넘치니 그거 몇 개를 건네주면 괜찮을 것 같다. 아니, 그래야겠다. 헨리에타는 그렇게 다짐한다. 돈이라도 넉넉하게 주어야 소년에게 마음이 덜 쓰이지 싶다.

“그런 게 아니에요.”

겨우 나온 소년의 목소리에 헨리에타는 소년을 바라본다.

“그래도 좀 더 가져가. 이런 거 거절해서 뭐 하니?”

“그런 게 아니라, 부인께서 절 사셨어요.”

헨리에타는 조금 인상을 찌푸린다. 아마, 그 어투를 보아 하룻밤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다. 경매에서 샀다는 뜻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아예 소년이 일하는 가게에서 빼 왔다는 것 같기도 한데, 둘 중 어느 쪽이든 헨리에타가 소년을 다시 돌려보내면 그쪽에서는 소년을 카타리나에게 다시 돌려보낼 것이다. 헨리에타는 순간적으로 짜증이 치솟는다. 도대체 누구 마음대로 후작저에 사람 들일 생각을 한 건지.

헨리에타는 화를 삭이려 애를 쓴다. 그래도 직접 나서서 소년을 돌려보내며 돈을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그쪽에서도 다시 소년을 받아 주기는 할 것이다. 소년을 데려오는 데 쓴 돈은 헨리에타의 것도 아니니 상관없다. 아마 카타리나가 후작가로 올 때 들고 왔던 돈이겠지.

“그래, 그랬구나.”

“보내지 말아 주세요.”

짧게 내뱉어진 헨리에타의 말에 이어 나온 소년의 목소리는 조금쯤 다급한 구석이 있다.

“어디로?”

헨리에타는 소년을 한 번 훑어본다.

“사창가에, 경매장에, 아니면 내 새어머니한테?”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그 미모를 무기로 사용할 텐데, 그렇지가 못한 탓에 소년의 미모는 오히려 독이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터다. 자라며 소년은 그걸 이용하는 법을 배울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기까지가 좀 힘들 테고 그렇게 된다고 해도, 글쎄.

“보내지 말아 주세요.”

소년은 그저 그 말을 다시 내뱉었다. 그리고 말을 잇는다.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어요.”

“뭘 할 수 있는데?”

소년은 말했고 헨리에타는 물었다. 소년은 답하지 못한다. 열두 살짜리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건 그리 많지가 않다. 기껏해야 잡일 정도일까. 그런데 헨리에타가 보기에 소년은 그다지 튼튼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냥 예쁜 게 고작인 것 같기도 하고. 물론, 카타리나에게야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이었겠지만, 헨리에타에게는 그게 그리 중요치가 않다.

“사람들이 저를 죽일 거예요.”

“죽이지는 않을 거야.”

헨리에타는 바로 답했다. 헨리에타는 또래의 아이들을 꽤나 많이 보고 산다. 귀족 아이들끼리의 사교 활동이 꽤 있기에 그렇다. 헨리에타도 마찬가지지만, 귀족 아이들은 관리를 받는다. 정기적인 관리를 받고 저를 가장 예쁘게 만드는 옷을 입는다. 그러니 예뻐 보일 수밖에 없다. 헨리에타는 그런 아이들을 많이 보고 산다. 그런데도 제 앞의 소년만 한 얼굴은 본 적이 없다.

소년은 그것만으로 가치가 있다. 어디로 돌아간들 누가 소년을 죽이지는 않을 거다. 소년을 이용해 벌 수 있는 돈이 꽤 된다는 걸 모두가 안다. 그런데 죽일 리가 있겠는가. 물론, 소년의 입장에서야 좀 죽고 싶어질 수야 있겠지만.

“제발, 저를 거두어 주세요.”

헨리에타는 답을 하지 않았지만, 소년은 그저 헨리에타를 바라본다.

“너는 도대체 나를 언제 봤다고 이러니?”

헨리에타는 제가 그리 마음이 약한 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그래도 그렇게 모질지도 못하다는 걸 안다. 거기다 소년의 눈이 너무 맑다. 처음부터 너무 어려 보여 마음이 갔는데 이렇게 굴면 더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저를 구해 주셨잖아요.”

“뭐? 아니,”

헨리에타는 조금쯤 인상을 찌푸리며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잇는다.

“만약에 내가 널 거둔다고 해도, 나는 널 데려온 그 여자랑 같이 살아. 너는 또 그 여자랑 마주치게 되는 거야. 어차피 똑같다고.”

“그래도 아가씨께서 거두어 주시는 건 괜찮아요.”

헨리에타는 열두 살 때부터 후작저 사용인 고용에 관여하고 있었다. 헨리에타가 고용 과정에서 보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일을 할 만한 신체 조건일 것,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정신 상태일 것. 그게 주요하다.

일단 소년은 일을 할 만한 신체 조건이 전혀 아니고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정신 상태일지는, 잘은 모르지만 그것도 아니지 싶다. 열두 살에 팔려 올 정도면 그간 겪어 온 게 많은 것 같은데 평범히 일하는 것에 적응할 수 있을까.

“제발, 부탁드려요.”

소년은 여전히 헨리에타를 바라본다. 헨리에타는 슬쩍 시선을 피했지만, 소년의 시선은 여전하다.

“그래.”

헨리에타는 결국 짧게 내뱉었다. 헨리에타는 물론, 저도 사람인 이상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이 좋다. 하지만 그건 그냥 선호의 문제다. 그냥 보기 좋네, 한 번 생각하고 넘어가는 정도다. 그렇다 한들 소년의 외모는 논외다. 좀, 그런 구석이 있다.

“대신, 조건이 있어.”

그렇다고 헨리에타가 그리 자애적이라는 건 아니다. 헨리에타는 소년을 써먹을 곳이 생각났다. 그리 생산적이지는 않지만, 오락적인 분야로는 쓸모가 있을 것 같다.

“너 데려온 그 여자, 그 사람이 내 새어머니거든. 그 사람이랑 절대 말하지 마. 무시해. 눈도 마주치지 마. 그쪽에서 명령한다고 해도 다 무시해.”

그러면 카타리나의 속이 좀 터질 것이다. 소년의 얼굴을 볼 때, 아마 소년의 몸값은 그리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걸 기꺼이 지급하며 소년을 데려왔는데, 눈앞에서 헨리에타에게 빼앗겼으니 말이다. 카타리나는 저가 바라는 것은 꼭 가져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헨리에타는 절대 소년을 카타리나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속 좀 끓어 보라지.

“알겠니?”

“네.”

소년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게 좀 안쓰럽기는 한데, 어쨌든 헨리에타로서는 소년이 원하는 대로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