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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헨리에타는 주위를 살피다가,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빠르게 마구간 안으로 들어간다.

“안녕.”

바로 보인 어거스트의 모습에 헨리에타는 짧게 인사를 건넸다.

“아가씨?”

놀라며 인사를 하려는 그 모습에 헨리에타는 바로 말한다.

“인사는 됐어. 그런데 너 이제 말은 좀 다룰 줄 아니?”

“조금이요.”

뭐, 사실 별 상관은 없다. 헨리에타가 어거스트에게 많은 걸 시킬 것도 아니니.

“그럼 저 애. 저 애 데리고 나와.”

헨리에타는 마구간의 말 중 갈색 갈기를 가진 말을 가리켰고 어거스트는 저 말을 가지고 뭘 할 거냐든가, 그런 어떠한 질문도 없이 얌전히 말을 헨리에타의 앞으로 데려온다.

“행크가 언제 온다는 말 했어?”

행크는 마구간의 총책임자다. 사실 총책임자라고 칭하기는 좀 그렇다. 원래 마구간에서 일하는 건 행크 혼자였고 이제야 어거스트가 들어온 것이니. 그리고 사실 행크는 어거스트처럼 순순히 말을 빌려주지는 않는다. 그래 봤자 헨리에타가 제 주인이니 결국 빌려주기는 하는데, 그 전에 질문이 많다.

또 수업 빼먹으신 거냐, 어디서 승마를 하실 거냐, 그런 질문부터 시작해서 이번에는 제발 말 좀 살살 타라는 걱정까지. 물론, 그 이후에 행크는 버나드에게 헨리에타가 승마를 하러 갔다는 걸 보고하기까지 한다. 헨리에타가 몰래 빠져나온 보람도 없게. 그러니 행크가 오기 전에 빨리 말을 빌리고 나가야 한다.

“아마 몇 시간 뒤에 오실 거예요.”

어거스트는 말에 안장을 놓고 이것저것 준비를 하며 답한다. 말에 태울 준비를 하는 게 그리 서툴러 보이지는 않는다. 헨리에타는 사실 어거스트가 마구간으로 갔다는 걸 알면서도, 일을 그리 잘 해낼 거라 생각한 건 아니다. 그런데 아마 헨리에타의 예상이 틀렸던 모양이다. 어거스트는 헨리에타의 예상보다 더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행크 오면 내가 말 하나 가져갔다고 말해. 그렇다고 네가 찾아가서 말하지는 말고.”

헨리에타는 말에 올라타며 말하고서 그대로 달려 나간다.



*



헨리에타는 저택과 연결된 숲을 한참 달렸다. 헨리에타는 원래부터도 승마를 좋아한다. 빠르게 달려 바람을 맞는 것도 좋고 달리는 순간만큼은 아무 방해가 없는 것도 좋다. 나름의 해방감인 셈이다. 헨리에타는 숲을 한참 달리다가, 제게 따라붙는 말발굽 소리를 듣는다. 일탈의 끝을 알리는 소리다.

“행크가 생각보다 빨리 온 모양이네.”

말의 속도를 천천히 줄이는 헨리에타의 모습에 버나드는 그 옆에서 속도를 맞춰 말을 몬다.

“행크가 알려 준 게 아니라 그냥 안 겁니다.”

그거야 사실 헨리에타도 안다. 버나드는 일부러 헨리에타를 놓쳐 준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잡으러 온다. 헨리에타도, 버나드도 아는 사실이다.

“놀 만큼 노신 것 같으니 이제 돌아가시죠.”

버나드는 헨리에타가 무슨 대단한 일탈이라도 했다는 듯이 말한다. 헨리에타는 살짝 인상을 찌푸린다.

“내가 뭐 대단한 걸 한 것처럼 말하는데, 솔직히 나 굉장히 건전하거든.”

헨리에타가 일탈을 한다고 해서 뭐 거창한 걸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말이나 좀 타고 달리는 게 고작이다. 얌전한 척하면서 뒤로는 몰래 일을 치는 이안이나 격정적인 사춘기를 겪는 오데트가 어떤 방식으로 일탈을 하는지를 아는 헨리에타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구석이 있다.

“그렇다고 수업을 빼먹으시면 안 되죠.”

그렇게 말하면서도 버나드는 그저 헨리에타의 속도에 맞춰 그 옆을 따른다. 헨리에타가 가는 방향이 저택 방향이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신학이야 혼자 책 보면 되잖아. 수업 시간에는 기도만 하는데.”

“다 필요하니까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버나드의 목소리는 꽤 정석적이지만, 헨리에타는 그 속에 이렇다 할 진심이 없다는 것쯤이야 모르지 않는다.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내가 배운 거 후작님께서도 다 배우셨어?”

“네. 후작가의 교육 과정은 늘 같습니다.”

그 말에 헨리에타는 고개를 돌려 버나드를 바라본다. 버나드는 갑작스레 저에게 닿은 시선에 그 시선을 마주한다.

“그런데도 후작님께서 그래?”

헨리에타의 물음은 직설적이다. 후작가의 교육 과정이 늘 같다면, 후작도 신학을 배웠을 것이다. 신학에서 가장 중시하는 건 신의이다. 신에 대한 신의, 부부간의 신의, 그런 종류의. 하지만 후작은 전혀 그렇지 않다.

헨리에타가 그런 걸 물었다는 것이야 버나드가 모를 리 없다. 버나드는 헨리에타의 시선을 피하며 입을 닫는다. 어쨌거나 버나드는 후작가의 기사고 여기서 무슨 말을 하면 그건 불경할 가능성이 크다. 헨리에타는 버나드의 곤란함을 굳이 깊게 파고들 생각은 전혀 없었기에, 그저 다른 걸 묻는다.

“그럼 어머니는 뭘 배우셨는지 알아?”

버나드는 헨리에타의 친어머니 쪽에서 데려온 기사이다. 정확히는, 헨리에타의 친어머니가 후작가로 시집을 오며 데려온 기사는 버나드의 아버지이고, 그 기사가 데려온 게 버나드이지만. 어쨌거나 버나드도 헨리에타의 친어머니를 알기는 안다. 헨리에타의 친어머니가 아직 결혼을 하기 전일 때는 저택에서도 종종 봤다고 한다.

“신학은 싫어하셨던 것 같기는 합니다.”

얼마간의 침묵 끝에 나온 버나드의 목소리에 헨리에타는 웃는다. 헨리에타에게는 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얼마 없다. 하지만 제 어머니에 대한 모든 기억은 긍정적이다. 제 아버지인 후작에 대한 기억이 많고 그 모든 기억이 부정적인 것과는 꽤나 다른 양상이다.

“내 머리 색이나 눈 색, 둘 중 하나는 어머니를 닮았으면 좋았을 텐데.”

헨리에타는 머리색도, 눈 색도 모두 후작을 닮았다. 거기다 이름도 마찬가지다. 콜튼이라는 성이야 당연히 후작가의 것이고 헨리에타라는 이름은 어릴 적 열병으로 죽은 후작의 막냇동생에게서 가져왔다. 미들 네임이 있기는 한데, 그것조차도 친할머니의 이름이다. 헨리에타가 지닌 것 중에는 어머니와 관련된 게 없다. 헨리에타는 그래서 그게 좀 아쉽다.

“후작 부인께서도 말 타는 걸 좋아하셨습니다.”

이건 나름대로 버나드의 위로이다. 헨리에타와 그 어머니의 공통점을 찾아 주려는 것이다. 헨리에타는 그걸 알기는 하는데, 위로의 말이 너무 형편없어 버나드를 바라본다. 정말 헨리에타와 헨리에타 어머니 사이의 공통점 중에 가장 괜찮은 게 승마를 좋아한다는 건가.

“말 타는 건 후작님도 좋아하셔.”

어이가 없다는 게 묻어나는 헨리에타의 목소리에 버나드는 저도 좀 머쓱한 모양이다. 헨리에타는 그대로 조금 더 걷다가, 문득 묻는다.

“경, 경은 결혼 전에는 내 어머니를 뭐라고 불렀어?”

“아가씨.”

버나드는 그렇게 내뱉고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그대로 말을 잇는다.

“엘로이스 아가씨.”

그 목소리에는 조금쯤 그리움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헨리에타는 그 시절의 엘로이스는 알지 못한다. 헨리에타가 아는 건 제 어머니이니.

“그렇게 불렀습니다.”

지금에 와서 버나드의 아가씨는 헨리에타이다. 하지만 버나드의 첫 아가씨는 엘로이스였을 것이다.

“그럼 나랑 있을 때는 내 어머니를 그렇게 불러 줘. 후작 부인이라고 칭하지 말고.”

헨리에타는 말을 잇는다.

“어머니도 후작 부인일 때보다는 엘로이스 아가씨일 때 더 행복했을 거야.”

헨리에타의 어머니는 후작의 첫 부인이었다. 하지만 그뿐이다. 유일하게 후작의 후계자를 낳았지만, 그것도 그뿐이다. 후작은 제 부인에게 한결같이 관심이 없었고, 차라리 헨리에타의 어머니가 카타리나처럼 제 욕망에 충실하기라도 했으면 뭐가 좀 달랐으려나 싶기는 하지만, 헨리에타의 어머니는 그런 성격도 아니었다. 그저 조용하고 얌전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아마 불행했을 것이다. 화려하고 차갑기만 한 삶보다는 소박하지만 따스한 삶이 어울렸을 것 같은 사람이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렇다.

“그렇지 않습니다.”

버나드는 헨리에타를 바라본다.

“그때는 아가씨가, 헨리에타 아가씨가 없었으니까요.”

버나드는 꽤나 단호하다. 물론, 헨리에타는 제 어머니가 저를 사랑했다는 걸 안다. 알 수밖에 없다. 저 자신은 죽으면서도 기어코 헨리에타는 살려 냈으니 모를 수가 없다.

“음,”

헨리에타는 잠시 말을 끈다. 구구절절 제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건 성미에 맞지 않는다. 거기다 어차피 버나드는 헨리에타가 제 어머니에 대한 것을 공유하는 몇 안 되는 상대이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알 것을 확신한다.

“어쨌든 그냥 후작 부인이라고 부르지 마. 후작 부인은 여러 명이지만 엘로이스 아가씨는 한 명밖에 없잖아. 그러니 그편이 더 좋아. 거기다 경 말고는 이제 어머니를 그리 불러 줄 사람도 없고.”

헨리에타는 그렇게 말을 했다가, 문득 덧붙인다.

“아, 경의 아버지도 그리 불러 주기는 하겠네.”

헨리에타의 어머니가 시집을 올 때 데리고 왔던 기사인 버나드의 아버지는 지금은 은퇴를 했다. 수도에서 꽤 떨어져 있는 어느 시골에 부인과 함께 터를 잡았다고 한다. 버나드의 아버지는 유독 헨리에타에게 약했고, 헨리에타를 잘 바라보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아끼지 않았다는 뜻은 아닌데, 어쨌거나 그랬다. 그건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헨리에타의 어머니는 헨리에타가 아주 어릴 적에 돌아가셨다. 후작의 탓이다. 후작은 욕심이 많다. 그런데 사실 욕심이 많다기보다는, 그저 늘 자극적인 걸 찾는다. 항상 그랬다. 후작은 그래서 전쟁을 좋아한다. 그때도 그런 시기였다.

후작은 제 기사들을 데리고 전쟁에 나갔다. 버나드의 아버지는 헨리에타 어머니의 전속 기사로 온 것이기에 당연히 가지 않으려 했지만, 어쨌거나 소속은 후작가이다. 가주의 명을 어길 수는 없다.

그때 일이 터졌다. 후작가는 대대로 중립이고 황제를 섬길 뿐 후계 문제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그 덕에 후작가는 원래 그리 적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후작은 전쟁을 많이 했고 여자 문제도 복잡하다. 적을 많이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저택으로 침입했다. 기사는 대부분 전쟁에 출정해 있었고 남은 기사는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침입자들에게는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그렇게 헨리에타의 어머니가 죽었다. 헨리에타의 어머니는 헨리에타를 겨우 숨기고 살려 냈지만, 저는 죽었다. 그게 버나드의 아버지에게는 한으로 남았다. 어떻게든 제 아가씨의 곁을 지켰어야 했다고.

그래서 그 아가씨의 자식인 헨리에타를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했는데, 당연하게도 헨리에타는 전혀 그를 원망하지 않는다. 결국 모든 것은 후작의 잘못이라는 걸 안다.

헨리에타의 어머니가 죽은 일에는 갈 곳 잃은 분노가 개입할 구석이 전혀 없다. 헨리에타의 어머니를 죽인 이들은 결국 잡혀 처형을 당했다. 하지만 후작은 여전히 멀쩡하다. 헨리에타가 굳이 분노를 해야 한다면, 그게 향할 대상이야 명백하다.

“잘 계셔?”

헨리에타는 물었다. 버나드는 그저 답한다.

“네. 건강하십니다.”

버나드의 아버지는 버나드를 헨리에타에게 붙였다. 그 당시의 버나드는 어렸는데도, 버나드의 아버지는 버나드를 꽤나 강하게 훈련시켰다. 그리고 늘 헨리에타의 곁을 지키게 했다. 그 어떤 명이 있더라도 헨리에타를 두고 떠나지 말 것. 버나드의 아버지가 버나드에게 가장 중요하게 가르친 건 그것이다. 헨리에타도 모르지 않는다.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았으니.

그래서 헨리에타는 버나드를 믿는다. 후작저의 모든 이들은 충직하다. 헨리에타의 말에 복종한다 해도 그들은 콜튼의 사람이다. 하지만, 버나드는 헨리에타의 사람이다. 헨리에타만을 따르며 헨리에타만을 위한다. 그게 헨리에타가 버나드를 믿는 이유다. 그래 봤자 어느 날에는 배신을 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 버나드는 완벽히 헨리에타의 사람이다.

“다행이네.”

헨리에타는 아주 가끔씩 제 어머니가 살해되던 날을 생각한다. 그리고 저가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를 생각한다.

그때, 헨리에타의 어머니는 헨리에타를 옷장 속 숨겨진 공간으로 집어넣었다. 헨리에타가 작고 어렸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그만큼 작고 어린아이는 좁고 어두운 공간을 잘 버티지 못한다. 그러나 헨리에타는 버텨 냈다. 제 어머니가 살해당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견뎠다.

제 전생을 기억해 내서 그랬다. 그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생존 본능이었는지 뭐였는지. 그 기억은 그리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그 어린아이가 거기서 소리 내면 죽는다는 걸 명확히 깨닫게 해 줄 판단력은 돌려주었다. 그래서 살았고 그렇게 살아남았다.

사실 헨리에타는 지금도 구체적인 제 전생을 기억하는 건 아니다. 그저, 그런 게 있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뿐이다. 아는 것과 실감하는 건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헨리에타는 그 기억들이 실감 나지도 않는다. 그건 그 어떠한 경험도 배제된 그저 그뿐인 정보일 뿐이다.

“다들 편안해야지.”

헨리에타는 천천히 말 머리를 돌린다. 이제는 정말 저택으로 돌아가야 한다. 헨리에타는 천천히 저택으로 향한다. 버나드는 속도를 맞추며 헨리에타의 옆을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