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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신위 1권(2화)
第一章 주운(周雲) - 오 년 만의 귀환(2)
사내는 그가 묻는 말에 대답은 않고 자신을 빤히 응시하자 조바심이 일었는지 급히 다시 말했다.
“왜 대답이 없소,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거요? 당신이냐고 물었잖소!”
급기야 탁자를 내리치며 버럭 성을 냈다.
이를 본 점소이 장두가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사내의 팔뚝을 잡아채며 소곤거렸다.
“강 아저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이분은 우리 객잔 손님이라구요.”
사내가 갑자기 끼어드는 장두의 말에 눈을 부라렸다.
“잠시 저리 비켜 있어라. 이 아저씨는 이자에게서 반드시 들어야 할 말이 있다. 금방 끝낼 테니 신경 끄고 일 봐라.”
그러나 주운을 대할 때와 달리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보아 평소 친하게 지내는 사이인 것 같았다.
“글쎄, 잠시고 뭐고 그만하시라니까요? 그러다가 싸움이라도 날라 치면…….”
“그만해라, 콩알.”
“네?”
갑작스런 주운의 제지에 장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가 우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터이니 괜한 걱정 말고 가 있어도 된다. 그보단 화주나 한 병 갖다 다오.”
주운은 그렇게 말하곤 빙그레 웃었다.
그 미소가 먹혔음인가?
장두는 반신반의하면서도 몸을 돌렸다.
‘내가 왜 저 사람의 말에 그냥 물러서는 거지? 그런데 저 사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봤지?’
고개를 갸웃거리던 장두가 불현듯 뇌리에 스쳐 지나가는 누군가의 웃는 얼굴을 떠올리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냐, 그럴 리 없어. 벌써 오 년째 아무런 소식도, 연통도 없던 사람이 지금 나타날 리 만무하잖아? 게다가 그는 이미…… 아니, 잠깐?’
장두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부르르 몸을 떨었다.
‘콩알! 어, 어떻게 저 사람이 그 별명을 알고 있지?’
시퍼렇게 질려 버린 장두의 얼굴은 흡사 귀신에라도 홀린 듯 넋이 나가 있었다.
“콩알! 이 형님은 천하를 아수라장으로 만들려 하는 나쁜 놈들을 물리치러 다녀올 테니, 나 없다고 질질 짜거나 그러면 안 된다? 하하하!”
오 년 전.
여느 날과 같이 우스갯소리를 천연덕스럽게 외치고는 사라져 돌아오지 않은 친형과도 같은 사람의 웃음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설마……?’
장두는 다급히 몸을 돌렸다.
강만석(姜萬石)과 마주 앉은 주운을 멍하니 바라보는 장두의 눈에는 어느새 뿌연 습기가 차올라 있었다.
강만석이 말했다.
“이제 말할 때도 되지 않았소?”
주운은 ‘여전히 성미가 급한 친구로군’이라 중얼거리곤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야.”
그러면서 화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
“친구의 음성도 잊었나? 오 년이 꽤 길긴 길었나 보군.”
‘오 년?’
강만석은 의문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지?”
주운은 히죽 웃었다. 취기로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에 웃음까지 번지니 영락없이 취한 사람이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군. 이보게, 친구.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물어봐 주지 않겠나?”
반쯤 혀가 꼬인, 조롱기 어린 말투였다.
강만석도 바보가 아닌 이상 알 수 있었다.
강만석이 인상을 굳혔다.
“좋아, 원하는 대로 해 주지. 객잔 입구 옆 벽면에 새겨진 그림을 그린 게 당신인가?”
주운은 손뼉을 쳤다.
“정답! 그리고 또?”
무영십익을 상징하는 문양을 새긴 것은 강만석의 짐작 대로 주운이었다. 강만석 역시 무영십익의 일인이었고, 주운에게 이 객잔을 알려 준 장본인이었다.
강만석을 먼저 찾은 것은 다른 아홉 명의 동료와는 달리 허물없이 지냈던 까닭만이 아니었다. 가장 찾기 쉬운 상대였기 때문이었다. 하여 무영십익끼리 통하는 문양을 평소 강만석이 자주 찾는 이 객잔의 입구 옆 벽면에 새겨 넣었다.
그 문양은 일종의 흑화(黑話)였다. 문양을 이루는 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깨알 같은 글씨로 새겨 넣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놓고 그렇게 문양을 새겨 넣은 것은 자칫 무영십익의 흑화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위험천만한 짓이었지만, 오 년이 지난 지금 동료를 찾는 데 그보다 확실한 방도는 없었다.
그리고 그런 주운의 생각대로 무영십익의 삼익(三翼)인 강만석이 그의 앞에 앉아 있지 않은가?
‘좋은 게 좋은 거지.’
이미 취할 대로 취한 주운은 지극히 만사태평한 결론을 내렸다. 귀찮아서.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그 문양을 알고 있지? 아니면 어디선가 그에 관련된 정보를 얻기라도 한 것인가?”
그러더니 강만석의 물음에 안타깝다는 듯 희미하게 웃으며 혀를 찼다.
“후자는 쓸데없는 질문이군. 하지만 전자는 상당히 근접한 질문이었어. 반점 주지.”
‘이 자식, 날 갖고 놀아?’
빙글빙글 웃어 가며 말하는 모양새가 영락없이 그러했다. 고작 술에 취한 사람에게 이런 놀림거리가 되고 있다니.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애써 삭히던 강만석은 갑자기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의문에 눈빛을 빛냈다.
‘그러고 보니…… 저놈이 지껄인 말 중에 오 년이란 말이 있었는데? 오 년, 오 년간 보지 못한 친구? 서, 설마!’
강만석이 커다란 둔기에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눈앞에서 번갯불이 튀는 강렬한 충격이 뇌리를 강타했다.
“너, 넌……?”
주운은 그제야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다, 만돌아.”
만돌!
강만석은 자신이 짐작하던 바를 확신했다.
만석의 석 자를 뜻 그대로 부르는 만돌이란 일견 촌스러운 별명은 세상에 단 한 사람만 부를 수 있는 것이었다. 별달리 거창한 이유가 있지는 않았다. 그저 그만이 강만석을 뛰어넘는 무공을 소유했던 까닭이다.
“인마, 너!”
강만석은 금시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야 알아보냐, 이 미련한 놈아!”
주운도 웃는 낯으로 몸을 일으켰는데 취기 때문에 제대로 운신할 수 없어 약간 비틀비틀했다.
“이 새끼, 운아!”
“잘 지냈냐! 하하하!”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의 몸을 부둥켜안았다. 정확하게는 주운이 강만석에게 안긴 꼴이었다. 강만석의 덩치가 워낙 우람해 그런 착각이 들게 하는 것이다.
한쪽에 서 있던 장두가 오 년 만에 이루어진 두 친구의 상봉을 눈물을 글썽이며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얼싸안고 기뻐하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간 보나마나 찌부러지기 십상이리라.
“대체 어찌 된 일이야? 오 년간 대체 어디에 있었기에 연통 한 번 넣지 않은 거야?”
한동안 주운을 찬찬히 뜯고, 또 뜯어보던 강만석이 섭섭한 기색이 역력한 어조로 말했다.
“그게…… 그럴 일이 있었어. 말하자면 열흘 밤낮을 이야기해도 모자라.”
주운은 정신이 몽롱한 와중에도 대답을 회피했다.
말한 바와 같이 너무도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도 그러했고, 구태여 말하기엔 지금은 그저 푹 쉬고 싶었다. 하지만 우선 물어볼 것이 있었다. 아직 자기엔 이르다.
“성주님은…… 무사하시냐?”
강만석은 섭섭함이 더했으나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어느 성주님을 말하는 거냐?”
“어느 성주님이냐니? 대체 무슨 말이야? 이봐, 내가 취했다고 지금 나와 농을 하자는 거야?”
“전대 성주님 즉, 우리가 보필했던 분이라면 오 년 전 정마대전 때 마교의 요녀에게 당한 내상 때문에 돌아오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작고하셨다.”
“……!”
주운의 안색이 대변했다. 순간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그가 이미 오 년 전에 죽었다니…….’
그날, 그를 지키려 자신을 희생한 것이 모두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주군과 부하의 신분을 초월한 지음(知音)을 잃은 충격에 주운은 정신이 멍해졌다.
“그렇다면 지금의 성주는 누구지?”
강만석은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당금 신검연가(神劒延家)의 가주인 연궁천(延窮天)이 그분의 뒤를 이어 성주가 되었다.”
“연궁천? 내가 아는 그 연궁천 말인가?”
“그 말고 또 누가 있겠나?”
‘연궁천, 그자가 성주가 되다니…….’
주운도 익히 아는 인물이었다.
대단히 편협하고 이기심이 많아 장남임에도 불구하고, 신검연가의 가주가 될 만한 재목이 아니었기에 오 년 전에는 별 볼일 없다고 여긴 자였다. 오히려 차남이 그 자리에 더욱 걸맞는 인재였다.
한데 그런 연궁천이 가주 자리에 오른 것만도 놀라울진대 성주까지 되다니, 아귀가 맞지 않았다.
의혹 어린 주운의 시선을 읽었는지 강만석이 못마땅하다는 듯 볼멘 음성으로 말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자의 배후에 군사(軍師)가 있다는 소문이 있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나는 정황상 가장 그럴 듯해 아마 그럴 거라 생각하고 있네만.”
“백리소(百里紹)가 말인가?”
“맞네. 바로 그 백리소, 백리 군사일세.”
주운은 고개를 갸웃했다.
‘백리 군사가 뭣 하러 그런 자의 뒤를 봐주는 것일까?’
아무리 궁리해도 만족할 만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되레 백리소의 예측할 수 없는 깊은 심기에 의혹만 더욱 세를 불릴 뿐이었다.
“그건 그렇고, 모두 잘 지내나?”
주운은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화제를 바꿨다.
“그들은 잘 지내고 있네. 그중 대머리 반가 놈과 땅딸보 지가 놈, 그리고 나는 성의 요직에 올라 있네. 그런데 자네는 여기까지 어인 일인가?”
강만석은 피식 웃으며 말하다가 몹시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빤하지 않은가? 일하러 왔지.”
주운이 당연하지 않느냐고 되레 물었다.
강만석은 어리둥절한 기색을 띠었다.
“자네, 여태껏 심산유곡에라도 틀어박혀 살았는가? 이미 몇 년 전에 무영십익은 해체되었네. 그 때문에 그동안의 공적을 치환해 나를 비롯해 반가, 지가 놈은 각기 본성 내원삼대(內院三隊)의 대주나 집법부(執法府)의 부장이 되었고, 나머지는 고향으로 돌아갔네. 지금의 성주를 보필하는 것은 묵검(墨劍)이란 자일세.”
“묵검? 설마 성주의 호위무사가 고작 단 한 명이란 말인가? 실력이 출중한가 보지? 나조차도 너희들이 가끔 도와줘서 그만큼 할 수 있었던 건데.”
“그러네. 듣자니 그자를 천거한 것도 군사라고 하네. 그래도 최전방에서 경험을 쌓은 자라 그런지 실력만큼은 발군이라 하니 하는 양을 두고 볼 수밖에 없었네.”
주운은 군사 백리소에 대한 의혹이 눈덩이처럼 점점 더 불어 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었다.
“이거…… 일자리마저 잃은 셈이로군.”
정혼녀에 이어 두 번째 불행이었다. 정혼녀에 대한 것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 강만석도 그것만은 모르는 듯했다. 주운은 갑자기 밀려드는 우울함에 화주만 계속 들이켰다.
그걸 잘못 이해한 강만석은 주운이 일자리를 잃은 것이 꼭 자신이 잘못한 일인 양 미안하다는 듯 뺨을 긁적였다.
“어쨌든 오 년 만에 자네를 보게 되어 기쁘기 한량없네만 헛걸음을 했군.”
우울한 가운데 주운은 그런 강만석의 씀씀이에 가슴이 절로 따뜻해짐을 느꼈다. 오 년 만에 마주한 세상에서 처음으로 변하지 않은 것을 보았으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그러나 그것과 일자리를 잃은 것은 별개의 것이었다. 아버지를 비롯해 집안 대대로 이어 온 호위무사였다.
그것을 자신이 망쳐 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 이제는 별 게 다 나를 물 먹이는군. 나는 아직 내 일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뜬금없는 말에 강만석이 두 눈을 끔뻑였다.
“아무리 자네라곤 하나 쉽지 않을 거야.”
강만석도 주운이 전대 성주와의 친분이 지대했음을 상기했으나 애석하게도 지금의 성주는 연궁천이었다.
“하하하! 딱히 자네가 나서 줄 필요는 없으니 그저 지켜만 보게. 내 실력 잘 알잖아?”
주운은 아무런 근심도 없는 사람인 것처럼 시원하게 웃어 젖혔다. 그러자 역한 술 냄새가 풀풀 풍겼다. 자못 진중하게 한 말이었지만 탁 풀린 눈매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강만석은 처음 보았을 때부터 자신이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켜 내고 마는 주운의 성격을 잘 아는지라 그저 마주 웃어 주었다. 하지만 내심 우려도 되었다.
‘자네…… 많이 변했군.’
술은 가까이 두지도 않던 주운이었는데. 저래선 오다가 본 볼썽사납게 길바닥에 엎어져 자던 주정뱅이와 다를 게 없었다.
두 사람의 끝날 것 같지 않는 대화를 중도에 사정없이 뚝, 자르고 일단의 무리가 객잔 안으로 들어선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가 주운을 가리키며 스산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제대로 찾아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