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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신위 1권(5화)
第二章 제왕령(帝王令) - 여우를 피해 호랑이 품으로 들어가다.(3)
무영십익은 하나의 단체이기도 했으나 호위하는 인물은 제각각이었다.
연궁천도 이를 모르지는 않았다.
“그건 조금 곤란하군.”
연궁천은 난처한 기색으로 고개를 저었다.
“곤란하다니요?”
“자네, 듣지 못했나?”
주운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되물었다.
“무슨?”
연궁천은 혀를 찼다.
“자네는 이미 죽은 사람이야.”
“……!”
주운은 두 눈을 부릅떴다.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했다.
죽은 사람?
이렇듯 버젓이 살아 있는데 죽은 사람이라니?
“당최 영문을 알 수 없군요. 도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네.”
연궁천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툭 내뱉었다.
“자네는 그때…… 죽은 것으로 기록되었네. 그 때문에 자네가 퇴직 처리된 것이고.”
‘과연 그랬던 것인가.’
주운은 그제야 강만석이 자신더러 죽은 게 아니었냐는 투로 물었던 것에 대한 의문이 풀린 듯했다.
‘어쩐지 으레 소식이 없어 생사를 알 수 없었다는 어조가 아니더라니, 이런 바탕이 깔려 있었군.’
하기야 강호의 칼 밥을 먹는 인생치고 생과 사는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제왕성같이 거대한 집단에서는 공석을 그대로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저는 죽지 않았습니다. 복직시켜 주십시오.”
정신을 수습한 주운은 아직 제왕령이 자신의 수중에 있음을 상기하고는 강력히 밀어붙였다. 연궁천이 곤란하든 말든 그것은 자신이 상관할 바 아니었다.
어머니의 문제를 해결한 주운은 이제 오로지 대대로 이어 온 가업을, 아버지의 긍지를 헛되이 잃지 않도록 하는 목적만이 남았을 뿐이다.
끄응.
그렇게 되니 골치가 아픈 것은 연궁천이었다.
지금의 호위는 군사가 직접 천거한 묵검이란 인물이었다. 그만큼 자신을 호위하는 데 있어 손색없는 깔끔한 일 처리로 적잖이 총애하는 자이기도 했고, 자신을 이 자리까지 끌어올린 일등 공신이 바로 군사였다.
한데 느닷없이 나타나 그 자리는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주운의 말에 난처한 기색을 금할 수 없었다.
아니, 단지 그뿐이었더라면 호되게 치도곤치고 당장 내쫓아 버렸을 것이다.
‘저놈의 수중에 있는 제왕령만 아니었어도…….’
그렇다고 덥석 그 조건을 받아들이자니 잔인하고 조포한 성품의 연궁천으로서도 받은 것이 워낙 많아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다.
주운도 그러한 연궁천의 심중을 조금은 짐작했다. 해서 쐐기를 박았다.
“만약 거절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요.”
주섬주섬 제왕령을 도로 품속으로 넣으려 하는 순간,
“자, 잠깐!”
연궁천의 다급한 음성이 그를 제지했다.
‘걸려들었군.’
주운은 내심 히죽 웃었다.
“알겠네. 내 그 조건을 받아들이겠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궁천은 체념한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주운은 옳다구나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 대신 나도 조건을 하나 걸겠네.”
하나 연궁천의 뒷말에 얼굴이 꿍꿍 굳고 말았다.
“자네가 아무리 전대 성주의 호위무사였다고는 하나 그 말만 믿고 신용할 수는 없지 않나? 하여 내 한 가지 조건을 걸겠네. 조건 내용은 바로 묵검과 자네, 둘이서 격일로 나를 호위하는 것일세. 기간은 한 달. 만에 하나 자네가 그 기간 동안 나에게 아무런 위해 없이 잘 호위한다면 자네를 묵검 대신 내 호위무사로 두도록 하겠네. 어떤가?”
주운은 대답 대신 연궁천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연궁천의 입매가 일그러져 있었다. 묘하게도 조소같이 여겨져 신경이 거슬렸다.
‘과연 그 자리에 오른 것이 단순히 군사의 능력만은 아니란 것인가.’
뜻밖에도 연궁천이 그와 같은 꾀를 부릴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자네도 조건을 두 개나 걸었는데, 나도 한 개쯤 걸어도 되지 않겠나?”
설상가상으로 좀 전에 자신이 했듯 똑같이 쐐기를 박기까지 하지 않는가?
‘이제 보니 효웅이 아니라 간웅이었군.’
주운은 연궁천에 대한 평가를 정정하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리하지요.”
자신에 찬 어조.
‘묵검이란 자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알 수 없으나 나도 이 일이라면 이력이 난 몸이다.’
자신의 실력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기에 선뜻 연궁천의 조건을 받아들인 것이다.
“자, 이제 제왕령을 이리 주게.”
제왕령을 건네받아 비로소 자신의 반쪽짜리 권력이 완벽해질 것을 상기하니 기껍기 그지없었다.
이제 그 무엇이든 완벽한 권력 앞에 무릎을 꿇으리라!
“그전에 각서 한 장 써 주십시오.”
그러나 들려오는 주운의 음성에 안색이 푸르뎅뎅하게 변해 버린 연궁천이었다.
“가, 각서?”
주운은 당연하지 않느냐는 듯 말했다.
“그렇습니다. 이 각박한 세상에 그 정도는 해 주셔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참, 마침 제왕령을 두고 거래하는 것이니 만큼 성주님의 직인으로 찍어 주십시오.”
마침내 연궁천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하고 말았다.
성주의 직인이라 함은 바로 제왕인(帝王印)을 뜻하는 것이다.
제왕인은 제왕령과 더불어 제왕성주의 권력을 상징하는 다른 하나의 신물이었다.
그것으로 각서를 작성한 이상 성주라는 지위에 얽매어 있는 동안 연궁천은 영락없이 그 내용대로 반드시 이행해야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한 치의 어긋남이라도 있다가는 그야말로 자신의 위신이 땅에 떨어질 것이 아닌가?
‘허! 이 내가 보기 좋게 한 방 먹었군.’
연궁천은 울며 겨자 먹기로 직인을 찍었다.
각서를 곱게 접어 품속에 넣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을 나서는 주운의 뒷모습을 노려보는 연궁천의 눈가가 씰룩였다.
“놈, 어디 네 뜻대로 되나 두고 보자꾸나.”
연궁천의 우렁우렁한 음성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결코 좋지 않은 감정이 역력한…….
第三章 격일호위(隔日護衛) - 뜻하지 않은 일을 당하다(1)
그로부터 삼 일 후.
주운은 연궁천의 호위를 하고 있었다. 최대한 자신의 기척을 지우고 대들보며 지붕 위에 바짝 밀착했다. 거리에서는 건물의 그늘을 몸에 두르고 몸을 사렸다.
자로 잰 듯 정확하게 일 장 거리였다. 연궁천의 뒤를 그림자처럼 졸졸 따라다녔다.
호위무사마다 호위하는 법은 제각각이었다. 병장기의 길이에 따라 행동반경이 달랐고, 배우고 익힌 무공에 따라 또 달랐다. 몸을 숨겨야 할 때와 자신을 노출시켜도 될 때의 호위하는 법도 천차만별이었다.
주운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단지 주운이 구태여 일 장 거리를 고수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그 일 장이 주운에게는 온갖 암수에 완벽하게 응수할 수 있는 최적의 거리였던 까닭이다.
때문에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라면 호위 대상의 반경 일 장 밖으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전과 다른 게 있다면, 항상 술병을 입에 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지 않고선 울적한 심사를 달랠 수단이 아무것도 없었던 까닭이다.
“이보게, 그렇게 딱 달라붙어 있으니 조금 불편하군. 더구나 무슨 술을 그리 마셔대나? 냄새가 아주 고약하군. 좀 떨어져서 따라오게. 코 떨어질라.”
그러나 불행하게도 연궁천은 어떻게든 주운을 그 거리 밖으로 밀쳐 내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고, 마침 적당한 이유도 있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짙은 술 냄새로 보아 분명 자신의 주위에 주운이 있을 것이다. 해서 일부러 들으라고 불평했다. 이쯤이면 알아서 제 풀에 지치겠지, 하는 속셈으로.
술병에 입을 갖다 대던 주운은 난처했다.
호위를 받을 사람이 한시도 옆에서 떨어지지 말라며, 더욱 가까이 있지 못해 불평을 늘어놓아야 정상이건만, 오히려 떨어지라고 성화라니.
‘어지간히도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군.’
그 속내를 쉬이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무어라 톡 쏘아붙일 수도 없어 답답함을 금치 못하였다.
그래도 주운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주운은 그게 다 자신이 술을 마셨기에 성립되는 꼬투리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미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다.
‘그래, 당신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한번 해보자. 절대 떨어지지 않을 테다.’
괜한 오기가 스멀스멀 치밀어 올랐다.
주운과 연궁천은 날이 저물도록 한 사람은 떨어지지 않으려 달라붙고, 또 한 사람은 떨어뜨리고자 쉴 새 없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를 반복했다.
늦은 저녁.
종일 연궁천과 티격태격하느라 진이 다 빠진 주운은 허기진 배를 달래며 객잔으로 들어섰다.
후루룩!
소면을 입 안 가득 빨아들인 다음 화주로 그것을 한꺼번에 꿀꺽 목구멍 안으로 삼키는 주운을 바라보던 장두가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형,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좋은 일이라니?”
장두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왠지 형 표정이 뭔가 좋은 일이 생긴 것 같아서요.”
“아하.”
주운은 그제야 알았다는 듯 히죽 웃었다.
“있기야 있었지.”
연궁천은 약조한 대로 어머니의 병세를 돌보아 주었다. 안색이 푸르죽죽해진 채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천년삼왕을 건네는 통에 내심 적잖이 통쾌했다.
장두는 주운의 그러한 두루뭉술한 대답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대개 이런 경우는 굳이 밝히고 싶지 않아서 얼버무리는 경향이 크다.
점소이 생활을 하며 생긴 눈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언제 밝았냐는 듯 장두의 얼굴에 옅은 그늘이 어렸다.
“그러는 콩알, 너야말로 무슨 일 있냐?”
그를 못 알아챌 주운이 아니었다.
“일은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방금 전의 주운과 같이 얼버무리는 장두를 쳐다보는 주운의 눈빛이 묘하게 빛났다.
“혹시 누가 괴롭히기라도 하냐? 말만 해, 어디 감히 우리 귀여운 콩알을 건드려? 이 형님께서 요 주먹으로 정수리에 혹을 만들어 줄 테니까.”
그러나 하는 말은 영락없이 주정뱅이 말투였다.
장두는 정말 그 상대가 눈앞에 있다는 듯 소매를 둥둥 걷어붙이는 주운의 모양새에 그저 웃을 따름이었다. 저러다 진짜 벽 하나 앞에 두고 싸우는 게 아닌가 싶었다.
“정말 별일 없는 거지?”
이내 장난기 어린 미소를 싹 지운 채 주운이 나직이 물었다.
“그럼요. 그런 거 없어요.”
장두는 짐짓 하하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주운은 이내 소면에 열중했다.
후루룩!
면발을 쭉 빨아들이며 주운이 어느새 또 그늘이 내려앉아 있는 장두의 얼굴을 곁눈질했다.
‘일이 있긴 있는 모양이군.’
아무리 숨기려 해도 무공도 안 배운 장두로서는 주운의 눈을 속이지 못했다. 비록 술에 취해 있었지만 그 정도 정신은 남아 있었다.
게다가 장두는 이제는 홀어미만이 남은 주운에게는 가족과도 같은 아이다.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라도 이 아이에게 손가락 하나 갖다 대었다간 그게 설사 성주라 할지라도 묵사발을 내 버릴 테다.’
와구와구―
주운은 스산하게 눈을 빛내며 입 안에 든 면발을 사정없이 씹었다.
흡사 그 누군가를 씹듯이…….
***
쏴아아―
오전 무렵 거뭇거뭇 축축지근하던 날씨는 오후가 되자 마침내 비를 쏟고 있었다.
정수리를 따갑게 쪼아대는 햇살이 땅바닥마저 쩍쩍 갈라지게 하는 한여름.
갑작스레 찾아온 소나기처럼 반가운 것은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푹푹 찌는 날씨에 허덕이던 제왕성은 아주 오랜만에 덕분에 살았다는 듯 조용히 빗소리에 잠겼다.
성내를 돌아다니던 사람들도 제각기 집으로 돌아가 소나기가 곤두박질치는 소리를 기꺼운 마음으로 감상했다.
고요.
아늑한 고요만이 조용히 성내를 배회했다.
“이런, 하필이면 오늘?”
하지만 주운은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하늘을 쳐다보며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오늘은 쉬는 날이었지만 묵검이란 자가 어떤 식으로 성주를 호위하는지 지켜보고 있던 주운으로서는 예기치 않은 일이었다.
‘이거 한바탕 크게 쏟을 듯하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런 날씨에 바깥을 돌아다니는 것은 딱히 할 만한 짓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