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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신위 1권(6화)
第三章 격일호위(隔日護衛) - 뜻하지 않은 일을 당하다(2)


허리춤에서 술병을 꺼내 든 주운이 그것을 한 번 흔들어 보더니 인상을 찡그렸다.
술이 없었다.
“음, 이런 날에는 역시 배불리 먹고 마시고 뜨뜻한 방바닥에 배 깔고 자는 게 제일이지.”
술 생각이 간절했다.
주운은 손으로 머리를 가리며 밟고 있던 나뭇가지를 가볍게 툭 박차고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더니 신형을 날렸다. 취한 사람 치고 퍽 안정적인 몸놀림이었다.

운림객잔(雲林客棧)은 쏟아지는 빗줄기에도 불구하고 활짝 문을 열고 놓고 있었다.
평소에도 장사가 잘 안 되는지라 연중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꾸벅꾸벅.
장두는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빈자리에 앉아 턱을 괸 채 고개를 기우뚱거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이봐, 점소이!”
한 무리의 사내들이 우르르 객잔 안으로 들어섰다.
장두는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눈을 뜨고는 이내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저, 저자들이 또…….’
가운데 서 있던 사내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서더니 인상을 험악하게 일그러트렸다. 가뜩이나 뺨에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한 흉물스런 자상(刺傷)이 나 있어 그 효과는 지대했다.
“어이, 손님이 왔는데 표정이 그게 뭐야? 설마하니 우리가 손님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은 아니겠지? 앙?”
다분히 시비조였다.
그럼에도 장두는 무어라 한마디 말조차 하지 못한 채 잔뜩 몸을 움츠리며 우물쭈물했다.
“에이, 퉤!”
사내는 흥이 깨졌다는 듯 거칠게 침을 탁! 뱉고는 동행한 사내들을 이끌고 한 자리를 차지해 앉았다.
장두는 오들오들 떨면서 그 하는 양을 지켜만 보았다.
“여기 동파육(東坡肉) 한 접시랑 화주(火酒) 한 병!”
흉터 사내가 탁자를 탕탕 치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행여 또 불똥이 떨어질까 겁을 집어먹은 장두는 재빨리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에는 한 소녀가 앞치마를 두른 채 있었다.
소녀의 모습은 옥으로 만들어 놓은 듯 아름다웠다.
올해 나이 열여덟.
소하라 불리는 이 소녀는 장두의 누이였다.
‘제기랄. 저놈들, 하필이면 누나가 있을 때 쳐들어오다니.’
장두는 내심 씨근덕거리며 장소하에게 주문거리를 말하고는 몰래 바깥을 훔쳐보았다. 행여 들키지는 않을까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쳤다.
“어이, 점소이! 아직 멀었어?”
채 일각도 지나지 않았건만 흉터 사내는 몹시 오래 기다렸다는 양 거칠게 탁자를 두드렸다.
“두야, 여기 다 되었으니 얼른 가져다드려.”
때마침 누이 장소하가 동파육과 화주를 내밀었다.
장두는 꿀꺽 마른침을 삼키면서 음식을 날랐다. 그러고는 이내 내빼려고 할 때였다.
“그나저나 네놈 누이는 어찌 코빼기도 보이지 않느냐?”
그를 눈치챈 흉터 사내가 붙잡아 세웠다.
“누, 누나는 지금 집에 있어요.”
“이놈이 어디서 되지도 않는 거짓부렁을 해? 네 누이가 아니라면 대체 저 주방에 있는 숙수는 누구란 말이냐? 바른 대로 불지 못하겠느냐? 앙?”
흉터 사내가 눈을 부라렸다.
‘제기랄, 빌어먹을!’
장두는 속으로 온갖 욕을 다 내뱉었다.
“헤, 헤헤. 누, 누나는 주방에서 일하느라 바깥을 내다볼 여가가 없습니다. 그러니…….”
“아니, 이런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자식이?”
짜악!
눈앞에 불똥이 튀겼다.
우당탕하고 나가떨어진 장두는 온 뺨이 불에 지진 듯 화끈하고 얼얼하여 정신이 쏙 빠져나갔다. 입과 뺨을 감싼 손바닥에 선혈이 흥건했다.
보나마나 입속이 찢어졌으리라.
“으윽!”
“이놈아, 그러게 이 어르신의 분부를 잘 따랐으면 이런 일도 없잖느냐? 이는 너의 잘못이 심히 크다 할 수 있다. 하니 네 잘못을 깨달았으면 얼른 네 누이를 불러오거라.”
누가 보나 잘못은 흉터 사내에게 있으나 정작 그는 짐짓 정인군자인 척 먹물 찍듯 고상한 어조로 훈계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을 듣는 장두로서는 실로 어이없고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놈이 그래도?”
그것을 읽었음일까?
짝짜짝!
흉터 사내는 다시금 욕지거리를 하면서 덥석 장두의 멱살을 잡아 올리더니 따귀를 거칠게 올려붙였다.
이번에는 한 대가 아니었다.
솥뚜껑 같은 손이 휙휙 소리를 내며 장두의 양 볼따구니를 질주했다. 어마무지한 손속이었다. 장두의 얼굴은 대번에 퉁퉁 부어올랐다.
입속의 찢어진 상처에서 피가 튀어 입가로 줄줄 흘렀다.
“으. 제, 제발…….”
장두가 힘겹게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럼에도 흉터 사내는 흉악하게 웃으면서 따귀를 올려붙이려 했다.
그때였다.
“그만하세요!”
작은 체구의 소녀가 흉터 사내의 손을 부여잡았다.
장소하였다.
“오호? 드디어 납셨구만. 진작 이리 얼굴을 내비쳤으면 좀 좋았느냐? 흐흐흐.”
흉터 사내는 장소하가 자신의 행사를 방해했음에도 불구하고 되레 몹시도 기분이 좋은 듯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모든 것이 그녀를 불러내려는 악독한 속셈이었던 것이다.
“제 동생을 놓아주세요.”
장소하가 짐짓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지 않으면 행여 자신이 겁을 먹었다는 것을 들킬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떨려오는 음성은 어쩔 수 없음인가?
기세 좋게 외친 그녀의 음성은 잘게 떨려 누구라도 그녀가 겁에 질려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으흐흐. 고것 참, 겁에 질린 모습도 참으로 귀엽구나!”
사내 역시 눈치챈 듯 음소를 흘리면서 한 걸음 다가섰다.
“가, 가까이 오지 마세요!”
그러자 화들짝 놀란 장소하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며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가까이 오지…… 아!”
장소하는 등 뒤로 느껴지는 차가운 벽의 감촉에 절망 어린 기색이 역력했다. 이제 어디에도 그녀가 도망갈 곳은 없었다.
“자, 이제 그만 이 어르신의 품으로 안겨라!”
두꺼운 양팔을 한껏 벌리면서 흉터 사내가 음충맞게 웃었다. 내심 그녀를 취하는 꿈에 젖어 있던 터였다.
그동안 그러한 자신의 속셈을 눈치챘음인지 도통 보이지 않던 그녀가 이처럼 눈앞에 나타나니 끓어오르는 욕정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
장소하는 짙은 음영을 드리우며 덮쳐 오는 흉터 사내의 모습에 절망하며 질끈 눈을 감았다.
“흐흐흐!”
흉터 사내가 장소하의 두 어깨를 잡아 가려는 순간,
“거기까지.”
젊은 음성이 들리며 한 사내가 나타났다.
“이건 또 뭐야?”
쌀이 밥이 되는 중요한 순간을 잡쳐 버린 데 대한 노기가 치밀었는지 흉터 사내는 눈을 희번덕거렸다.
회의경장을 걸치고 장발을 뒤로 한데 모아 질끈 묶은 이십대 초반의 청년이 객잔 문턱에 기대어 있었다. 떡 벌어진 어깨와 껑충한 장신에다 심유한 눈빛이 어우러져 필설로 형용키 어려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다만 그의 몸에서 풍기는 지독한 술 냄새와 눈빛과는 달리 흐물흐물 풀려 버린 눈매가 흠이라면 흠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행사를 방해 당한 흉터 사내는 노기충천하여 그러한 것을 신경 쓸 이성이 없었다.
“네 이놈!”
노호성을 터뜨리며 득달같이 달려드는 흉터 사내의 신형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았다. 무공을 익힌 이가 틀림없었다.
휘익―
그러나 청년을 향해 내지른 주먹은 애꿎은 허공만 후려치고 말았다.
“……!”
화급히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흉터 사내의 눈에 바로 좀 전까지 앞에 있었던 청년이 장두의 몸을 더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히 귀신도 곡할 보신경이었다.
평범한 주정뱅이가 보일 수 있는 몸놀림이 아니었다.
가만히 장두의 몸을 더듬던 청년은 미간을 찌푸렸다.
내상은 없었지만 족히 한두 달은 요양해야 할 만큼 성한 곳이 없었다.
그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무 일도 없자 살그머니 눈을 뜬 장소하가 부르짖었다.
“오라버니!”
청년은 고개만 돌려 그녀를 응시하더니 씩 웃어 주었다.
“소하야, 잠시만 더 눈 감고 있으련?”
장소하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눈을 감았다. 얼굴에는 전에 없던 안도감이 어려 있었다. 청년의 존재만으로 그녀는 평정심을 되찾은 것이다.
“콩알, 잠시만 기다려라. 후딱 끝내고 의원에 데려다 주마.”
이윽고 말을 마친 청년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네놈들이었군.”
나직이 묻는 청년의 눈빛은 장두와 소하를 대할 때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만년설을 빚어 만든 듯 한기가 흐르는 눈.
그는 바로 주운이었다.
‘그때 콩알 녀석의 표정이 어두웠던 것이…….’
주운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래, 네놈들 때문이로구나.”
희고 날카로운 송곳니가 섬뜩했다.
“그, 그렇다면 어쩔 테냐?”
그 눈빛에 압도당한 흉터 사내가 더듬더듬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대꾸했다.
“어쩌긴, 비도 오고 마음도 울적한데…….”
비 오는 날 먼지가 과연 날까?
이왕 취한 것, 술김에 시험해 보고 싶어졌다.
주운은 히죽 웃었다.
“이래야지!”
팟!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운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헛?”
흉터 사내는 기음을 내지르며 다급히 지면을 박차고 신형을 뒤로 뽑았다.
“어딜 그리 급히 가지?”
그러나 귓전을 울리는 나직한 음성에 흠칫하며 고개를 돌리자 흉터 사내의 등 뒤로 한 자 간격을 두고 주운의 신형이 미끄러지듯 빠르게 뒤로 퇴보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두 사람이 위아래로 겹쳐 뒤로 이동하는 형국이었다.
“우선 하나.”
퍼억!
주운의 발끝이 옆구리에 틀어박혔다. 피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케엑!”
흉터 사내는 내부가 진탕되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고꾸라졌다. 고작해야 발길질 한 번에 이런 무지막지한 위력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그때 뜬금없는 사태에 멍청히 바라보고만 있던 흉터 사내의 동료들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신형을 날렸다.
“이런 육시랄 놈이!”
“뒈져라!”
주운은 말없이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모두 다섯인가.’
다섯 사내는 제각기 다른 병장기를 휘두르며 덮쳐 왔다.
쾌애액!
예기(銳氣)가 코앞에 도달할 때까지 우두커니 서 있던 주운의 신형이 푹 꺼졌다.
“둘!”
그러더니 다섯 중 대머리 사내가 컥! 하는 신음을 토하며 벌러덩 뒤로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순간적으로 상체를 뒤로 젖힌 주운이 그 반동으로 대머리 사내의 턱을 걷어찼던 것이다.
주운은 가볍게 재주를 넘고는 지면을 박찼다.
다른 사내들이 아연실색하더니 이내 쏜살같이 쇄도해 오는 주운을 향해 사납게 부르짖으며 병장기를 거칠게 휘저었다.
파파파팟!
협봉검, 박도, 장창.
장내는 삽시에 서로 다른 병장기가 뿜어내는 경력의 소용돌이로 난장판이 되었다.
‘이류!’
주운은 뜻밖에도 그들이 경력을 다룰 줄 아는 이류고수라는 데 해연히 놀라면서도 여유롭게 지면을 박차고 하늘로 솟구쳐 올라 대들보에 두 다리를 걸어 거꾸로 매달렸다.
주운과 사내들은 이 장 간격을 두고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놈들이 굴러 들어온 거지?’
‘도대체 어디서 저런 고수가?’
주운과 사내들은 약간 다르지만 똑같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놀라움의 크기는 사내들이 더욱 컸다.
그들은 내원삼대 중 질풍청룡대(疾風靑龍隊)의 조장들이었다. 앞서 당한 흉터 사내가 바로 그들의 부대주였고. 그렇지만 이와 같은 고수가 성내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들어 본 바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영십익의 존재는 수뇌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래서일까?
“이놈, 천사련(天邪聯)의 세작이로구나!”
단단히 오해를 사고 말았다.
주운은 내심 냉소했다.
‘뭐, 굳이 해명할 필요도 못 느끼겠군.’
어차피 성주의 호위를 할 때는 정체를 감추려 인피면구 따위를 쓴다. 그것도 일을 할 때뿐이었다. 면구는 벗은 지 오래였다. 행동하는 데 지장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