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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신위 1권(7화)
第三章 격일호위(隔日護衛) - 뜻하지 않은 일을 당하다(3)
만에 하나 저들이 주운의 정체를 알게 되더라도 구태여 성주의 호위무사를 건드려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는 못할 터였다. 오히려 주운의 지위가 더 높은 만큼 그들의 최후는 결코 좋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제왕성주 호위무사로서 진면목을 가리고 있는 주운’이 아니었다. 가족과도 같은 이들이 험한 일을 당한 데 대한 분노로 가슴속이 후끈! 달아오른 주운이었다.
근무가 끝나 개인적인 일을 하는데 뭐라 할 상관은 없었다. 손쓰는 데 방해될 것도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장씨 남매가 받은 것을 친절히 되돌려 주는 것뿐이었다.
“장사하는 데 방해되겠군. 빨리 끝내자.”
주운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면서 대들보를 박차고 전광석화와 같이 쏘아져 나갔다.
쐐애액!
사내들은 갑작스런 주운의 움직임에 경호성을 내지르며 마주 부딪쳐 갔다.
그러나.
쾅!
폭음이 터지며 장창을 찔러 가던 봉두난발 사내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훌훌 날아 객잔 밖을 나뒹굴었다. 칠공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고 두 눈을 까뒤집은 것으로 보아 심대한 내상을 입은 듯했다.
협봉검과 박도는 두 눈을 부릅떴다.
단지 무언가 눈앞에 희끗하더니 폭음과 함께 봉두난발 사내가 피떡이 되어 처박힌 것이다.
실로 창졸지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크윽!”
협봉검과 박도가 침음을 흘렸다.
일류에 접어든 자신들의 눈에도 보이지 않다니?
그렇다면 자신들로서는 감히 상대할 수 없는 고수라는 반증이 아닌가?
그야말로 난처하기 그지없었다.
협봉검과 박도는 덜덜 떨리는 시선으로 주운을 응시했다.
“셋. 음, 오랜만에 펼쳤더니 어깨가 다 뻑적지근하군.”
주운은 막 어깨를 탁탁 털며 씩 웃던 참이었다.
“……!”
그러나 그 웃음을 마주한 협봉검과 박도는 온몸이 바짝 얼어붙어 버렸다.
흡사 굶주린 늑대가 먹잇감을 앞에 두고 어느 놈부터 먹을지 고민하는 듯한 미소.
그리고 그 위로 대조되는 서늘하기 그지없는 눈빛.
“으으, 으…….”
딱딱딱!
극도의 공포심으로 통제를 잃은 아래위 치아가 흡사 추위에 떨듯 맞부딪치는 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한동안 말없이 그들을 쳐다보던 주운이 돌연 몸을 돌려 처음 옆구리를 걷어차이고 쓰러진 흉터 사내에게로 다가갔다.
“…….”
흉터 사내는 정신을 잃은 듯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이봐,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셈이지?”
하지만 스산한 주운의 말이 들려오자 꼼짝 않던 흉터 사내의 몸이 육안으로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잘게 떨렸다.
그것을 놓칠 주운이 아니었다.
퍽!
“케엑!”
흉터 사내가 몸을 들썩이며 비명을 내질렀다.
주운이 오른발로 아까 걷어찼던 곳을 또 걷어찼던 것이다.
맞은 데 또 맞아 본 사람만이 아는 끔찍한 고통이 옆구리를 타고 전신을 찌르르 울렸다.
“아이고, 대인! 사, 살려 주십쇼!”
흉터 사내는 대뜸 주운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으며 애걸복걸했다.
주운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힘 있다고 멋대로 휘두를 때는 언제고 이제 와 살려 달라니, 다시금 노기가 치미는 듯했다.
하나 주운은 이런 부류의 사람을 숱하게 겪었었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그리고 언제고 빈틈이 생기면 여지없이 품속에서 예리하게 벼려진 비수를 꺼내 들 간사한 자.
그럼에도 주운은 더 이상 손을 쓰지 않았다. 술기운은 이미 가신 지 오래였다. 마비되었던 사고가 다시 돌아왔다.
‘생각 같아서는 단매에 보내 버리고 싶지만, 저 아이들 앞에서 그런 나의 모습을 보여 주기는 싫구나.’
장두와 장소하를 번갈아 쳐다보는 주운의 마음은 천근석을 내려놓은 듯 한없이 무거워졌다.
고작해야 열여덟, 열일곱 먹은 아이들이다.
벌써부터 세상의 어두운 면을 겪어 행여 전도를 망치지나 않을까 심히 저어되었던 까닭이다.
“썩 꺼져라.”
한동안 말없이 우두커니 서 있던 주운이 말했다.
“살려 주십쇼, 살려 주십…… 예, 예?”
그 와중에도 앵무새처럼 살려 달라는 말만 반복하던 흉터 사내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썩 꺼지란 말을 듣지 못했느냐?”
“아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인!”
주운은 몇 번이고 고개를 조아리는 흉터 사내를 내려다보며 나직이 읊조렸다.
“하나 다시 한 번 내 눈에 띈다면 그때는…….”
뒷말은 구태여 하지 않아도 알리라.
“아이고, 아무렴요. 이 근처엔 절대 얼씬도 않겠습니다.”
흉터 사내는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껌뻑 죽어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그러고는 협봉검과 박도와 함께 대머리와 봉두난발을 데리고 황망히 객잔을 빠져나갔다.
“빌어먹을!”
이윽고 객잔과 상당한 거리까지 떨어진 흉터 사내가 좀 전의 비굴함은 감쪽같이 사라진 채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가만두지 않을 테다! 내 언제고 장소하, 그 계집을 비롯해 전부 씨를 말려 버리고 말리라!”
원한은 원한을 낳고, 악연은 또 다른 악연을 낳는 법.
소나기가 억수같이 내리던 어느 한여름의 일이었다.
***
삼십 일째 날이 밝았다.
연일 찜통 같은 더위가 한풀 꺾여 곧 당도할 천고마비의 계절을 맞이할 단장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서호(西湖)에는 모란, 석남화(石楠花), 만수국(萬壽菊), 백일초(百日草)와 더불어 호면을 살포시 덮는 백련(白蓮), 홍련(紅蓮)이 흐드러지게 봉우리를 살랑였다.
서호는 무수한 시인 묵객들이 사랑한 곳으로 백낙천, 소동파가 즐겨 시를 읊었던 곳이라고 한다. 특히 송나라 때의 시인 소동파는 서호를 서시(西施)에 비유해서 서자호(西子湖)라고도 불렀다. 서시가 항주의 제일미라는 데서 서호를 서시에 비긴 것이었다.
서호의 호면을 가르는 백제(白堤)에는 아늑한 정취가 물씬 풍겼다.
주운은 취기로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물끄러미 전면을 바라보았다. 한 손에는 어김없이 술병이 들려 있었다.
백제 끝에 호면과 거의 같게 만들어진 조망대 평호추월(平湖秋月)이 손가락 하나 길이만큼 조그맣게 보였다. 흡사 높은 곳에서 아래를 보듯.
이곳은 전대 성주이자 친우였던 이가 즐겨 찾던 장소였다. 높은 곳에서 사방을 내려다보면 옹기종기 모여 웃음꽃을 피우는 뭇 사람들의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며.
주운은 그런 그의 인자한 성품을 좋아했다.
자신의 권력에 취해 다른 이를 깔아뭉개기에 급급하고, 또 그 권력을 빼앗길까 두려워 누구도 믿지 못하는 자들…….
“으앗하핫하하!”
평호추월 위에 올라 세상을 자기 발아래 깔아뭉갤 듯 웃어 젖히는 바로 저런 자와는 달리, 자기 자신보다 남을 더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이였던 까닭이다.
“역시 저자는 성주가 될 만한 재목이 아니야.”
주운은 평호추월 위에 오만한 자세로 우뚝 서 있는 연궁천을 응시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한편으로는 그 친우가 너무도 그리웠다.
그동안 곁에서 지켜본 바로는 연궁천은 대단히 편협하고 이기심이 가득한 자였다. 단지 제왕령을 거래할 때 몇 가지 조건을 내건 것을 내내 심중에 담아 놓고 어떻게든 자신을 멀리 떨어지도록 하려는 것부터가 자신의 친우와 비길 바가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그리운 것이리라.
주운은 하는 수 없이 오늘만 무사히 지나가면 될 일이라고 자위하며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늘 술을 입에 달고 사니 정상적인 사고 능력은 이미 없다고 봐야 했지만 그럴싸한 자기 변명거리도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설마하니 제왕성의 안마당에서 제왕성주를 습래하는 어이없는 자들은 없을 것이라고.
그런데 주운이 막 그렇게 생각을 굴리던 때였다.
촤촤아아―
다섯 개의 흑영(黑影)이 물속에서 튀어나와 하늘로 솟구쳐 오르더니 다섯 방위를 점하고는 연궁천을 향해 검광을 뿌려댔다.
“……!”
뜻밖에도 의표를 찔린 것이다.
‘이런, 방심했다!’
술병을 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주운은 자신의 실책을 책망하면서 다급히 경공을 발휘했다.
평호추월까지는 대략 삼사십 장의 거리.
하나 주운의 경공이라면 족히 두 호흡에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시이이잉―
흡사 쏜살처럼 가느다란 장소성을 꼬리에 달고 빠르게 평호추월 위로 올라선 주운은 머뭇거림 없이 곧바로 허리에 찬 먹빛 검을 검초째 휘둘렀다.
휘휘휘휙!
삽시간에 허공을 가득 메우는 먹빛 잔영.
그 수십, 수백 개의 잔영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사방에서 짓쳐 오는 복면인들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흡!”
복면인들은 찬바람을 집어삼켰다.
먹빛 잔영이 노리는 곳은 그들의 전신요혈이었다. 어긋남 없이 정확하게 점해 오는 먹빛 잔영을 부릅뜬 눈으로 쳐다보던 다섯 복면인들의 신형이 일제히 허공으로 솟구쳤다.
“어림없다!”
주운은 냉소하며 한 입 크게 진기를 마시고 신형을 날렸다.
먹빛 검이 호선을 그렸다.
파아아앙!
그러나 마치 해일인 양 기세 좋게 들이닥치던 반월검기는 다섯 복면인들이 뿜어내는 검기와 격돌하여 허공중에 흩어져 버렸다.
타탓!
사뿐히 지면에 내려앉은 주운은 복잡한 시선으로 다섯 복면인들을 바라보았다.
‘검기. 일류고수가 물경 다섯이나 한꺼번에 나타나다니. 대체 어찌 된 일이지?’
강호에는 기인이사들이 백사장의 모래알만큼이나 많다.
하나 그렇다고 일류에 접어든 고수 다섯이 무리를 지어 다니는 일은 그리 흔치 않았다.
그렇다면 필시 저들 다섯은 강호에 무리 지어 다니기로 이름난 자들이거나 이해타산이 맞아 합심하여 이번 일을 꾸민 자들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후자는 아닌 것 같군.’
고작해야 며칠에서 몇 달을 같이 지낸 자들이라곤 생각할 수 없도록 능수능란하게 합격진을 구성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족히 수년은 알고 지낸 사이리라.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암습을 하느냐!”
잠시 어안이 벙벙한 듯 말이 없었던 연궁천이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노발대발 소리쳤다.
스슥―
그러나 그것이 기폭제였음인가?
뒤로 물러났던 복면인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소리 없이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칼날에 햇빛이 반사되어 보는 이의 눈을 교란시키며 다가드는 복면인들의 검에는 살을 엘 듯 음습한 경력이 동반되어 연궁천의 목을 노렸다.
채채채채앵!
요란한 금속성이 울려 퍼지며 불똥이 튀었다.
화급히 연궁천의 앞을 가로막은 주운이 검초로 다섯 개의 칼날을 모두 거두어 냈던 것이다.
반면, 하마터면 자신의 목이 달아났을 뻔했던 연궁천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흥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고작 일류검객의 검은 구주십팔좌라는 뭇 강호인들의 경외와 동경을 한 몸에 받는 대상에게는 장난질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초극(超克)의 경지에 오른 연궁천의 육신은 내부까지는 아니었으나 가히 금강불괴지신을 이룩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자리를 고수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고놈, 애 좀 먹어라.’
한 번 미운털 박힌 오리는 다시는 좋게 볼 수 없다더니 주운이 딱 그러했다.
당한 것이 있으니 어느 정도 애먹일 심산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주운은 주운 대로 기가 찰 노릇이었다.
‘작작 좀 하지! 빌어먹을. 고놈의 술만 아니었어도 이딴 놈들 정도는…….’
가볍게 해치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고함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별 도리가 없었다. 비록 마음에 안 들지만 연궁천은 호위 대상이기 전에 상관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아랫사람이 뻗대 봤자 매질만 더 맞고 하극상의 죄목으로 쫓겨날 판인 것이다.
더구나 본신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가 술 때문이었다. 내가 술에 취한 탓에 다 막지 못하겠으니 네가 좀 해 봐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쩔 수 없이 사방을 점하고 쇄도해 오는 칼날을 일일이 쳐 내며 애꿎은 이만 부득부득 갈밖에.
한데 일각이 넘도록 줄기차게 검기를 뿌려대던 다섯 복면인들이 돌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빼는 것이 아닌가?
“어딜!”
그렇게 외치며 지면을 박차려던 주운을 연궁천이 제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