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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신위 1권(11화)
第四章 좌천(左遷) - 그는 호걸 중의 호걸이었다(4)


빙긋 웃으면서 묻는 주운의 말에 홍안 소년은 아연실색 낯빛이 다 창백해지고 말았다.
“크윽!”
너무나 놀란 나머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내딛다가 고통에 찬 신음성을 흘렸다. 보니, 허벅지의 상처가 흉한 입을 벌린 채 선혈을 토하고 있었다.
“엄살 피우지 마라, 호방! 그 녀석은 너보다 더한 상처를 입어도 우는 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 언제나 묵묵히 싸웠지! 그러니 너도 참아라! 네가 진정 그 녀석의 아우라면!”
좀 전의 주정뱅이의 얼굴은 씻은 듯이 지운 주운은 정색하고는 서릿발 치는 기세로 엄하게 꾸짖었다.
“정녕, 정녕 제 형님을 아십니까? 형님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어째서, 어째서 오 년 동안 아무런 소식도, 연통도 없이 그렇게 사라진 겁니까!”
진호방(陳豪放)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누군가에 대한 뼈에 사무친 그리움과 애증이 뒤범벅된 눈으로, 절절한 음성으로 울부짖듯 소리쳤다.
‘많이 닮았다 싶었더니만 그 녀석의 아우가 분명한 모양이군. 한데 화산파의 제자라던 녀석이 어째서 이런 위험천만한 곳으로 배정받았을까?’
짐짓 짐작한 바를 말했던 주운으로서는 망신살은 뻗치지 않아 다행이라고 내심 중얼거리면서 말했다.
“너무 한꺼번에 물어보면 다 기억하기 어렵지 않냐. 뭐, 이왕 이렇게 된 것 순서대로 알려 주마. 첫째, 그 녀석과는 아주 잘 아는 사이다. 둘째, 딱히 소식도, 연통도 할 수 없는 곳, 그럴 수밖에 없는 빌어먹을 처경(處境)이었다.”
“…….”
“그리고 셋째.”
주운은 한 번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더니 무거운 얼굴로 읊조렸다.
“그토록 끝까지 살아남자고 밥 먹듯이 조잘거리던 그 녀석이, 진호걸(陳豪傑) 그 비겁한 자식이! 치사하게도 그 약간의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먼저 가 버렸다. 저 높은 곳으로.”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는 주운의 시선을 따라, 필설로 형용키 어려운 심대한 상실감이 만연한 얼굴을 한 진호방의 눈에 매달려 있던 눈물이 끝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리고 찾아온 것은 정적.
억눌린 흐느낌만이 간혹 들려올 뿐이었다.
“형님은, 제 형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한동안 소매로 눈물을 훔치던 진호방이 나지막이 물었다.
아마 소중한 형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워, 그러하기에 형의 살았을 적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리라.
주운은 그를 매우 잘 알았다.
“네 형은…….”
가만히 등을 돌리며 힘주어 한 자, 한 자 곱씹듯, 그 누군가를 향해 읊조리듯 말하였다.
“이름 그대로 호걸 중의 호걸이었다.”
결코 그 이름이 아깝지 않을!
희미하게 웃는 주운의 옆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는 진호방의 입가에도 작지만 환한 미소가 번져 갔다.
“저런 속이 시커먼 놈과는 다르게 말이야.”
그때 살그머니 밤손님처럼 다가들던 무사 하나가 주운의 서늘한 눈길을 받고는 흠칫하며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멈춰 섰다. 방금 전 주운의 강격을, 그 짧은 순간에 용케도 동료를 방패 삼아서 모면했던 무사였다.
하나 애석하게도 주운의 날카로운 눈썰미를 피하기란 무사에게 있어서 불가능한 일이었다.
“운 좋게 살아남았으면 도망이라도 갈 것이지 뭣 하러 죽음을 자초하는가?”
주운은 그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일일이 확인할 마음이 없었다. 거지 장년인의 죽음이 자신의 잘못인 것은 분명하나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치는 자까지 죽이는 냉혈무정(冷血無情)한 위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비겁하게 뒤에서 암해하려는 자를 용인할 정도로 무르지도 않았다.
저벅저벅.
“네, 네놈들! 네놈들의 목적이 뭐, 뭐냐? 도대체 네놈의 정체가 무어란 말이냐!”
마치 지옥의 사신처럼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다가드는 주운을 학질에 걸린 사람처럼 덜덜 떨면서 묻는 무사의 두 눈에는 지독한 공포심이 몸부림치고 있었다.
다가오던 걸음이 그 앞에서 덜컥 멈추었다.
주운은 무사의 떨리는 눈길을 물끄러미 응시하며 말했다.
“네 녀석들의 섬멸. 제왕성 호남지부 척사대 산하 제십팔조 조장 주운이다.”
그리고 먹빛 검이 하늘로 치솟았다.
“흑!”
시퍼렇게 안색이 질린 무사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떨어져 내린 먹빛 섬광을 마지막으로 무사의 입에서 채 비명이 되지도 못한 새된 음성이 흘러나왔다.
퍼억!

“이제 그만 돌아가지.”
주운은 묵궁을 허리춤에 찔러 넣고는 몸을 돌렸다.
제 할 일이 모두 끝났다는 듯.
진호방이 급히 물었다.
“다른 분들은요?”
“적어도 너보다는 쌩쌩하다.”
대체 무슨?
“예?”
진호방의 어리둥절한 얼굴을 감상하듯 느긋하게 쳐다보던 주운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마지막이었거든.”
그제야 괜스레 흥분하였나 싶어 멋쩍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이던 진호방이 어어, 하였다.
“가, 같이 가요! 예? 조장님!”
멀찍이 걸어가는 주운을 허겁지겁 쫓던 진호방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형님, 보이세요? 꼭 형님 몫까지 열심히 살게요. 그러니 이제 그만 맘 놓고 편히 쉬어요.’
맑고 청아한 하늘.
단풍으로 붉게 물든 악록산을 포근히 감싸 안듯 광활한 품을 가진 가을 하늘은 한없이 높고, 또한 깊었다.



@第五章 타묘화호(?猫化虎) - 적어도 아무 데서나 죽지는 않겠지(1)


조아봉은 요 며칠간 몹시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서류 한 장을 쥐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내용을 뚫어지게 노려보는 눈에는 못마땅한 빛이 역력했다.
“뭔가 문제라도 있는지요?”
척사대 부대주 척운수(拓雲水)가 조심스레 물었다.
“문제? 지금 문제라고 했나!”
조아봉이 발작적으로 소리치며 탁자 위에 탕! 소리가 나도록 서류를 든 손을 거칠게 내리쳤다.
“제십팔조 전원 무사 귀환? 도대체 이게 말이 돼? 앙?”
“그것이, 전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제가 뭣 하러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척운수는 억울했다. 그저 각 조장들로부터 이번 수색에 대한 보고서를 받아 정리했을 뿐이고, 그중 제십팔조에 관한 것만 집중적으로 뽑아 왔을 뿐이다.
‘그것도 다 제 놈이 시켰으면서 대체 왜 나한테 불똥이 떨어지는 건데?’
청천비검(靑天飛劍)이라 불리며 강호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무인임에도 불구하고 상관 한 번 잘못 만난 탓에 그동안 소홀히 하였던 정신수양을 한꺼번에 하는 기분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대번에 뒤집어엎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한데도 조아봉은 마치 제십팔조의 전원 무사 생환이 척운수의 잘못인 양 호통쳤다.
“이건 틀림없이 날조된 것이야! 어떻게 한 번도 아니고, 물경 네 번씩이나 전원 다 멀쩡히 생환할 수가 있냔 말이다!”
‘그럼 내가 날조라도 했단 말이냐?’
척운수는 어처구니가 없어 억울하기도 하고 화도 치밀어 퉁명스럽게 말을 받아쳤다.
“뭐, 운이 좋았거니 하십시오.”
“이……!”
조아봉은 대놓고 건성으로 답하는 척운수를 노려보며 무어라 말하려다가 이내 끙! 하고 앓는 소리를 흘렸다.
그러고는 척운수에게 주운을 불러오라 명령하더니 꼴도 보기 싫다는 듯 빨리 나가라며 손을 내저었다.
잠시 후, 집무실의 방문이 열리더니 한 사람이 들어섰다. 그는 조아봉의 앞에 멈춰서 고개를 숙였다.
“부르셨습니까?”
주운이었다.
대낮부터 거하게 한잔했는지 술기운이 얼굴에 만연했다.
“그래, 왔는가.”
조아봉은 짐짓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뒷짐을 지고 운을 떼었다.
“이번에도 아무런 부상자 없이 돌아왔다고?”
주운은 저 속 시커먼 작자가 또 무엇으로 트집을 잡으려고, 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다행히도 운이 좋았나 봅니다.”
“그으래?”
묘하게 끌며 조아봉이 말했다.
“현재 본대의 규모는 총 이십칠조, 한 조당 사십여 명에 가까운 머릿수로 채워져 있지. 한 번 수색에 임하면 적어도 기십은 사망하거나 반수는 부상자로 귀환한다네. 한데 자네가 조장으로 있는 십팔조만은 첫 번째 수색에서 한 명의 사망자가 나온 것을 끝으로 전원 무사 생환의 신화를 이룩하고 있지. 그게 고작 운이 좋았다는 것만으로 해명이 될까?”
마치 스스로에게 뇌까리는 듯한 어조였다.
‘대체 어떠한 사술을 부렸느냐, 이놈!’
지금 조아봉의 솔직한 심경이었다.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운이 좋았습니다. 그뿐입니다.”
하나 주운은 그저 같은 대답만 할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주운이 맡은 십팔조까지가 전부였던 척사대가 그 세를 늘려 이십칠조로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십팔조는 첫 수색에 나가 운 없게도 죽은 한 명을 제외한 네 명이 다였다.
여타 조는 사망자가 나올 시 꼬박꼬박 인원을 충당해 주었는데 구태여 십팔조만 그대로 두는 것은 조아봉의 음계(陰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바로 남의 손을 빌어 눈엣가시를 뽑으려는.
어느 누가 자기에게 원한을 가진 이를 좋게 생각하랴.
그러니 주운으로서도 자신의 목을 호시탐탐 노리는 조아봉이 여간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일단 그렇다고 해 두지. 그만 가 보게.”
조아봉의 축객령.
주운은 다시 고개를 숙여 보이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나가 버렸다.
쿵!
문 닫히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흡사 나무로 만들어진 문은 주운과 조아봉 사이에 떡 하니 가로막고 선 장대한 철벽과 같았다.
영원히 허물어지지 않을…….
“빌어먹을 놈의 자식이 끝까지 거들먹거려?”
조아봉은 이해할 수 없었다.
첫 번째 수색 임무 때를 제외하고 사망자는 없다. 경상이나 중상을 입었던 것도 세 번째가 끝이다. 더구나 최근 네 번째 임무에서는 살갗이 찢어지거나 옷자락이 뜯어진 것뿐, 아무도 다치거나 죽지 않고 무사히 생환했다.
‘어찌해야 그놈을 처리할 수 있단 말인가?’
한참 동안이나 씨근덕거리던 조아봉의 눈빛에 문득 이채가 어렸다. 무언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까닭이다.
행여 늦을세라 손바닥 반만 한 종이 쪼가리에 몇 줄 휘갈겨 쓴 조아봉은 그것을 죽통 속에 넣고 전서구 다리에 매달아 날려 주었다.
푸드득!
광활한 하늘로 비상하여 어디론가 날아가는 전서구를 바라보던 조아봉은 비릿한 조소를 흘렸다.
“흐흐흐. 이놈, 이번에도 내 앞에서 그처럼 오만불손한 태도를 고집할 수 있을는지 두고 보자꾸나!”
조아봉의 눈에는 보이는 듯했다.
머지않아 울음까지 터뜨리며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져 살려 달라 애걸복걸하는 주운의 참담한 몰골이.
그 순간을 깊이 음미하듯 조아봉은 입가에 머금은 미소를 지우지 못하였다.
마치 수확을 고대하는 농부처럼.

***

오전 무렵.
장사에서 남쪽으로 오 리(里) 떨어진 곳에 위치한 숲은 평소 인적이 드물어 조용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숲 속에는 방원 십 장 크기의 공터가 있는데, 그곳에 놀랍게도 각기 다른 행색의 사내가 둘도 아니고 넷이나 있었으니 누군가 이를 보았다면 심히 이상타 여겼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중 오늘도 고집스레 알록달록한 화의를 걸친 진호방은 담담한 얼굴로 뿔뿔이 흩어져 있는 조원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우선 청성파의 삼대제자라는 사초(沙草)와 사청(沙靑), 쌍둥이 형제는 사문에서 그리 큰 두각을 보이지 못해 그대로 방치되어 버린 이들이다. 기실 자질도 평범할 뿐만 아니라 두뇌도 크게 뛰어난 편이 아니어서 앞으로도 사문의 존장에게 관심을 받을 수 없었을 터였다.
이른바 개밥에 도토리 신세.
그뿐이랴?
저기 나뭇등걸에 등을 기댄 채 앉아 그늘이 주는 시원함에 온몸을 맡기고 있는 불량한 눈빛의 사내는 사씨 형제와 마찬가지로 무당파의 삼대제자다. 하지만 무공에 대한 자질이 뛰어난 대신 그 불량하기 이를 데 없는 성품 탓에 그의 사부는 하루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날이 없었다고 한다.
지금도 인상 쓰며 침을 탁! 뱉는 두호(枓虎)를 곁눈질하며 진호방은 내심 언제쯤 사람이 되려는지, 하고 혀를 찼다.
‘그러고 보니 우리들에게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군?’
딱히 좋은 것은 아니었으나 확실히 있긴 있었다.
사문에서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 처리하기 곤란하거나 사고를 연발하는 골칫덩이들.
즉, 말 그대로 계륵인 점이 말이다.
‘그나저나 대체 언제 오시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