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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신위 1권(12화)
第五章 타묘화호(?猫化虎) - 적어도 아무 데서나 죽지는 않겠지(2)


진호방은 슬슬 감겨 오는 눈꺼풀에 힘을 주며 고개를 흔들었다. 졸음이 쏟아졌던 것이다.
그때였다.
“오래 기다렸나?”
한 줄기 회영(灰影)이 순식간에 이십여 장을 날아 진호방 등의 앞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주운이었다.
“조장님!”
“어이, 조장! 늦어도 한참이나 늦었잖수!”
진호방이 반색했고, 두호가 퉁명스레 소리쳤다. 사씨 형제는 그저 말없이 고개만 슬쩍 들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집결해 있으라고 말한 사람이 이제야 웃는 낯으로 나타나니 오죽 어이가 없었을까. 더구나 벌써 한잔 걸쳤는지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후, 별 시답잖은 일 때문에 조금 늦었구나. 한데 두호 네 녀석은 계속 그렇게 반말로 일관할 셈이냐?”
주운의 물음에 두호가 인상을 팍 썼다.
“내가 반말을 하든 빈말을 하든 조장이 무슨 상관이슈?”
“허, 생긴 것답지 않게 스물밖에 되지 않는 녀석이 어찌 이리도 귀염성이라곤 하나도 없을까.”
두호가 두 눈을 치떴다.
“뭐요?”
“아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보다…….”
주운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다들 당연히 점심은 먹지 않았겠지?”
조원들은 그 말에 행여나 주운이 요깃거리라도 가지고 왔나 싶어 빤히 쳐다보았다.
“그 눈들을 보아하니 확실하군.”
그러자 주운은 씩 웃으며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조원들의 예상과는 달리 기다란 향이었다.
‘저걸로 대체 뭘 어쩌려고?’
조원들은 처음으로 똑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좋아, 마음에 드는군.”
그러거나 말거나 주운은 자신의 발 앞에 향을 꽂고는 손가락을 척 하니 세웠다.
“오늘의 수련은 전과 달리 너희들 넷이 한 조를 이뤄 나와 싸우는 것으로 한다. 그동안 너희들의 기초를 다잡고 각자 배운 무공의 이점과 신체적 장점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작업을 거쳤었지.”
바로 며칠 전의 일이었다.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와 정면으로 맞부딪쳤을 때나 유용한 법. 그러니 오늘은 최대한 자신의 기척을 지우고 상대와의 거리를 좁혀 적절하게 제압하는 법에 대한 수련을 해 보도록 하겠다.”
기척을 지운다는 말에 진호방이 무언가 짐작되는 것이 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천사련의 무사들을 상대로, 또 그동안 임무를 하던 도중에 저희들에게 사냥을 하도록 지시한 게 그것 때문입니까?”
다른 조원들도 동조하는 눈빛을 띠었다.
첫 번째 임무가 끝나고, 두 번째 임무를 수행할 때에는 따로 식량을 준비하지 않은 채 사냥하는 법을 가르치고 무조건 사냥으로 잡은 짐승만을 먹게 했던 것이다. 그밖에 그 어떠한 것도 입에 대지 못하게 했고, 오로지 식수만이 지부에서 지급받아 온 전부였기에 내심 모두 궁금했던 차였다.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주운은 흐리멍덩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나는 불필요한 헛짓거리 따위는 시키지 않아. 뭐, 다들 이해했으니 넘어가고. 오늘 수련은 너희들 중 누구 한 명이 내 옷자락이라도 건드릴 때까지 쉬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다. 향은 얼마든지 있으니 시간 걱정은 마라.”
두호가 인상을 쓰며 지껄였다.
“만약 아무도 못 건드린다면?”
그러자 주운이 히죽 웃었다.
“만에 하나 아무도 없을 시라…… 식전부터 어제 먹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해 볼 요량으로 연무장 삼십 바퀴 뛰고 싶다면 어디 한 번 시험해 봐도 좋다.”
“뭐, 연무장 삼십 바퀴?”
잠자코 듣고 있던 진호방이 끼어들었다.
“조, 조장님! 하지만 저희들의 실력으로 조장님의 옷자락을 건드려 보라니요? 그건 말도 안 되는 처사십니다!”
“확실히 내 옷자락을 잡으려면 최소 일류 이상은 되어야 가능하다. 지금의 너희들에게는 조금 어려운 수련이 될 테지.”
만에 하나 다른 이가 그와 같은 말을 했다면 차라리 거짓이라 무시했겠지만, 이미 주운의 무공을 약간이나마 체감한 조원들은 감히 그런 생각은 조금도 할 수 없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세상에는 실력도 없는 녀석일수록 자기변명만을 내세울 뿐이지. 해 보지도 않고 안 될 거라고 합리화하며 도망치는 겁쟁이들이나 말수가 많은 법이야. 어떠한 것이든 꼭 해내고 말겠다는 각오로 임한다면 너희들도 충분히 강해질 수 있다.”
조원들은 고개를 숙였다. 어느 하나 틀린 말이 없었다.
“그 어떠한 수단을 써도 좋다. 그동안 배운 알량한 사냥술이라도 응용한다면 조금은 승산이 올라가겠지.”
주운은 정색하며 쐐기를 박았다.
“뭐, 보나마나 거기 주제 파악 못하는 두가 녀석은 머리가 나빠서 제대로 기억이나 하고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이익!”
졸지에 머리가 나쁜 녀석으로 지목당한 두호가 이를 뿌득! 갈더니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어느새 뽑아 든 검이 벼락처럼 주운의 정수리로 내리꽂히려는 찰나,
덥석!
“크윽!”
천천히 내뻗어진 주운의 두 손가락이 낚아채 버렸다.
그야말로 기쾌한 한 수.
‘공수입백인(空手入白刃)!’
진호방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도 그럴 것이 절정의 경지에 이르러서야 가능하다는 상승의 수법이 바로 공수입백인이다.
그런 고절한 수법을 이처럼 간단히 펼치다니?
‘도대체 조장님의 진면목은 무엇일까? 저만한 무공을 일신에 지니고도 어째서 이런 곳에 계신 거지?’
그동안 켜켜이 쌓였던 의혹의 덩어리가 풀리기는커녕 더욱 세를 불려 가는 것 같았다.
“고놈 참, 성미도 급하군.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앞으로 내게 칼 휘두를 시간은 충분하니 조금만 참아라.”
고작해야 손가락 사이에 낚아채여 아무리 용을 써도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검과 그 손가락 주인인 주운을 번갈아 노려보던 두호가 그 말에 안색을 굳혔다.
팅!
그 순간, 검을 잡고 있던 두 손가락이 벌려지며 검이 뒤로 튕겨졌다. 그 서슬에 두호가 두어 걸음 비척비척 물러섰다.
조원들은 주운의 신기에 압도되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굳은 낯빛으로 주운을 주시했다.
한바탕 폭풍우가 몰아친 후에 찾아오는 고요함인가?
정적이 찾아왔다.
“자, 그럼…….”
잠깐의 정적을 깨고 주운이 히죽 웃었다.
“시작한다.”

사냥과 호위.
따로 놓고 보면 엄연히 별개의 것이다. 하나 공통 선상에 놓았을 때는 또 다르다.
누구도 부정 못할 공통점이 있었기에.
바로 사냥감, 혹은 적에게 먼저 발각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사냥꾼은 자신의 체취나 기척을 감추는 기술을 익히는 데 주력하고, 호위무사 또한 은신법(隱身法) 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그 수련에 큰 비중을 둔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사냥감이나 적이 자신보다 적어도 한 수 이상 웃도는 실력의 강자라는 전제 조건을 두는 까닭이다.
‘하나 걱정 마라.’
아무리 강하다고는 하나 배때기에 칼 맞고 죽지 않을 인간은 없다. 생전에 얼마나 대단했고, 또 얼마나 강했건 죽으면 다 똑같은 인간일 뿐이다.
‘고로 너희들이 해야 할 것은 오로지 하나.’
적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 은밀하게 몸을 숨기고, 방심을 유도하여 회심의 일격을 가하는 것.
적어도 생존 확률은 확실히 오르겠지.
“듣고 있나?”
대답은 없었다. 하나 틀림없이 듣고 있으리라.
수련의 시작을 알린 지 일각이 흘렀다.
작정하고 움직인다면 숨었어도 벌써 숨었을 시간.
“앞으로 일각 후, 너희들을 찾아서 섬멸하겠다. 잊지 마라, 일각이다. 그 안에 완벽하게 자취를 감춰라.”
만에 하나 그렇지 않을 시.
“안 그럼…… 너희들은 오늘 나한테 반 죽는다.”
주운은 정면을 쳐다보며 씩 웃었다. 일순간 흐리멍덩했던 눈빛이 정광을 발했지만, 곧 사라졌다.
“역시 말귀를 못 알아먹었나 보군.”
주운의 앞에는 두호가 떡 하니 나타나 무엇이 그리 못마땅한지 잔뜩 일그러트린 얼굴로 서 있었다.
“미안한데 말이오. 뒤에 숨어서 살금살금 도둑고양이처럼 상대의 허점을 찾는 것 따위는 내 성미에 맞지 않수다.”
그러더니 걸쭉한 가래침을 탁! 뱉었다.
“어디 한판 붙어 봅시다!”
주운은 뒷짐 진 자세에서 손 하나를 까딱였다.
“얼마든지.”
그러자 주운이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두호의 신형이 빠르게 쇄도해 왔다. 오른손에 쥔 투박한 송문고검(松紋古劍)이 검광을 뿌리며 주운의 명치, 옥당혈(玉堂穴)을 노리고 내찔러졌다.
순간 주운의 오른손이 마주 뻗어 가더니 송문고검이 채 가슴에 닿기도 전에 그 칼날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퉁겼다.
따앙!
맑은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크윽!”
두호는 신음성을 흘렸다. 동시에 여섯, 일곱 걸음을 뒤로 물러서는데 송문고검에 실린 주운의 경력이 어찌나 고강한지 내딛는 보보(步步)마다 울컥울컥 피를 토해 냈다.
풀들이 얕게 자라난 땅에는 깊이가 한 치나 되는 북두칠성 모양의 일곱 개의 족적이 쑥 패였다.
“빌어먹을!”
두호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칼날을 타고 두호의 내부를 격탕시킨 주운의 경력은 그리 많은 양은 아니었으나 강맹하기 그지없었다.
때문에 이를 해소하려 급히 공력을 일으켜 그 경력을 보법을 밟아 가며 용천혈로 흘려보낸 것인데 오히려 버티지 못하고 지면이 꺼져 버린 것이다.
실로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만에 하나 두호의 대처가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기혈이 뒤엉켜 한동안 꼼짝없이 병석에 누워 지내야 했을 것이다.
그때였다.
“그렇게 넋 놓고 있을 새가 없을 텐데?”
귓가에 소곤거리듯 들려오는 음성.
입가에 흐르는 피를 훔치던 두호는 대번에 안색이 흙빛으로 변해 버렸다.
‘뒤!’
송문고검이 기민하게 뒤로 꺾이며 거기 있을 상대의 목을 노렸다.
두호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어렸다.
‘어리석은. 제 위치를 알려 주는 짓을 왜 해? 그러니까 당신이 이런 꼴을 당하는 거라고!’
송문고검이 뿌리는 경풍은 더할 나위 없이 예리하다. 보나마나 이대로 등 뒤에 있는 주운의 목을 꿰뚫어 버릴 터였다.
휘익!
그러나 들려오는 것은 허공을 가르는 소리뿐.
“……!”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두호가 눈을 부릅떴다.
없다!
그곳에 있어야 할 주운의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대체?’
순간,
퍼억!
창자가 가닥가닥 끊어지는 끔찍한 고통이 전신을 엄습해 그 이상 생각을 이어 나갈 정신을 쏙 빼놓고 말았다.
너무도 고통스러운 나머지 눈물까지 찔끔했다.
두호가 복부를 감싸 쥐고 꺽꺽거리고 있을 때였다.
“기본부터가 글러먹었군! 방심을 유도하라고 가르쳐 준 사냥술은 어디에 팔아먹고 정작 네 녀석이 방심을 하는 것이냐! 그동안 헛배웠구나, 헛배웠어! 시간이 아깝다!”
호통 소리가 들려오더니 두호의 전신으로 무자비한 구타의 손길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퍼억! 퍽! 퍽! 퍼퍽!
“크읏, 크아아악!”
두호는 더는 참지 못하고 처절한 비명을 토해 냈다.
도무지 어찌 된 일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두호의 눈길이 아래로 향했을 때는 사방이 완벽한 사각이 되어 있었다. 그 틈을 타 주운이 허공을 날아 두호의 뒤를 점한 후, 짓쳐 오는 송문고검을 허리를 숙이는 간단한 동작으로 어깨 너머로 흘리고는 그대로 두호의 정면으로 자리를 옮겨 버린 것이다.
이는 설명은 길었으나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 이루어진 일이었다. 하물며 이를 알 리가 없는 두호의 심경은 얼마나 참담무비할 것인가?
“아아아악!”
두호는 그저 끊어질 듯 말 듯 새된 비명을 이어 나가는 데 충실할 수밖에 없었다.
주운의 손길은 두호의 의식이 절대 끊어지지 않도록 군데군데 요혈을 건드렸다. 그 효과는 그야말로 대단하여 맘대로 기절도 못하고 계속 그 고통을 견뎌야만 했다.
주운의 신경은 두호를 패는 데 온통 쏠린 것처럼 보였다.
그를 느꼈음인가?
‘기회다!’
각기 좌측 수풀 속, 잎사귀가 무성한 나뭇가지 위에 숨어 있던 진호방과 사씨 형제가 같은 생각을 속으로 부르짖었다.
쉬잉!
진호방의 손에서 돌멩이 하나가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