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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신위 1권(13화)
第五章 타묘화호(?猫化虎) - 적어도 아무 데서나 죽지는 않겠지(3)
쏜살같이 허공을 격하는 돌멩이는 여지없이 주운의 등허리에 꽂힐 듯했다.
퍽!
‘맞혔다!’
진호방은 내심 쾌재를 부르며 벌떡 일어나 그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연이어 공격을 할 요량이었다.
“어, 없어?”
한데 방금 전만 해도 그곳에 있었던 주운의 모습이 오간 데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닌가?
더구나 정확하게 맞혔다고 생각한 돌멩이는 코피가 터져 피로 물들고 퉁퉁 부어오른 얼굴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두호의 복부에 틀어박혀 있었다.
애꿎은 생사람 하나 잡은 셈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옆구리에도 돌멩이 두 개가 반들반들한 민머리를 수줍게 쳐든 모양새로 꽂혀 있었다.
‘이건 또 뭐지?’
진호방이 고개를 갸우뚱했으나 그 의문은 곧 풀렸다.
뻐버억!
가죽으로 만든 북을 세차게 치는 소리가 두 번 들리는가 싶더니, 이어 허공에서 무언가 쿵! 쿵! 소리를 내며 곤두박질쳤다.
어째서 떨어지는 소리가 두 번이나 들리는지 의문 어린 눈길로 쳐다본 진호방은 허, 하고 헛웃음을 흘렸다.
“수, 순식간이었다.”
“당해 버렸다.”
사씨 형제였다.
“설마?”
진호방은 불현듯 깨달은 바가 있어 고개를 쳐들었다.
동시에,
덥석!
손 하나가 진호방의 목을 틀어쥐었다.
“컥!”
주운의 손이었다.
“알았으면 재빨리 피했어야지.”
주운은 사뿐히 지면을 내디디며 씨익 웃었고, 진호방은 분한 듯 말했다.
“크윽, 설마하니 그 짧은 시간에 저보다 가까운 곳에 은신해 있는 사씨 형제를 노렸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 말마따나 주운은 진호방이 몸을 일으키는 순간, 동시에 돌멩이를 던졌던 사씨 형제의 은신처를 알아채고 허공으로 신형을 날렸던 것이다. 그 뒤는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사씨 형제를 곤두박질시키고 어리석게도 제 스스로 뛰쳐나온 진호방을 보고는 소리 없이 뛰어내렸을 터였다.
그야말로 두호를 비롯한 조원들은 완벽하게 주운의 뜻대로 놀아난 꼴이 되고 말았다.
“자, 어디 볼까.”
주운은 향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향은 아직 반절도 채 타지 않았다.
진호방의 얼굴이 침울해졌다.
고작해야 저만큼밖에 타지 않았단 말인가?
비록 향의 길이가 여느 것과 달리 두 배는 길었으나 어찌 되었든 자신들의 완패였다.
무어라 반론할 여지도 없었다.
“뭐, 애들 꼴을 보니 더는 못할 성싶군. 이거 큰일인데, 조만간 시작할 듯한데…….”
주운은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무래도 빨리 의방(醫方)으로 데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
조원들의 상세를 들여다보던 진호방의 낯빛은 어두웠다.
조금 심하게 다뤘나 보다.
“그래라. 참!”
주운은 그제야 떠올랐다는 것처럼 히죽 웃었다.
“애들 깨어나면 연무장 삼십 바퀴 뛰는 것 잊지 말고 반드시 하라 그래. 안 하면 알지?”
그러면서 주먹을 살포시 쥐고는 살랑살랑 흔들어 보였다. 그러고는 기세 좋게 술병에 든 화주를 들이켰다.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었음인가?
두호를 어깨에 들쳐 업던 진호방은 울상을 지었다.
“하아…….”
천근만근 무겁기 그지없는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휘이이잉―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침상에 누워 두 다리 뻗고 낮잠이라도 자고 싶은 유혹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화창한 날.
하지만 척사대 십팔조는 오늘도 땀과 함께 보내야만 했다.
연무장을 뛰면서…….
***
십팔조 조원들이 숨을 헐떡이며 연무장을 돌고 있을 무렵.
“요즘 들어 천사련과의 마찰이 없었소. 전투가 없으니 무사들이 다치거나 죽을 일이 없어 실로 다행이라 할 만하나 반대로 우려스럽기도 합니다. 혹여 저들이 우리들의 방심을 유도하려 획책하는 거라면, 지금 같아서는 영락없이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판단하였기에, 며칠 전에 언질한 바를 사흘 후에 시행하는 데 대한 의견을 들으려 여러분을 소집한 것이오.”
척사대 부대주 척운수는 좌중을 쓸어 보며 물었다.
“혹 이에 대해 말씀하실 분 있으시오?”
척운수의 물음에 척사대 이십칠조의 각 조장들은 흠잡을 데 없다고 판단했는지 흡족한 얼굴로 찬성했다.
“조 편성은 대략 홀수와 짝수로 나누기로 하겠소. 그리고 남은 한 조는 제비뽑기를 통해 공정하게 나누도록 하십시다. 별다른 이의가 없다면 해산해도 좋소.”
그러자 중인들이 썰물처럼 장내에서 사라졌다.
그중에는 주운도 있었다.
“흐음, 사흘 후란 말이지?”
주운은 턱을 매만지며 연무장으로 향했다.
“실전을 모의한다니, 척사대에도 재미있는 사람이 한 명은 있었군.”
“네? 척사대 조들 간에 실전을 모의한 전투를 한다구요?”
느닷없는 주운의 말에 놀란 진호방이 같은 생각을 떠올린 조원들을 대신해 큰소리로 반문했다.
마치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 있냐는 것처럼.
그도 그럴 것이 주운의 혹독한 채찍질에 쫓기듯 죽자 살자 수련을 한 것이 불과 며칠 전이었다. 더구나 연무장 삼십 바퀴라는 멀고도 먼 횟수를 채우는 것만 해도 전신이 물먹은 솜마냥 축축 처질 지경인데, 이 무슨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란 말인가?
“그동안 너희들이 갈고닦은 실력을 선보일 때가 왔다. 그처럼 풀 죽어 있을 일이 아니라고. 때마침 좋은 기회가 굴러들어 왔으니 마땅히 기뻐하지는 못할망정 죽상이 뭐냐?”
한데도 저 망할 조장은 오늘도 잔뜩 취한 얼굴로 빙글빙글 웃어가며 잘도 말한다. 흐리멍덩한 눈빛 속에 깊게 가라앉은 우울한 빛만 아니었더라면 영락없이 주정뱅이로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것도 여태껏 같이 지내면서 알게 된 것이었다.
‘설마 여태껏 혹독하게 수련시킨 이유가 이것 때문인가?’
진호방은 아닐 거야, 아닐 거야 속으로 되뇌며 물었다.
“호, 혹시 우리를 수련시킨 것이……?”
“그렇다. 가뜩이나 인원도 쪼들리는데 실력마저 밀리면 그 얼마나 수치스럽겠느냐?”
‘조장님이나 그렇겠지요!’
주운의 말에 진호방은 속으로 부르짖었다. 차마 겁이 나 입 밖으로는 내뱉지 못했다.
“흠! 너무 그렇게 죽일 듯이 노려보지 마라. 이는 다 너희들을 한 사람의 당당한 무인으로 거듭나도록 하려는 이 조장님의 마음이 아니겠냐?”
“뭐요? 지금 우리랑 농이라도 하겠다는 거요?”
“하여간 두호, 네 녀석은 그 말버릇 좀 고치라 해도 여전하구나. 하긴 너희들이 그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다. 하나 내가 고작 그 이유 하나로 너희들의 수련을 봐 주었던 거라 생각하느냐?”
“…….”
주운은 조원들을 쓸어 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전에 비해 충분히 강해졌다. 물론 이제야 일류라는 문턱을 갓 넘긴 햇병아리임에는 분명하지만, 사부들 도움도 없이 기껏해야 이류 초입에 머물던 때와는 월등한 차이가 있음을 너희 스스로도 느끼고 있을 터.”
조원들의 눈길이 잘게 떨렸다. 확실히 그러했다. 다들 사정은 약간 달랐지만 제대로 사부를 모시고 무학을 배운 적은 없었던 까닭이다. 해서 실력이 향상되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느낄 뿐, 정확하게 알지는 못했다.
그런데 일류 초입이라니?
너무도 놀란 나머지 쩍 벌린 입으로 파리가 날아든다 해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뭐, 기껏해야 고양이가 털갈이해 새끼 호랑이로 둔갑한 것처럼 실질적으로 진짜 일류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말이야.”
하지만 그런 그들을 향한 주운의 평은 혹독했다.
정석적인 방도를 통해 이룩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비록 속성으로나마 일류의 문턱에 들어섰다고는 해도 그것으로 저들의 성장은 끝일는지도 모른다.
무공을 배우는 데 있어 필수불가결이라는 재능이 부족한 것이다. 이는 앞으로 그들에게 크나큰 벽으로써 다가올 것임에 틀림없었다.
“어찌어찌 거기까지는 내가 끌어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너희들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것이다. 너희들은…….”
주운이 무심한 눈으로 말을 이었다.
“범재다.”
쾅!
진호방 등은 육중한 둔기에 뒤통수를 맞은 듯이 강렬한 충격을 느끼며 정신이 아찔해졌다.
범재(凡才).
무(武)에 뜻을 둔 이들에게는 이보다 한탄스러운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타고나기를 최고가 될 수 없도록, 하고많은 이들과 같이 저 높이 있는 태양을 하염없이 부러워하며 질시할 수밖에 없도록 태어난 이들.
그 태양의 눈부심 앞에 절로 고개를 숙일밖에 없는 벼와 같은 이들이 바로 범재다.
진호방이 금시라도 울 것만 같은 얼굴로 물었다.
“그, 그럼 저희들은 이 이상 강해질 수 없는 겁니까? 이제야, 이제야 겨우 조장님 같은 분을 만나 배움이란 것에 눈을 떴는데…… 이게 끝이라니…….”
덜덜 떨리는 음성이 애처롭다.
“인마, 아직 하늘 같은 조장님 말씀도 끝나지 않았는데 왜 청승맞게 질질 짜고 그러냐? 물론 당연히! 다른 위인들은 이리 말했을 터이나, 내가 누구냐? 내가 바로 무영십…… 아니, 척사대 제십팔조 조장님 아니냐? 자, 지금부터 본론을 말하겠다. 호방, 또 도중에 말 끊으면 열 바퀴 추가다?”
“흐읍!”
주운이 눈살을 찌푸리며 하는 말에 진호방이 급히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럼에도 끅! 끅! 하는 흐느낌 소리가 새어 나오는 걸 보니 퍽이나 원통한 듯했다.
‘자식, 생긴 것과 다르게 성격은 제 형이랑 확연히 다르구만. 그 녀석이 죽어 가면서도 걱정했던 이유를 알 것 같군.’
주운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피식 웃고는 말했다.
“이십 년 전, 한 낭인이 있었다. 그는 아주 평범한, 막말로 농사일을 업 삼아 근근이 연명하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범부였다. 무공이라 해 봐야 딸랑 삼재검(三才劍) 하나만 익힌 범재 중의 범재였지. 그러나 그는 서른다섯의 나이로 낭인왕(浪人王)이라 불릴 정도로 손꼽히는 강자가 되었다. 어떻게 그리될 수 있었을까?”
“…….”
조원들이 알 리가 없었다.
주운도 그들의 대답을 원한 것은 아니었는지 목청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미처 자세히 듣지 않아 확실치는 않지만 그는 하루에 검을 삼천 번을 웃돌 만큼 휘둘렀다고 한다. 조석으로 뜀박질을 두 시진씩 하루도 빠짐없이 하면서. 심지어 자는 시간까지 쪼개어 전부 수련에 쏟아부었지.”
그야말로 독하기 그지없는 수련법. 지금 다시 떠올려도 치가 다 떨려 왔다.
“범재라고? 범재는 결코 천재를 뛰어넘을 수 없다고? 모자라면 끈기로 채우고, 금이 가면 노력으로 그릇을 견고히 해라. 기억해 둬라. 범재도 범재하기 나름이다. 그게 힘들다고 우는 소리 지껄이는 놈들은 평생 가도 알 리 없겠지. 하지만 너희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비록 휘황한 보석은 못 될지언정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옥석이 될 수는 있다는 것을!”
“……!”
조원들은 그 말에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수 있다.
그 한마디가 그토록 심장을 떨어 울린 것이다.
주운은 넋 잃은 얼굴을 한 조원들을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하나 덧붙이자면 난 그와의 싸움이 가장 지겹고 두려웠다. 도대체가 승패가 갈리면 뭐 하나? 죽어도 포기를 안 하는데…….”
진호방이 급히 물었다.
“저, 정말입니까?”
“뭐가?”
“방금 그 말씀 말입니다.”
“아, 그거? 숨겨서 뭣 하랴. 사실이다.”
저 괴물 같은 조장님을 그처럼 치를 떨게 만들다니 도대체 누굴까, 하는 고민에 빠진 진호방.
그사이 주운이 덧붙였다.
“또 하나 기억해 둘 게 있다.”
“……?”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보다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한다. 학문에는 연이 닿지 않은 천생 까막눈인 그가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항상 입에 달고 살았던 공자님의 논어 중 옹야편(甕也篇)의 한 구절이다. 지금부로 너희들의 뼈와 살이 될 말이니 절대 잊지 마라.”
이의가 있을 리 만무하다.
이제야 비로소 배움의 기쁨을 알았다. 즐기는 일만 남은 셈이다.
그때 사씨 형제 중 사초가 슬그머니 물었다.
“전에 그와 같은 분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혹 그분의 성함이…….”
“정일범(正一凡). 낭인왕 정일범이다.”
낭인왕 정일범!
이십 년 전, 녹슨 칼 한 자루만을 벗 삼아 전에 없던 십오 년에 걸친 비무행(比武行) 끝에 절정고수의 반열에 들어선 불굴의 승부사.
제왕성에 가입한 후 오 년 전의 정마대전 때 사라졌다는 이의 이름을 뜻밖에도 여기서 듣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