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무영신위 1권(14화)
第五章 타묘화호(?猫化虎) - 적어도 아무 데서나 죽지는 않겠지(4)
도대체 그들의 조장은 어찌 그를 알고 있단 말인가?
더구나 그와 겨루어 이겼다지 않는가?
진호방 등은 주운에 대해 더욱 극심한 궁금증이 구름같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자, 이제 그만 횟수 채워야지?”
그러나 그 궁금증을 해소시켜 줄 의향이 전혀 없는 양 화제를 돌리는 주운의 말에 일단 접어 둘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찾아드는 절망감에 어깨가 축 처졌다.
“그런데 그 전투는 언제지요?”
진호방이 문득 떠올라 물었다.
“사흘 후.”
“네?”
“사흘 후라고. 그러니 그때까지 열심히 해라. 뒤처지기 싫으면.”
“조장님, 그러면 차라리 이럴 시간에 수련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잔말 말고 빨리 뛰기나 해.”
주운의 말에 두호가 인상을 썼다.
“에이 씨. 이게 다 무슨 소용이유? 딴 놈들은 그 전투인지 뭔지 하려고 아득바득 수련하고 있을 게 빤한데 우린 그놈들한테 당하거나 말거나 이렇게 연무장이나 뛰어야 하우?”
불만 가득한 음성이었다.
“적어도…….”
주운은 정색하고 말했다.
“적어도 아무 데서나 죽지는 않겠지.”
“……!”
두호 등은 주운의 말에 순간 얼음물에 심장을 넣은 양 온몸이 싸해졌다.
주운은 뭘 그리 놀라고 그러나, 하는 뜻을 담은 웃음을 보이고는 돌아섰다. 등허리께에서 삐죽이 고개를 쳐든 술병도 같이 웃는 것 같았다.
“무조건 남들보다 배는 열심히 해야 그 차이를 메울 수 있다. 그러니 얼른 뛰고 푹 쉬어라. 내일은 또 수련해야 하니.”
등 뒤로 진호방 등의 시선이 느껴졌으나 가볍게 무시했다.
어느덧 노을빛 석양이 아름답게 피어올랐다.
땅거미가 지도록 연무장은 헐떡이는 숨소리와 넘어지고 구르는 소리로 몸살을 앓았다.
그리고 시간은 쏜살과 같이 흘러갔다.
***
녹음이 우거진 숲 속.
사삭―
푸른 건을 머리에 두른 사내들이 숲 속을 달리고 있었는데 그 몰골은 상거지가 따로 없었다.
옷은 나뭇가지에 찢겨 속살이 다 드러났고 청건(靑巾) 밖으로 본래 한데 묶었으리라 짐작되는 머리카락이 산발하여 얼굴조차 알아보기 어려웠다.
청건 사내들은 그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눈빛으로 연방 좌우를 곁눈질하면서 절대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는 양.
그때였다.
팟!
우당탕!
갑자기 발목에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든다 싶더니 청건 사내들은 외마디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볼썽사납게 저만치 나뒹굴고 말았다.
“저, 저건?”
청건 사내들의 얼굴에 놀람의 빛이 떠올랐다.
이제 보니 발목 높이로 자란 수풀 사이로 언뜻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가느다란 실이 보이지 않는가?
더 고민할 것도 없다. 청건 사내들은 팽팽하게 당겨진 그 실에 걸려 넘어진 것이었다.
“윽, 대체 이런 곳에 누가 저런 것을?”
설치해 두었을까, 하는 뒷말은 도로 꿀꺽! 삼키고 말았다.
휘익―
그들을 중심으로 에워싼 채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붉은 건을 머리에 두른 네 사람을 목도한 까닭이다.
“어, 언제…….”
“서, 설마 십여 명이나 되는 이들을 다 제압하고도 우리보다 먼저 이곳에 와 있었던 것인가?”
경악 어린 외침을 앞다투어 내뱉는 청건 사내들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한 지 오래였다.
‘어찌 저놈들이 그처럼 강해진 거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류나 될까 싶었던 놈들이…….’
한편으로 그런 의문도 들었다.
스물일곱 개 조 중에서도 가장 뒤처지고 사문에서마저 눈엣가시로 여겨 천사련과의 접전지로 버리듯이 보낸 이들이 바로 제십팔조의 떨거지 사인방이 아니었던가?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잘근잘근 짓밟아 주마 했건만 되레 사십여 명을 웃도는 수효를 한 시진도 채 되지 않아 속속들이 거꾸러트리더니 이제는 그들의 차례가 되었다.
도무지 무슨 수로 저처럼 강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생각을 읽었음인가?
홍건(紅巾) 사내들 중 예쁘장하게 생긴 소년이 말했다.
“우리가 강해진 것이 놀라운가?”
차마 대놓고 말할 수 없어 고개만 끄덕이는 청건 사내들.
“그렇겠지. 놀랍고 이해할 수 없겠지. 하지만 우리는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렇게 되려고 죽을 각오로 노력했다. 당신들이 이해 못하는 게 당연해.”
옆에 있던 불량한 눈빛의 사내가 끼어들었다.
“우라질! 니들도 하루 삼십 바퀴씩 연무장 뺑이 치고 죽어라 두들겨 맞아 봐라, 그리되지 않고 배길 수 있나.”
뒤쪽에 있던 쌍둥이가 고개를 끄덕여 동조의 뜻을 밝혔다.
홍건 사내들.
그들은 바로 척사대 산하 제십팔조였다.
칙칙한 기미가 그들의 눈 밑에 그늘져 있었다.
숫제 며칠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몰골.
파르스름하게 빛나는 눈빛에는 독기마저 서려 있었다.
결코 쉬이 얻은 힘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그 눈빛에 주눅 든 청건 사내들이 몸을 움츠렸다. 마치 금시라도 확 덮칠 것인 양 으르렁거리는 맹수를 마주한 듯 등골이 서늘했다.
척―
진호방 등은 그런 그들의 어깨에 날카로운 칼날을 얹는 것으로 모든 사태를 말끔히 진정시켰다.
“이제 모두 잡은 건가?”
“아마도.”
진호방이 돌아보며 묻자 두호와 사씨 형제가 씨익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는 그렇게 끝이 났다.
홍건조의 압승으로.
그리고 그곳에서 이십여 장 떨어진 고목의 가지 위.
십팔조의 활약을 전부 지켜본 이가 있었다.
주운이었다.
주운은 가볍게 화주 한 모금을 들이켰다.
“캬아! 녀석들, 제법 실력이 늘었군.”
가르친 보람을 톡톡히 보았다. 흡족한 결과다. 한 달 전만 해도 한 사람 몫도 제대로 못 해내던 녀석들이 이제는 당당히 제 몫을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나름 스승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음?”
문득 허공을 올려다보던 주운의 눈에 비둘기 한 마리가 날개를 퍼덕이는 것이 들어왔다.
정확하게 주운의 머리 위였다.
주운은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는 손을 입가로 가져다 대었다.
휘이이익―
장소성이 메아리치자 비둘기가 퍼뜩 알아듣고 위로 뻗어진 주운의 팔에 내려앉았다. 비둘기의 다리에는 무영십익을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진 죽통이 매달려 있었다.
운! 전대 성주님의 손녀가 있는 곳을 찾았네. 그녀라면 자네가 궁금해 하는 것을 알고 있을 걸세. 그리고 그때 연궁천을 암해하려던 복면인들에 대한 단서도 곧 찾을 수 있을 것 같네. 내가 일을 마치고 다시 전서를 보낼 때까지 부디 무운을 비네.
삼익
그 죽통 속에 든 전서를 급히 풀어 읽은 후 주운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만돌이 녀석, 드디어 찾은 건가?”
푸드득!
전서구를 도로 날려 보내는 주운의 입가에 미미한 웃음기가 피어올랐다.
이곳으로 온 지 거의 두 달이 되어 가는 오늘.
드디어 한 가닥 실마리가 잡혔다.
第六章 천사혈명(天邪血命) - 이제는 유일한 나의 자부심이다(1)
오후 무렵.
주운은 전령의 방문을 받고 회의실로 향하던 도중 저만치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음을 보고는 무슨 일인가 싶어 빤히 쳐다보다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막 술을 들이켜려던 동작까지 멈추었다.
그중 진호방 등이 있었던 것이다.
주운의 시선을 느꼈음인가?
“조장님, 안녕하십니까.”
진호방이 한달음에 달려와 꾸벅 인사했다.
“어, 그래. 한데 무슨 일이냐? 이 시간에 모여들 있고.”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조금 할 일이 있어서요.”
“그러냐?”
주운은 계면쩍은 웃음을 짓는 진호방의 위아래를 뜯어보면서 새삼스러운 감상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진호방의 전신에서는 묘한 자신감이 충만했다. 얼마 전만 해도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불신감에 차 있던 녀석이 말이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가슴을 쫙 펴고 있는 모습이 퍽 그럴싸해 보여 뿌듯했다.
진호방은 주운이 아무런 말도 없이 빤히 쳐다보고만 있자 무언가 켕기는 것이 있는 듯 급히 말했다.
“저는 아직 할 일이 남아서 이만……. 조장님, 그럼 좋은 저녁 되십시오.”
“그래, 할 일 얼른 끝내고 일찍 쉬어라.”
주운도 그 기색을 눈치챘는지 더는 곤란하게 하지 않고 후다닥 도망치듯 멀어지는 진호방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런데 저만치 십여 명의 다른 조원들을 중심으로 에워싼 채 서 있는 두호 등과 합류한 진호방이 돌연 그들을 향해 호통을 치는 것이 아닌가?
더욱 놀라운 것은 다른 조원들이 그 말을 군말 없이 듣고 있는 것이었다. 잔뜩 주눅 든 얼굴로 굽실거리는 것이 오히려 약간 안쓰럽게까지 여겨졌다.
‘저놈들, 이제 제법 애들 잡을 줄도 알고. 많이 발전했네.’
주운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고는 발걸음을 재촉해 회의실로 들어섰다.
‘그나저나 이거 나도 조용히 살긴 글러 먹었나 보군.’
들어서자마자 스물여섯 개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니 괜스레 낯가죽이 따가워 술을 마시는 것으로 애써 외면했다.
지금 그들의 시선이 의미하는 바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대체 그 비법이 무어냐는 것.
척사대 제십팔조.
떨거지 사인방이라며 괄시와 무시 속에 일엽편주(一葉片舟)와 같이 호남지부라는 망망대해를 겉돌던 그들이 돌연 달라졌다.
보름 전쯤에 있었던, 실전을 모의한 전투.
당연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한 끝에 모여 있다가 다른 조에 의해서 맥없이 당할 줄 알았던 그들이, 순식간에 청건조 사십여 명을 제압하여 홍건조의 승전에 지대한 공로를 세운 것을 기점으로 그 기세는 날로 커졌다.
방금 전, 주운이 본 바와 같이 이제는 다들 눈만 마주쳐도 설설 기었고 감히 반항은 꿈도 꾸지 못했다.
‘이건 숫제 마공이라도 가르쳤냐고 묻는 눈이군.’
두 번째는 의심의 눈초리.
무공을 익힌 사람으로서 자연스레 연상하는 것이 바로 마공의 속성법을 통해 빠른 성취를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이는 아무리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춰도 맞지 않는 조각의 편린을 가장 그럴듯한 모양으로 끼워 맞출 수 있는 가정임에는 아무도 부정치 못하였다.
그저 애써 그럴 리 없겠지, 하고 쉬쉬할 뿐일 터. 그러나 미처 그들이 생각지 못한 세 번째가 있었으니 아무리 진실을 캐내려 용써 봐야 무엇하랴?
그들의 눈에는 평범한 실력에 단순한 술주정뱅이로 보이는 주운의 볼품없는 꼬락서니가 그처럼 잘났을 거란 생각 자체를 일축했던 것이다.
‘하! 고것 참, 동 시대에 강태공이 스물여섯이나 출현한 격이군 그래.’
덧없이 허송세월만 낚을 뿐이었다.
며칠 전, 두 번째 실전을 모의한 전투가 끝이 났고, 청건조는 여지없이 실력 발휘하는 십팔조의 독보적인 사냥술과 은신법에 물을 먹었다. 그를 가르친 주운의 존재는 까마득히 잊혀져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그저 그런 의미가 담긴 시선만을 보내올 따름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주운 역시 구태여 귀찮음을 자처할 생각은 없기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나저나 이거 골치 아프군.’
그렇지 않아도 주운의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으로 이미 가득 차 있어 피곤하다 못해 졸도할 지경이었던 것이다.
천사련과의 지긋지긋한 접전이 끊긴 지도 이십여 일째. 뇌리에서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점차로 수색과 보초에도 소홀한 호남지부 무사들의 심신은 방만해져 갔다.
‘그때는 천사련 내부에 일이 생겼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말았었는데.’
그런데 웬걸?
마른하늘에 청천벽력이라더니.
천사련 쪽 움직임이 심상찮다는 급보가 전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