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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존 1권(3화)
1장 무영서생 반사영(班査英)(3)
반적풍의 호통에 곽씨는 반사영의 눈치를 살핀다.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말투를 바꾼다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다.
이쯤 되면 반사영도 말을 편히 하라고 할 법도 하지만,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호칭 정리에 대한 무언의 반항이다.
곽씨와 반적풍은 당황스러운 표정이다.
반사영은 노려보는 아버지의 시선을 피하며 다른 곳을 본다. 반사영에게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저 선비님이라는 호칭이 좋을 뿐이다. 자신의 꿈이 관료가 되는 것이었다는 유일한 흔적이 바로 선비님이라는 호칭이었다.
그런 관계로 호칭 정리를 거부한 것이다.
“험, 험.”
민망해진 건 곽씨도 마찬가지다.
“이따 저녁에 술이나 한잔하지.”
“예, 형님.”
곽씨가 지나쳐 가자, 반적풍은 반사영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어린놈이 싹수없이. 그렇게 대접받으며 살고 싶으냐. 저 불쌍한 사람들이 선비님, 선비님 해 주니까 진짜로 네가 뭐 대단한 놈인 줄 아는 모양이지?”
“하긴…… 아무리 머리가 좋으면 뭐합니까. 무림인의 자식이라 과거도 못 보는 신분인데.”
반사영은 지지 않고 비아냥거렸다.
“관직에 오르면 뭐 달라지는 줄 아느냐. 네깟 놈이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저 지방 한적한 곳에서 평생을 썩을 수밖에 없다. 유능한 학자? 명성을 떨쳐? 그것도 다 돈 있고, 뒷배경이 좋아야만이 가능한 일이다.”
“예, 예. 그렇겠죠. 어디 감히 무림인의 자식 따위가 그런 허황된 꿈을 꾸겠습니까. 그것도 삼류 무인의 자식인 것을.”
반적풍은 더 이상 반사영을 몰아붙이지 못했다. 그에게도 양심이라는 게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제가 누군가의 뒤를 따라 무림인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테니. 아, 오해하실까 봐 미리 말씀드리지만, 무연심공인지 뭔지 하는 건 단순히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효과가 있다는 우리 어머니의 제안으로 시작한 겁니다.”
딱딱하기 그지없는 말투로 반사영은 쉬지 않고 말을 토해 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반적풍은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십 년 만에 본 아들은 고집불통에 융통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게다가 어머니가 사경을 헤매다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에도 나타나지 않았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가득 차 있었다. 반사영의 눈빛은 어제와는 사뭇 달랐다.
독기로 가득 차 있었다.
반적풍은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누구를 탓하랴. 모두가 자신으로 인해 벌어진 것을.
반적풍은 마당을 둘러보더니 작은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반사영에게로 던진다. 두 사람의 거리는 보폭으로 열 걸음 정도 떨어져 있었다.
휘익!
반사영은 뭐라고 말할 틈도 없었다. 날아온 돌멩이를 피해야만 했으니까.
“잘 피하네.”
뭐 같은 경우가 벌어졌다. 느닷없이 아들에게 돌멩이를 집어 던지더니 고작 하는 소리가 잘 피하네, 라니.
기가 차서 입만 벌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벌어진 그 입에 넣어 주랴?”
반적풍이 이죽거리며 또 돌멩이를 집어 올렸다.
“이번에는 만만치 않다.”
휘익!
확연하게 빨라진 속도였지만, 피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제법.”
반적풍은 짧게 감상평을 말하더니 다시금 돌멩이를 집어 든다.
“지, 지금 이게 뭐하는 겁니까!”
“보면 모르냐. 이게 그 돌팔매질이라는 거다.”
“……!”
이번에 날아온 돌멩이의 속도는 처음과 두 번째와는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반사영은 본능 적으로 피해 냈다. 바닥을 나뒹구느라 옷이 더러워지긴 했지만.
사실 반사영이 피한 돌멩이는 일반인들로서는 피하는 것을 엄두도 못 낼 정도의 속도였다. 반적풍이 내공을 이용해서 던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치기라도 했다면 피부가 완전 너덜거릴 정도로 파괴력이 있었다.
“어떠냐. 빠르디?”
반사영은 엄청난 인내심으로 이성의 끈을 꽉 쥐고 있었다. 조금만 그 끈을 놓친다면 아버지고 뭐고 멱살을 잡고 흔들었을 것이다.
“입을 다무시겠다? 그럼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반적풍이 또다시 돌멩이를 집어 들자, 반사영이 황급히 말문을 열었다.
“빠릅디다.”
“말투가 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봐준다.”
“…….”
“감사하다는 말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미치고 팔짝 뛴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것이라는 걸 반사영은 깨달았다.
“네가 무연심공을 운기해 오지 않았다면 방금 돌멩이들을 피하는 건 꿈에서조차 상상 못할 일이다.”
“그래서요.”
“무연심공을 운기해 오면서 네 몸에는 자연스럽게 내공이라는 것이 모였다는 말이다. 이미 너는 범인들과는 어울리기 힘든 육체를 갖고 있다는 소리지.”
반사영은 눈살을 찌푸린다.
“그래서요. 저보고 삼류 무림인이나 되라는 말입니까?”
“이 아비는 천검맹 소속이다. 그것만으로 삼류 무인은 아니지.”
“하! 아버지가 삼류고, 일류고 간에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그쪽 세상으로는 발을 담글 생각이 없으니까요.”
“그럼 평생을 여기서 지낼 생각이냐.”
“뭐, 상관은 없습니다.”
“먹고사는 데 드는 돈은 어쩔 거냐. 이제부터 내가 보내 주던 자금이 끊어질 것인데.”
“천검맹에서 짤렸습…….”
반적풍이 다시금 돌멩이를 만지작거리자, 반사영은 자동적으로 입을 다문다.
“내가 언제 무림인이 되라 했더냐. 지금처럼 매달 들어오던 돈은 이제부터 지원이 되지 않을 예정이다. 하면 네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이 아니냐. 천검맹으로 들어가라. 그곳에는 무림인만이 있는 게 아니니. 여러 가지 기관이 있고, 그중에는 조직의 운영자금을 관리하는 부서도 있다. 추천서를 써 줄 터이니 거기서 앞으로 네 인생을 계획하면 되지 않느냐.”
“…….”
“그리해라. 아비로서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구나.”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이제 와서 제게 아버지 노릇을 하실 거라면 이미 때를 놓치셨습니다.”
반사영의 차가운 목소리가 반적풍의 마음을 찢어 놓았다. 돌아서는 아들에게 반적풍은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
그날 밤 반적풍은 곽씨의 집을 찾았다.
“역시나, 과거에 몸담았던 사람에게도 말을 하지 않는 걸 보니 대단한 곳이긴 해. 새삼 깨달았네.”
곽씨는 미리 반적풍이 올 것을 대비해 술을 준비해 뒀다. 게다가 낮에 봤던 순박한 농사꾼의 모습과는 달라져 있었다.
“저희 일이라는 게 그렇죠. 죄송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하!”
“왜 웃으십니까.”
“앞뒤 꽉 막힌 건 자네나 자네 아들이나 똑같은 거 같아서 말이야.”
“그 녀석이 들었다면 광분했을 겁니다. 저를 원망하거든요.”
“제 어미 때문이겠군.”
“예. 아내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오지 못했으니까요.”
곽씨가 반적풍의 잔에 술을 따랐다.
“정말 모르고 있었어. 그 아이가 자네 아들일 줄은.”
“…….”
“내가 여기서 지내는 걸 알고서 아들을 보냈나?”
“여기라면 안전할 것 같더군요.”
“혹시…… 자네 부인이 그렇게 된 게…….”
“아직 밝혀내지는 못했습니다. 게다가 저 또한 언제 목숨이 끊길지 모르는 몸이 되었으니.”
“……!”
곽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반적풍이 어떤 인물인지 알기 때문에 놀라움은 더욱 증폭되었다.
반적풍은 옅은 미소를 흘리며 팔의 소매를 걷는다.
“어떤 독인지조차도 판단이 서지 않더군요.”
그의 왼쪽 팔은 문둥병에 걸린 사람처럼 썩어 가고 있었다.
“인간의 팔이 이렇게 썩어 가고 있음에도 어떤 냄새도, 고통도 느끼지 못합니다. 팔뿐만이 아니라 온몸이 썩어 가고 있습니다.”
“지독하군. 이곳에서 마지막을 보낼 작정인가.”
“예. 이미 모든 걸 정리하고 내려온 것입니다. 아들놈 얼굴이나 보려고요. 그리고 저 녀석을 천검맹으로 보낼 겁니다.”
“자네와 부인을 그렇게 만든 게 동일범의 소행이라면 불안할 테지. 하지만 천검맹이라고 꼭 안전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 않은가.”
“제 자리를 이어받게 할 생각입니다.”
“허허. 그게 가능할 것 같은가?”
곽씨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골에서 책이나 파던 서생이 반적풍의 뒤를 잇는다?
천지가 뒤집혀도 불가능한 일이다.
“선배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해 보게.”
“지금은 그 아이가 고집을 부리지만, 반드시 천검맹으로 가야만 합니다. 부디 그 아이가 무사히 그곳에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곽씨는 입안에 술을 털어 넣었다.
“자네도 알지 않은가. 단전이 파괴되어 내게는 힘이 없음을.”
“부탁드립니다. 저 녀석 혼자 보내기에는 제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곽씨는 섣불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반적풍을 저리 만든 놈들이 덤빈다면 그에게는 막아 낼 힘이 없었다.
그렇다고 다 죽어 가는 후배의 청을 거절할 정도로 매정한 사람도 되지 못한다.
“그 술을 비우면 내 생각해 보지.”
곽씨의 허락이 떨어지자, 반적풍은 마음이 놓였는지 단숨에 잔을 비운다.
“감사합니다.”
***
반적풍은 잠든 반사영을 내려다봤다.
숨소리가 얕고 평온하다. 반적풍은 한때 이 아이만큼은 그런 삶을 살아가길 바란 적이 있었다. 평화롭고, 순풍을 탄 배처럼 앞길에는 어떤 아픔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것만으로 그런 삶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면 약해져서는 안 되는 일이다. 누구보다 강해져야만 한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무공이 강하다고 해서 살아남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두 가지를 모두 지니게 된다면, 그 가능성은 커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 줄 수 있는 가능성.
적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가능성.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훨씬 좋은 일이다.
“안 자는 거 다 안다.”
반적풍은 발로 아들을 툭툭 치며 말했다. 실제로 반사영은 뒤척이다가 반적풍이 들어오자 잠든 척하고 있었다.
“무림인이 되면 그런 것도 알게 됩니까.”
“왜 무림인이 되고 싶어졌냐.”
“그럴 리가요.”
“무연심공을 익힌 이상 너도 이런 것쯤은 알아차릴 수 있다.”
“대단한 내공심법이네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얼굴을 하고서 반사영은 다시 눈을 감았다.
“나와라.”
“왜요. 또 돌멩이를 집어 던지시려고 그럽니까.”
그 순간 방 안에는 반사영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살기가 가득 찼다.
“나오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널 죽일 수도 있다.”
반사영은 반적풍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뭐랄까…… 지금은 아버지가 아닌 다른 존재처럼 다가왔다.
말로서는 표현할 수 없었지만, 당장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면 정말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반사영은 반적풍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서 반사영을 기다리던 그는 미리 준비해 두고 있던 책 두 권을 바닥에 내던졌다.
“무연심공을 바탕으로 한 무공을 정리한 책이다.”
“…….”
반사영은 바닥에 나뒹군 책에 시선을 두지 않았다. 오로지 반적풍을 노려볼 뿐이다.
“그래서 어쩌라는 말입니까.”
반사영은 이런 일방적인 태도를 혐오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자신에게 강요하는 건 아버지라 할지라도 화가 나는 일이다.
“앞으로 천검맹으로 가서 일을 하려면 어느 정도 네 몸 하나는 지킬 힘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전 천검맹으로 간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네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