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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존 1권(9화)
3장. 혼자만의 수련(2)


“커헉!”
그저 가볍게 쳤을 뿐이다. 갖다 대기만 할 셈이었다. 한데 산적의 눈이 뒤집히더니 바닥을 나뒹굴었다.
때려 놓고도 반사영은 놀랐다. 그저 약간의 힘만 줬을 뿐이다. 분명 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는데, 의외의 결과가 나오자 당혹스러웠다.
산적 무리의 움직임이 다시 한 번 멈췄다. 막내라고 하지만 어디 가서 싸움으로 꿇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막내가 당했다면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일시에 동작을 멈추고, 각자 병기를 고쳐 쥐었다.
“아…… 하하!”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자 반사영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배운 대로 하자…… 배운 대로만 하자.”
“저 새끼가 지금 뭐라고 씨부리는 거냐.”
반사영은 심호흡을 하며 검을 뽑아 들었다. 어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검이다. 아버지의 유일한 유품이기도 했다.
막내를 제외한 여섯 명의 산적들이 일제히 반사영을 빙 둘러쌌다.
한 명, 한 명씩 덤벼들 거라고 생각하던 반사영의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
이들이 동시에 공격해 들어오면, 자신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았다.
검을 들고 있는 손이 덜덜 떨렸지만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텼다. 상대에게 자신이 겁을 먹고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지는 않았다.
서서히 산적들이 포위망을 좁혀 들어왔다. 이대로라면 자신의 몸은 난도질당할 것이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따로 누군가에게 배운 적은 없지만 이런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먼저 공격하는 것.
“으아악!”
반사영이 요란하게 기합을 내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내공을 끌어 올린 탓인지 움직임이 배는 빨라져 있었다. 게다가 보법도 잊지 않고 밟았다.
촤악!
산적들이 막거나 피할 수 있는 검 놀림이 아니었다. 반사영의 검에 두 사람이 피를 봐야만 했다. 반사영은 재빨리 절벽 쪽에 등을 가져다 댔다. 아무래도 등 뒤에 누군가 없는 것이 싸우는 데 편할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별로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려 있었다.
극도의 긴장감으로 인해 머릿속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되어 버렸다.
동료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나머지 산적들의 살기가 진동했다. 당장이라도 반사영을 죽일 듯 노려보기 시작했다.
오히려 반사영에게는 싸움을 유리하게 이끌어 갈 만한 상황 전개였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이성을 잃은 산적들의 공격은 서툴고 난잡해졌다.
나름 반적풍에게 기초를 배운 반사영의 눈에 그들은 어설프게만 보였다.
쌔액!
어깨를 찌르고 들어오는 검 끝을 허리를 숙여 피하고, 반격에 나섰다.
빠악!
가까운 거리이기에 팔꿈치로 산적의 턱을 후려쳤다.
푸욱!
그사이에 날아온 단검이 반사영의 허벅지에 꽂혔다.
“끄윽.”
단검이 박힌 부위가 화끈거렸지만 아픔을 느낄 새가 없이 바닥을 나뒹굴어 다음 공격을 피했다. 상대가 흔들리자 산적들은 신들린 듯 자신들의 병기를 휘둘러 반사영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하게 상처를 입자 반사영은 냉정을 되찾기가 어려워졌다.
퍼억, 퍽, 퍽!
정강이를 걷어차여 반사영이 중심을 잃고 쓰러지자, 득달같이 산적들이 일제히 그를 밟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얻어맞고 있으니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태어나 누군가에게 이토록 무자비하게 맞아 본 적이 없었다. 허벅지에 박힌 단검으로 인한 통증과 더불어 구타를 당하니 냉철한 이성은 사라졌다.
번뜩.
대신 본능이 깨어났다. 복부를 가격하던 산적의 발목을 잡고는 손에 내공을 흘려보냈다.
빠각!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산적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반사영의 눈빛은 지독하리만치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동물적인 감각이 깨어났다.
검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저들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다. 머릿속은 온통 그런 생각으로 가득 차 버렸다.
훅! 쉭!
푸우욱!
반사영이 정신을 차렸을 때, 산적들 중 살아남은 이는 단 한 명뿐이었다.
반사영의 검 끝이 마지막 남은 산적의 턱 언저리에서 멈췄다.
“너희…… 본채가 어디 있냐?”
부들부들.
검 끝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지만, 산적의 머리가 두려움으로 떨리고 있었다.
“여, 여기서 좀 멀리 있습니다.”
“너희와 싸운 놈들은.”
“배, 배신자들입니다. 본채의 재산을 가지고 도망가는 걸 우리가 잡은 겁니다. 저놈들이 가지고 간 건 저희가 가져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는 묻지도 않은 사실을 떠들어 댔다. 지금 눈앞에 있는 자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만족시켜 주지 않으면 자신의 목숨은 그대로 끝이 나 버릴 테니까.
“다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목숨만…….”
“가.”
“네?”
“여기 있는 것 다 챙겨서 가라고.”
산적은 머리를 굴렸다. 대개 이런 경우에 모조리 죽여서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빼앗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그냥 가라는 말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를 몰랐다. 도망가는 등 뒤에서 칼을 꽂을 수도 있었다.
“정, 정말 가도 됩니까?”
반사영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가 입고 있는 옷은 좀 벗고 가라.”
산적이 황급히 몸에 걸치고 있던 늑대 가죽을 벗고는 부리나케 도망쳤다.
반사영은 주위를 둘러봤다. 사람을 여섯이나 죽였다.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와 검을 들고 싸운다는 것에 두려움을 지니고 있었다고 하기에는 믿기 힘든 현실이었다.
“우웩!”
정신을 차리니 역겨운 피 냄새에 속이 뒤집혔다. 나무 밑에서 한차례 속을 비우고 난 반사영은 방금 살려 준 산적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산적들의 주둔지는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나무로 만든 산채였지만 의외로 웅장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살려 준 산적이 그곳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한 반사영은 나무 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산적을 살려 준 건 산채의 위치를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들은 자신의 수하들을 죽인 흉수를 찾기 위해 대대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반사영은 아버지의 무공인 은형무를 수련하고자 했고, 때문에 대상이 필요했다. 저들이 산채를 나서면 그 뒤를 은밀히 따를 작정이었다.
전반적인 목적이라면 간단하다. 세상으로 나아가기 전 실전 경험과 은신술, 경신술을 몸에 익히는 것이다. 산적들을 만났다는 건 정말이지 행운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 사람을 죽였다는 것에 반사영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자꾸만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걸 받아들이기에 아직 반사영은 경험이 부족했다.
산적들이 머무는 산채에서 반응을 보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늦은 감이 있을 정도였다.
그걸 보면서 반사영은 저들의 조직이 체계가 잡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정문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오지도 않았고, 정렬된 무리가 나와 양방향으로 흩어졌다.
반사영은 일단 그 두 무리 중 하나를 선택해 뒤를 따랐다. 물론 은형무를 펼치면서 말이다.

딱!
뒤통수에 돌멩이를 얻어맞은 산적은 뒤를 돌아봤다. 뒤따라오는 동료들에게 장난치지 말라고 쌍욕을 퍼부었다. 하지만 그의 동료들은 오히려 자신들도 피해자인 듯 주변을 둘러봤다.
“어떤 놈이 장난질이냐!”
개중 하나가 소리쳤지만 주변은 조용하기만 했다. 돌멩이의 세기는 점점 더 강해졌다. 돌멩이는 다리나 팔을 정확하게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럴 때마다 장님처럼 산적들은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돌멩이가 날아오는 방향도 일정치가 않았다. 한 사람이 아닌 집단이 여기저기 흩어져 던지는 것 같았다.
“우리 애들을 공격한 놈이 아닐까.”
“하지만 분명 그놈은 혼자라고 했는데.”
여러 추측만 있을 뿐, 산적들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발만 떼었다 하면 돌멩이가 날아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에게 돌멩이를 던지는 인물은 반사영이었다.
‘재미는 있는데…… 영 눈치를 채지 못하네.’
아버지가 자신에게 돌멩이를 던지던 걸 재미 삼아 해 봤다. 물론 은형무를 몸에 익히기 위함이었다. 제법 은형무를 제대로 펼칠 수 있게 됐다.
또 저들이 근처에 있는 자신의 기척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은형무라는 은신술의 힘을 새삼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저들이 삼류 산적들이라고 해도 이 정도 가까이 있는데도 전혀 자신의 존재를 눈치 못 챌 정도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래 가지고는 은형무의 최대치를 시험해 볼 수가 없게 된다.
“어이 거기!”
돌멩이가 더 이상 날아오지 않자 산적들이 움직이려고 했다. 그 순간 반사영이 바람처럼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를 찾고 있는 모양인데.”
반사영이 돌멩이 두어 개를 손에 들고 있자, 산적들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우리한테 장난질한 게 네놈이구나.”
“싹수없는 놈의 새끼 같으니라고.”
으드득.
열 명 정도 되는 산적들이 각자의 손가락 관절을 푸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반사영은 여유 있게 미소를 머금었다. 그저 허세가 아니라 진심으로 마음이 안정됨을 느꼈다. 조금 전에 두려움에 떨었다고 생각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스스로도 믿기 힘들 정도로 침착하게 상대를 살폈다.
아까보다 숫자는 더 많았지만, 전혀 긴장이 되지 않았다.
휘익!
퍽!
돌멩이 하나를 던져 선두로 다가오던 산적의 허벅지를 맞혔다. 이번에는 내공을 실어 던진 것이다. 맞은 산적의 다리가 꺾였다.
반사영은 빠르게 다리가 꺾인 산적의 어깨를 박차고 공중으로 치고 올라갔다.
동시에 양손에 있는 돌멩이 두 개를 던져 뒤따라오는 산적들에게 날렸다. 하나는 눈에, 하나는 이마에 박혔다. 반사영이 땅에 착지한 순간, 이미 세 명이 바닥을 뒹굴었다.
“내가 이번에 좀 뭔가를 깨달았거든? 그러니까 우리 재밌게 놀자, 응?”
씨익!
반사영은 하얀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었다.
산적 열 명을 기절시키는 데 걸린 시간은 일각도 채 되지 않았다. 물론 목숨을 빼앗지는 않았다. 죽이는 것보다 그게 더 힘들고, 수련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역시 머리가 좋으면 뭘 배우든 금방이야.”
싸운다는 것, 어렵고 낯설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그 감각을 알아 가고 있었다.
스스로가 뿌듯해하며 반사영은 빠르게 몸을 날렸다. 이제 몸을 가볍게 해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것도 무리 없이 해내고 있었다. 그간 책으로만 읽어 오던 무림인이 되었다는 것에 반사영은 꽤나 뒤늦게 반응하고 있는 중이었다.
청각을 극도로 끌어 올려 산채에서 빠져나온 다른 무리를 찾는 데 주력했다.
그들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자신감이 붙은 반사영은 지체 없이 그들의 틈바구니 속으로 끼어들어 갔다.
그리고 신나게 검을 휘둘렀다. 단전에 무지막지할 정도의 내공이 있으니 몸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 열 명도 넘는 인원을 제압했는데, 방금 전보다 더 시간이 소비되지 않았다.
“쿨럭! 대, 대체 뭐냐, 너.”
“나? 그냥 지나가는 나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