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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존 1권(10화)
3장. 혼자만의 수련(3)
반사영은 산을 들쑤시고 다니며 당분간 머물 공간을 찾아 헤맸다. 산 중턱쯤 올라가자 동굴 하나가 보였다.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천연 동굴이다. 대충 안을 살피니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깥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가져와 불을 붙이고, 산적들에게서 빼앗은 가죽옷을 바닥에 깔았다.
오래는 아니더라도 당분간은 머물기에 나쁘지 않았다.
반사영은 그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무연심공을 운기했다.
그러면서 몸의 내부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머리가 맑아지기 시작하며 점점 무연심공에 정신을 집중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반사영이 눈을 떴을 땐 달이 떠 있었다. 밖으로 나온 반사영은 검을 고쳐 들고 자세를 잡았다.
지금부터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무영살검류를 펼칠 생각이었다.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펼칠 수 있을 만큼 숙련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오늘 산적들과의 싸움에서 느낀 점이 많았던 것이다.
비록 결과적으로는 압도적으로 그들을 제압했지만, 이성을 잃고 흥분해 사람을 죽였다. 굳이 죽이지 않아도 될 만큼 실력의 격차가 컸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범인과 광인의 차이는 자기 마음을 얼마만큼 조절할 수 있느냐에 달라진다는 말을 책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일반인들보다 월등한 힘을 지닌 무림인에게는 특히나 마음의 조절은 제일 필요한 덕목일 것이다. 그래서 무림인들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수련을 통해 그런 덕목을 갖춰 나간다.
반사영도 이참에 그런 수련을 독자적으로 해 나갈 작정이었다.
“후읍!”
내공을 끌어 올리고 내리는 조절은 아직도 어려웠다. 갑자기 내공을 끌어 올리니 그 충격으로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서서히 내공을 온몸으로 돌렸다. 그건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다.
반사영은 전혀 수련이 되지 않은 상황에 비해 방대한 내공을 지녔으니, 익숙해지는 데에는 꽤나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반사영은 머릿속에만 있는 무영살검류를 하나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전광무영(電光無影)!
반사영의 몸이 정확히 세 개로 분리되더니, 순식간에 이 장여나 되는 거리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전광무영은 무영살검류의 가장 기본이 되는 초식이다. 몸이 앞으로 튀어 나가면서 반사영의 검은 수십 번이나 휘둘러졌다. 주변에 상대방이 있었다면 눈 깜짝할 사이에 온몸이 난도질됐을 것이다.
무영살검류의 특징은 폭발적인 힘에 있다. 몸에 힘을 쭉 빼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느 순간 집약적인 힘의 탄력을 받아 한순간 터져 버린다. 청아함을 내포하고 있는 무연심공을 바탕으로 한 무공이라고 하기에는 사뭇 다른 성질을 갖고 있었다.
내공심법과 무공의 성질이 이토록 다른데, 한 몸에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 반사영으로서는 의아하기만 했다. 전광무영을 한 번 펼쳤을 뿐인데, 체력적인 소모가 심했다. 내공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자신도 모르게 불필요한 곳에 힘을 쏟아 내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몸이 녹초가 될 때까지 전광무영을 펼쳤다. 될 때까지. 꿈속에서도 펼칠 수 있을 때까지가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반사영의 성정은 꽤나 집착이 심하고, 집요했다. 자신이 한 번 결심한 일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루어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런 자신의 성격을 알기에 스스로 혼자 수련을 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자신이 만족할 수준에까지 이른다면 어딜 가서도 쉽게 객사할 일은 없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땀에 젖은 몸으로 바닥에 누워 달을 올려다봤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학문에 매진해 조정에 입문하여 자신의 뜻을 펼치려던 꿈을 꾸었건만, 지금은 무림인으로 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 우스웠다. 사람의 인생이 이토록 짧은 시간 안에 바뀔 수가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날이 밝자 반사영은 그나마 제대로 된 먹을거리를 찾아 나섰다. 그 와중에 산적 무리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선에서 충분히 제압할 능력이 되었고, 많은 인원일 경우 도망치면 되는 일이다. 그러니 별다른 생각 없이 주변을 돌아다녔다.
고기를 먹고 싶었지만, 산짐승을 잡을 경우 털을 벗기고 내장을 발라내는 일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기에 일찌감치 포기를 해 버렸다.
대신 나무에서 열리는 과일을 찾아다녔다.
한참을 발품을 판 결과, 꽤 질 좋은 과일들을 얻어 가벼운 마음으로 임시 거처로 돌아왔다.
간단하게 배를 채우고는 운기조식을 마치고, 다시금 밖으로 나왔다.
편하지 않은 잠자리의 고통은 운기조식으로 말끔히 해결됐다.
덕분에 가뿐한 마음으로 검을 들었다. 한데 저 멀리서 방해꾼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다섯?”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번 때려눕힌 산적들의 수준과는 꽤 차이가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보였다.
커다란 덩치의 소유자들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깡마른 체구의 사내들이었다. 말랐지만 제법 튼실한 근육을 소유하고 있었다.
“너냐, 우리 아이들을 공격한 게.”
“다 알고 왔으면서 물어보기는.”
험상궂은 얼굴을 한 채 물었지만, 반사영은 여유 있게 대답했다. 자신이 때려눕힌 산적들보다는 조금 실력이 있는 자들 같았지만, 그래 봤자 산적 나부랭이에 불과할 테니까 말이다.
“내가 산호채(山虎寨) 채주 녹림대호(綠林大豪) 과적(戈赤)이다.”
“그런데?”
무림에 대해서 알긴 알아도 반사영의 머릿속에 있는 인물들은 다 유명 인사들뿐이다. 그런 그가 녹림총련에서도 가장 약채인 산호채를 알 리가 없었다.
자신을 녹림대호 과적이라고 소개한 사내의 얼굴이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분명 자신들이 산호채라는 걸 알고서 일부러 시비를 걸어왔을 것이라 생각해 왔던 그다. 하지만 정작 상대는 순진무구한 얼굴을 하고서 산호채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거짓말을 할 생각은 마라. 누가 보내서 온 것이냐.”
“거짓말 같은 소리 하네. 난 누가 보내서 온 게 아니다.”
“그럼 대체 왜 산호채를 공격한 것이냐!”
“그건…….”
반사영은 차마 자신의 무공 수련을 위한 연습 상대가 필요했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건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나 뻔뻔한 일이었다.
“누가 보냈건 간에 산호채를 건드렸으니 쉽게 넘어갈 생각은 마라.”
녹림총련에서도 왕따를 당하는 산호채주 과적은 이제 별 시답지 않은 놈마저 자신들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가뜩이나 수입도 없던 판국에 멀쩡한 수하 스무 명 남짓이 반병신이 되거나 죽어 나갔다.
화병이 나서 참을 수가 없는 일이다.
“쩝. 이건 뭐 내 입장은 전혀 고려해 주지 않는군.”
괜히 투덜거려 보지만 딱히 반박할 말은 없었다. 일단 먼저 저들을 이용하고, 피해를 준 건 자신이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저들이 세상에 해를 끼치는 산적들이라는 점에서 양심의 가책 같은 건 없었다.
휘익! 휙!
과적과 함께 온 네 명의 사내들이 신형을 날렸다. 움직임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표범처럼 몸놀림이 날렵했다. 그들은 몇 차례 반사영의 주변을 빠르게 돌면서 신경을 분산시켰다.
반사영의 시선은 정면에 있는 과적에게 멈춰 있었지만, 모든 감각은 주변을 도는 사내들에게 집중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공격법에 반사영은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반사영의 앞으로 과적이 천천히 다가왔다. 과적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이대로 도망을 치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포위를 당한 셈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뀌어 버렸다.
쌔애액!
푸욱, 푹!
반사영은 단 한 번도 연습한 적이 없었지만 품속에 갖고 있던 비도를 떠올리고는 던진 것이다. 빠르고 정확하게 두 개의 단도가 주변을 얼쩡거리던 사내 두 명의 허벅지에 꽂혔다.
그 순간 반사영은 득의에 찬 미소를 지었고, 과적은 울상이 됐다.
반사영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전광무영!
여지없이 쾌속으로 반사영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흐억!”
과적의 입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가 지금까지 경험해 볼 수 없는 속도에 놀라 심장이 멎을 지경이었다.
퍽!
자신의 목숨은 이제 끝이라는 생각에 두 눈을 질끈 감았지만, 복부에서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살았다는 안도감이 먼저 스쳐 지나갔다.
반사영은 과적을 무너트림과 동시에 등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다시금 검을 고쳐 잡았다. 두 명이 동시에 덤비는 합공이었다.
뒷걸음질을 치며 치고 들어오는 검날을 튕겨 냈다.
그사이 과적이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두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저 비쩍 마른 놈이 제법 강하다는 건 인정하지만, 세 명이 합공을 한다면 당해 낼 수 없을 것이다.
무릎을 꿇려 바닥을 기게 하고, 스스로가 어떤 사람을 건드렸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줄 작정이다. 부지런히 합공을 막아 내던 반사영의 머리 위로 과적이 떨어져 내렸다.
“죽어라!”
과적은 반사영의 어깨를 아예 절단시킬 작정으로 검을 내리찍었다.
일류 무인이라고 해도 쉽게 피할 수 없는 공격이다. 그렇다고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랬다가는 앞에 있는 두 명의 검이 사정없이 찌르고 들어올 테니까.
하지만 반사영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동시에 주르륵 미끄러지듯 그의 몸이 뒤로 밀려 나갔다. 혼자만 얼음 위에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폭뢰비(爆雷匕)!
반사영의 검 끝에서 검붉은 검기가 뿌려졌다. 정확히 세 갈래로 찢겨져 나온 검기는 공중에서 떨어져 내리는 과적과 정면에 있던 두 명에게로 꽂혔다.
“하아. 하아.”
늘 앞으로만 나아갈 때 쓰던 월야무영을 뒤로 빠지면서 사용했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쓸 수 있는 최적의 초식인 폭뢰비를 펼쳤다. 결과는 예상보다 더 훌륭했다. 검기를 뿜으면서 원하던 부위에 죽지 않을 만큼의 힘을 실었다.
과적은 검기가 옆구리에 스쳤고, 나머지 두 명도 당장 움직일 수는 없지만 불구가 될 정도의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다.
반사영의 의도대로 된 것이다.
빠른 연결 동작을 하면서도 검기의 세기를 조절하고, 방향까지 완벽하게 자신의 원하는 대로 만들어졌다.
내공의 소모가 크다는 점을 빼고는 반사영은 나름 만족스러워했다.
단 한 번의 초식으로 셋을 전투 불능으로 만들다니. 생각했던 것보다 무영살검류의 위력은 위험하고 엄청났다.
“죽지 않을 정도니, 너네 집까지는 알아서 갈 수 있겠지?”
“꺼흑…… 대, 대체 뭐하는 놈이냐.”
죽이지도 않고, 신분을 밝히지도 않는 반사영의 정체가 과적으로서는 굉장히 궁금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와중에도 말이다.
“그러니까…… 난…… 에이, 됐어. 늦었다. 얼른 산채로 돌아가라.”
반사영은 대충 얼버무리며 자신의 처소로 들어갔다.
“더 이상 귀찮게 찾아오지 마라. 재미 볼 만큼 봤으니까.”
반사영의 뒷모습을 과적은 어처구니없는 눈길로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
수하들 앞에서 떵떵거리며 출발했던 과적이 피떡이 되어 돌아온 지 열흘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과적은 오로지 몸을 치료하는 데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버텨야 했다. 치욕도 이런 치욕이 없었다. 명색이 녹림총련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산호채의 채주의 위신이 바닥을 쳐 버렸다.
산호채에서도 가장 무공이 뛰어나다는 네 명의 수하들을 대동하고도 이름도 모르는 놈 하나를 어찌하지 못했다는 건 말 그대로 개망신이었다.
이제 앞으로 수하들 앞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빌어먹을 놈과 다시 대면하는 날, 장담컨대 산호채의 사활을 걸고서라도 이 치욕을 갚을 작정이었다.
“채주! 왔습니다!”
함께 며칠 전 그놈을 잡으러 나갔던 수하가 눈이 까뒤집혀진 상태로 들어섰다.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서 쉬고 있던 과적은 호들갑을 떠는 수하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이 새끼가! 형님 쉬고 있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왔다니까요!”
“아, 대체 누가 왔길래 지랄이야.”
“그놈 말입니다. 우리를 이 지경으로 만든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