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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존 1권(12화)
4장. 낙양(1)
무림인들은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은 꿈에 도시라고 표현하곤 했다. 워낙 대도시인지라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넘쳤다. 하지만 무림인들에게 그곳은 성지였다.
바로 천검맹 총타가 있기 때문이다.
천검맹은 백 년 전부터 무림 역사상 전무후무할 세력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특히나 삼 대째 맹주 자리를 거머쥐고 있는 위지(慰遲)세가의 막강한 힘과 권력은 천검맹의 명성을 드높이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천화객이라고 적혀 있는 객잔 앞에 젊은 남자가 우뚝 서 있었다.
남자는 거지꼴을 하고 있었다. 천화객은 천검맹에 속해 있는 천화상가(天華商家)에서 운영하는 객잔이었다. 가격도 비싸지 않고, 음식이나 숙박 시설이 잘되어 있어서 늘 사람들로 붐볐다.
그 안으로 남자는 들어섰다.
“어서 옵……!”
점소이 하나가 손님이 들어오는 인기척을 느끼고 인사를 하려다가 멈춰 섰다. 활짝 웃던 입가에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점소이는 이런 거지새끼가 어딜 감히! 라고 외치며 이단 옆차기를 날릴 뻔했다. 하지만 이곳은 엄연히 최고의 품질과 대접을 자랑하는 천화객이다. 자칫 다른 손님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줄 게 뻔했다.
특히나 오늘은 천검맹 무인들까지 단체로 와 있었기에 함부로 소란을 피울 수 없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거지 사내는 눈살을 찌푸렸다.
“객잔이 뭐하는 곳입니까.”
점소이의 이마에 핏줄이 툭 튀어나왔다. 바로 내쫓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판국에 질문까지 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었다.
“돈을 지불하면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해 주는 곳 아닙니까?”
“그, 그렇긴 합니다만.”
“객잔 점소이라면 ‘손님에게 어떻게 오셨습니까’가 아니라 식사를 할지, 숙박을 할지를 물어보는 것이 먼저겠죠.”
문제는 지금 사내가 손님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점소이는 조리 있게 말하는 사내의 말에 위축이 돼 버렸다.
“왜요. 몰골이 이래서 혹시 동냥이라도 하러 왔을 거라 생각하셨나 보죠?”
하마터면 점소이는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점소이는 주인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무림에는 기이한 인사들이 많으니 절대로 겉모습만으로 손님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점소이는 이 사내를 동냥이나 하는 거지가 아닌 기인이사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사내의 몸에서 악취가 풍기고 있었다.
“식사보다는 먼저 씻으시는 게…….”
“일단 먼저 식사를 하고 싶은데요.”
사내는 냉정하게 점소이의 의견을 무시했다. 어쩔 수 없이 점소이는 거지 사내를 가장 구석진 자리로 안내했다.
다른 손님들의 따가운 시선에 괜히 자신의 얼굴이 더 뜨거워졌다.
사내는 그런 것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음식을 주문했다.
거지 사내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며칠 만에 제대로 된 음식으로 배를 채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불과 한 달 전에 자신이었다면 먹는 것보다 씻는 걸 먼저 선택했을 것이다.
그는 산호채 산적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났던 반사영이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그는 거의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나름 정확한 것이라며 과적이 전해 준 지도를 너무 신뢰했기 때문이다.
“음식 나왔습니다!”
반사영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점소이가 날라 가지고 온 음식을 본 순간 이성을 잃어버렸다. 쉬지 않고 젓가락을 놀리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데, 귓가를 스치고 지나는 소리가 있다.
“거지새끼가 잘도 처먹는구나!”
그 말에 주변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반사영은 자신에게 하는 소리임을 알면서도 무시했다.
괜히 시끄럽게 굴고 싶지는 않았다. 반사영을 놀렸던 사내가 거기서 멈췄다면 말이다.
“어이, 거지 양반. 그쪽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도저히 식사를 못하겠거든?”
큰 덩치를 자랑하는 사내는 새하얀 무복을 입고 있었다.
무복 가운데에는 금색 수실로 하늘 천 자가 박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천검맹 소속 무인이라는 표시였다.
백색 무복은 일반 무사들의 통일된 복장이었다. 하지만 천검맹이라는 울타리 안으로만 들어가면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천검맹은 사대세가와 오대문파가 하나로 묶여 있는 연합체였다.
그 중심을 이루는 아홉 세력은 개개별로도 엄청난 힘을 지닌 곳이다.
한 곳, 한 곳에서 펼치는 영향력은 가볍지 않았다. 세간에서는 그들을 구중천(九重天)이라고도 불렀다.
분명 이 사내는 천검맹 총타 소속이었다. 총타 내부는 구중천의 수장들을 비롯해 수뇌부들이 모조리 모여 있는 곳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지금 반사영에게 시비를 거는 이의 무위가 강함은 증명되고도 남는 일이다.
반사영은 덩치 큰 사내의 뒤를 쳐다봤다. 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는 자들이 여섯 명이나 되었다.
반사영은 그들의 숫자를 확인하고, 승패를 가늠해 봤다. 싸울지, 말지를 말이다. 물론 겉으로는 여유롭게 국물을 들이마시고 있었다.
“내일 천검맹 입맹 시험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거한의 사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거지 자식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오호라, 본 맹에 시험을 보러 온 건가?”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한데 조금 실망스럽네요.”
“뭐야?”
“겉모습만을 보고 이렇게 돼먹지 못하게 시비를 거는 당신 같은 사람을 무사로 두는 천검맹이 한심할 따름입니다.”
“하…… 하하하!”
거한의 사내는 진심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오는 건 웃음뿐이다.
그 웃음이 분노로 바뀌기까지는 촌각도 걸리지 않았다. 반사영이 보내는 비웃음 가득한 표정을 봤기 때문이다.
부우웅!
거한의 사내가 곧장 주먹을 날렸다.
고된 수련으로 인해 쇠보다 단단해진 주먹이다. 내공을 사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말이다.
팍!
반사영은 왼손 하나로 그의 주먹을 잡았다. 그 상태로 남은 오른손으로는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었다.
“이익!”
거한의 사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또 한 번 실망했습니다. 천검맹 무인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말입니다.”
빠각.
반사영의 발등이 가볍게 거한의 사내 정강이를 걷어찼다.
“으아악!”
거한의 사내는 바닥을 나뒹굴었다. 동시에 그와 함께 자리해 있던 무인들이 검을 뽑아 들었다.
“저 미친 자식이 본 맹의 무인을 건드렸다!”
“어디 한군데 잘려야 정신을 차릴 놈이구나!”
반사영은 들고 있던 젓가락 두 개를 날렸다. 반사영에게 달려들던 두 명의 눈에 정확하게 박혔다.
반사영은 몸을 일으키더니 주변을 둘러봤다.
왁자지껄하던 실내는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스르륵.
반사영을 향해 달려들지 고민하던 네 사람은 갑자기 거지 놈의 몸이 사라지자 어쩔 줄 몰라 했다.
퍼퍼퍼퍽!
그들은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동시에 기절해 버렸다. 워낙 빠른 속도였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기절하는 것조차 몰랐을 것이다. 순식간에 여섯 명을 바닥에 눕혔다. 그것도 천검맹 무인들을 말이다.
“소란을 부려 죄송합니다.”
반사영은 주변에 남아 있는 손님들에게 사과를 했다. 반사영을 안내해 준 점소이는 그 광경을 보더니 얼굴이 사색이 되어 버렸다.
저 바닥에 누워 있는 자들 중 하나가 될 뻔했다는 생각이 들자 소름이 끼쳤다.
“이렇게 피해를 줄 생각은 없었는데, 죄송합니다.”
“죄, 죄송하긴요. 사실 저도 저놈들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점소이는 귓속말로 말했다.
“이건 음식값입니다. 다른 건 망가진 게 없으니 음식값만 내겠습니다.”
반사영은 서둘러 돈을 지불하고 밖으로 빠져나와 골목길로 사라져 갔다.
“제법이네.”
반사영이 천화객을 들어설 때부터 그를 지켜보던 이가 있었다. 반사영과 또래로 보이는 사내는 검은 무복을 입고 있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특히나 눈빛에서는 지독한 한기가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산속에서 산적들을 상대로 수련을 했다?”
“보고드린 내용대로입니다. 평생을 서책에 파묻혀 지내다가 반적풍이 그렇게 된 이후로 그곳에서 수련을 하다가 이곳으로 왔습니다.”
놀랍게도 그의 옆에서 보고를 하는 인물은 반적풍을 죽인 곽대우였다.
“어렸을 적부터 무연심공을 운기해 왔고 말이죠?”
“예.”
“후훗. 재미있군요. 무공 수련을 시작한 건 불과 한 달도 채 안 된 놈이 천검맹 무인 여섯을 때려눕혔다?”
“아직은 미흡한 수준이긴 합니다만, 실전과 스스로가 익힌 무공들의 이치를 깨닫는다면…….”
“깨닫는다면?”
“과거 반적풍을 넘어설 것입니다.”
“크크크큭.”
사내는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과거의 반적풍을 넘어선다? 괴물이군요. 저 녀석.”
곽대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 사내는 자신의 말을 우습게 여기고 있었다. 그것은 꽤나 위험한 일이라고 곽대우는 확신했다.
하지만 자존심 강한 사내의 성정을 알기에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았다.
“오늘 천검맹을 망신시킨 저 여섯 명의 일은 없던 걸로 하죠.”
“알겠습니다. 하면 반사영 저 아이는…….”
“몸 안에 더러운 피가 흐르는 종자지만 새로운 하늘을 만드는 데 그런 혈연쯤이야…… 상관없는 일이죠.”
“하면…….”
“언제부터 그대가 그렇게 말이 많아졌는지 모르겠습니다.”
“……!”
“저 녀석을 잘 지켜보세요. 언제 어디서 그들이 접촉해 올지 모르는 일이니.”
“명을 받듭니다.”
***
“어이, 이보게!”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반사영은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누군가가 따라오고 있다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의가 없는 것 같아 먼저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시죠?”
반사영에게 말을 건 이는 이십 대 후반으로 귀공자풍의 사내였다.
“나는 방금 천화객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사람일세.”
“알고 있습니다. 소면 한 그릇과 화주 한 병을 드시고 계시던 분이라는 건.”
“그, 그걸 어떻게!”
사내는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천화객 일 층은 워낙 넓어서 수용할 수 있는 인원수가 많았다. 게다가 사내는 반사영과는 정반대편 끝자락에서 상황을 지켜봤었다. 그런 자신을 기억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얼굴도 아닌 주문한 음식까지 기억하는 건 더더욱 말이다. 사내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어디 아프신가요?”
“아, 아닐세. 어험!”
“그런데 제게 무슨 일이시죠?”
“아…… 내일 있는 천검맹 시험을 본다고 하지 않았나?”
“그것 때문에 저를 쫓아오신 건가요?”
“그렇네. 나도 내일 입맹 시험을 치를 것이라서 말일세.”
“목적지가 천검맹인 것은 맞습니다만, 무인으로서 입맹을 하고자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럼 아까 그자들에게 한 말은 뭔가?”
“그냥 해 본 말이었습니다.”
“중요한 건 앞으로 자네의 안위일세.”
사내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천검맹 무인을 건드렸으니 당장 낙양을 떠나야만 하네.”
“제가 왜 그래야 하죠?”
“그걸 정말 몰라서 하는 소리인가?”
사내는 너무나 순진한 얼굴을 하고서 되묻는 반사영을 이상한 사람처럼 쳐다봤다.
“전 잘못이 없습니다.”
“잘못이 없는데 왜 도망치듯 사라졌나.”
“다른 일행이 몰려올까 봐 그랬습니다.”
“그건 잘한 일일세.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란 말일세. 천화객에서 자네와 천검맹 무인들과의 일을 본 사람들이 너무나 많지 않나. 무인에게 자존심이란 목숨과도 같은 것일세. 자네는 그런 그들을 건드린 것이야. 이대로 낙양에 머물고 있다가는 자네는 천검맹으로 끌려갈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군요.”
사내는 너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라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