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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존 1권(14화)
4장. 낙양(3)
“아마 오늘 하루 가지고는 안 될 거야. 적어도 사흘 정도는 지나야 모든 시험이 끝이 나겠지.”
“그렇겠군요. 매번 이렇게 사람들이 몰리나요?”
“천검맹 입맹 시험은 일 년에 딱 세 번 있지. 적은 기회니만큼 몰리는 인원수가 많을 수밖에. 이번에는 적은 편일 걸 아마.”
두 사람은 긴 행렬에 동참했다.
백리웅은 입맹 시험 과목에 대해서 자신이 알고 있는 한도 내로 설명을 해 줬다.
입맹 시험은 크게 세 가지를 본다. 경공, 보법, 비무. 그 세 가지 모두를 잘 봐야 입맹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세 가지 중 한 분야만 통과하면 합격이다.
물론 이렇게만 설명한다면 누구나 천검맹 시험을 우습게 볼 것이다. 문제는 세 분야의 시험을 본다는 것에 있었다. 바로 천검맹 소속이 되어 있는 무인을 상대해야 한다는 점이다. 경공으로 천검맹 무인보다 목적지에 먼저 도착해야 했다.
커다란 원 안에서 보법으로만 천검맹 무인의 공격을 십 초 이상 버텨 내야만 했다.
가장 최고 난이도인 비무 또한 마찬가지다. 서로가 가장 치열하게 다투고, 부상자도 많이 나오는 시험 과목이었다. 물론 비무 합격자는 전무할 정도였다.
고로 일 년 동안 천검맹 시험을 통과하는 자들의 평균적인 숫자는 서른 명 안팎이다.
설명을 모두 들은 반사영은 혀를 내둘렀다.
이 많은 이들 중 대다수가 떨어질 정도의 경쟁률일지는 몰랐던 것이다. 그저 힘들다고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물론 반사영이 어제 때려눕힌 놈들은 이 시험을 통과했거나, 구중천 내 자제나 제자들이었다.
오후 늦게나 되어서야 반사영과 백리웅은 총타 정문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왔다고 바로 시험을 보는 건 아니다. 그저 밖에서 기다리지 않을 뿐이다. 안으로 들어와서도 언제까지고 마냥 자신들의 차례가 될 때까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해가 질 때까지 시험을 보지 못하면 따로 마련된 건물에서 숙박을 하게끔 되어 있었다.
결국 대기자가 많은 관계로 두 사람은 배정된 건물에서 하룻밤을 머물러야만 했다. 시험을 치르는 곳은 총타 내에서도 외진 구석에 있었다.
총타 내를 구경하고 싶었지만, 머무는 건물 근처로만 구경이 가능한 상태였다. 반사영은 기분이 묘했다.
이 넓디넓고 대단한 곳에서 아버지가 자신의 모든 걸 걸면서까지 지키고 하고자 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자신이 반드시 알아내야 할 숙제였다.
시비의 안내를 받아 두 사람은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내려갔다.
“어째 좀 조용하지?”
“형님께서 겁을 주신 거에 비하면 이상할 정도죠.”
“그러게 말이야.”
백리웅의 예상대로라면, 반사영을 찾아내기 위해 시험장 주변을 어제 그 녀석들이 들쑤시고 다니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예상외로 조용했다. 뭐, 두 사람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말이다.
“여어! 이게 누구야.”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두 사람에게 누군가 아는 체를 하며 다가왔다. 붉은색 영웅건을 두른 삼십 대 초반의 사내였다. 그의 눈은 백리웅을 향해 있었다.
그가 누구인지 알아본 백리웅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백리연(百里燕)…….”
“소문인 줄만 알았는데, 정말로 입맹 시험을 보러 오다니. 놀라운데?”
백리연이라는 사내의 입꼬리가 사납게 말려 올라갔다. 명백한 비웃음이다. 오늘 처음 본 남자지만 반사영은 그의 눈빛이 굉장히 불쾌했다.
“오랜만이다.”
“오랜만이다? 이거야 원…… 이거 안 보이나 보지?”
백리연은 자신의 영웅건을 가리켰다.
“아무리 멍청한 네놈이라도 이게 뭘 뜻하는지 잘 알겠지.”
천검맹 무복을 입고 이마에 영웅건을 둘러맸다는 건 일반 무인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적랑대(赤狼隊).”
“잘 아네. 그렇게 잘 아는 놈이 반말을 찍찍 내뱉어? 이제 겨우 입맹 시험을 보러 온 주제에?”
백리연(百里燕)은 건들거리며 백리웅에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백리웅의 뺨을 툭툭 치기 시작했다.
“이래서 아비 없는 것들이랑은 상종을 말아야 돼요. 것도 첩의 새끼들은 더욱더.”
으드득.
백리웅의 이빨을 가는 소리가 소름 끼치게 들렸다.
“세가 망신을 시키고 싶지 않다면 당장 낙양을 떠나는 게 좋을 거야. 세가와 가주를 네놈이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말이다……!”
백리연은 자신의 손목을 잡은 반사영을 쳐다봤다. 아주 불쾌한 눈빛으로 말이다.
“그만.”
“그만?”
반사영은 아주 짧게 말했다. 백리웅을 대하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백리연은 순간적으로 그 기운에 몸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명색이 적랑대의 무인이다. 세가의 힘으로 들어간 것이 아닌, 순전히 본인의 능력으로 들어갔다. 게다가 입대한 지 삼 년 만에 다섯 명의 부대주 중 한 사람으로서 이름을 올린 그였다.
반사영의 기세가 보통은 넘지만, 그래 봤자 입맹 시험을 보러 온 애송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반사영이 본연의 힘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겨우 삼 할 정도만 흘려보낸 정도였다.
“제법 무인 티를 좀 내는 모양인데…… 꼬마야, 내가 지금 당장 한마디만 하면 주변에 있는 적랑대가 네 온몸을 갈기갈기 찢을 수가 있다는 걸 명심해라.”
“사영…… 사과해라.”
더 이상 일이 커지는 건 막아야 했기에 백리웅이 나섰다. 자신으로 인해 반사영이 피해를 볼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반사영은 사과를 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꽉 다문 채 백리연을 노려볼 뿐이다.
“대주께서 찾으십니다.”
아마 적랑대 대원이 백리연을 찾아오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오늘 피를 봤을 것이다.
“저 자식 뭡니까.”
백리연이 수하를 따라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반사영이 물었다.
“백리세가 전대 가주의 셋째 아들. 자네가 만약 오늘 저 녀석을 건드렸으면 아마 이곳에서 뼈를 묻었어야 할 거야.”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만약 백리연의 몸에 작은 상처라도 났다면 적랑대가 달려들었을 일이다.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그 이후부터는 살아도 사는 삶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때는 백리세가 전체의 표적이 되었을 테니까 말이다.
백리웅은 진심으로 반사영이 걱정되었다. 저렇게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다면 입맹을 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백리연에게 보낸 살기는 백리웅으로서도 꽤나 놀랄 만한 기운이었다. 적랑대 부대주로 있는 백리연이 움찔할 정도로 날카로웠다.
‘대체 정체가 뭐지?’
저 나이에 저런 기운을 풍기는 게 얼마만큼이나 어려운 일인지 백리웅은 모르지 않았다.
***
다음 날, 어제 끝나지 않은 입맹 시험이 진행되었다. 경공과 보법 시험을 치른 반사영과 백리웅이 앉은 대기석은 커다란 연무장이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저 녀석 상당한데?”
백리웅이 가리킨 곳으로 반사영의 시선이 향했다.
천검맹 무인을 상대로 호각을 다투고 있는 사내는 이틀 전 반사영처럼 몰골이 엉망이었다.
하지만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입맹 시험 중 가장 어려운 게 비무였다.
“저 사람, 경공과 보법 모두 합격이었어요.”
“괴물이군.”
백리웅은 유심히 그 사내를 지켜봤다. 나이를 짐작하기는 어려웠지만 자신 또래로 보였다. 한데 풍기는 기운은 웬만한 노고수 못지않았다. 마치 어린아이와 비무를 하듯 여유가 넘쳐흘렀다.
만약 저자가 비무마저 합격을 한다면, 이번만이 아니라 역사상 다섯 번째로 세 분야 모두 통과를 한 사람으로 등극하는 것이다.
모든 관심은 저 남자에게로 쏠릴 것이 틀림없었다.
“어디서 본 듯한 움직임인데.”
분명 저 사내가 목검을 휘두르는 모습이 낯이 익었다.
“유성검문(流星劍門).”
반사영의 말에 백리웅은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신검무(新劍舞)!”
백리웅은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로 외쳤다.
“유성검문의 독문검법이 아닌데다 이미 배척받은 지 오래된 신검무를 저 남자가 펼치고 있네요. 아주 완벽하게.”
반사영은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백리웅은 비무를 벌이는 남자보다 옆에 있는 반사영이 더 괴물 같다고 느껴졌다. 겨우 목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 사문과 검법을 알아맞히는 일은 그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했다.
그것도 이렇게 젊은 녀석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어떻게 알았나?”
“본 적이 있습니다. 책에서.”
“지금 나를 놀리는 건가?”
“신검무…… 유성검문 역사상 가장 오래된 검법이지만 익히기가 매우 까다롭고, 깨달음을 얻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죠. 자연스럽게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없어져 유성검문 내에서도 신검무를 펼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읽은 기억이 납니다.”
“허어!”
기가 막힐 노릇이다. 책에서 봤다고 하더라도 직접 신검무를 본 적은 없을 것이다. 그저 책으로 통해서 읽었다고 하더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형님은 뭘 보고 낯이 익다고 하신 건데요?”
“딱 한 번 본 적 있네. 신검무를 펼치는 모습을.”
“역시 책은 완전히 믿을 게 못 되는군요. 분명 펼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적혀 있었는데.”
“후후훗.”
“왜 갑자기 웃어요?”
“생각지도 못한 인연을 만난 것 같아서 그러네.”
“예?”
백리웅은 기분 좋은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긴장했나?”
“그럴 리가요.”
“자네라면 쉽게 이길 거야. 게다가 세 개 중 보법을 통과했으니 진다고 하더라도 문제 될 건 없지.”
반사영과 백리웅은 오전에 비무를 제외한 시험에서 각각 한 분야씩 통과했다. 그로 인해 천검맹 입맹 시험을 통과한 셈이다.
하지만 절차상 마지막 시험인 비무를 건너뛸 수도 없었다. 자존심이 없지 않는 이상 치러야 하는 관문이었다.
“……!”
본래 비무 시험은 천검맹 일반 무인을 상대해야 했다. 물론 지금 눈앞에 있는 상대도 일반 무인들이 입고 있는 백색 무복을 차려입었다.
하지만 반사영의 앞에는 어제 백리웅에게 시비를 걸었던 백리연이 씩 웃고 있었다.
반사영은 왜 그가 이 자리에 있는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비무라는 명목 아래 어제 건방지게 군 자신에게 일종에 보복을 하려는 짓이라는 걸 말이다.
“웃어?”
백리연은 자신을 보며 비웃음을 흘리는 반사영을 보며 어처구니가 없었다.
“실망이네요. 천검맹 칠대무력조직 중 하나인 적랑대 부대주께서 사사로운 마음으로 맹의 규율을 어기시다니.”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구나.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는 걸 보니.”
대충 어디 한군데 분질러 버릴 생각이었지만, 반사영의 태도를 보고는 마음이 바뀌어 버린 백리연이다.
―사영…… 조심하게!
백리웅의 전음을 들은 반사영은 한껏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잘 지켜보세요, 형님. 소원 풀이해 드릴 작정이니.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냐.”
백룡단(白龍團) 단주 공문기(公文起)는 백지장처럼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꿈은 아닌 듯합니다, 단주.”
옆에 있는 수하의 말에도 불구하고 공문기는 제발 이게 꿈이길 바랐다.
백룡단은 입맹 시험을 총괄하고, 갓 입맹한 무인들을 관리하고 수련시키는 일을 맡고 있었다. 천검맹 내에서 무복을 입고 영웅건을 두르지 않은 자들은 모두가 백룡단 소속이었다.
그런데 앞으로 백룡단 소속이 될 녀석이 백리연을 구타하고 있는 모습은 전혀 현실감이 떨어졌다.
백리연이 누구던가! 적랑대는 물론 천검맹 내에서도 악랄하기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게다가 적랑대 부대주 자리는 거저 얻은 것이 아니다.
그런 그를 복날 개 잡듯 두드려 패고 있는 장면이 공문기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중이다.
“말, 말려야 되는 거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