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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존 1권(21화)
7장. 뒤를 쫓다(2)
―이 자식 반쯤 죽입시다.
―참아라.
반사영은 일단 비건에게서 얻어야 할 정보가 있기에 화를 가라앉혔다.
“걱정하지 마라. 내 동료니까.”
“형님이 백룡단에 입단했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크흐흐. 많이 컸다. 내가 낙양에 있다는 걸 알고서도 튀지 않았다 이거지?”
“제 뒤에는 하오문이 있으니까요.”
“호오? 대단한 자신감인데.”
무태는 지금의 비건과 과거 자신이 알고 있던 비건이 많이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하오문이 그렇게 대단했던가?’
과거의 비건은 자신보다 강한 상대에게는 비굴하게 행동했다. 방금 전처럼 반사영이 직접적으로 강한 무공을 선보였다면 여유롭게 행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 물정을 몰라 하오문이 천하를 내려다볼 정도의 위치가 아님을 비건이 모를 리도 없었다. 하지만 비건의 태도는 그런 집단에 속해 있는 사람 같았다.
“제가 하오문에 입문한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네놈이 뭘 먹고사는지 궁금해서 방주께 여쭤 봤다.”
“하여간 그 노인네를 믿는 게 아니었어. 내가 그토록 비밀이라고 부탁을 드렸건만.”
반사영은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하나는 무태가 용호방 방주와 대면할 정도의 위치라는 사실이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용호방 소속이라고 해도 한 무리의 우두머리다. 그런 그와 대화를 나눌 정도면 결코 일개 낭인은 아니라는 소리다.
또 하나는 당연히 비건의 말투였다. 마치 용호방 방주를 옆집 초로의 노인을 대하는 듯했다.
자리에 그가 없다고 해도 무태의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무태도 그런 비건의 태도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점이다.
“그래서 하오문의 원하는 정보가 뭐죠.”
“간단해. 월궁루의 주인이 누구인지야.”
“그걸 알아서 뭐하게요?”
“그건 네가 알 필요 없는 일이고.”
“이상한데요. 형님 같은 분이 한낱 백룡단에 입단한 것도 그렇고, 요 녀석 같은 절정 고수가 백룡단에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 않아요?”
그건 반사영도 궁금했던 점이다. 무태, 단유하, 백리웅. 모두가 하나같이 무공이 뛰어났다. 칠대무력조직에 입단할 수 있을 만했다.
그런데 왜 가장 말단들이 모이는 백룡단으로 입단한 것일까.
“네놈이 하오문 소속이라고 내 주먹이 얌전해지는 건 아니다.”
“흠, 흠!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알아봐.”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
“금액이 비싸다는 거지요.”
“돈을 받으시겠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형님이 제게 알려 준 진리 아니었던가요?”
“어째서 공짜라는 거지? 수년 전에 네가 훔친 돈이 있는데.”
비건의 눈이 반사영에게로 옮겨졌다.
“너는 뭔데 끼어들어.”
“뭐하고 있어. 시간이 없다니까? 얼른 알아내 갖고 오라고.”
비건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오문이 나서서 못 알아내는 정보는 없었다. 그만큼 의뢰 비용은 상당했다.
그런데 과거의 그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퉁 치겠다는 건 거의 칼만 안 들었지 강도 수준의 행동이나 다름없었다.
“휴우.”
“한숨 쉴 시간도 없다니까?”
“제가 거절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야…… 네 상상에 맡길게.”
비건은 알고 있었다. 이 일을 거절한다면 무태는 분명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이 죽을 때까지 괴롭힐 것이다.
그런 결말만은 피해야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이 시간에 여기서 뵙죠.”
“또 튀거나 잠적하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지 알지?”
“암요. 알고말고요.”
비건이 자리를 뜨자, 반사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형님의 정체가 뭡니까.”
“무슨 질문이 그래?”
“그리고 저 녀석 진짜 정체가 뭡니까. 용호방 방주를 노인네라고 부르질 않나.”
“다 그럴 사정이 있다. 그만 돌아가자.”
“연습은 잘돼 가?”
숙소로 돌아오자 단유하가 공문기의 말투와 표정을 연습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백리웅은 그의 앞에서 평가를 해 주고 있었다.
“나갔던 일은 잘됐어?”
“뭐, 그럭저럭요. 일단은 월궁루 주인이 누구인지 파악을 좀 해 두려고요.”
“월궁루 주인?”
“네. 저 세작 놈의 배후가 어떤 세력에 속하는지 파악을 하는 게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아서요. 처음 백리연이 그곳에 납치, 감금을 당했으니까요.”
“쉽게 알아낼 수 있을까?”
“뭐, 무태 형님 덕분에 전문가에게 부탁을 해 뒀죠.”
백리웅과 단유하가 기특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자, 무태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 정도야, 뭐.”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딱 그 꼴이죠?”
반사영의 말만 아니었다면 무태는 오늘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사방이 꽉 막힌 밀실에서 반사영과 무태는 비건을 마주하고 있었다.
“누, 누구라고?”
무태의 눈이 부릅떠졌다.
“거의 공식적으로 월궁루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더라고요. 물론 아예 비밀스럽지는 않지만, 알아본 바에 의하면 백리세가의 가주 백리천호가 실제 주인이더군요.”
“허…… 허허허! 이게 말이 돼?”
무태는 기가 막힌 얼굴을 하고서 반사영을 쳐다봤다. 반사영도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다.
월궁루 주인이 현 백리세가의 가주 백리천호라니! 백리연에게는 큰형이 되는 인물이다. 이 사실이 쉽게 피부로 와 닿지 않았다.
월궁루의 실제 주인이 백리천호라면, 그 지하 밀실 또한 그의 명령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인가? 왜? 그리고 왜 세작을 자신의 친동생과 맞바꿨을까. 그때 반사영이 본 백리연은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정확한 거야?”
“지금 하오문의 정보력을 의심하는 거예요?”
“의심이 아니라 이상하니까 그러지.”
“뭐가 이상해요? 전혀 이상할 게 없는데.”
비건은 오히려 호들갑을 떠는 반사영과 무태를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봤다.
“백리세가는 지금 성장 중이에요.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건 자금인데, 그걸 위해서는 월궁루가 당연히 필요한 거죠.”
“천화상가와 적을 두더라도?”
“백리세가가 맹주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은연중에 돌고 있어요. 위지세가를 위협할 백리세가가 겨우 천화상가를 두려워할까요.”
두 사람이 왜 월궁루 주인을 알려고 하는지 비건은 몰랐다. 그러니 당연히 두 사람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자, 이제 볼일은 끝난 거죠?”
“그, 그래.”
혼이 나간 듯 무태는 그만 나가 봐도 좋다는 손짓을 했다.
“다음에는 정해진 금액을 지불해 주셔야 해요.”
무태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비건이 나가자마자 무태가 다급하게 질문했다.
“엿듣지 말고 그만 가라.”
반사영의 한기 어린 음성에 문 밖에서 헛기침 소리가 났다. 비건이 바로 떠나지 않고 문 밖에 서 있었던 것이다.
확실히 비건의 기척이 느껴지지 앉자 반사영은 입을 열었다.
“저도 머리가 복잡합니다. 백리천호가 힘을 키우기 위해 월궁루를 만든 건 이해를 하겠는데, 어째서 그 세작은 백리연을 그토록 처참하게 만들고 위장을 한 건지. 그것도 하필이면 월궁루에서.”
“세작과 백리천호를 떼어 놓고 생각하면 달라지지 않을까. 백리천호는 그저 월궁루 주인일 뿐이고, 세작은 다른 세력의 속해 있는 거고.”
“그렇다고 하기에는 지하 뇌옥이 마음에 걸려요. 월궁루 같은 곳에 왜 그런 공간이 있어야 하는 건지.”
“아이고, 두야! 뭔 일이 이렇게 복잡한 거냐.”
“일단 웅이 형님에게는 비밀로 하죠. 일단은 내일 있을 백룡단 간부들 회식에서 뭐라도 단서를 찾아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 알았다.”
***
백룡단 회식이 열리기로 한 날 단유하는 공문기를 몰래 자신들의 방으로 불러다가 일격을 가해 기절을 시켰다. 그리고 그의 손발을 묶고, 입에는 재갈을 물렸다. 반사영은 공문기의 혈을 눌렀다. 아마 하루 정도는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단유하는 역용술로 자신의 얼굴을 공문기와 똑같이 변형시켰다. 취미로 해 오던 역용술이지만, 거의 완벽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남은 세 사람은 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을 할 수가 없었다.
“실수하지 말고 알았지?”
“이 정도쯤이야.”
무태가 단유하의 어깨를 두드려 줬다.
“절대로 취하면 안 된다.”
“내가 너냐?”
단유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신감 있게 웃었다.
세 사람 다 단유하를 믿었지만,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다. 혹시라도 주변인들에게 들키지는 않을지 말이다.
이제 단유하가 제 역할을 하러 갔기에 세 사람은 저녁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살아 있겠지, 그 녀석.”
백리웅은 며칠 동안 백리연의 걱정으로 인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반사영은 정말이지 그런 그의 태도를 이해하기가 힘이 들었다.
백리연은 지금껏 백리웅에게 너무나 치욕적인 언행을 일삼았다. 천검맹에서의 첫 만남도 그랬다. 아무리 같은 백리라는 성을 이어받았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직계와 방계로 갈린다.
서로가 다른 환경과 대우를 받으며 성장해서 사실 정을 느끼지 못하는 게 더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마음이 너무 따뜻해도 문제라는 걸 백리웅을 통해서 배웠다.
“자, 슬슬 움직입시다.”
세 사람은 잠행복으로 갈아입고, 천검맹을 벗어났다. 그들은 각자 찢어져 월궁루 근처에서 정해진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반사영은 높다란 건물 지붕에서 월궁루를 내려다봤다.
날은 어두워졌지만, 그럴수록 홍등가의 불빛은 거세게 빛이 났다. 좁은 골목들 사이는 비틀거리며 거니는 취객들로 붐볐다.
얼마쯤 지났을까 월궁루 주변으로 일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속에는 공문기로 위장한 단유하도 보였다. 왁자지껄 떠드는 모습이 분위기를 주도하는 듯했다.
반사영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숨어 있는 무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백룡단 간부들이 등장했으니 집중에 집중을 해야 했다. 분명 백리연은 월궁루 외부로 빠져나와 어떤 행동을 할 것이 분명했다.
자신의 정체를 아는 이가 두 명이나 존재하니 명령을 내린 이에게 보고를 할 것이다. 천검맹 내부에서는 그런 일은 불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사영은 스스로가 생각해도 자신이 이런 예측을 하고 있는 것에 놀랐다. 그저 한낱 서생에 불과했던 자신이 지금 천검맹 내부로 스며든 세작의 뒤를 쫓고 있을 줄이야.
무림에 관해서는 그저 책을 통해서만 접해 왔지 실제로 보고, 듣고, 체험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게다가 모든 작전은 자신이 짜고 있는 것이 놀라웠다.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어떻게든 녀석이 세작이라는 것과 백리연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내야만 했다.
“으하하하! 마시자고 마셔!”
거나하게 술판이 벌어졌다. 그 중심에는 역시나 공문기가 있었다. 단유하는 비교적 공문기의 연기를 잘 해내고 있었다.
공문기와 술자리를 가져 본 적이 없지만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만큼 흉내 내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일단은 반사영의 말대로 분위기를 무르익게 해야 했다. 여기 모인 이들이 거나하게 술에 취해야만이 백리연이 마음껏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볼일을 보러 몇 번이나 나갔지만 금방 돌아왔다.
“단주님, 지난 일은 그만 잊으십시오. 그 빌어먹을 백리웅 자식이 어디 건방지게.”
단유하가 술을 따르면 백리연은 마다하지 않고 마셨다. 물론 내공으로 술기운을 없애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건 단유하도 마찬가지다. 취한 척 연기를 하는 것도 두 사람의 공통점이었다.
‘제법 연기를 하는데.’
단유하는 젓가락을 떨어트리거나 접시를 깨 먹는 듯 행동하는 백리연을 보며 실소를 머금었다.
어느덧 술판을 벌인지 한 시진이 넘어갔다.
절반 이상이 술에 떡이 되어 잠이 들었다.
“아이고…… 취한다아아!”
단유하는 슬슬 자신도 잠이 든 척 스르륵 몸을 바닥에 눕혔다.
그러고 있는데 백리연이 자리에서 슬슬 일어나더니 밖으로 나갔다. 이번에는 지금까지와 달리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단유하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었다. 품속에서 작은 깃발을 빼어 밖에다 대고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