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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존 1권(24화)
8장. 납치되다(2)


***

오늘 밤을 여기서 쉬어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청의검대 대원들이 모닥불을 피우고 노숙을 준비하는 사이 반사영은 점혈을 푸는 데 집중했다.
스스슥.
반사영은 이곳으로 일단의 무리가 다가옴을 느꼈다. 그들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움직임이 지극히 은밀하다. 반사영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백리세가의 놈들이 벌써 왔나.’
―형님, 서두릅시다.
반사영의 전음을 들은 무태의 눈빛이 변했다.
무태는 단유하를 바라봤다. 단유하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인다.
세 사람 다 점혈을 풀었다. 이제 내공을 자유자재로 쓸 수가 있었다.
“으아아악!”
무태가 괴성을 지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동시에 양손에 묶여 있던 쇠사슬을 끊어 버렸다.
가히 엄청난 괴력이다. 내공을 운용할 수 있다고 저렇게 쉽게 끊을 수는 없었다.
자유롭게 풀린 주먹으로 가장 옆에 있는 청의검대 무인의 턱주가리를 가격했다.
빡!
턱을 얻어맞은 그는 맥없이 주저앉아 버렸다. 무태는 그에게서 검을 빼앗아 들어 반사영의 쇠사슬을 끊어 버렸다.
“뭐, 뭐야. 어떻게!”
책임자의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점혈을 당해 내공을 운용할 수 없을 텐데, 어찌 저 쇠사슬을 끊어 내느냔 말이다.
“술 안 내놔서 열 받았잖아요.”
반사영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자신에게 덤벼드는 대원 둘을 순식간에 고꾸라트렸다.
책임자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일개 백룡단 신참들이다. 그곳에서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 봐야 애송이들에 불과한 일이다.
결코 저렇게 자신들의 수하들을 아기 다루듯 할 수가 없었다.
반사영은 단유하와 백리웅을 포박하고 있던 쇠사슬을 끊었다. 이제 청의검대 무인들의 숫자는 일곱이다.
“내가 세 놈을 맡지.”
“무태, 너무 욕심이 과한데?”
단유하와 무태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반사영은 점점 다가오는 정체불명의 무리에게 신경이 쓰였다.
쐐애액!
무태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거구의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속도였다. 동시에 반사영과 단유하도 움직였다.
“막아라! 어서!”
남은 청의검대 대원들도 검을 뽑아 들어 세 사람의 공격을 막아섰다. 하지만 애초에 싸움이 되지 않는 실력의 격차가 존재했다.
온갖 실전으로 다져진 무태의 여유로움, 단유하의 날카로운 검공, 그리고 소리 없이 다가와 목에 검을 박아 넣는 반사영.
이 세 사람의 공격을 막아 내기에 청의검대 대원들은 강하지 못했다.
부들부들.
수하들이 나가떨어지는 와중에도 책임자가 할 수 있는 건 겁에 질려 있는 일뿐이다. 실력 차이가 너무 났다.
순식간에 자신을 제외한 아홉 명의 수하들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사, 살려 줘라.”
“살려 줘라?”
“아니! 살려 주십시오!”
“이러니 천검맹이 썩었다는 말이 나도는 거야.”
무태는 커다란 보폭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죽이진 않을 거요. 그냥 조용히 기절해 있으면 되니 겁먹을 것 없습니다.”
책임자의 눈은 그걸 지금 위로라고 하고 있느냐는 듯 따지고 있는 것 같았다.
“커헉!”
무태의 주먹이 닿기도 전에 겁에 질려 있던 책임자의 목이 잘려 나가며 피를 뿌렸다.
“……!”
그의 육체가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그 뒤로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모두 다섯 명.
하나같이 지독한 살기를 뿜어 대고 있었다.
무태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들을 본 순간 본능이 경고를 해 오고 있었다. 피해라! 피하지 않고 맞서면 죽는다.
이들에게서는 죽음의 냄새가 났다.
짙은 혈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결코 정파인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엄청난 기운에 피부가 따가워졌다.
그건 무태의 뒤에 있는 세 사람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무태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웅이 형님…… 이자들 대체 뭡니까. 백리세가의 놈들이오?”
“아니, 아니다.”
백리세가 무인들은 결코 아니다.
“반사영이 누구냐?”
선두에 있는 중년인이 물어 왔다. 지극히 무미건조한 목소리다.
“제가 반사영입니다.”
중년인은 한차례 반사영을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저놈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죽인다.”
“존명!”
뒤에 시립해 있던 자들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파박!
뒤로 물러서던 무태의 다리로 검날이 훑고 지나갔다.
“크윽!”
정말이지 귀신같은 움직임이다. 어떤 기척도 감지하지 못했건만 어느새 나타나 검을 휘두르다니.
무태는 그대로 바닥을 나뒹굴어 다음 공격을 피해 냈다.
무태만이 당혹스러워한 건 아니다. 반사영, 백리웅, 단유하도 놀란 건 마찬가지다.
“이것들 대체 뭐야.”
단유하는 명색이 태산검의 제자다. 그런 그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이들의 실력이 대단했다.
네 사람에게 한 명씩 붙었다.
상처를 입은 건 백리웅과 무태다.
반사영은 월야무영을 펼쳤다.
쉬쉬쉿!
검을 수차례 찔러봤지만, 월야무영을 펼치는 반사영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월야무영!’
중년인의 눈이 이채롭게 반짝거렸다.
‘다시 보게 될 줄이야!’
그는 진정으로 감탄했다.
비록 그의 생각보다는 덜 완성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반사영이라는 사내가 펼치는 보법은 분명 월야무영이다.
반사영을 맡은 수하의 검은 지극히 쾌검이다.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급소를 찌른다. 하나 그것만으로 월야무영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중년인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저 젊은 사내를 이길 자신이 있느냐고 말이다.
중년인은 확신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수하들로는 벅찬 임무다.
직접 나서야만 했다.

서걱!
처음으로 사람의 목을 베었다. 전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죄책감 같은 기분도 들지 않았다. 손끝에서 전해져 오는 이 묵직한 느낌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하아압!”
공중에서 중년인의 검이 내리쳐졌다.
쾅!
내공이 잔뜩 주입된 검과 검이 부딪혔다. 그 파장은 다른 이들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크윽!”
검이 내려치는 힘이 상당 했다.
반사영은 급히 뒤로 물러나더니 검에 기운을 몰아넣었다. 순식간에 그의 검 면에 핏물이 맺혔다.
중년인은 반사영이 어떤 걸 펼치려고 하는지 알기에 황급히 멀리 떨어졌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은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쾌검혈우(快劍血雨).
콰콰콰쾅!
반사영의 검 끝에서 핏물이 비처럼 내렸다. 가히 살인적이고 광폭했다.
그 충격 여파로 인해 땅은 처참하게 변해 버렸다.
“쿨럭!”
중년인은 내상을 입었는지 입 밖으로 피를 토해 냈다.
반사영은 거기서 끝을 내지 않았다. 이번에는 폭뢰비를 펼쳤다.
또다시 검기가 뿌려졌다.
퍼엉!
백리웅과 대치 중이던 사내가 중년인의 앞으로 나타나 검기를 그대로 막아섰다. 그의 육체는 반으로 쪼개졌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핏물로 바닥은 이미 흥건해져 버렸다.
“당신 누구야.”
“크흐흐. 그건 나와 함께 가 보면 아는 일이고.”
“소맹주님이 보냈나?”
“아니.”
중년인의 눈이 차갑게 변했다.
번쩍!
그는 팔을 들어 올렸다.
스스스슥.
“……!”
공터 주변 나무에서 소리가 났다. 그곳에서 궁을 든 무인들이 나타났다. 그 숫자는 서른 명 가까이가 됐다.
“순순히 따라가지 않는다면 네놈의 동료들이 화살받이가 되겠지.”
“처음부터 죽일 작정 아니었나?”
“계획은 어느 때라도 바뀔 때가 있는 법이니까.”
궁수들이 일제히 화살을 날리면 자신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물론 세 사람의 무위도 만만치 않지만 살아남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내공이 실린 화살은 엄청난 힘과 속도를 낸다. 게다가 백리웅과 단유하는 당장 들러붙은 무인을 상대하기도 벅차다.
“그러죠. 대체 누가 날 이토록 보고자 하는지도 궁금하긴 하네요.”
저들이 남은 세 사람의 안전을 보장해 줄지는 미심쩍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대항한다고 해서 달라질 일은 없었다.
불리한 쪽은 자신들이고, 칼자루를 쥔 것은 저들이니까 말이다.
“단, 세 사람을 먼저 보내 주시죠.”
“너 대체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냐?”
무태가 인상을 가득 구기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겨우 저런 것들에게 쫄아서 너를 보낼 놈들로 보이디?”
“반사영이 그동안 우리를 졸로 본 모양이다, 무태야.”
말과는 달리 두 사람은 꽤나 지쳐 있었다. 무태는 한쪽 다리를 절뚝거렸고, 단유하는 팔에 상처를 입었다.
“그러게 평소에 형들답게 행동하지 그랬냐. 나처럼.”
반사영은 백리웅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백리웅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웃고 있었다. 자신들은 신경 쓰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 그들에게 할 수 있는 건 마주 웃어 보이는 것뿐이었다.
“남아의 일언은 중천금이라는 말 알아요?”
“뭐라고?”
“그거 다 헛소리예요. 사람이 가끔은 했던 말을 번복할 수도 있어야 사람다운 거죠. 그렇죠?”
중년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반사영의 말뜻이 무엇인지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그럼 번복한 말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겠지.”
“얼마든지.”
중년인의 손이 다시 한 번 올라갔다.
척, 척!
궁수들이 일제히 목표물을 보며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반사영은 마른침을 삼켰다. 어떻게든 일행들이 이 공격만 잘 견뎌 내 주면 된다. 이들을 움직이는 중년인을 인질로 잡을 계획이었다.
그게 성공만 한다면 충분히 이곳을 빠져나갈 수가 있을 것이다.
“조심하세요, 다들.”
“오냐!”
“벌집을 만들어 줘라!”
슈슈슈슉!
하늘에서 화실비가 쏟아져 내렸다.
촤르르륵!
힘차게 활시위를 떠난 화살들은 제힘을 잃고 바닥으로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검은 갓을 쓴 일단의 무리가 어느새 등장해 검막으로 화살들을 모조리 막아 낸 것이다.
“또 뭐야.”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다시 등장하자 반사영 일행은 당혹스럽기만 했다. 화살을 막아 준 걸로 보아 적은 아닌 듯했다.
“네놈들은 뭐냐.”
중년인은 일이 점점 꼬이는 기분에 몹시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갓을 쓴 이들은 어떤 기척도 없이 나타났다. 하나같이 일류를 넘어 절정의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동시다발적으로 검막을 펼칠 수 있는 자들은 흔치 않았다.
―위지세가에서 왔소.
반사영은 누군가 자신에게 전음을 보내자 화들짝 놀랐다.
“살(殺).”
갓을 쓴 무인들에게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순간 검막을 펼쳤던 무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