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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조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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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이놈의 입!
엘리네시아는 자신에게 건네진 아침 인사에도 불구하고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자칫 말이라도 잘못했다가는 바로 자신이 엘리네시아가 아닌 것을 들킬까, 그것이 두려웠다.
“엘리?”
그런 엘리네시아를 걱정스레 보던 에셀레드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가까이로 다가왔다.
“어디 아픈 거니?”
혹시 어디 아픈 것이 아닐까 걱정하던 에셀레드는 조심스럽게 엘리네시아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아, 그…….”
“아니면 고민이라도 있는 거니?”
엘리네시아의 눈동자가 데록데록 굴렀다. 이마에 닿는 서늘한 손길에 조금 놀랐지만 싫지는 않았다. 시선을 둘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두 눈이 걱정을 한가득 담은 눈을 하고 저를 보는 에셀레드에게로 옮겨 갔다.
“아…….”
엘리네시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엘리네시아와 닮은 붉은 머리, 엘리네시아의 눈매가 그녀의 아버지인 레너드를 닮았다면 에셀레드는 그녀의 어머니인 이에넨시를 닮아 강아지 같은 부드러운 눈매를 하고 있었다.
닮은 듯 닮지 않은 외모. 그런 에셀레드를 보며 엘리네시아가 생각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와……. 이 세상 외모가 아니야.’
바로 에셀레드와 레너드의 미(美)에 대한 것이었다.
……솔직히 연예인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조각으로 빚어 놓은 것 같은 외모를 보고 어떻게 찬양을 안 해? 진짜. 잘생기기는 엄청 잘생겨서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힐링되는 것 같은데.
‘이런 얼굴을 바로 조각 미남이라고 하는 걸까……. 한국 어디서 이와 같은 얼굴을 볼 수 있겠어?’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시 한번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엘리?”
다정하게 애칭을 부르며 가까이 다가오는 에셀레드의 얼굴에 엘리네시아는 홀린 것처럼 마음속 말을 꺼내 버렸다.
“자……”
“자?”
“잘생기셨어요…….”
“……응?”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생각을 그대로 말로 표현한 엘리네시아로 인해 에셀레드의 군청안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당황한 것은 에셀레드뿐만 아니라 옆에서 듣고 있던 레너드도 마찬가지였다.
“……에?”
그리고 한 박자 늦게 엘리네시아는 좀 전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뱉은 말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내가 방금 뭐라고 말했더라?
“저 지금 제가 잘생겼다고 했나요?”
“크흠……, 음……. 그런 거……, 같아.”
갑자기 잘생겼다는 말을 들은 주인공 에셀레드의 긍정을 담은 대답에 엘리네시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세상에……! 생각하던 걸 그대로 말로 했을 줄이야!
홧홧하게 올라오는 열에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부끄러워! 미쳤나 봐! 미쳤나 봐! 그런 말을 당사자 앞에서!’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저런 빚어 놓은 것 같은 조각 미남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그런 말이 안 나오는 것도 이상했지만, 그래도 가족이라는 사람을 보고 그러다니.
제가 이상하다며 의심이라도 받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함도 마음 한쪽에 작게 피어올랐다.
하지만…….
“하하! 유독 에드를 좋아하더니, 매일 보는 얼굴이 그리도 좋더냐?”
“아버지!”
“왜 그러느냐? 누이가 그렇게 좋다는데 기쁘지 않은 게냐?”
“……그건 아니지만!”
걱정이 무색하게도 의심은커녕 사이좋은 남매의 애정 행각으로 이어지는 상황에 엘리네시아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살짝 내렸다.
레너드 백작은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하하, 쾌활한 웃음소리를 내며 웃고 있었다. 그 앞에 에셀레드는 남매간 하기에는 부끄러운 소리를 내뱉은 엘리네시아보다 더 빨개진 얼굴을 하고 놀리지 말라며 레너드를 다그치고 있었다.
“엘리.”
조금 당황했던 마음이 정리되어 차분해져 갈 때 즈음, 레너드는 화살을 다시 엘리네시아에게로 돌렸다.
“……네?”
“아버지는 섭섭하구나. 네 오라버니만 잘생겼더냐?”
“……네?”
갑자기 스무고개 비슷한, 어려운 수수께끼라도 알아맞춰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 것 같은데. 이건 그냥 나만의 착각일까? 그녀는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며 섭섭하다는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레너드를 보며 한 가지를 추리했다.
설마……. 아니야, 일단 말해 보자.
의심은 들었지만, 해 봐서 손해 볼 것은 없으니 엘리네시아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도……, 잘생기셨어요. 멋있으세요.”
그 한마디에 레너드는 흠흠, 헛기침하며 주먹을 가볍게 그러쥐고 입가를 가렸다. 아무래도 볼품없이 올라가는 입꼬리를 가리기 위함인 것 같았지만……. 웃는 거 다 보입니다?
‘……소설 속에는 자세히 안 나와서 몰랐는데. 이 가족……. 설마 딸바보에 시스콤은 아니겠지?’
그저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닐 거라며 스스로를 애써 위로하며 엘리네시아는 에셀레드와 레너드와의 대화를 이으며 겨우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게다가 가족이란 존재를 처음 겪는 그녀로서는 이들의 따뜻한 시선이 가슴을 따끔거리게 만들었다. 오랜 시간 가족이란 이들 없이 홀로 자라왔던 그 시간이 떠올랐지만 애써 미소 지었다.
‘와! 맛있어……!’
하지만 곧 입 안에서 살살 녹는 음식에 그런 생각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먹어 볼 수 있을 법한 신선한 고급 식재료의 맛이 입 안에 살살 퍼졌다.
“아, 엘리. 오늘 황실 파티가 있으니 준비를 하고 가자꾸나.”
그렇게 이 세계에서의 첫 식사를 하던 엘리네시아에게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지옥으로 향하는 문이 쿵, 떨어졌다.
“……네?”
“폐하께서 오늘 귀족들과의 교류를 위해 파티를 여신다고 며칠 전 얘기한 건 잊지 않았겠지?”
갑자기? 파티? 눈 떠 보니 악녀의 몸에 빙의되었다! 로 끝나나 했더니. 악녀의 몸에 빙의된 첫날 그 많은 귀족이 모이는 황실의 파티에 가라고……?
마치 신의 농락 같은 상황의 흐름에 엘리네시아는 어이없음을 감추며 환하게. 아주 환하게 웃었다.
‘……망했다.’
환하게 웃는 얼굴과는 반대로 속마음은 아주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 * *
그리고 엘리네시아는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황실의 문을 망연자실하게 올려 보고 있었다.
“…….”
문안에서 잔잔한 연주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무래도 파티는 이미 시작되어 한창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 같았다.
뭐, 그런 것도 좋았다. 파티니까 신나고 즐거워야지.
‘그런데 난 안 즐겁네.’
오고 싶지 않았던 황실의 파티에 결국, 발걸음하게 된 엘리네시아는 애꿎은 문만 노려보고 있었다.
‘게다가 쉽게 올 수 있는 파티도 아닐 텐데.’
황실의 파티는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제국의 문양이 찍힌 초대장이 있어야만 황실의 파티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초대장은 아이샤르 백작가에도 도착했다.
그것까지는 좋다 이거야. 근데 굳이 왜. 자신까지 여기에 와 있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역시……. 마음에 안…….
“……마음에 안 들어.”
어라. 금방 생각과 말이 겹친 듯한……? 내가 또 생각을 말로 한 건가? 이게 버릇 들면 곤란한데.
“아버지. 역시 마음에 안 듭니다.”
“무슨 말인 게냐, 에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또 자신이 필터링하지 않고 생각을 말로 한 거라 여기던 엘리네시아는 옆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에셀레드가 레너드에게 무언가 불평을 하고 있었다.
“엘리를 이렇게 어여쁘게 해서 보이면 엘리가 당연히 간택받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엘리 본인이 원하던 일이잖니. 오라버니라면 도와주어야 할 줄도 알아야지.”
“……제가요? 뭘요?”
무슨 대화인지 그 대화의 주인공인 본인은 두고 둘이서만 얘기하는 것을 듣던 엘리네시아가 결국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그냥 듣고만 있으면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여기 온 이유를 잊은 거니, 엘리?”
“이유라니요?”
황실 파티를 오는 이유가 황실 파티에 초대받아서가 아니라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무언가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것인지 에셀레드와 레너드의 표정이 다소 굳어졌다.
빠르게 시선을 교환하는 두 남자를 보며 그녀는 입이 바싹바싹 마르고 있었다.
“엘리. 잠깐만 자리를 옮기겠니?”
파티의 입구 앞은 호위 기사들이 지키고 있어 대화를 나누기에는 적합한 장소가 아니었다. 장소를 이동하면서까지 조심스레 대화할 것을 제안하는 걸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확인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겼기에 엘리네시아는 제안을 수락했다.
자리를 옮긴 후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을 보며 엘리네시아는 그들의 복잡한 머릿속 생각이 정리가 될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답답한 마음이 풀어지지는 않았다.
“엘리.”
그리고 먼저 그 무거운 침묵을 깨뜨린 것은 아이샤르 가문의 백작인 레너드였다. 그는 짐짓 심각한 얼굴이 되어 엘리네시아의 가까이에 다가와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며 그녀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렀다.
“오늘 개최된 황실의 파티가 제1황자님의 약혼녀를 정하기 위한 파티라는 걸 잊은 게냐? 너 역시 황자 전하의 약혼녀가 되고 싶다며 내게 이 파티를 가고 싶다고 간청까지 했었지.”
“……오늘, 이 파티가. 황자 전하의 약혼녀를 정하는……, 파티라구요?”
제1황자면 반역을 저지르려던 그 망나니 황태자? 아직은 계승식을 못 받아서 황자인가.
아니 그런데 황자의 약혼녀를 정하는 파티라니? 죽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라도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더니, 이번에는 지옥행 급행열차에 탑승한 걸까. 눈앞이 깜깜해졌다.
‘아, 기억났어. 원작에 아주 잠깐 스치듯 지나갔던 그 부분. 어느 파티에서 공식적으로 황자의 약혼녀가 되었다고 했던……. 그게 이 파티였어?’
미리 알았다면 어떻게든 대처할 방안을 강구라도 해 봤을 텐데, 갑자기 파티에 끌려오고 하필 끌려온 파티가 약혼녀를 정하는 파티라고 하니 머릿속이 새하얀 백지장이 되어 사고의 회로가 멈춰졌다.
‘지금이 그 약혼을 알리는 파티라면 소설의 원작 진입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데. 그럼 정말 빼도 박도 못하고 죽는 거 아니야?’
소설상 원작이 시작되는 시기를 기억 속에서 차곡차곡 하나씩 떠올리던 엘리네시아의 하얀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나는 굵고 짧게가 아니라 가늘고 길게 살고 싶은 사람인데. 이건 아니지……. 살려 줄 거면 제대로 살려 주던가. 살려 줬다가 이제는 다시 죽으라고 등 떠미는 거야 뭐야?’
두통이 지끈지끈 올라왔다. 신이라는 작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무엇을 원하는지도 가늠이 가지 않는 상황에, 눈앞에서는 무언가 문제라도 있는 것일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이는 두 남자로 인해 또다시 말문이 막혔다.
“혹시 지금이라도 파티에 불참하고 싶다면 말하려무나. 나는 내 딸이 원하지 않는 것을 강제로 하게 하고 싶지는 않단다.”
“……귀족들의 초대가 아닌 황실의 초대예요. 파티를 불참하면 가문에 화가 미칠 거라는 걸 알아요.”
“가문이 중요하지만, 가족보다 중요하지는 않단다.”
황실에서 초대한 파티에 불참한다 해서 대역죄로 간주되어 처형이 되지는 않는다. 대신 황제의 눈 밖에 나게 되면 가문에 돌아오는 화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하나는 확실했다.
“하지만…….”
자신 때문에 그런 것까지 감수할 수 있을까?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그게 가능한 걸까? 엘리네시아는 믿을 수 없었다.
레너드는 괜찮다고 하더라도 에셀레드 역시 의견이 같을 거라고 볼 수 없었다.
“내 걱정이라면 하지 않아도 돼. 가문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내 능력을 인정받는 건 문제없어. 오히려 그런 걸 걱정해 주는 게 내겐 불명예라는 걸 알아줘, 엘리.”
그런 걸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 잠깐 시선이 닿은 걸 그를 걱정한다고 자연스레 생각한 에셀레드는 다정히 엘리네시아를 안심시키려 다독여 주었다.
“엘리.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해 주렴. 무엇을 말하든 네가 원하는 걸 다 들어줄 테니, 걱정 말고.”
다정했다. 한없이 다정하고 조건 없는 애정을 주며 그 사랑을 허용량을 넘길 정도로 가득 주고 있었다.
‘엘리네시아. 당신은 이런 가족을 두고 왜 그렇게 권력과 명예에 욕심을 가졌나요? 이렇게 당신만을 위해 주는데.’
조금 착잡하기도 했다. 만약 딸이, 누이가. 황자와 함께 반란을 일으켜 황위를 찬탈하려고 하던 반역 죄인이 되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거라고 한다면 어떤 얼굴을 할까. 그리고 그 딸이 이미 이 몸에 없다고 한다면……. 엘리네시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엘리?”
“저는 괜찮아요”
이미 그들의 사랑에 보답할 ‘진짜’ 엘리네시아가 사라진 이상, 그녀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다.
물론, 그것이 꼭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때였다. 아이샤르 가문의 세 사람이 모여 있던 작은 모형 정원에 엘리네시아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파티에 참석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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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이놈의 입!
엘리네시아는 자신에게 건네진 아침 인사에도 불구하고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자칫 말이라도 잘못했다가는 바로 자신이 엘리네시아가 아닌 것을 들킬까, 그것이 두려웠다.
“엘리?”
그런 엘리네시아를 걱정스레 보던 에셀레드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가까이로 다가왔다.
“어디 아픈 거니?”
혹시 어디 아픈 것이 아닐까 걱정하던 에셀레드는 조심스럽게 엘리네시아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아, 그…….”
“아니면 고민이라도 있는 거니?”
엘리네시아의 눈동자가 데록데록 굴렀다. 이마에 닿는 서늘한 손길에 조금 놀랐지만 싫지는 않았다. 시선을 둘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두 눈이 걱정을 한가득 담은 눈을 하고 저를 보는 에셀레드에게로 옮겨 갔다.
“아…….”
엘리네시아는 대답하지 못했다.
엘리네시아와 닮은 붉은 머리, 엘리네시아의 눈매가 그녀의 아버지인 레너드를 닮았다면 에셀레드는 그녀의 어머니인 이에넨시를 닮아 강아지 같은 부드러운 눈매를 하고 있었다.
닮은 듯 닮지 않은 외모. 그런 에셀레드를 보며 엘리네시아가 생각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와……. 이 세상 외모가 아니야.’
바로 에셀레드와 레너드의 미(美)에 대한 것이었다.
……솔직히 연예인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조각으로 빚어 놓은 것 같은 외모를 보고 어떻게 찬양을 안 해? 진짜. 잘생기기는 엄청 잘생겨서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힐링되는 것 같은데.
‘이런 얼굴을 바로 조각 미남이라고 하는 걸까……. 한국 어디서 이와 같은 얼굴을 볼 수 있겠어?’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시 한번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엘리?”
다정하게 애칭을 부르며 가까이 다가오는 에셀레드의 얼굴에 엘리네시아는 홀린 것처럼 마음속 말을 꺼내 버렸다.
“자……”
“자?”
“잘생기셨어요…….”
“……응?”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생각을 그대로 말로 표현한 엘리네시아로 인해 에셀레드의 군청안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당황한 것은 에셀레드뿐만 아니라 옆에서 듣고 있던 레너드도 마찬가지였다.
“……에?”
그리고 한 박자 늦게 엘리네시아는 좀 전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뱉은 말을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내가 방금 뭐라고 말했더라?
“저 지금 제가 잘생겼다고 했나요?”
“크흠……, 음……. 그런 거……, 같아.”
갑자기 잘생겼다는 말을 들은 주인공 에셀레드의 긍정을 담은 대답에 엘리네시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세상에……! 생각하던 걸 그대로 말로 했을 줄이야!
홧홧하게 올라오는 열에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부끄러워! 미쳤나 봐! 미쳤나 봐! 그런 말을 당사자 앞에서!’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저런 빚어 놓은 것 같은 조각 미남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그런 말이 안 나오는 것도 이상했지만, 그래도 가족이라는 사람을 보고 그러다니.
제가 이상하다며 의심이라도 받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함도 마음 한쪽에 작게 피어올랐다.
하지만…….
“하하! 유독 에드를 좋아하더니, 매일 보는 얼굴이 그리도 좋더냐?”
“아버지!”
“왜 그러느냐? 누이가 그렇게 좋다는데 기쁘지 않은 게냐?”
“……그건 아니지만!”
걱정이 무색하게도 의심은커녕 사이좋은 남매의 애정 행각으로 이어지는 상황에 엘리네시아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살짝 내렸다.
레너드 백작은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하하, 쾌활한 웃음소리를 내며 웃고 있었다. 그 앞에 에셀레드는 남매간 하기에는 부끄러운 소리를 내뱉은 엘리네시아보다 더 빨개진 얼굴을 하고 놀리지 말라며 레너드를 다그치고 있었다.
“엘리.”
조금 당황했던 마음이 정리되어 차분해져 갈 때 즈음, 레너드는 화살을 다시 엘리네시아에게로 돌렸다.
“……네?”
“아버지는 섭섭하구나. 네 오라버니만 잘생겼더냐?”
“……네?”
갑자기 스무고개 비슷한, 어려운 수수께끼라도 알아맞춰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 것 같은데. 이건 그냥 나만의 착각일까? 그녀는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며 섭섭하다는 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레너드를 보며 한 가지를 추리했다.
설마……. 아니야, 일단 말해 보자.
의심은 들었지만, 해 봐서 손해 볼 것은 없으니 엘리네시아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도……, 잘생기셨어요. 멋있으세요.”
그 한마디에 레너드는 흠흠, 헛기침하며 주먹을 가볍게 그러쥐고 입가를 가렸다. 아무래도 볼품없이 올라가는 입꼬리를 가리기 위함인 것 같았지만……. 웃는 거 다 보입니다?
‘……소설 속에는 자세히 안 나와서 몰랐는데. 이 가족……. 설마 딸바보에 시스콤은 아니겠지?’
그저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닐 거라며 스스로를 애써 위로하며 엘리네시아는 에셀레드와 레너드와의 대화를 이으며 겨우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게다가 가족이란 존재를 처음 겪는 그녀로서는 이들의 따뜻한 시선이 가슴을 따끔거리게 만들었다. 오랜 시간 가족이란 이들 없이 홀로 자라왔던 그 시간이 떠올랐지만 애써 미소 지었다.
‘와! 맛있어……!’
하지만 곧 입 안에서 살살 녹는 음식에 그런 생각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먹어 볼 수 있을 법한 신선한 고급 식재료의 맛이 입 안에 살살 퍼졌다.
“아, 엘리. 오늘 황실 파티가 있으니 준비를 하고 가자꾸나.”
그렇게 이 세계에서의 첫 식사를 하던 엘리네시아에게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지옥으로 향하는 문이 쿵, 떨어졌다.
“……네?”
“폐하께서 오늘 귀족들과의 교류를 위해 파티를 여신다고 며칠 전 얘기한 건 잊지 않았겠지?”
갑자기? 파티? 눈 떠 보니 악녀의 몸에 빙의되었다! 로 끝나나 했더니. 악녀의 몸에 빙의된 첫날 그 많은 귀족이 모이는 황실의 파티에 가라고……?
마치 신의 농락 같은 상황의 흐름에 엘리네시아는 어이없음을 감추며 환하게. 아주 환하게 웃었다.
‘……망했다.’
환하게 웃는 얼굴과는 반대로 속마음은 아주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 * *
그리고 엘리네시아는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황실의 문을 망연자실하게 올려 보고 있었다.
“…….”
문안에서 잔잔한 연주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무래도 파티는 이미 시작되어 한창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 같았다.
뭐, 그런 것도 좋았다. 파티니까 신나고 즐거워야지.
‘그런데 난 안 즐겁네.’
오고 싶지 않았던 황실의 파티에 결국, 발걸음하게 된 엘리네시아는 애꿎은 문만 노려보고 있었다.
‘게다가 쉽게 올 수 있는 파티도 아닐 텐데.’
황실의 파티는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제국의 문양이 찍힌 초대장이 있어야만 황실의 파티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초대장은 아이샤르 백작가에도 도착했다.
그것까지는 좋다 이거야. 근데 굳이 왜. 자신까지 여기에 와 있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역시……. 마음에 안…….
“……마음에 안 들어.”
어라. 금방 생각과 말이 겹친 듯한……? 내가 또 생각을 말로 한 건가? 이게 버릇 들면 곤란한데.
“아버지. 역시 마음에 안 듭니다.”
“무슨 말인 게냐, 에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또 자신이 필터링하지 않고 생각을 말로 한 거라 여기던 엘리네시아는 옆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에셀레드가 레너드에게 무언가 불평을 하고 있었다.
“엘리를 이렇게 어여쁘게 해서 보이면 엘리가 당연히 간택받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엘리 본인이 원하던 일이잖니. 오라버니라면 도와주어야 할 줄도 알아야지.”
“……제가요? 뭘요?”
무슨 대화인지 그 대화의 주인공인 본인은 두고 둘이서만 얘기하는 것을 듣던 엘리네시아가 결국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그냥 듣고만 있으면 무슨 얘기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여기 온 이유를 잊은 거니, 엘리?”
“이유라니요?”
황실 파티를 오는 이유가 황실 파티에 초대받아서가 아니라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무언가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것인지 에셀레드와 레너드의 표정이 다소 굳어졌다.
빠르게 시선을 교환하는 두 남자를 보며 그녀는 입이 바싹바싹 마르고 있었다.
“엘리. 잠깐만 자리를 옮기겠니?”
파티의 입구 앞은 호위 기사들이 지키고 있어 대화를 나누기에는 적합한 장소가 아니었다. 장소를 이동하면서까지 조심스레 대화할 것을 제안하는 걸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확인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겼기에 엘리네시아는 제안을 수락했다.
자리를 옮긴 후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을 보며 엘리네시아는 그들의 복잡한 머릿속 생각이 정리가 될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답답한 마음이 풀어지지는 않았다.
“엘리.”
그리고 먼저 그 무거운 침묵을 깨뜨린 것은 아이샤르 가문의 백작인 레너드였다. 그는 짐짓 심각한 얼굴이 되어 엘리네시아의 가까이에 다가와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며 그녀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렀다.
“오늘 개최된 황실의 파티가 제1황자님의 약혼녀를 정하기 위한 파티라는 걸 잊은 게냐? 너 역시 황자 전하의 약혼녀가 되고 싶다며 내게 이 파티를 가고 싶다고 간청까지 했었지.”
“……오늘, 이 파티가. 황자 전하의 약혼녀를 정하는……, 파티라구요?”
제1황자면 반역을 저지르려던 그 망나니 황태자? 아직은 계승식을 못 받아서 황자인가.
아니 그런데 황자의 약혼녀를 정하는 파티라니? 죽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라도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더니, 이번에는 지옥행 급행열차에 탑승한 걸까. 눈앞이 깜깜해졌다.
‘아, 기억났어. 원작에 아주 잠깐 스치듯 지나갔던 그 부분. 어느 파티에서 공식적으로 황자의 약혼녀가 되었다고 했던……. 그게 이 파티였어?’
미리 알았다면 어떻게든 대처할 방안을 강구라도 해 봤을 텐데, 갑자기 파티에 끌려오고 하필 끌려온 파티가 약혼녀를 정하는 파티라고 하니 머릿속이 새하얀 백지장이 되어 사고의 회로가 멈춰졌다.
‘지금이 그 약혼을 알리는 파티라면 소설의 원작 진입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건데. 그럼 정말 빼도 박도 못하고 죽는 거 아니야?’
소설상 원작이 시작되는 시기를 기억 속에서 차곡차곡 하나씩 떠올리던 엘리네시아의 하얀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나는 굵고 짧게가 아니라 가늘고 길게 살고 싶은 사람인데. 이건 아니지……. 살려 줄 거면 제대로 살려 주던가. 살려 줬다가 이제는 다시 죽으라고 등 떠미는 거야 뭐야?’
두통이 지끈지끈 올라왔다. 신이라는 작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무엇을 원하는지도 가늠이 가지 않는 상황에, 눈앞에서는 무언가 문제라도 있는 것일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이는 두 남자로 인해 또다시 말문이 막혔다.
“혹시 지금이라도 파티에 불참하고 싶다면 말하려무나. 나는 내 딸이 원하지 않는 것을 강제로 하게 하고 싶지는 않단다.”
“……귀족들의 초대가 아닌 황실의 초대예요. 파티를 불참하면 가문에 화가 미칠 거라는 걸 알아요.”
“가문이 중요하지만, 가족보다 중요하지는 않단다.”
황실에서 초대한 파티에 불참한다 해서 대역죄로 간주되어 처형이 되지는 않는다. 대신 황제의 눈 밖에 나게 되면 가문에 돌아오는 화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하나는 확실했다.
“하지만…….”
자신 때문에 그런 것까지 감수할 수 있을까?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그게 가능한 걸까? 엘리네시아는 믿을 수 없었다.
레너드는 괜찮다고 하더라도 에셀레드 역시 의견이 같을 거라고 볼 수 없었다.
“내 걱정이라면 하지 않아도 돼. 가문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내 능력을 인정받는 건 문제없어. 오히려 그런 걸 걱정해 주는 게 내겐 불명예라는 걸 알아줘, 엘리.”
그런 걸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 잠깐 시선이 닿은 걸 그를 걱정한다고 자연스레 생각한 에셀레드는 다정히 엘리네시아를 안심시키려 다독여 주었다.
“엘리.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해 주렴. 무엇을 말하든 네가 원하는 걸 다 들어줄 테니, 걱정 말고.”
다정했다. 한없이 다정하고 조건 없는 애정을 주며 그 사랑을 허용량을 넘길 정도로 가득 주고 있었다.
‘엘리네시아. 당신은 이런 가족을 두고 왜 그렇게 권력과 명예에 욕심을 가졌나요? 이렇게 당신만을 위해 주는데.’
조금 착잡하기도 했다. 만약 딸이, 누이가. 황자와 함께 반란을 일으켜 황위를 찬탈하려고 하던 반역 죄인이 되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거라고 한다면 어떤 얼굴을 할까. 그리고 그 딸이 이미 이 몸에 없다고 한다면……. 엘리네시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엘리?”
“저는 괜찮아요”
이미 그들의 사랑에 보답할 ‘진짜’ 엘리네시아가 사라진 이상, 그녀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다.
물론, 그것이 꼭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때였다. 아이샤르 가문의 세 사람이 모여 있던 작은 모형 정원에 엘리네시아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파티에 참석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