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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대공과 고양이 (2)
지금 이 고양이가 사람 말을 했다. 내 귀가 이상한 게 아니라면 고양이는 분명 저 주둥이로 인간의 언어를 불쑥 내뱉었다.
“멍멍! 왕왕!”
나는 놀라서 그만 크게 짖어 버렸다. 그러자 지나가던 시녀가 나에게 와서 쉿, 하고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렸다.
아니, 잠깐만요. 지금 이 고양이가 말을 했어요!
하지만 고양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야옹’ 하고 울면서 시녀에게 애교를 부렸다. 내가 안절부절못하며 끙끙거렸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 채 고양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 저 멀리 가 버렸다.
설마 내가 잘못 들었나?
“인간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영족도 아니야. 그런데 왜 이런 짐승의 탈을 쓰고 있느냐?”
역시 잘못 들은 게 아니다. 이 고양이 말을 하고 있어.
하지만 이 녀석, 아주 교묘하게 사람들이 우리 곁으로 지나다니지 않을 때만 입을 연다. 이것 봐라. 또 하녀가 지나가니까 모르는 척 털을 핥고 있다.
“와왕?”
젠장, 내 주둥이로는 도저히 사람 말이 안 나와. 얘는 잘만 지껄이잖아. 대체 구강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 거야?
“후후, 애쓰는구나. 하지만 영족도 아닌 네가 사람 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할 거야.”
“끄응.”
“아무리 봐도 신기하네. 설마 여기서 너 같은 아이를 발견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
너만 알지 말고 나도 좀 알자, 답답하게시리.
고양이는 아까부터 내가 알아듣지 못할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내가 입이 없어서 말 못 하는 줄 아냐?
“아르렁.”
“지금 짖은 거니? 요 자그마한 것이 귀엽기도 하지.”
고양이가 유쾌하게 웃었다.
너나 나나 크기는 별반 차이 없거든? 몸무게로 따지면 내가 아마 너 이겨, 인마. 얼마나 살았다고 내 앞에서 어른 행세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21년하고도 10개월을 더 살았어.
“그렇다면 인간이 되어 볼 생각은 없니, 아가야?”
“컹?”
얘가 지금 뭐라고 했니? 인간?
“만약 인간이 되는 법을 알고 싶다면 오늘 늦은 저녁까지 아치볼트 대공에게 찾아오렴.”
그 말만 남기고 고양이는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지금 쟤가 나한테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말한 거지? 나 잘못 들은 거 아니지?
❄ ❄ ❄
“어머, 얘가 왜 이럴까?”
애들레이드야. 이거 놔라. 나 가야 해.
아치볼트의 고양이가 인간이 되고 싶다면 늦은 저녁까지 그를 찾아오라고 했다. 그래서 해가 지고 저녁을 먹은 뒤, 나는 애들레이드가 자면 몰래 나가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는 개잖아? 하하하, 손이 없어서 문을 못 열어. 하하하.
답답한 마음에 발톱으로 문을 좀 긁었는데 하필 그 소리에 애들레이드가 깨어나 버렸다. 평소에는 깨워도 잘 안 일어나는 애가 왜 오늘은 귀신같이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결국 나는 애들레이드의 손에 붙들려서 침대로 돌아왔다. 그러고 그녀가 다시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문으로 향하려는데, 침대에서 떨어지는 소리에 또 깨어나 버렸다.
수차례 이 짓을 반복하다 이제는 완전히 지쳐 버렸다.
“착하지, 베티.”
그래, 너도 착한 아이니까 그만 자라. 자라고. 그래야 내가 나가든 말든 하지.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다. 애들레이드가 잠들고 나면 무슨 수로 문을 열지?
그리고 나는 그것보다 더 커다란 난관에 봉착했다. 나는 아치볼트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 아이고, 망했다.
어느덧 내 등을 쓰다듬던 애들레이드의 숨이 고르게 변하게 시작했다. 색색 소리를 내던 애들레이드가 드디어 잠이 들었다.
그런데 그러면 뭐 하나. 얘가 잠들어도 나 혼자서 아치볼트의 거처까지 갈 수가 없다.
우선 애들레이드가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금살금. 그녀가 혹시라도 일어날까 봐 여러 번 뒤를 돌아보면서 침대 아래로 사뿐하게 내려앉았다. 이번에는 큰 소리 없이 무난하게 착지했다. 어휴.
“얘야, 아가야.”
엄마야!
하마터면 욕할 뻔…… 아니, 짖을 뻔했네.
뒤를 돌아보았더니 그곳에는 낮에 본 고양이가 사뿐사뿐 서성이고 있었다. 어디로 들어왔나 싶어서 주위를 둘러보자, 발코니 쪽으로 선선한 바람이 흘러 들어와 커튼이 나부끼는 게 보였다. 저곳으로 들어왔구나.
말도 하는 고양이인데, 손 없이 문을 여는 정도는 간단하겠지. 하여튼 재주도 좋아.
“컹컹.”
“아무래도 네 힘으로는 찾아오지 못할 것 같아서 친히 데리러 왔단다.”
어머, 고마워라.
그런데 진작에 그럴 생각은 안 했니? 이 작고 연약한 강아지가 무슨 수로 너희 거처까지 알아서 찾아가겠니?
“이리 오련. 가련한 황녀님이 깨어나시기 전에 다녀와야지.”
고양이는 따라오라는 것처럼 뒤를 돌아서 발코니 바깥을 향해 걸어 나갔다.
나도 고양이의 꼬리를 쫓아서 발코니 밖으로 향했다. 비스듬하게 열린 문틈으로 빠져나가자 훗훗하던 오전과는 다르게 바깥바람이 아주 싸늘했다. 내가 이 길고 고결한 털을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면 상당히 추웠겠지.
“데려왔어, 더그.”
발코니에 드리운 커다란 그림자를 보고 나는 맹렬하게 짖을 뻔했다.
벌어진 입 속에 가까스로 비명을 꾹 눌러 넣은 나는 그림자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곳에는 아치볼트 대공이 유유히 밤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고마워, 아르튀르.”
그가 낭랑한 목소리로 말하며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내 말이 맞지? 이 강아지의 몸에는 영기와 생기가 동시에 떠돌고 있어.”
“정말이군. 아주 기묘한 강아지야.”
아치볼트는 나를 보며 골똘한 표정을 지었으나, 그 이유를 내가 알 턱이 있나요. 영기와 생기라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주둥이가 있어도 끙끙거리는 것밖에 할 수 없으니 애가 타서 미칠 노릇이었다.
“우선 강아지를 데리고 돌아가자. 이 야심한 밤에 외간 남자가 황녀궁을 얼씬거리는 건 보기 좋지 않아.”
아르튀르의 말에 아치볼트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선뜻 나에게 손을 뻗었다.
설마 나를 데려가서 어떻게 할 생각은 아니겠지?
내가 만약 애들레이드였다면 몸을 사리고도 남겠지만, 나는 그녀의 애완견이었다. 나에게 위해를 가한다고 해도 그가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별 탈은 없겠지.
나는 가벼운 생각으로 그의 손으로 다가갔다.
아치볼트는 부드럽게 나를 품에 안고서 훌쩍 발코니를 떠났다. 그러고 그는 대담한 동작으로 순식간에 황녀궁을 벗어났다.
훌쩍 담과 벽을 딛고 가볍게 뛰어오르는 그의 움직임은 범상치 않았다. 아무리 봐도 인간의 범주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
어쩐 영문인지 그가 지나는 곳마다 발걸음 소리조차 남아 있지 않다. 초소를 지키는 보초병들이 드문드문 보이는데도, 그들은 미처 아치볼트를 발견하지 못한 채 제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도 믿어지지가 않아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 사람, 평범한 대공님 아니었어?
쌩쌩 스치는 바람 소리에 털 결이 이리저리 휘날렸다. 아치볼트의 품에 안겨 있던 나는 천지가 격변하는 충격으로 한참 끙끙거렸다.
몇 번을 더 튀어 올랐을까? 그는 어느 건물의 발코니에 안착하고는 슬며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무례하게 모셔서 대단히 죄송했습니다. 아가씨.”
그가 나를 자신의 방 한가운데에 내려놓으면서 익살스럽게 말했다.
“이제 차근차근 뜯어보자고. 왜 이 강아지가 이리도 신묘한 생물인지 말이야.”
“그리고 우리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는 눈치야. 아르튀르, 이 아이에게 약간의 에테르를 나눠 줘.”
아르튀르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 고양이는 나른한 몸짓으로 내 몸에 자신을 여러 번 부대꼈다. 노곤한 체온과 부드러운 털의 감촉이 좋아서 아르튀르가 하는 짓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나는 그만 ‘깽’ 하고 짖어 버렸다.
아르튀르는 마치 가벼운 입맞춤을 쪼는 것처럼 내 주둥이에 자신의 주둥이를 부딪쳐 왔다.
아이고, 내 첫 뽀뽀! 내 첫 뽀뽀의 상대가 이런 까만 고양이가 될 줄이야!
깜짝 놀란 내가 진한 서러움에 컹컹 짖을 새도 없이 눈앞으로 작은 불빛들이 점멸했다.
오색의 빛깔이 내 시야를 점령하는 순간, 그 빛이 뿜어내는 아름다움에 잠시 발걸음이 주춤거렸다. 하지만 당황할 겨를조차 없었다. 왜냐하면.
“컹, 커, 컥! 크억!”
목, 목이 졸린다!
내가 목에 메고 있던 예쁜 리본이 갑자기 목을 인정사정없이 조르는 것처럼 꽉 끼었다.
“이런, 세상에.”
숨 막혀! 살려 줘!
나는 온 힘을 다해서 몸부림을 쳤다. 이대로 가다가는 리본에 교살당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다행히 내 숨이 끊어지기 전에 아치볼트가 다가와서, 얼른 내 목에 있던 리본에 달린 여밈쇠를 끌러 주었다.
“어억, 주, 죽을 뻔했네!”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설마 애들레이드가 내게 묶어 준 리본으로 죽을 위기에 처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두 팔로 바닥을 짚고서 거친 맥박을 달래던 나는 그제야 나에게 찾아온 변화를 눈치챌 수 있었다.
대공과 고양이 (2)
지금 이 고양이가 사람 말을 했다. 내 귀가 이상한 게 아니라면 고양이는 분명 저 주둥이로 인간의 언어를 불쑥 내뱉었다.
“멍멍! 왕왕!”
나는 놀라서 그만 크게 짖어 버렸다. 그러자 지나가던 시녀가 나에게 와서 쉿, 하고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렸다.
아니, 잠깐만요. 지금 이 고양이가 말을 했어요!
하지만 고양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야옹’ 하고 울면서 시녀에게 애교를 부렸다. 내가 안절부절못하며 끙끙거렸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 채 고양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고 저 멀리 가 버렸다.
설마 내가 잘못 들었나?
“인간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영족도 아니야. 그런데 왜 이런 짐승의 탈을 쓰고 있느냐?”
역시 잘못 들은 게 아니다. 이 고양이 말을 하고 있어.
하지만 이 녀석, 아주 교묘하게 사람들이 우리 곁으로 지나다니지 않을 때만 입을 연다. 이것 봐라. 또 하녀가 지나가니까 모르는 척 털을 핥고 있다.
“와왕?”
젠장, 내 주둥이로는 도저히 사람 말이 안 나와. 얘는 잘만 지껄이잖아. 대체 구강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 거야?
“후후, 애쓰는구나. 하지만 영족도 아닌 네가 사람 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할 거야.”
“끄응.”
“아무리 봐도 신기하네. 설마 여기서 너 같은 아이를 발견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
너만 알지 말고 나도 좀 알자, 답답하게시리.
고양이는 아까부터 내가 알아듣지 못할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내가 입이 없어서 말 못 하는 줄 아냐?
“아르렁.”
“지금 짖은 거니? 요 자그마한 것이 귀엽기도 하지.”
고양이가 유쾌하게 웃었다.
너나 나나 크기는 별반 차이 없거든? 몸무게로 따지면 내가 아마 너 이겨, 인마. 얼마나 살았다고 내 앞에서 어른 행세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21년하고도 10개월을 더 살았어.
“그렇다면 인간이 되어 볼 생각은 없니, 아가야?”
“컹?”
얘가 지금 뭐라고 했니? 인간?
“만약 인간이 되는 법을 알고 싶다면 오늘 늦은 저녁까지 아치볼트 대공에게 찾아오렴.”
그 말만 남기고 고양이는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지금 쟤가 나한테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말한 거지? 나 잘못 들은 거 아니지?
❄ ❄ ❄
“어머, 얘가 왜 이럴까?”
애들레이드야. 이거 놔라. 나 가야 해.
아치볼트의 고양이가 인간이 되고 싶다면 늦은 저녁까지 그를 찾아오라고 했다. 그래서 해가 지고 저녁을 먹은 뒤, 나는 애들레이드가 자면 몰래 나가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는 개잖아? 하하하, 손이 없어서 문을 못 열어. 하하하.
답답한 마음에 발톱으로 문을 좀 긁었는데 하필 그 소리에 애들레이드가 깨어나 버렸다. 평소에는 깨워도 잘 안 일어나는 애가 왜 오늘은 귀신같이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결국 나는 애들레이드의 손에 붙들려서 침대로 돌아왔다. 그러고 그녀가 다시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문으로 향하려는데, 침대에서 떨어지는 소리에 또 깨어나 버렸다.
수차례 이 짓을 반복하다 이제는 완전히 지쳐 버렸다.
“착하지, 베티.”
그래, 너도 착한 아이니까 그만 자라. 자라고. 그래야 내가 나가든 말든 하지.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다. 애들레이드가 잠들고 나면 무슨 수로 문을 열지?
그리고 나는 그것보다 더 커다란 난관에 봉착했다. 나는 아치볼트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 아이고, 망했다.
어느덧 내 등을 쓰다듬던 애들레이드의 숨이 고르게 변하게 시작했다. 색색 소리를 내던 애들레이드가 드디어 잠이 들었다.
그런데 그러면 뭐 하나. 얘가 잠들어도 나 혼자서 아치볼트의 거처까지 갈 수가 없다.
우선 애들레이드가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금살금. 그녀가 혹시라도 일어날까 봐 여러 번 뒤를 돌아보면서 침대 아래로 사뿐하게 내려앉았다. 이번에는 큰 소리 없이 무난하게 착지했다. 어휴.
“얘야, 아가야.”
엄마야!
하마터면 욕할 뻔…… 아니, 짖을 뻔했네.
뒤를 돌아보았더니 그곳에는 낮에 본 고양이가 사뿐사뿐 서성이고 있었다. 어디로 들어왔나 싶어서 주위를 둘러보자, 발코니 쪽으로 선선한 바람이 흘러 들어와 커튼이 나부끼는 게 보였다. 저곳으로 들어왔구나.
말도 하는 고양이인데, 손 없이 문을 여는 정도는 간단하겠지. 하여튼 재주도 좋아.
“컹컹.”
“아무래도 네 힘으로는 찾아오지 못할 것 같아서 친히 데리러 왔단다.”
어머, 고마워라.
그런데 진작에 그럴 생각은 안 했니? 이 작고 연약한 강아지가 무슨 수로 너희 거처까지 알아서 찾아가겠니?
“이리 오련. 가련한 황녀님이 깨어나시기 전에 다녀와야지.”
고양이는 따라오라는 것처럼 뒤를 돌아서 발코니 바깥을 향해 걸어 나갔다.
나도 고양이의 꼬리를 쫓아서 발코니 밖으로 향했다. 비스듬하게 열린 문틈으로 빠져나가자 훗훗하던 오전과는 다르게 바깥바람이 아주 싸늘했다. 내가 이 길고 고결한 털을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면 상당히 추웠겠지.
“데려왔어, 더그.”
발코니에 드리운 커다란 그림자를 보고 나는 맹렬하게 짖을 뻔했다.
벌어진 입 속에 가까스로 비명을 꾹 눌러 넣은 나는 그림자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곳에는 아치볼트 대공이 유유히 밤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고마워, 아르튀르.”
그가 낭랑한 목소리로 말하며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내 말이 맞지? 이 강아지의 몸에는 영기와 생기가 동시에 떠돌고 있어.”
“정말이군. 아주 기묘한 강아지야.”
아치볼트는 나를 보며 골똘한 표정을 지었으나, 그 이유를 내가 알 턱이 있나요. 영기와 생기라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주둥이가 있어도 끙끙거리는 것밖에 할 수 없으니 애가 타서 미칠 노릇이었다.
“우선 강아지를 데리고 돌아가자. 이 야심한 밤에 외간 남자가 황녀궁을 얼씬거리는 건 보기 좋지 않아.”
아르튀르의 말에 아치볼트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선뜻 나에게 손을 뻗었다.
설마 나를 데려가서 어떻게 할 생각은 아니겠지?
내가 만약 애들레이드였다면 몸을 사리고도 남겠지만, 나는 그녀의 애완견이었다. 나에게 위해를 가한다고 해도 그가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별 탈은 없겠지.
나는 가벼운 생각으로 그의 손으로 다가갔다.
아치볼트는 부드럽게 나를 품에 안고서 훌쩍 발코니를 떠났다. 그러고 그는 대담한 동작으로 순식간에 황녀궁을 벗어났다.
훌쩍 담과 벽을 딛고 가볍게 뛰어오르는 그의 움직임은 범상치 않았다. 아무리 봐도 인간의 범주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다.
어쩐 영문인지 그가 지나는 곳마다 발걸음 소리조차 남아 있지 않다. 초소를 지키는 보초병들이 드문드문 보이는데도, 그들은 미처 아치볼트를 발견하지 못한 채 제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도 믿어지지가 않아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 사람, 평범한 대공님 아니었어?
쌩쌩 스치는 바람 소리에 털 결이 이리저리 휘날렸다. 아치볼트의 품에 안겨 있던 나는 천지가 격변하는 충격으로 한참 끙끙거렸다.
몇 번을 더 튀어 올랐을까? 그는 어느 건물의 발코니에 안착하고는 슬며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무례하게 모셔서 대단히 죄송했습니다. 아가씨.”
그가 나를 자신의 방 한가운데에 내려놓으면서 익살스럽게 말했다.
“이제 차근차근 뜯어보자고. 왜 이 강아지가 이리도 신묘한 생물인지 말이야.”
“그리고 우리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는 눈치야. 아르튀르, 이 아이에게 약간의 에테르를 나눠 줘.”
아르튀르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 고양이는 나른한 몸짓으로 내 몸에 자신을 여러 번 부대꼈다. 노곤한 체온과 부드러운 털의 감촉이 좋아서 아르튀르가 하는 짓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나는 그만 ‘깽’ 하고 짖어 버렸다.
아르튀르는 마치 가벼운 입맞춤을 쪼는 것처럼 내 주둥이에 자신의 주둥이를 부딪쳐 왔다.
아이고, 내 첫 뽀뽀! 내 첫 뽀뽀의 상대가 이런 까만 고양이가 될 줄이야!
깜짝 놀란 내가 진한 서러움에 컹컹 짖을 새도 없이 눈앞으로 작은 불빛들이 점멸했다.
오색의 빛깔이 내 시야를 점령하는 순간, 그 빛이 뿜어내는 아름다움에 잠시 발걸음이 주춤거렸다. 하지만 당황할 겨를조차 없었다. 왜냐하면.
“컹, 커, 컥! 크억!”
목, 목이 졸린다!
내가 목에 메고 있던 예쁜 리본이 갑자기 목을 인정사정없이 조르는 것처럼 꽉 끼었다.
“이런, 세상에.”
숨 막혀! 살려 줘!
나는 온 힘을 다해서 몸부림을 쳤다. 이대로 가다가는 리본에 교살당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다행히 내 숨이 끊어지기 전에 아치볼트가 다가와서, 얼른 내 목에 있던 리본에 달린 여밈쇠를 끌러 주었다.
“어억, 주, 죽을 뻔했네!”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설마 애들레이드가 내게 묶어 준 리본으로 죽을 위기에 처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두 팔로 바닥을 짚고서 거친 맥박을 달래던 나는 그제야 나에게 찾아온 변화를 눈치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