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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일기 1권(3화)
2. 미래일기(3)


점점 가정이 현실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을 확인함과 동시에 넘쳐흐르는 흥분감에 일기를 잡은 손을 덜덜덜 떨고 말았다. 자신이 과거로 돌아왔다는 것, 그리고 이 일기에 지금부터 20년분의 미래가 적혀 있다는 것이 현실이 되어 가고 있었다는 것, 그것에 너무나도 기쁘고 흥분되었으니 할 말 다했다.
“역시, 정확해…….”
글이라는 것은 의외로 정확해서 말이나 기억보다 확실하다. 비교하자면, 뇌는 암시 따위로도 기억이 변질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해서 거짓기억을 만들어 버리면 그것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인식한다. 하지만 일기는, 즉 글은 지우고 수정하지 않는 것에 한에서는 변하지 않는다. 그 어떤 사실을 표현한 매개체보다 확실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세계에서 가장 절대적인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내가, 정확히는 이 일기가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에 지금부터 20년분의 미래가 적혀 있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만약 내가 과거를 바꾸면 미래는 어떻게 되지? 일기의 내용은 고정적이지만, 현실은 멈추지 않고 계속 변화하잖아.’
이와 같은 사실이 바로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쉽게 말하면, 우선 이 미래가 적힌 일기를 갖고 있는 것은 좋다. 주식 폭락이나 금값 상승, 최신가요들의 가사나 각 국가의 경제적 변화 등등 여러 가지 미래가 적혀 있었다.
한마디로 만약 이 중에 하나라도 세상으로 나간다면 경제적으로 핵폭탄이 터질 정도의 엄청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아니, 하지만 원래 현재가 바뀌면 미래도 바뀌는 것. 만약 이 일기를 사용해서 미래가 크게 바뀐다면, 이 일기의 내용은 그 한 가지 빼고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예를 들어, 현재가 바뀌면 미래가 바뀐다. 하지만 이 일기는 벌써 정해져 있는 미래의 물건을 현재로 가지고 온 것, 그러니 현재가 바뀌면 미래의 물건인 이 일기는 쓸모없게 될 수 있는 것이었다.
‘우선 여러 가지 실험을 해 봐야겠군.’
미래가 바뀌지 않을 만한 사소한 일부터 미래가 바뀔 만한 커다란 일까지 조금씩 일기의 상황을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그 실험이 학교는 아니다. 학교에서 한다면 준비가 부족하고 만약 친구들이 이 일기를 눈치채면 여러모로 귀찮아질 수 있으니 말이다.
‘집으로 가야겠어. 그렇다고 조퇴하기는…….’
안 그래도 일기를 확인해 보니 평균 98점대의 점수였다. 명문대 출신이었던 영원의 점수는 전국적인 수치를 보아도, 적응 기간을 계산해 보아도 평균보다 약간 높은 수치이기는 했지만, 이제부터 영원은 미래의 나태하고 무기력한 ‘황영원’이 아닌 새로운 ‘황영원’으로서 다시 새로운 삶을 살려고 마음먹었다.
미래의 자신처럼 쉽게 포기하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그런 무기력했던 자신을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비록 학교 하나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조그마한 일들까지도 바뀌어야만 했다.
‘야자 빼먹고 남은 시간은 3시간……. 우선 일기를 간단히 적용해 보자…….’
불끈 주먹을 쥐면서 모든 것을 불태울 듯이 눈을 부릅떴다.
그 순간,
툭!
“……?”
순간 무언가가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영원은 집중하던 도중에 그 집중을 깨어 버리는 것에 대한 짜증에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윽고 가볍게 털어 버리고 고개를 돌렸다.
“어…… 넌! 너!!!”
“뭐하냐. 너…… 나 까먹었냐? 10년 지기 친구 김희환이다. 엉?”
팔짱을 끼고 입꼬리를 올리며 썩은 표정을 지어 보이는 그는 다름 아닌 김희환이었다. 물론 순간 이 녀석도 과거로 돌아온 줄 알고 깜짝 놀라고 말았지만, 행동을 보니 그건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어찌 이 녀석은 과거나 미래나 한 치도 차이점이 없는 걸까? 인체의 신비다.
“뭐냐, 그 눈빛은. 죽고 싶어?”
또 생각에 빠진 나의 눈빛이 아니꼬웠는지 희환이 내려다보며 코웃음을 쳤다.
“죽여 보세요, 김희환 회장님.”
왜인지 옛날 생각이 나면서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띠고 말았다. 과거에 이렇게 많이 놀았었지…… 하는 생각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너 괜찮아? 차도남이나 과묵남으로 유명하던 네놈이 장난을 다치고 말이야.”
은근히 속을 뒤집어 놓는 말을 건네는 희환을 째려보며 일기를 슬며시 가방 안으로 집어넣었다.
“나도 청소년이거든? 난 장난치면 안 돼?”
“너는 아저씨야.”
정말로 진지하게 말하는 희환을 보며 약간 조소를 흘렸다. 장난스러운 말투였지만 그래도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이 섞여 있었다.
“사실…… 난 좀 바뀌려고 한다. 다시 그런 삶을 사느니 죽는 것이 더 나아…….”
“뭐? 웬…….”
순간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건네자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물어보려던 희환의 표정도 진지해졌다. 장난으로 시작된 일이었는데, 영원의 눈에서 그동안 본 적 없는 진한 눈빛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별난 놈.”

밤의 어두운 기운이 잔잔히 내려앉아 있는 골목길 사이로 영원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벌써 자정에 가까워서 그런지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자신의 발걸음 소리와 가끔씩 짖어대는 강아지의 울음소리뿐이었다.
“흐음…….”
영원은 한 번 숨을 내쉬며 손에 쥐어져 있는 빛바랜 공책을 바라보았다. 학교에서부터 자투리 시간이 생길 때마다 읽었던 이 일기는, 예상은 했었지만 정말 상상초월의 엄청난 물건이었다. 이 나이에 벌써 이런 것을 쓴 것이 놀랄 따름이었다. 쓰다 보면 질릴 것 같은 사소한 일상의 일들부터 도저히 고등학생이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은 시사와 주식시장, 경제 소식에 대한 일들까지 적혀 있었다.
“현대판 예언서군.”
말 그대로 예언서였다.
비록 자신에게 한정된 이야기들로 구성된 ‘일기’였지만, 이 일기의 위력은 정말 대단하니 말이다. 초능력 중에서도 예언 능력처럼 주변의 모든 일들을 미리 예언하는 그런 힘은 없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자신의 중심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이 적혀 있었다.
후룩!
아까 전에 샀던 탄산음료를 목 뒤로 털어 넘기면서 일기의 다음 장을 읽기 시작했다.
“만약 내 본신의 힘으로만 이곳에 왔다면 불가능했겠지만…….”
일기를 읽던 영원의 눈이 밝게 빛났다. 분명 주위는 어둠으로 잠겨 있었고 주황빛 가로등만이 아련하게 비춰지고 있는 그곳에서 영원의 눈빛은 이질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밝게 빛났다.
“어?”
그렇게 일기를 읽고 있는 순간,
읽고 있던 일기의 내용이 급변했다. 정말 말 그대로 글씨체가 점점 먹물처럼 번지기 시작하더니, 지렁이 같은 선을 이루며 내용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 극히 일순이었고, 영원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일기의 일부분만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부분이 변화했다는 것이다.
미친 듯이 일기의 페이지를 넘겨보아도 그 상황은 똑같았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 일기를 봐 왔고 일기대로 행동해 왔던 영원이었지만, 이런 변화는 있지 않았다. 경악성을 터트리며 눈을 크게 비벼 보았지만 변화하고 있는 일기는 그대로였다.
“뭐…… 뭔 일이 일어난 거지?”
영원의 미간에 물이 고일 정도로 깊은 골곡이 생겨났다.
“어…….”
그리고 그렇게 몇 초나 당혹함에 감싸여 있었을까, 영원은 순간 일기가 아닌 다른 것 때문에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휘이이잉!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에 누군가의 갈색빛 머리카락이 공원의 허공에 휘날리고 있었다.
그 긴 머리카락은 마치 비단실처럼 밤공기라는 틀에 수를 놓고 있었다. 그 장면이 아름답다 못해 환상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비추는 부드러운 빛들은 그 장면을 실로 몽환적이게 보이게 하고 있었다.
“앗!”
그렇게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잡으며 몸을 돌린 소녀의 외모에 영원은 순간 기겁하고 말았다.
경국지색(傾國之色).
만약 지금이 삼국시대였다면 지금 저 소녀의 외모는 나라를 위험에 몰아넣을 정도였다. 멀어서 그 형태가 잘 보이지는 않지만, 달빛에 비칠 정도로 피부는 하얗다 못해 투명했고, 이목구비는 마치 서양의 섬세한 조각상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아름다운 비율을 갖고 있었다.
실로 신비한 광경이었다.
어쩔 수 없이 넋이 놓아졌다.
“누구…… 지?”
아직도 바뀌고 있는 일기를 읽을 겨를도 없이 영원은 생각에 잠기고 말았다. 저런 미모가 만약 이런 동네에 있었다면, 영원이 모를 리 없었다. 이 동네가 그리 큰 마을도 아닐 뿐더러 만약 저런 아름다운 외모였다면 어떤 의미에서든 자신이 알 수 있었으리라.
그녀의 나이는 아무리 봐도 고등학생, 자신의 눈에는 어린 여자아이로 보이지만 그녀의 외모는 38살의 정신을 갖고 있는 자신이 보아도 놀라울 정도였다.
뚜벅. 뚜벅.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소녀가 한 걸음씩 자신에게 다가왔다. 다섯 걸음 정도의 거리에 소녀가 도착했을 때, 영원은 다시 한 번 헛바람을 들이마셨다. 멀리서 보아도 넋을 놓을 외모였지만 가까이서 보는 그녀의 외모는 더욱 놀라웠다.
눈을 몇 번 껌벅이던 영원은 간신히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안녕!”
가까이 다가오자마자 건네는 그녀의 한마디는 꽤나 활발해 보이는 성격이 물씬 묻어 나오는 인사였다.
“그래, 안녕…….”
정신을 차리기는 했지만 심장이 두근두근거리며 박동수를 점점 높이고 있었던 터라 영원은 길게 인사말을 하지 않고 그냥 입을 다물었다.
“음! 처음 보는 사람의 인사여서 그런지 대답이 시원치 않네∼”
밝은 표정으로 말을 거는 그녀를 보며 영원은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구면도 아닌 사람에게 넉살좋게 말을 건네는 그녀는 꽤나 성격도 좋아 보였다.
“혹시 뭐 곤란한 일이 있어? 아까 전에 곤란해 보이는 표정을 짓던데. 내가 도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아까 전에 바람이 불 때의 그녀의 표정은 무언가 곤란해하는 듯했다. 물론 순수하게 도울 수 있을까 해서 그녀에게 말을 건넨 영원이었지만, 지금 시간을 생각해 보자 엄청나게 오해의 소지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눈을 돌리고 말았다.
여자와 대화해 보거나 에스코트를 해 본 적이 없는 영원으로서는 지금 자신이 엄청난 잘못을 한 것이라고 착각하고 말았던 것이다.
“혹시 도와줄 수 있어?”
하지만 영원의 예상과는 달리 돌아온 대답은 괜찮다는 느낌이었다. 혹시 변태로 오해받을 것 같아 걱정하고 있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로 시원한 대답이었다.
“음. 시간이 조금 늦긴 했지만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며 돌아온 대답에 긍정을 했다.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니야. 길을 잃어서 그래.”
“길을?”
손목시계를 톡톡 두드리던 영원은 한쪽 눈썹을 올리며 소녀를 바라보았다. 아아, 역시 이 동네에서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더니, 역시 타지에서 온 사람이었던 걸까?
“내일이 노는 토요일이니까, 친척집에 놀러온 거야? 길을 잃어버리게…….”
“아니, 사실 이사 왔어. 그런데 잠시 산책 왔다가 길을 잃어버렸어. 종점 주위인데 말이지…….”
아, 종점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하지만 이 동네가 조금 복잡하다 보니 처음 오는 사람은 가끔씩 길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래, 그럼 우선 움직이도록 할까? 어차피 야자는 끝났고, 시간도 남았으니 말이야.”
그러려니 하는 심정으로 종점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영원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