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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일기 1권(5화)
2. 미래일기(5)
휘리릭!
아까 전 일어난 일기의 변화로 영원은 아직 이 일기에 많은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더 실험해야 했고, 더 연구해 봐야 했다. 거기다 이 일명 ‘미래일기’는 수소폭탄이나 핵폭탄 같은 물리적인 공격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더 큰 힘을 내포하고 있었다. 바로 정신과 문화를 바꿀 수 있는 것들. 물리적인 충격과는 다르게 영원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생명이 긴 것들이었다.
지금 이 일기에는 대략 지금부터 20년분의 주식, 시사, 주권, 정치 변화, 세계정세 등등의 엄청난 미래들이 들어 있는 것이었다. 개중에는 한 나라의 문화 조건을 급변시킬 만한, 그리고 다른 것들 중에는 미래에 발표될, 지금의 사람들에게는 파격적인 과학적 지식들도 있었다.
그것들이 만약 영원의 불찰로 밖으로 유출되면 말 그대로 세계라는 이름의 판이 뒤집어질 정도의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지금은 우선 실용적인 것만 생각하자. 우선…….”
영원은 아직 가능성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생각들을 뇌의 저편으로 날려 보냈다. 책상의 옆면에 있는 A4용지를 꺼내 영원은 끄적끄적 자신이 생각하는 가설들, 그리고 아까 전 일어났던 일의 원인을 적어 내려갔다.
“흠…….”
영원은 피곤함과 함께 형광등의 빛에 눈이 부셔서 형광등을 끄고 스탠드를 켰다. 형광등의 필요 없이 눈부신 밝은 빛과는 달리 스탠드에서는 눈에 부담이 안 가는 연한 빛이 터져 나왔다.
툭.
그렇게 A4용지에 몇 줄이나 썼을까, 영원은 가볍게 손의 경직된 근육을 이완시키며 일기를 폈다. 2장째가 됐을 때, 영원은 아까 나연과 만나기 전에 일어난 일이 사실은 엄청난 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한번 다시 회상해 보자. 일기의 내용이 바뀌었을 만한, 혹은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현상이 있었나?”
영원은 가볍게 야자 후의 일들을 회상했다. 학교에서는 특별한 일들이 없었다. 친구들은 모두 공부하고 있었고, 영원은 단순하게 일기들의 내용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있었다. 그 후 집으로 하교하던 도중에 나연을 만났고……. 아니, 생각해 보니 만나기 전에 일기의 내용이 바뀌었다.
“그럼…… 설마 한나연이 나의 미래를 바꿀 만한 인물이란 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나연과의 그 몽환적인 만남이 있기 단 몇 초 전에 영원은 일기가 변하는 것을 확인했다. 일기가 변하자, 그다음 영원은 나연과 만났다. 38살의 정신을 갖은 자신이 보아도 그녀는 넋을 놓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렇군……. 뭐, 내가 저런 아름다운 여자애랑 사귀거나 사랑을 나눌 일은 없고……. 동업자라도 되는 건가?”
깊게 생각해 보았지만, 자신이 그녀와 사귀거나 사랑을 나누는 것은 솔직히 염치가 없었다. 자신이 그리 못생긴 외모는 아니었다. 오히려 준수했지만, 나연과 비교하면 정말 심한 차이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분명 엄청나다고 생각한 일 같았지만 별거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영원은 나연과의 만남으로 그의 200권이 넘는 일기들의 내용이 모두 바뀌어 버렸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그 일을 가볍게 넘겨 버리고 말았다.
“그보다, 작업을 계속하자……. 내일은 짐을 옮기는 것을 도와주기로 했고, 아직 일기에 대한 일들도 밀려 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기 자신의 결정만으로 행동하는 무언가가 재미있고 두근거렸다. 게임을 해도, 공부를 해도, 운동을 해도, 하물며 대기업을 다니면서 몇 천만 원의 연봉을 받으며 살았어도 이렇게 흥분되기는 처음이었던 것이었다. 다시 태어난다고 다짐했고, 그렇게 할 것이지만, 이 두근거리는 마음은 꽤나 기분 좋았다.
그렇게 얼마나 작업을 계속했을까. 수능공부를 했었던 때보다 더 열정을 불태우며 작업을 계속하자 영원은 눈이 감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벌써 날이…….”
얼마나 집중을 했는지 벌써 시침은 3이라는 아라비아 숫자를, 분침은 12라는 숫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실 누군가가 보면 정신병자로 보일 만큼 중얼거리며 작업을 하던 영원이었다. 입도 따끔따끔 아파 왔고, 눈은 무언가가 압박하는 듯한 이질감이 들었다.
“으……. 졸립군. 그래, 우선 잠시 잠을 자자…….”
점점 감기는 눈은 이 미래의 일이 적혀 있는 일기가 있어도 어쩔 수 없었다. 영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세면을 하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잠을 청했다.
내일은 이제 정신적이 아닌 육체적인 노동을 해야 할지 몰랐고, 아직 이 시대에 적응되지 않아 피곤이 누적된 몸에도 휴식이 필요했다.
그렇게 누워서 얼마나 지났을까, 영원은 점점 멀어져 가는 의식을 뒤로하고 깊은 잠에 빠졌다.
3. 돈(Money)(1)
영원은 어째서인지 피곤한 몸과는 다르게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아침 6시 정각에 일어난 영원은 다시 잠을 자기 위해 침대에 기어 들어갔지만, 잠은 오지 않았고 결국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일어났다고 해도, 아침 6시라는 이른 시간에는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공부를 하거나 밥을 먹기는 싫었다. 영원은 간단히 몸을 씻은 후 추리닝을 걸치고 밖으로 나섰다.
“후욱!”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몸 안 깊숙이 차가운 아침 공기를 밀어 넣었다. 폐의 깊은 속까지 차오르는 차가운 공기에 정신이 확 깨며 맑게 변하였다.
봄이었지만 꽃샘추위라 그런지 날씨가 쌀쌀했다.
아직 뻐근한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가볍게 몸을 움직이며 스트레칭을 했다.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관절들이 소리를 자아냈다. 그렇게 근육을 조금씩 이완시킨 영원은 처음부터 빠르게 달리지 않고 가볍게 조깅하듯이 달렸다. 몸의 근육들이 긴장하였고, 조금씩 페이스를 올리자 숨이 점점 차올랐다.
“하아…… 하아……. 하아…….”
몇 분이나 달렸을까, 영원은 붉은색 해가 조금씩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새벽녘의 푸른색 공기가 점점 밝은 색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영원은 조깅을 멈춘 후 가볍게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 운동 시작 전과 시작 후에는 역시 심호흡이 가장 좋았다.
영원이 조깅을 하여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종점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H증권이었다. 이곳에 온 이유는 다름 아닌 영원이 지금부터 시작할 사업의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토요일은 장을 열지 않기 때문에 주식을 할 수 없지만, 영원이 이곳에 온 이유는 가볍게 다짐을 하기 위해서였다.
“주식이든 사업이든 대박을 칠 거야!”
자신은 아직 그 어떠한 힘도 없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말 그대로 그 어떠한 연줄도 없었고, 특별나게 잘난 재능도, 힘도 없었다. 그렇다고 가족이 권력이나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 무자본으로 본신의 힘으로만 성장해야 했고, 돈을 벌어야 했다.
거기서 영원은 주식을 하기로 결심했다. 물론, 주식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주식은 오직 시작점에 불과했다. 하지만 영원이 처음으로 자신만의 결정으로 시작하는 일이었다. 유치하기는 하지만, 굳게 다짐하고픈 영원이었다.
꾸욱.
아직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미래를 생각하며 영원은 주먹을 굳게 쥐었다.
“와, 대단한데?”
아침의 조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한 영원은 곧장 나연의 집으로 향했다. 꽤나 이른 시각이었지만 벌써부터 나연은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연의 집에 들어선 영원은 순수한 감탄으로 소리를 터트렸다.
외견만을 보아도 꽤나 훌륭한 집이었다. 하지만 내부는 정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응접실에는 영화에서나 보던 샹들리에가 걸려 있었고, 모든 가구들의 디자인은 세련되고 고풍적인 디자인으로 되어 있었다. 3층으로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은 임시로 짐을 놓아두고 있었는지 약간 어질러져 있었지만 그 모습만으로도 꽤나 아름다웠다.
“음. 아직 소개를 안 했지…… 이쪽은 내 동생이야. 한수정이라고 해.”
나연은 동생을 미소 짓는 얼굴로 소개시켜 주었다. 한수정이라고 불리는 소녀는, 딱 보아도 자신보다 1, 2살밖에 차이 나지 않아 보이는 귀여운 외모의 소녀였다.
나연의 동생이라는 것이 무색하지 않게, 나연의 신비한 느낌과는 다르게 단아하고 다소곳한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언니가 어제 집에 들어오면서 처음 사귄 친구라고 했던 게 선배였군요?”
“선배?”
“아아, 수정이도 서정 고등학교에 다닐 예정이야.”
“와아, 좋네. 자매 둘이서 모두 한 학교를 다니다니.”
“그렇네요. 좋아요. 혹시 언니가 사고 치지 않을까 감시할 수 있으니까요…….”
째릿.
한 번 나연을 째려본 수정은 다시 밝은 미소를 지으며 짐 정리를 위해 자리를 떴다. 순간 영원과 나연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짐 정리를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나연과 수정 자매는 포장 이사가 아닌 일반 이사를 했는지, 짐들은 대충 어딘가에 놓아져 있을 뿐 정리가 되어 있지는 않았다. 어제 어느 정도 정리를 했는지 응접실과 부엌은 깨끗하게 되어 있었지만, 아직 방들이나 계단은 어질러져 있었다.
처음으로 시작한 일은 우선 방별로 짐들을 나누는 것이었다. 그래도 영원은 남자이다 보니, 혹시 짐을 옮기다 실례를 범할까 봐 짐들을 나누는 것은 두 자매에게 맡겼다. 그다음 가구들의 먼지를 닦거나 TV와 컴퓨터의 선들을 연결하였다. 아직 위치가 제대로 잡혀 있지 않은 가구들은 영원이 힘을 써서 제자리로 옮겼다. 두 자매의 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이삿짐이 꽤나 많아서 처음에는 고생 좀 했지만, 수정이 꽤나 정리를 잘해서 그런지 같이 손발을 맞추며 차곡차곡 짐들을 정리해 나갔다.
“휴우. 일단락된 것 같지?”
“응, 그런 것 같아. 그보다 TV선이나 컴퓨터 선을 연결하는 것은 어디서 배운 거야? 서정 고등학교가 공고도 아닌데 말이야.”
“아……. 그건 우리 집 컴퓨터를 내가 조립했었거든. 그래서 그런지 당시에 그쪽 일을 조금 공부한 적이 있어.”
“와! 컴퓨터를 혼자서 조립해? 너 기술자 되려고?”
“언니, 사실 요즘에는 컴퓨터 조립하는 것이 대단하긴 하지만, 드물지는 않아요. 기술 배운 사람이 아니어도 노력만 하면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으응……. 그렇구나……. 그래도 TV선을 연결한 건 신기했어. 물론 우리가 신청을 해서 케이블이 미리 연결되어 있기는 했지만, 그 케이블을 다시 TV에 연결하는 건 어렵잖아?”
“아, 그건 내가 단순히 공부해서 그렇다니까 그러네…….”
영원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계속 의심을 제기하는 나연을 보며 화제를 돌렸다. 사실 영원이 미래에서 다녔던 회사는 케이블이나 컴퓨터 조립, 그리고 새로운 컴퓨터 부속품을 개발하는 회사였다. 그리고 영원은 그것의 아이디어와 새로운 장비를 개발하는 부서의 부장이었고 말이다.
대학은 이과 쪽의 물리학을 나온 영원이었지만 희환과 같은 곳에서 일을 하고 싶어서 그쪽의 일에 몸을 담갔고, 그 시작을 케이블 설치와 컴퓨터 수리하는 것으로, 발로 직접 뛰어다니면서 소비자들을 위해 일을 했었다.
그래도 그 일을 하다가 부장이 된 후 아이디어 개발 쪽으로 일을 바꾸어서 약간 걱정이 되었는데, 그래도 그때의 일이 몸에 익었는지 잘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언제 내왔는지 수정은 녹차와 과일들을 내왔다. 녹차의 색이 갈색인 것을 보니 우렁차나 보이차 종류인 것 같았는데, 혀를 휘감는 듯한 느낌과 오랫동안 코와 입에 남는 향기가 매력인 좋은 차였다.
“음……. 차 잘 끓이네. 언제 한번 끓이는 법 좀 알려 줘.”
후룩, 하며 한 번 차를 마시던 영원은 수정에게 미소를 지어 보냈다.
사실 영원도 차를 꽤나 즐겨 마시는 편이었다. 정말 피곤할 때는 우렁차나 쌍화탕을 마셨고, 홍차는 얼그레이나 카모마일 등을 마셨다. 녹차는 보이차와 우렁차 같은 발효차 등을 마셨다.
그렇게 많은 종류의 차를 마셨던 영원이지만, 수정이 끓인 차는 혀에 착착 감기는 것이 온도나 찻잎이 정말 좋은 것 같았다.
“고마워요, 선배. 찻잎이 좋아서 그래요, 찻잎이. 후훗.”
칭찬에 기분이 좋았는지 미소를 짓는 수정을 시작으로 영원은 나연과 수정 자매와 기분 좋은 담소를 나눌 수 있었다. 물론 신비하고 단아한 느낌을 풍기는 두 미녀와의 대화여서 좋은 점도 있었지만, 그녀 둘은 모두 좋은 이야기꾼이어서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는 영원으로서는 꽤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 후 어떻게 하다 보니 나연의 집에서 점심 식사까지 하게 된 영원은 나머지 뒷정리를 마친 후 두 자매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고 나연의 집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