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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일기 1권(6화)
3. 돈(Money)(2)


월요일이 되자 영원은 아프다고 선생님에게 거짓말을 하고 학교를 빠져나왔다. 아니, 확실히 꾀병은 아니고 나연의 집에서 심하게 일을 했는지 몸이 무거워서였다. 혹시 나연이 학교로 오면 축하해 줄 생각에 빠져나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오늘은 서정 고등학교 옆에 자리 잡고 있는 서정 중학교에서 행사를 열어서 그다음 날 오기로 했다고 했다.
이리됐든 저리됐든, 학교에서 빠져나온 영원은 곧장 주식을 하기 위해 각종 금융 기관과 시장이 있는, 이 동네의 시내라고 말할 수 있는 종점 앞으로 향했다.
띵동!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가끔씩 하락하기도 하고, 상승하기도 하는 큰 전광판이었다. 전광판 앞에는 은행처럼 벤치가 놓여 있었는데, HTS(Home Trading System)을 하지 않는 사람들 몇 명이 직접 투자하는 곳으로, 와서 전광판을 바라보며 그들 자신들이 갖고 있는 하얀색 종잇조각과 대조해 보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전광판의 숫자가 바뀌는 일이 일어나면, 가끔씩은 탄성이, 가끔씩은 탄식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안 돼!”
그렇게 가끔씩 변할 때면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오기도 하고.
“아! 아아아! 됐다! 됐어!!!”
라고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대부분 조용하게 전광판을 뚫어지도록 쳐다보기는 했지만, 정말로 대박을 터트리거나 정말로 쪽박을 터트리는 사람들은 희비의 표시를 했다.
“이게 주식…….”
태어나서 처음으로 주식 투자를 하기 위해 들렀다. 물론 어느 정도 주식에 대한 지식은 있었지만 주식처럼 확실치 않은 미래에 무언가를 건다는 것이 싫어서 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당시에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무엇보다 확실하니까.
영원은 무슨 표시인지 모르겠는 전광판을 여기저기 살피면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물론 어느 정도의 지식은 갖고 있었다. 매입, 매각 등등 정말 필요한 최소의 지식만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이 고요한 살풍경의 모습들이 약간은 신기하게 느껴졌다.
사실 지금 손에 들고 있는 통장은 아버지의 것이었다. 아버지께서 필요하면 용돈으로 쓰라는 의미로 달마다 조금씩 넣어 주시는 통장이었다. 사실 나중에 대학 가면 그때 자동차도 사고, 대학 입학금으로 사용하려고 모아 두고 있었던 돈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들은 필요 없으니, 대략 750만 원 가까이 저금되어 있는 이 거금을 주식에 투자하려고 했다.
풀썩.
490번이라고 적혀 있는 번호표를 뽑고 대충 의자에 몸을 던졌다. 학교를 결석해서 희환에게 걱정을 끼친 것은 마음에 걸렸지만, 솔직히 가장 필요한 과목이 적은 월요일은 대충 아프다는 핑계로 빠져도 상관이 없었다. 여차하면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뽑아 와도 되는 일이었고 말이다.
사실 영원이 직접 이곳에 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보통 HTS를 해야 수수료도 적고, 여러모로 편할 수 있다. 물론 영원도 후일에는 HTS를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처음 하는 주식 거래, 그래도 마음을 다잡자는 생각으로 직접 이곳에 왔다.
“오, 얘야, 주식하러 온 거니?”
“네? 아…… 네, 그런 셈입니다.”
갑자기 옆을 지나가려던 중년의 남성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옆자리에 풀썩 앉았다. 순간 당황해서 미간을 찌푸렸지만 금세 표정을 정리하고는 번호를 가리키는 번호판으로 눈을 돌렸다. 그런 행동 때문에 영원은 옆의 남자가 엄청나게 거만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어린이 주식? 그래, 요즘 애들은 주식도 한다더구나. 그래서 뭐에 투자하려고 하니?”
“…….”
“아니야? 그럼 부모님 대신에 온 거니? 그럼 내가 추천 하나 해 주지. 저기 저 왼쪽 맨 아래에 상승기류를 타고 있는 좋은 중소기업이 하나 있거든?”
여기저기 거슬리는 말이 들리자 눈을 살짝 감고 다시 떴다. 물론 부모님 명의는 맞다.
하지만,
띠링!
“490번 고객님!”
정말 나이스 타이밍이라고 부를 정도로 눈을 뜨자마자 보인 것은 왼쪽에서 맨 끝 칸에 있는 490이라는 초록빛의 번호였다.
“어디를 가니? 거긴 청소년 주식이…….”
“아저씨.”
“왜 그러니? 후후후.”
거만한 웃음을 흘리는 중년 남성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을 건넸다. 아까부터 거만함의 극치를 보이는 이 남성은 정말 나잇값을 못하였다. 그리고 아까 전 그 중소기업이 상승기류를 탄다고 했었나?
“잘 봐요. 아저씨가 말한 그 중소기업이랑 그 반대편의 K기업.”
손가락으로 전광판의 두 가지 자리를 가리키면서 주식원의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어느 정도 젊은 여성은 순간 한쪽 눈초리를 올리며 의아해했지만 이윽고 한 번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식하러 오셨나요?”
“네. 빨리빨리해야 하니까, 여기 이 메모에 적힌 대로 이 750만 원을 각각 250만 원씩 분배해 주세요. 그리고 수수료는 영수증 끊어 주시고요.”
“…….”
통장과 메모를 건네자 자리에 앉아 있는 담당자 여성은 미간을 심하게 찌푸렸다.
물론 그녀와 손님들이 굳이 힘을 내서 친분을 만들 필요는 없지만 지금껏 이곳에 입사해서 이렇게 대충대충, 그리고 건방지게 일방적으로 말을 진행하는 자는 처음 본 것이었다. 그것도 개념 없어 보이는 고등학생이!
기분이 나쁜 것은 둘째 치고 소년이 건넨 메모에 적힌 기업들은 지금 모두 추락세에 있는 기업들이었다. 그리고 750만 원을 한곳에 모두 넣는 것이 더 이득일 텐데 여러 곳에 분배하는 것이었다.
“여기 수수료와 명세표를 받으십시오. 좋은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가볍게 인사하고 떠나는 소년을 보며 은행 직원은 기분 나쁜 듯이 혀를 찼다. 요즘 중고등학생들이 매우 예의가 없고 자신이 대단한 줄 알고 있다고 들은 적은 있었지만 저건 정말로 중증이었다.
“쪽박이나 치고 눈물이나 흘려라.”
라고 저주를 하며 직원은 다음 번호판을 올렸다.
하지만 그 순간,
“어?! 어어!!!”
돈 세는 소리와 상담하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던 이곳에서 갑자기 의아함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물론 직원들도 왜 그런지 궁금해하며 자리에 있는 컴퓨터로 실시간 주식을 켰다. 무언가 큰일이 터졌다는 생각에 그런 것이다.
“어? 어어!!!”
그와 동시에 직원들에게서도 무언가 웃기다고 표현할 수 있는, 몇 명만이 들을 수 있는 나지막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건 바로 전 490번 고객을 상담하던 직원에게서 더더욱 크게 터져 나왔다.
아까 전 소년이 투자한 3개의 기업. 조금씩이지만 불경기를 타고 하락하던 그 기업들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것이었다. 그것뿐일까? 그중 상승기류를 타고 있다고 예상되던 기업은 50%라는 말도 안 되는 주가 폭락을 보여 주고 있었다.
지금 직원들이 모두 돈을 모아서 투자한 기업들이 엄청난 폭락을 보이자 직원들은 어쩔 수 없이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소년이, 즉 영원은 그것에 투자하자 않으면서 자신이 투자한 3가지 기업만으로 80%의 이윤을 만들어 냈다.
‘뭐…… 뭐야, 저 아이…….’
덜덜 떨리는 눈을 비비며 지금 자동문을 나가고 있는 소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순간 소년의 입가에서 조소 같은 미소가 흘러나왔다.

“80%라……. 뭐 이 정도면 괜찮군. 한 기업에만 집중 투자했으면 더 받았겠지만, 혹시 처음 하는 주식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받으면 귀찮으니까 이건 이것대로 상관없어.”
입맛을 다시며 컴퓨터 화면에 보이는 주식 상황을 일일이 체크했다. 물론 투자한 모든 항목은 비약적으로 높아져서 놀라울 정도로 많은 이득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 750만 원 전부를 가장 최고조로 상승했던 중소기업에 모두 투자했다면 더욱 큰 이득을 볼 수 있었으리라.
물론 그렇게 하지 않은 것에는 모두 다 이유가 있었다. 조심해서 손해 볼 일이 없다고, 돈을 벌기 시작부터 조심을 한 것이었다.
만약 정말 몇몇 사람들만 예측할 수 있었던 하락 중이었던 중소기업의 상승을 알아챈 소년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눈길을 끌기 마련이었다. 거기다 주식의 눈이 영원에게로 향한다면 점점 더 미래일기를 사용하기가 힘들어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750만 원을 3곳에 분배함으로써 약간이나마 눈길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 영원이었다.
“이제부터 HTS를 할 것이니 상관도 없지만…….”
내일까지면 조금 더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영원은 시끄러운 기계음을 자아내는 컴퓨터의 전원을 꺼 버렸다.
컴퓨터는 정말 쓰는 일이 없어서 필요한 부품만 싸구려를 사서 직접 조립을 했더니, 열기도 잘 빠져나가고 작동도 잘되었지만 이 잡음만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언젠가 한번 컴퓨터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영원은 눈을 감고 침대로 몸을 옮겼다.
“하압!”
퉁!
이불에 몸을 던진 후 눈을 살며시 감았다. 아직 날이 지지 않아서 커튼 뒤로 내려오는 햇빛이 눈을 간질였다. 사실 영원은 지금 신경과민에 걸릴 정도로 조심성을 기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변수를 염두에 두고, 만약 자신 외에 미래에서 온 사람이 더 있을 수 있거나, 혹은 영화에서만 보던 뒷세계의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에 눈치를 채지 않을까, 하는 것들이었다.
물론 지금 당장 일기를 훑어보았을 때 그런 비슷한 내용은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일기는 수시로 바뀐다. 그리고 그 양이 양이다 보니 모든 것을 이해하거나 인식하는 것에는 많은 수고가 들었다. 그 좋은 예가 한나연과의 만남이 아니던가.
띠리리링! 띠리리링!
“우욱…….”
얕은 잠에 빠져 있던 영원은 정신을 일깨우면서 컴퓨터 옆에서 시끄러운 벨소리를 자아내는 휴대폰을 원망하듯이 잡았다. 여기저기 때가 껴 있는 휴대폰을 보고 한 번 한숨을 쉰 후 통화버튼을 눌렀다.
―왜 안 나와.
아, 이 목소리 잘 알고 있었다. 듣자마자 이제부터 귀가 따가워질 것을 예상하고 전화기를 살짝 귀로부터 떼어 냈다.
―야! 학! 교! 나! 오! 라! 고! 네가 무슨 은둔병 걸린 히키코모리냐? 그런 거야? 요즘에는 반 친구들하고 친해진!
그래도 친구라고 전화를 해 준 것은 고맙지만, 내가 아프다는 사실은 완벽히 거짓으로 믿고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아파서 못 나온다는 이야기를 안 했을 리가 없는데 이 녀석은 그것을 믿지 않는 것이었다.
“나…… 아프다고…….”
목젖을 강하게 잡으면서 허스키한 소리를 스피커에 흘렸다. 조금 기침을 섞어 주는 센스도 첨가했지만.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하네.
단번에 알아챘다. 지금 시간은 열두 시 십 분. 지금 학교를 간다고 하더라도 점심 먹고 2∼3가지 수업을 들은 후 야자를 끝내고 하교할 뿐이었다. 아니, 그보다 절친이라는 놈이 친구의 말 따위를 안 믿다니.
“나 할 일 있어. 집에 병문안도 오지 마. 어어어! 알았어. 끊어.”
단번에 그리고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건네 놓고 배터리를 뽑아 버렸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 한 이 거머리 같은 녀석이 100% 집으로 쳐들어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만약 집 안으로 단 한 발자국이라도, 아니 집까지도 필요 없다. 대문까지라도 허용했다간 나는 짧은 휴식도 못 취하고 고통스럽게 희환의 잔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었다.
“오늘 안에 일기의 사각지대 등등을 밝혀 내겠어.”
아버지 서재의 문을 다시 열고 들어가면서 영원은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수십 권의 공책들에게 눈빛을 주었다.
영화 ‘데스노트’처럼 정해진 룰이 있어 사용 방도가 많은 공책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보면 대단한 힘을 갖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이 공책은, 쓰는 방식에 따라 그 어떤 물품보다도 수백, 수천 이상의 변화와 힘을 갖고 있을 것이라 영원은 예상하고 있었다.
“자자, 시작해 볼까?”
손의 관절을 경쾌하게 꺾으면서 검은색 가죽의자에 몸을 맡겼다. 벌써 희환과의 대화로 얕은 잠에서 깬 영원의 피곤함은 날아간 지 오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