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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일기 1권(7화)
3. 돈(Money)(3)
째깍. 째깍.
“후우우…….”
그렇게 미친 듯이 일기를 읽으며 실험을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영원은 간신히 숨을 고르며 시계를 보았고, 기겁하고 말았다.
10시간. 시계를 보니 10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서 기계처럼 모든 것을 다해 보았던 것이었다. 지금까지 이런 집중을 해 본 적이 없는 영원으로서는 매우 놀랐다.
다른 사람이 보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얻은 것은 조금, 아니 많이 있었다.
조금 아깝지만 필요 없는 내용의 공책을 찢어서 그 미래를 바뀌게 해 보는 실험, 만약 미래가 바뀌었을 때 일기의 내용이 변화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 등등 여러 가지 이 ‘미래일기’의 사각지대와 사용 방법을 알게 되었다.
“의외군…….”
실험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영원은 사실 이 일기라는 것이 실험 전까지만 해도 꽤나 불완전하다고 느꼈다. 금방금방 내용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찢어 버리면 효과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그저 미래일기에 있는 페널티라고는 미래가 바뀌었을 때 일기의 내용이 30초 후에 바뀐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책 중 한 페이지를 찢어서 소유하고 있을 때, 일기로부터 떨어져 있어서 미래가 바뀌어도 내용이 바뀌지 않을 듯싶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아주 시원하게 바뀌었다.
이렇게 별로 큰 제한이 없는 일기였지만, 사실 아주 치명적인 결함이 하나 있었다.
“제기랄……. 너무 양이 많잖아.”
20년분. 본래 30년분의 공책이었다. 물론 과거를 적어 놓은 공책들은 쓸모가 없지만 버리기는 아까워서 어디다 숨겨 놓았다.
그렇게 20년분의 공책의 반 정도는 아버지의 금고와 방에 있는 자물쇠가 달려 있는 캐비닛에 넣어 놓았지만, 전체의 1/4 정도밖에 보관하지 못했다.
결국 남아 버린 3/4 정도 양의 일기……. 물론 가히 10년도 더 지나야 볼 일이 생기는 일기였긴 하지만, 남이 이 일기의 존재를 알아챌 수 있으니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사실 가방에 넣었을 때 영원은 일기의 양이 그리 많지 않은 줄 알았다. 하지만 계산해 보니, 일 년에 12개월, 그게 20년이니 240개월분의 일기가 있는 것이었다.
물론 20년하고 조금 더 있으니 정확히는 240하고도 3개가 남는다. 그리고 보통 한 권에 두 달분의 내용이 적혀 있다. 그럼 양은 120권 남짓. 모두 보관하고 나서도 30권이란 양이 남는 것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말이 일기를 쓰는 공책이었지 한 권 한 권이 마치 가계부처럼 묵직한 부피의 장부처럼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어디다 맡길 수도 없어……. 내가 숨겨야 해.”
편집증같이 신경과민으로 보이는 영원이었지만 충분히 이렇게 행동해야 했다.
물론 그가 보았던 판타지 소설이나 만화의 주인공들은 과거로 돌아왔을 때 갖고 온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곧장 기억이나 능력만으로 수억 수천억을 벌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 소설이었다.
만약 갑자기 고등학생이나 젊은 2, 30대의 사람이 주식이나 사업으로 수백억을 벌었으면 당연히 의문을 사지 않겠는가. 그리고 세간의 이목을 끄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다 영원은 기억으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닌 일기라는 물질이 있는 것이다. 만약 일기가 모두 누군가에게 강탈되면 그걸로 끝. 다른 사람이 남용해서 세계의 경제가 멸망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물론 영원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물론 대부자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이 일기로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알고, 그것을 이용해 다른 기업을 짓누르고 유아독존처럼 세계를 움켜쥘 생각은 없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아.”
너무나도 집중하고 있었는지 간신히 아련하게 들려오는 시계의 벨소리에 정신이 깨어났다. 벌써 새벽 1시었다. 분명 10시간 동안 알아낸 것을 확인하고 고민에 빠져 있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벌써 3시간이나 지난 것이었다.
집중을 한 것은 기분이 좋고 기쁜 일이었지만 너무 늦은 시간 때문인지 영원은 눈이 조금씩 감겼다.
‘시간은 많아. 20년이란 시간 동안 내가 얼마나 벌 수 있을까. 그게 관건이다.’
피곤함에 못 이겨 몸을 질질 끌듯이 방으로 돌아간 영원은 그렇게 한 줄기의 생각만을 남기고 잠에 빠졌다.
약간 눅눅한 느낌과 어두운 느낌이 동시에 몸을 괴롭히는 듯한 뒷골목. 은행의 뒤쪽의 주차장 옆에는 정말 바퀴벌레가 너무나도 좋아할 만한 기분 나쁜 환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두 남녀가 서 있었다.
“그 공책 좀 뺏어 줄래요?”
“지급하시는 돈이 얼마만큼인지에 따라 모든 일을 다해 드립니다. 그것이 해결사이니까요.”
그곳에는 두 남녀가 불길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여성 쪽은 영원을 담당했었던 주식 투자 회사의 직원이었다.
사실 영원의 담당 여직원은 무언가 기분이 묘한 것을 느끼며 영원의 정보를 흥신소에 의뢰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영원이 언제나 일기 같은 낡은 공책을 HTS를 할 때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았다고 한들 그녀가 젊은 고등학생의 일기를 강탈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담하거나 강력한 힘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흥신소에 의뢰를 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보자, 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해결사’라는 곳을 추천해 주었다.
이리됐든 저리됐든, 그 여직원은 주선의 장소가 이런 더럽고 축축하고 냄새나는 곳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표정을 찌푸리며 발로 애꿎은 땅을 몇 번 찼다.
그것을 그 검은색 신형의 남성은 재밌는 것이라도 보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저희의 번호는 어떻게 아셨지요?”
남성이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물어보았다. 어두워서 그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길게 찢어진 입꼬리만은 기분 나쁠 정도로 잘 보였다.
“돈을 좀 썼어요……. 그보다, 할 거예요? 말 거예요?”
남성은 조소를 터트리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하지만 불은 붙이지 않고 그저 그 어두운 공간을 음미하듯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
“저희 ‘해결사’는 돈만 받으면 뭐든지 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좀 비쌉니다.”
말끝을 길게 늘어트리며 남성은 미소를 거두고 발걸음을 뒤로 옮겼다.
그는 조금 더 깊숙한 골목길로 들어가서 10층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금발의 한 외국인 남성에게 영어로 여직원이 의뢰했던 것을 가볍게 축약해서 전했다.
그리고 그 외국인 남성은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고는 한 번 고개를 끄덕이며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소에 있는 서정 고등학교를 향해 망원경을 꺼내 들었다. 그런 그의 눈에는 창문 사이로 보이는 아무런 위기의식이 없어 보이는 태평한 한 고등학생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인간의 몸이란 너무나도 귀찮다. 정말로 귀찮다. 그것도 엄청나게.
“죽겠어…….”
“왜 그래?”
“철야했다. 새벽 1시에 자서 3시에 일어나서…….”
누구에게 말하는지도 잘 인식이 되지 않았다. 정신이 몽롱해서 그냥 입만 떠들 뿐이었다. 오늘은 학교 수업 받기는 글렀다. 머리가 몽롱한 것을 뛰어넘어 어지럽기까지 하다.
아아, 희환아, 너 분신술을 할 수 있는 거였니? 왜 여러 개로 분해돼서…….
“괜찮냐?”
지금 어딘가에 정착 못하고 빙글빙글 돌고 있는 영원의 눈동자 때문인지 등을 툭 치면서 말을 건넸다. 하지만 수업 시작 1분 전이란 것을 확인한 희환은 영원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자신의 자리로 튕겨져 나가듯 뛰어갔다. 아아, 역시 범생의 모범이 되는 모습이었다.
‘거참…….’
책상 밑에 있는 한 권의 낡은 공책을 꺼내면서 영원은 탄식을 터트렸다. 물론 이것 때문에 내 인생은 180도 바뀔 것이다. 돈도 벌 것이고, 세상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으리라…….
“빨리…… 점심시간이 될지어다…….”
마치 기도하는 신부처럼 손바닥을 모아서 그것에 고개를 처박는 영원은 점점 사라져 가는 의식을 원망하며 약간의 잠에 빠졌다.
띵! 동! 댕! 동!
“으으윽…….”
1교시 수업이었으니까 분명 2교시 수업종이리라…… 라고 생각했지만, 시계를 본 영원의 표정이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벌써 시간은 12시 20분! 점심시간이 시작이었다.
보통 학교는 당번만 움직이면 될지도 모르겠지만 이 학교는 달랐다. 반에서 5분 남짓 걸리는 식당이 있는 것이었다. 거기다 도착하면 지금쯤 같은 이름의 중학교에서 점심시간이 시작될 것이다.
안 그래도 혼자 먹으면 쓸쓸한데 거기다 중학생들이 옆에 있으면 시끄럽고 쪽팔려서 결코 못 있을 것 같았다.
“됐다, 됐어. 매점이나 가자.”
지금쯤이면 약간 사람이 비어 있을 시간이었다. 가서 빵이라도 하나 사서 먹으면 충분할 것이었다.
가볍게 과일음료수와 피자빵 하나를 사서 반으로 발길을 옮겼다. 여기저기서 발을 구르는 소리나 장난치는 소리, 가끔씩 선생님들이 화내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너무나도 평화로운 학교였다. 아니……. 평화롭지는 결코 않지만 평범한 학교였다.
“엇?”
영원은 반에 들어서자마자 몸이 굳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는 행사여서 못 왔다고 했다. 그렇다면 오늘은 온다는 소리였다.
“안녕∼”
특유의 귀에 착착 감기는 목소리로 길게 늘어트리며 인사하는 것은 다름 아닌 한나연이었다. 순간 그녀는 나의 손에 들려 있는 빵과 과일음료수를 보고는 웃었다. 왜 웃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 모습이 꽤나 아름다워서 그냥 조용히 있기로 했다.
“어떻게 오늘은 왔나 보네?”
“그럼, 수정이도 왔어.”
“너 근데 용케 조용히 왔네? 혹시 오다가 학교 사람들하고는 만나지는 않았어? 선생님들 말고, 애들.”
“응. 오늘 수요일이니까 모두 밥 먹으로 뛰어갔나 봐. 그리고 난 후문 쪽의, 식당과는 정반대 방향의 계단으로 왔으니까 날 못 봤을 거야. 근데 왜?”
태평하게 묻는 그녀의 말에 영원은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야 당연히 우리 학교 남자를 포함한 여자들이 그녀의 얼굴을 보면 큰일이 난다. 이 정도의 미녀가 우리 학교에 우리 학교의 교복을 입고 등교를 했는데 화제가 안 된다면 말이 안 되니까 말이다.
만약 들켰다면 지금쯤 이 조용한 고등부 3학년 6반은 시끄럽게 수십……. 아니, 어쩌면 수백 명의 사람이 있을지도 몰랐다.
“몰라도 괜찮아. 어차피 한 시간 뒤면 알게 될 건데 뭐……. 쿡.”
영원은 이제 한 시간 뒤에 일어날 난장판을 생각하며 조소를 흘렸다. 아마 수정의 반에서도 그럴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더욱 웃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연은 기분이 이상한 듯 한 번 고개를 갸웃거리며 흘려 버렸지만, 영원은 이제 곧 일어날 난장판을 생각하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