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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일기 1권(8화)
3. 돈(Money)(4)


그리고 찾아온 점심시간과 5교시 사이의 15분 남짓의 쉬는 시간.
결국 영원이 예상했던 사단이 터졌다.
“와! 정말 예쁘다…….”
“나 고백할래.”
“서양 인형 같아…….”
“여자가 봐도 반해 버릴 것 같아…….”
3학년 6반의 앞 복도를 꽉 메운 백 명이 넘는 인파. 그것은 다름 아닌 나연을 보기 위해 모여든 고등부 3학년들이었다. 간간이 유명한 고3들과 고1들도 눈에 들어왔을 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나연의 외모에 놀라며 감탄사를 터트리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나연의 주위에는, 아니 반 안에는 한 명도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연과 영원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나눌 뿐 그 아무도 반에 들어오지 못했다. 고백한다고 말하는 애들도 정작 반 안으로는 들어오지 못하고 반의 창문으로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예전에 영원이 나연을 처음 만났을 당시와 같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 영원은 가 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1학년들의 층에도 수정을 보며 같은 상황이 펼쳐지고 있으리라.
“어때? 내가 조금만 있으면 안다고 했지?”
“이 학교는 전학생 하나 때문에 이렇게 몰려오는 거야? 도대체 이유가 뭐지?”
자신의 외모의 대단함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내숭을 떠는 것인지 나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말을 길게 늘어트리며 영원은 크게 기지개를 폈다.
딩! 동! 뎅! 동!
그에 맞춰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점심 쉬는 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물론 6반의 앞에 있었던 인파는 식사를 허겁지겁 끝내고 달려온 학교 주임선생님에게 해산당했다. 그리고 어떻게 된 일인지 나연은 6반으로 전학을 오게 되었고, 수정 또한 1학년 6반으로 전학 오게 되었다고 한다. 후일에 들은 이야기였는데, 수정의 반 앞에서도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났었다고 한다.
그렇게 한바탕 풍파가 몰아치는 화요일의 학교에서의 시간이 지나자, 영원은 간신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학교를 땡땡이치고 있는 영원은 기분 좋은 월요일의 아침을 매우 바람직하지 못하게 보내고 있었다.
“음…… 아직 1분 남았구나.”
전형적인 폐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영원의 머리카락은 지금 새들의 둥지처럼 붕 떠 있었고, 책상 위에는 군것질거리와 라면, 그리고 콜라가 놓여 있었다.
사실 영원이 이렇게 망가진 이유는 다름 아닌 주식 거래를 위해서였다. 본디 주식이라는 것이 1분 1초에 좌우되고, 그렇게 할 때마다 수만 수천 수억이 오고 갔다. 때문에 영원은 가장 최고조일 때 주식을 팔 수 있게 컴퓨터 앞에 앉은 채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버티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버티는 것이 여간 지루하고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밥도 컴퓨터 앞에서 먹고 되었고, 입이 심심하니 과자도 먹게 되었다.
“지금이다!”
타악!
―매각 완료되었습니다.
영원은 단 1분 1초도 틀리지 않고 엔터 한 번에 주식을 매각하였다. 지금 벌게 된 돈은 수백만 원이었다. 단지 엔터 한 번이었지만 영원은 엄청난 돈을 벌게 된 것이었다.
영원은 주식시장의 전체적인 경향을 한 번 살핀 후 침대에 몸을 던졌다.
“하암!”
영원은 한 번 기지개를 피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늦잠을 자기에도 너무 이른 시각이었고, 지금부터 무얼 하기도 애매했다. 학교도 땡땡이를 쳐서 등교하기도 애매했고, 밥을 먹기에는 아까 전 라면이 아직 소화되지 않았다.
‘일기나 한번 확인해 보자.’
자신의 단 하나뿐인 밑천인 일기를 침대 책상 위에서 꺼내 올려서 펴 보았다. 물론 아까 전 주식 매각을 하기 직전에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았던 영원이었지만, 또 다시 일기의 내용이 변화할 수 있는 노릇이기에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기로 하였다.
“음?”
순간 영원은 일기에 무엇인가가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하고 장이 닫히기 직전에 튕겨져 나가듯 다시 HTS를 켰다.
“역시!”
영원은 무언가를 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안 그래도 필요로 했던 것을 아주 쉽게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영원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최근 초고속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고 있는 한 중소기업의 그래프를 진득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 세계에는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여러 가지 뒷세계가 암중에 존재하고 있었다. 세간에도 잘 알려진 깡패, 야쿠자, 삼합회, 마피아 등등에 대한 것들도 있지만, 그런 것들 말고도 여러 가지 세계가 있다. 만약 그것에 건들거나 접촉하면 그것으로 끝. 그 세계에 잡아먹히거나 그 세계를 휘어잡는 그런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정말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는 철칙이었고, 사실이었다.
후루룩.
램프가 은은한 빛을 뿌려 대고, 기분 좋은 어둠이 깔려 있는 곳에 한 남성이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곳은 술집이었다. 하지만 종로의 시내를 지나다니거나 유흥가를 지나다니면 흔히 볼 수 있는 바와는 다르게 조용하고 고요한 느낌만이 맴돌고 있었고,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분위기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한 남자가 술을 음미하고 있었다. 그의 눈매는 꽤나 얇았는데, 그 얇은 눈 사이로 보이는 날카로운 눈빛은 그가 그리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했다.
후룩.
지금 그가 마시고 있는 술은 독하기로 유명한 러시아의 전통 국민주인 보드카였다. 그는 무언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목 뒤로 그 뜨거운 술을 탈탈 털어 넘기고 있었다.
“어이! 너!”
“…….”
고요한 사색을 즐기며 술을 마시던 남성의 귀에 시끄러운 잡음이 들려왔다. 음원은 이 바의 정문으로 보였는데, 그의 미간의 골곡이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자, 여기 있습니다. 만날 사람이 있어서 온 것이니 걱정 마시죠.”
그리고 무언가 트러블이 있었는지 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의 굵기를 생각해 보면, 중고등학교인 듯했다. 그런데 상황이 꽤나 묘했다. 소년의 목소리가 나는 곳에서 무언가를 건네주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점점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성은 그러려니 하며 다시 술을 마셨다.
그렇게 신경을 끄고 다시 사색에 잠기려던 그였지만, 어쩔 수 없이 그는 그것을 일단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툭.
아까 전의 그 발걸음 소리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더니 자신의 뒤쪽에서 멈추었다. 이곳의 웨이터일 리는 만무했다. 그렇다면 아까 전의 그 소년이리라.
“누구지?”
“안녕하세요. 당신에게 조언을 할 것이 있어서 온 사람입니다.”
알은 체를 해 주자 소년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꽤나 반반한 외모에 지금 입고 있는 정장이 잘 어울리는 큰 키를 가진 소년이었다. 하지만 그뿐, 딱히 자신을 찾아올 만큼 위험한 인물도 아닌 것 같았고, 가끔 거래를 하기 위해 오는 사업가들도 아니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온 거겠지? 돈 이야기든 조직의 이야기든 나는 관심 없으니 꺼져라.”
“음, 조직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한번 들어 보시는 것이 당신의 목숨을 위한 일일 텐데요?”
빠직.
순간 남성의 관자놀이에서 굵은 핏줄이 튀어나왔다. 아직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어린놈이, 최근 서울을 휘어잡고 있는 청룡파의 넘버 투인 이 유시후를 상대로 개기는 것이었다. 어린놈을 상대로 화를 내는 것은 부끄럽지만, 적당히 하지 않으면 정말 어디에다 묻어 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네? 어떠세요. 만약 이 정보가 거짓이라면 제가 스스로 목숨을 끊지요.”
순간 유시후는 소년을 놀랜 듯이 바라보고 말았다. 말투는 비아냥거리는 듯한 것이었지만, 그의 어투는 도저히 장난이라고는 볼 수 없는 진심이 들어 있었다. 아무리 어려서 죽음에 관한 개념이 없다고 한들, 이리도 쉽게 죽겠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그건 각종 수라장을 겪어 온 자신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래, 드물게 근성이 있는 놈이구나. 한번 이야기를 들어 볼까?”
유시후는 회전의자의 정면을 소년으로 향하게 한 후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렇지 않아도 우울한 참이었는데 꽤나 재밌는 일이 될 것 같았다. 유시후는 술잔을 우선 멀리 치운 후 소년에게 말해 보라는 손동작을 건네면서 등을 등받이에 걸쳤다.
“자, 이건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한편은 거래예요. 정할지 안 정할지는 당신에게 걸겠습니다.”
소년은, 아니 황영원은 미소를 지으며 유시후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