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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일기 1권(11화)
4. 레지스(Regis)(3)


“제길…… 제길!”
타다닥!
평범한 사람은 따라잡기 힘든 엄청난 속도로 검은색의 물체가 건물의 옥상을 향해 질주했다. 가끔씩 들리는 거친 숨소리와 욕지거리 때문에 간신히 그 물체를 사람으로 인지할 수 있었다. 평범한 동체 시력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그는, 범블비는 빠르게 움직였다.
‘이럴 순 없어.’
원래 직업군인이었던 자신이 킬러로서 이쪽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이 이제 5년. 그동안 미국의 SWAT이나, 일본의 SAT, 중국의 마귀반, 러시아의 스페츠 나츠 등등 세계에서 그 이름이 유명한 각종 특별 기동대와 같은 훈련을 받아 왔다. 자랑이 아닌 진실로, 저격 실력, 사격 실력, 각종 무술, 그리고 기척을 숨기는 법 등등은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대단하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그 소년은 달랐다. 근육의 수축이나 동체 시력 등의 모든 면에서 뒤떨어졌고, 자신으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는 행동을 할 수 없는 그런 아이었다. 그것뿐인가. 자신을 덮친 사내들도 동네에서 양아치 짓이나 하고, 조금의 훈련도 되어 있지 않은 그런 떨거지 놈들이었다. 잘 훈련된 군인 10명도 무기 없이 맨손으로 쉽게 처치할 수 있는 그로서는 지금의 상황이 굴욕적이었다. 또 비참한 기분과 짜증은 어쩔 수 없었다.
“제길!”
물론 탈출 루트는 벌써 확보했다. 지금 등에 매어져 있는 가방만 사용한다면 잡히기는커녕 그 타깃의 집단을 금방 따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다. 임무에 차질이 생긴 것과 자존심에 상처, 이 두 가지가 어쩔 수 없이 화가 났다.
쾅!
9층의 옥상에 벌써 도착한 범블비가 발로 강하게 문을 차 버렸다. 분명 잠겨 있었을 터인 문은 둔탁한 쇳소리와 함께 문고리가 부서져 버렸다.
탈칵!
옥상에 도착하자마자 범블비는 가방을 열어서 그 안에 있는 주먹만 한 레버를 힘껏 당겼다. 그러자 그것을 따라서 묵직한 조그마한 낙하산 가방이 딸려 왔다.
“우선 임무 먼저다.”
아무리 지금이 위험한 상황이지만, 범블비는 의뢰였던 ‘영원의 공책’의 탈환과 함께 탈출 루트를 확보해야 했다.
아까 전에는 영원에 대한 호기심과 방심으로 그렇게 되었지만, 임무를 중시한다면 충분히 임무를 끝낼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화륵!
가방을 꺼내자마자 불이 붙은 가방과 그 내용물을 옆으로 밀어 놓고 범블비는 안에 있었던 무게감 있는 낙하산 가방을 멨다.
타다다다닥! 화악!
뒤로 몇 발자국 움직이던 범블비의 신형이 다시금 가공할 만한 스피드로 난간을 향해 달렸다. 누가 보면 자살하는 것으로 착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자살은커녕 난간 밖으로 떨어져 내린 범블비는 그의 등으로 솟아오르는 낙하산에 힘입어 허공으로 떠올랐다.
“임무가 우선이다. 우선 소년의 집으로 향한다.”
분명 시내에서 이런 낙하산을 사용하면 전깃줄에 걸려 감전되어 사망하거나 건물에 부딪쳐서 크게 다칠 수 있었다. 하지만 범블비는 순간적으로 상승기류를 탔고, 이 낙하산은 글라이더 형식으로 방향 조절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는 철저한 경우의 수를 생각해 두어 이곳의 옥상에서부터 영원의 집까지는 그런 장애물의 피해 없이 금방 도착할 수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 이름을 알고 있으니 임무 후에 개인적으로 죽여 주지.”
조금 전의 무표정이 아닌, 있는 대로 살기를 내뿜던 범블비는 타깃의 집이 있는 주택가로 향했다.
그렇게 범블비가 살기를 내뿜는 대상인 영원은 옆에 있던 9층 상가의 옥상에서 노란 글라이더 비슷한 낙하산이 펴지는 것을 확인하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기의 몇 가지 부분이 적혀 있는 메모지를 확인하며 미리 출발한 조직원들을 따라 시내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리 연락해 두기를 잘했군.”
유시후의 조직원들이 의외로 한번 하기로 한 것은 성실하게 했다. 비록 다루기는 힘들었지만 자신을 우선적으로 상사라고 생각하자 그 어떤 조직보다도 충성했다. 물론 그 뒤에는 유시후라는 사람의 도움도 있었지만 말이다.
“해결사. 그건 그저 아랫부분의 하청 조직에 불과해.”
외국에서 꽤나 이름 있는 살인청부업자. 즉, 킬러라고 불리는 직업을 갖고 있는 범블비는 5년 전 갑자기 종적을 감추었었다. 그 후 그는 세계 각지에서 보고가 있었지만, 정확한 위치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영원은 알고 있었다. 그가 속한 조직은 레지스(Regis).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국적 불법 조직이었다. 마약, 매춘, 살인, 학살, 암살 등등.
법으로 통치되는 것이 앞 세계라고 한다면, 뒷세계의 억제력은 다름 아닌 레지스였다. 그 조직의 크기는 중국의 삼합회, 일본의 야쿠자, 유럽의 마피아와 미국의 갱과는 차원이 달랐다.
지지직!
얼마나 생각에 잠겨 있었는지, 허리춤의 무전기가 울리는 것을 느낀 영원은 무전기의 주파수를 맞췄다.
“누구십니까?”
―여긴 2반입니다. 아까 말씀하신 주택단지 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포착. 고도가 낮아지는 것으로 보아서 금방 시내의 공원에 착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직!
―1반. 확인했습니다.
―3반. 명령대로 하겠다.
―4반. 여기서 그리 멀지 않다. 포위망을 만들 거니까 걱정 말거라.
미리 유시후에게 부탁하여 조직원들에게 나누어 준 블루투스형 무전기로 영원은 범블비의 위치를 일기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재확인했다.
물론 아직 훈련도 받지 않은 조직원들이 이렇게 조직적으로 움직일 리가 만무했다. 영원이 미리 몇 가지 패턴을 숙지하라고 이야기를 해 두었고, 그 패턴을 모두 외운 조직원들은 일개 사단과 비슷한 조직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비록 음지에 손을 대고 있는 그들이었지만, 그들은 깡패라는 조직에 속해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 어떤 것보다 조직력이 뛰어났다. 그것이 하나의 군대만큼이나 조직력이 뛰어났으니 할 말 다했다.
영원은 좋은 때에 유시후와 만날 수 있게 해 준 일기에 감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원이 지금 범블비를 압도할 수 있는 것은, 제대로 말하자면 영원이 미리 범블비의 행동 양식과 패턴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아는 지피지기(知彼知己)에 더해 적보다 우월한 머릿수, 그리고 정보가 있으니 백전백승이 아니라 만전만승이라도 가능했다.
“갑니다. 꼭 잡으십시오. 지급해 준 그물망과 전기충격기를 적극 활용하세요.”
―알겠다.
동시에 4가지의 목소리가 귀에 울렸다. 영원은 유유히 웃음을 띠며 시내의 공원 쪽으로 뛰어갔다.

“이…… 이런!”
범블비는 지금 공중에서 고전 중이었다.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하나 훈련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그리고 복장도 따로따로에 총기류도 없어 보이는 그 깡패 놈들이 엄청나게 조직적인 행동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것도 100명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것이, 각각 25명씩 한 조는 정찰을, 두 번째 조는 그것의 서포트를, 세 번째 조는 주위에서 대기를,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조는 주위를 포위하는. 그런 어이없는 조직력이었다.
범블비는 글라이더형의 낙하산이 벌써 하강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그리 높은 곳도 아니었을 뿐더러 아까 불던 하늘로 올라가던 따뜻한 바람이 멈춘 탓이었다.
“그 망할 애송이…….”
단지 물건 하나를 갈취하는 의뢰를, 위쪽에서 자신을 극동지방으로 파견하면서까지 맡겼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그 소년은 평범한 소년이 아니다. 오히려 이상하리만큼 냉철하고 무언가 묘한 기운을 가진, 그리고 ‘레지스’의 큰 위험이 될 수 있는 존재.
그렇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범블비는 상부에서 내려 준 정보를 원망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생각을 정리한 범블비는 난폭하게 낙하산의 착륙지점을 틀었다. 구석에 있는 공원. 착륙하기 쉽고, 저쪽이라면 쫓고 있는 100명의 사람들에게서부터 도망갈 수 있는 탈출 루트가 꽤나 많이 생긴다.
“너의 공책을 모두 훔치고 죽여 주마, 황영원.”
방향 조종을 위한 손잡이를 부숴질듯 강하게 쥐며 범블비는 크나큰 낙하산의 방향을 틀었다.
그저 물건 하나 뺏는 단순한 일을 상부에서 자신에게 의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 무언가 있을 터라고 생각하던 범블비지만 지금은 분노 때문에 자신의 장점인 냉철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상황을 판단할 수 없었다.
솨아아악!
타악!
하늘을 날던 노란색 낙하산에 타고 있는 한 인영(人影).
그것은 다름 아닌 범블비였다.
가볍게 공원의 넓은 쪽에 착지를 한 후 주위를 둘러본 범블비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아직 저녁 시간이 되지 않은 관계로 꽤나 많은 사람이 봄의 따뜻한 공기를 느끼며 공원에 앉아 있었고, 자신을 놀랜 듯이 바라보았지만, 범블비는 한 번 인상을 찌푸린 후 그리 문제될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며 몸을 움직이려고 낙하산의 가방을 뺐다.
그렇게 범블비는 한 번 주위를 둘러보자마자 튕겨져 나가듯 발을 움직였다.
“읏!”
하지만 그 질주는 단 1초도 되지 않아서 막혔다. 아까 전 보았던, 자신을 잡기 위해 움직였던 그룹 중에서 2개의 조가 벌써 앞쪽의 입구와 뒤쪽 입구를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조금이라도 지속되면 다른 2개의 조가 또다시 행동할 것이 분명했다. 분명 이곳에서 멀리 있었는데, 언제 왔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보는 눈이 많건만!’
한 번 주위를 둘러보던 범블비는 강하게 혀를 찼다. 어림잡아 10명 남짓 휴식을 취하고 있던 평범한 시민들은 흥미로움 반, 놀라움 반으로 두 눈을 둥그렇게 뜨며 범블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눈에 띄고 만다. 하지만 그건 저쪽에서 경계를 하고 있는 남성들도 마찬가지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범블비의 놀랄 만한 신체 능력에 돌파당하고 만다. 물론 이쪽의 조원들이 실패하면 서포트하고 있는 2조와 포위망 등등을 위해 분산시켜 놓은 3, 4조가 움직이면 되지만, 지금 당장은 조용히 상황과 타이밍을 지켜봐야 할 것이었다.
지금 이 상황이 범블비에게는 최고의 기회이자 위험이었다.
‘이렇게 대치하고 있으면 내가 손해다.’
자신을 포획하기 위해 품에서 그물을 꺼내고 있는 50명의 무리를 견제하며 범블비는 안주머니 속에 묵직하게 잡히는 권총의 트리거(방아쇠)에 검지를 살며시 올려놓았다.
이런 공공장소에서 총을 쏘는 것은 경찰들에게 ‘이쪽으로 좀 와 주시겠습니까?’라고 말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도주와 임무의 성공이 일순위인 범블비였다. 그동안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교육받았으니 사고가 그쪽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범블비의 얇지만 날카로운 눈빛이 좌우로 빠르게 움직였다. 벌써 품에서 그물과 전기충격기를 모두 꺼낸 2개의 조원들은 일자로 넓게 펼쳐지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순간, 깨질 것 같지 않던 그 조용한 정적 속에서 약간 조용한 어조의 목소리가 흘렀다.
“잡아.”
범블비의 눈이 빠르게 목소리의 음원을 좇았지만,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는 타깃. 범블비가 평범한 고등학생이라고 착각해 방심해 버린 소년, 황영원이었다.
트리거를 잡은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여서 반쯤 총신이 꺼내어졌지만, 포기했다.
타깃―황영원과의 거리 20m. 쏘려면 못 쏠 이유가 없었고, 미간에 바람구멍을 뚫을 수 있었다. 물론 저 소년이 예상 못하고 있고, 자신을 포위 중인 이 사람들이 10명 이하라면 말이다.
스윽!
“Give Up(항복).”
영원과 함께 범블비를 잡기 위해 튕겨져 나온 수십 명의 깡패들을 보며 범블비는 너털웃음을 흘리며 임무를 포기했다.
그는 영원을 째려보듯이 바라보며 양손을 높이 들었다.
주위의 시민들은 그저 영화를 찍나 보는구나, 하는 생각에 조용히 구경만 하고 있었다. 순간 그들을 인질로 잡을 생각을 한 범블비였지만, 그런 행동을 해도 영원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후우…….”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 보는 임무 실패의 쓴맛을 보며 범블비는 자신에게 느껴지는 처음은 차갑고 점점 작열하는 전기충격기의 고통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