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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일기 1권(12화)
4. 레지스(Regis)(4)


범블비는 결국 유시후가 맡아서 지하에 감금해 놓는 것으로 끝이 났다. 청룡파 건물의 지하에는 주차장 말고도 이전 일제시대 때 일본군이 사용했던 감옥이 있어서 그곳에 범블비를 넣었다고 유시후가 말했다.
“으음……. 차 맛이 좋군요.”
“그럼. 내가 저번에 짱깨들하고 거래했을 때 덤으로 받아 온 건데.”
“네…….”
청룡파의 보스의 사무실에서 영원과 시후가 면담을 하고 있었다. 아니, 말이 좋아 면담이지, 이번 범블비의 일과 관련되어 그에게 고백할 일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영원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유시후와 거래를 한 것은 당시 주가 조작을 이루던 유시후와 그 조직을 운 좋게 찾아서였던 것. 때마침 범블비가 자신을 미행하던 것을 알게 되었고, 자신을 죽일 것을 알게 되자 이용하기 위해서 거래했다는 것. 물론 미래일기에 대한 것은 일절 묵언했지만 만약 다른 사람이 자신을 이용했다는 것을 알면 화가 날 만도 한 일이었다.
실질적으로 영원은 당시에 범블비와의 조우를 걱정하고 있었고, 안 그래도 자신이 다룰 수 있는 무력 세력이 필요했었다. 때마침 알맞은 조건을 갖춘 것이 바로 청룡파였고, 조직이 꽤 크게 놀았던 것을 알고 있어서 청룡파를 선택한 것이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네?”
영원은 순간 당황하여 물어보고 말았다. 솔직히 누군가가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그것도 자신이 머리인 조직을 이용했다고 하면 마음에 들지 않지 않겠는가.
하지만 유시후는 마치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되는 듯이 시원하게 대답했다.
“본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라는 것이 이용하고 이용하는 것이야. 그건 집단과 개인도, 집단끼리도 그런 것이지. 자신의 이득을 위해 법까지 어겨 가며 그것을 끝까지 말을 하지 않고 속이고 있었다면 그것은 이용한 것이 아니라 사기가 되었겠지. 그리고 그런 일들이 사회에 분란을 낳고 여러 일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야. 예를 들어서, 저번에 일어난 박여차 뇌물 사건과 노무헌 대통령님이 검찰 조사를 받으신 것이 그런 예지. 하지만 너는 우리에게 정당한 대가도 주었고, 나에게는 이득까지 줬어. 그리고 계속 숨긴 것이 아니고 결국에 밝혀 주기도 했고. 그럼 된 거지 뭘 더 원해. 남자라면 그 정도는 가슴 넓게 받아 줘야 하는 법이야.”
순간 분위기를 더욱더 진지하게 만드는 유시후의 말에 영원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말이 역대 위인들의 명언 못지않게 마음에 와 닿았다.
하지만 유시후는 계속 웃고 있었다. 말은 진지했지만 지금 영원의 표정이 여간 웃긴 것이 아니었나 보다.
“음, 분위기가 너무 침체되었구나. 이참에 영원아.”
“네?”
거래 이후는 언제나 반존대를 하던 유시후가 하대를 하자 영원은 순간 이질감에 놀라고 말았다. 아니, 원래 이것이 이치에 맞지만 갑자기 그러니 영원은 따라갈 수 없었다.
“이제부터 나를 형으로 불러라.”
“그…… 그건 좀…….”
영원은 삐질삐질거리며 말을 더듬었다. 솔직히 나이가 언뜻 보아도 20살은 넘게 차이 났다. 그런데 형이라니. 그건 약간 아닌 듯했다.
“음…… 아저씨는 아니고. 그래, 형님 어떠냐.”
“형님. 네, 형님은 좋겠습니다. 유시후 형님.”
“하하! 조직의 애들이 아니라 너한테 들으니 감회가 남다르구나, 동생아.”
유시후는 한 번 껄껄 웃으며 식은 차를 목 뒤로 탈탈 털어 넘겼다.
“그래, 사실 이야기는 그것뿐만이 아니지?”
“네?”
“레지스 말이다.”
“알고…… 계셨군요.”
한 번 끌어 올린 분위기가 다시 가라앉았다. 하지만 언젠가는 물어봐야 하는 일이었다. 그 버블비를 잡은 일 이후 일기를 뒤져 보았지만, 레지스에 관한 상세한 정보는 알 수 없었다. 그 말인즉, 알아서 알 만한 사람을 찾아가라는 것과 동일한 것. 그런데 영원이 아는 뒷세계에 박식한 사람이라고는 유시후뿐이었다.
언젠가 물어봐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원은 차라리 그가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다.
“레지스에 대해 뭔가 알고 계시나요?”
“그럼. 아마 이쪽에서 일하는 녀석들은 모두 알고 있을 테지.”
눈을 지그시 감으며 등을 푹신한 의자에 기댄 유시후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눈을 뜨고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그냥 서론 같은 것은 생략하지. 이건 영화 찍는 게 아니니까 말이야.”
“말씀하시죠.”
“레지스. 어디 나라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왕이라는 뜻이야. 그리고 그들의 조직은, 단순히 말해 다국적 불법 기업이야. 일본의 야쿠자, 중국의 삼합회, 유럽 쪽의 마피아, 미국의 갱, 이런 불법 집단에서 유명한 것들은 모두 레지스에 이어지지. 그것뿐인가? 빈 라덴의 테러 이스라엘에서 일어나는 전쟁 등, 나라와 나라 간의 분쟁이 있다면 그곳에는 무조건 레지스가 개입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야.”
아무렇지도 않게 엄청난 말을 하는 유시후를 앞에 두고 몸이 경직해 버렸다. 그만큼 대단하고도 무서운 말이었다. 세계적인 이슈가 되는 테러와 전쟁을 한 조직이 일으켰다는 말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사……실입니까?”
“사실이야. 그리고 놀랄 것도 없는 게, 이 조직은 만들어진 지 꽤나 오래됐어.”
“얼마나 됐죠? 100년? 50년?”
이 이야기의 흐름으로 봐서 1년∼10년처럼 그리 멀지않은 과거는 아니라고 확신했다. 순간 100년이라고 말했을 때 이 등골을 달리는 오한은 어찌할 수 없었다.
100년을 했을 때 무언가 틀렸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1,000년.”
“네?”
“내 한국어 발음이 그리 좋지 않나?”
결코 거짓말이 아니라는 말투로 유시후가 입을 놀렸다. 물론 지금 이것이 농담이라면 하나도 웃기지 않다. 오히려 무섭다.
“1,000년 전, 당시에 꽤나 유명했던 살인 청부 조직이었다고 하더군. 뭐, 지금은 더욱 위험한 조직이지만 말이지……. 그리고 1,000년이라고 해도 그리 대단한 건 아니야. 종교 조직은 수천 년. 서로 간의 이익으로 똘똘 뭉친 어디의 모 집단은 2,000년이 넘었으니까.”
세포 하나하나에 모두 정전기가 올라서 경직되는 느낌이었다. 두꺼운 둔기로 머리를 강타당한 것 같은 느낌이 정신을 채워 나갔다.
“G7 정도 되는 중요 국가들이 상의하는 것에 매일 이 레지스에 관한 것이 들어갈 정도야. 물론 그들의 힘을 견제한 세계의 나라들이 언제 한번 레지스를 괴멸시키기 위해 공격을 한 적도 있지만 그들의 발자취는 여간해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결국 허탕만 치고 말았다고 해. 뭐, 그들은 가끔씩 초강대국에 압력을 주기도 해. 음, 정확히 말하자면 아까 말한 G7 정도의 나라의 법의 개정과 재정, 군대의 파견, 경제 조작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지.”
“아무리 그래도…… 1,000년…… 그럼, 설마…… 1, 2차…….”
“세계대전…… 당연하지.”
말을 끊으면서 대답하는 유시후를 보며 영원은 탄식을 터트렸다. 지금 품속에 2가지 노란색 포스트잇에 적혀 있는 오늘의 일을 위한 일기의 단편이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졌다.
“참고로 범블비는 미국에서 꽤나 유명한 킬러야. 나도 모르지만 이백은 족히 죽이지 않았을까?”
“그런데, 어떻게 이런 걸 알고 있는 것인가요?”
마음속으로 그것이 거짓이라고 되뇌며 말을 건넸다.
“네가 깡패들이란 족속들을 얕보고 있는 모양인데, 요즘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의 유명 조직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두뇌적이게 움직이고 있다고. 세계에서 유명한 정보원에게 돈 조금 쑤셔 주면 그 정도의 정보는 쉽게 튀어나온다고.”
“…….”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깡패를 오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매일 주먹질과 사시미질, 칼침이나 연장질을 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지만, 그건 예전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암지의 조직들도 마피아나 야쿠자 못지않게 위험한 존재였다. 그것이 지금 또다시 인식되고 말았다.
“우리나라도 위험해졌군요. 그렇다고 해도 이 조그마한 나라에, 한반도에서 또 딱 반 정도의 나라에 이런 위험한 그룹들이 있다니.”
“나는 손을 씻었지만 말이다.”
“그것보다…… 레지스, 레지스…….”
가벼운 어조로 손을 탁탁 터는 유시후를 보고 영원은 눈을 살며시 감았다. 지금 동공이 형광등을 보고 있는 것인지, 눈꺼풀 건너편으로 빛나고 있는 무언가가 눈을 간질였다. 조용히 말하는 그 이름 때문에 관자놀이가 지끈 하고 아파 왔다.
전 세계에서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다국적 불법 기업이자 조직. 범블비만을 보아도 엄청난 살수(殺手)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유시후는 태평하게 말했지만 G7이라는 말은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나라들이다. 그런 나라들이 견제를 하고, 암중에 그런 나라들에 영향을 미치는 초거대 뒷세계의 조직이라는 말이었다.
한숨을 한 번 내쉬어 보지만 지금 이 기분이 진정되지는 않았다. 미래일기를 통해 88도로였을 미래가, 점점 국도 중에서도 골목길로 빠지고 있었다. 뒷세계의 가장 위험하고 가장 강력한 조직, 레지스. 그것을 건드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자신이 정말 과거에서 온 것을 알게 된 것은 아닐까?
하지만.
“하지만 아직은 우리나라와 일본에는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으니 걱정 마.”
“정말입니까?”
“그래.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조직들이 활개를 칠 수 있는 거지.”
“어째서 그런 거죠?”
영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물론 우리가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였을 때나 일제시대였다면 이해했을 것이다. 힘없는 나라를 누가 원하겠는가.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 즉 대한민국에는 H그룹과 전 세계적인 기업인 S그룹과도 같은 거대 기업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세계에서도 그 입지가 나날이 굳혀 가고 있었다.
“그야 물론 핵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북한의 영향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위치가 지리적으로 극동이라서 그래. 레지스는 우선 유럽에서 생성된 조직으로, 서양에서는 그 영향력이 엄청나. 하지만 동양과 아프리카 쪽으로 가면 갈수록 그 힘이 약해지는 감이 없지 않아 있지. 그리고 일본과 우리나라, 즉 그들로 보아서 극동이라고 말하는 지역에는 영향력이 거의 없지.”
그러고 보니 그랬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극동 지역이라고 말할 수 있었고, 정말 언제 먹힐지 모르지만 아직은 레지스의 영향권 밖이었다.
하지만 정말 언제 영향이 미칠지 몰랐다. 언제나 대비해야 한다고 한들, 음지에서 벌어지는 일을 영원이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일기도 인지를 하고 행동을 해야 미래를 보여 주지, 무지한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꽤나 깊은 생각에 빠졌던 영원의 눈이 불시에 확 뜨였다.
“생각해 보니,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군요.”
“뭐라고?”
“유시후 형님이 저를 잘 알지 않으십니까, 저는 제게 도움이 안 되면 끌어내리는 성격입니다.”
“뭐…… 뭣이? 크…… 크하하하하하! 이놈 보소! 이거 걸작이네!”
태평하게 말을 하던 유시후도 설마 영원에게서 G7의 나라도 어찌 못하는 조직을 무너트린다는 말을 들을지는 몰랐는지, 너무나도 의외의 대답에 그는 정말 배가 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을 정도로 웃고 말았다.
“그래! 너라면 할 수 있겠다. 크크. 정말 내가 엄청난 놈과 손을 잡았구먼!”
유시후는 계속 웃음을 터트리며 영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언젠가 성공 못하면 너를 죽인다고 했었나?”
“네, 분명 그랬습니다.”
“그걸 철회하지. 말을 바꿔야겠어. 네가 성공 못할 리가 없으니까 말이야.”
“그렇군요. 철회하세요. 후후후.”
“하하하!”
“하하하!”
영원도 유시후의 웃음을 따라 소리 높여 웃었다. 비록 위험한 발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영원의 마음은 매우 편안했다.
영원은 그 누구보다도, 하물며 지상 최악의 무기라고 불리는 핵폭탄보다도 더욱 위험한 무기가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