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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일기 1권(16화)
5. 사업(4)
“그게 사실입니까?”
“제가 언제 허튼소리를 하던가요?”
여 형사와 김 검사는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선 우연치 않게 정보를 접하게 된 여 형사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솔직히 생각해 보십시오. 한 사람을 필두로 그 자존심 강한 23개의 조직들이 힘을 합쳤다고요? 그리고 그 이유가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그 자존심 드센 놈들이 말이 됩니까?”
확실히 여 형사의 이야기는 이상하다 그 자체였다. 싸워서 무너트리는 것으로밖에 힘을 합치지 않는 자들이 바로 깡패들이었다. 그리고 그 자존심이 얼마나 드센지 형님으로 모시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적의 세력의 두목이어도 예의를 갖추는 것 따위 없었다. 그런 놈들이 단 한 사람을 필두로 연합을 결성했다는 것은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나도 운 좋게 한 명 잡아서 알게 된 내용이우. 그놈 말로는, 놀라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하더군.”
“무슨 말이죠?”
“말 그대로겠지 뭐. 그 녀석이 준 정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말이었겠지.”
“이것 이상으로 놀랄 일이 더 있다니……. 끄응. 한국도 이제 위험해질 대로 위험해졌군요……. 후우…….”
“뭐, 결국 우리가 잡으려고 안달이 난 거물들의 뒤에 더 거물이 있다는 것이겠지.”
“대기업 회장일까요? 아니면 혹시 국외 조직?”
“내 감으론 둘 다 아닌 것 같은데.”
“예?”
입에 안 맞는지 얼굴을 찡그리며 한 번 카페라떼를 마신 여승호 형사는 잔을 옆으로 치우고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대기업 회장을 예로 들어 보오? 대기업은 벌써 뒤에 큰 조직들 한두 개 자리 잡고 있잔수. 고것뿐인가,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만 안 했다지. 보디가드 키운답시고 사설 부대 키우잔소.”
“그건…….”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알 사람은 아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검사와 형사라는 정부의 한 사람인 이상 이런 이야기는 조금 힘들었다. 알면서도 제재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럼 또 뭐 있수? 통일교 제단? 그분들은 규모도 크고 커다란 조직이지만 명색이 종교라서 그런 것 안 쓴다우. 그럼 뭐 아까 해외라고 했수? 마피아? 그럼 중국 삼합회? 일본 야쿠자? 그런 놈들은 한국에서 총을 못 쓰기 때문에 별로 발을 안 걸치잖수. 결국 나오는 것은 다른 사람이란 이야기인 거지.”
여승호 형사는 턱을 괴고 밖을 내다보았다.
그의 특유의 말투인 ∼수, ∼우, 라는 말투가 지금은 무언가 귀에 거슬렸다. 일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그저 무능한 자신이 한심해서인지, 지금 모든 것이 조금씩 짜증 나고 있었다.
“거 한번 그럼 회담 장소 가 보오?”
“네?”
“내가 설마 그것도 안 알아봤겟수? 좀 귀찮은 곳에 자리를 잡기는 했지만 충분히 들어갈 수 있으니 걱정 말아도 되는 곳이우.”
“어딥니까!”
김윤종 검사는 순간 단서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하지만 카페에 온 사람들이 그를 한 번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자 쓴웃음을 지으며 주위에 사과 인사를 몇 번 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에 여승호 형사가 한 번 웃고는 표정을 갈무리했다. 그러자 김윤종 검사가 다급하게 물었다.
“귀찮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귀찮다는 것이 귀찮다는 것이지. 불법 업소가 아닌 합법으로 된 술집에서 한다고 하더라우.”
“술집이 얼마나 크면 회담을 한답니까?”
“뭐…… 꽤 크다우. 청룡파 두목이 저번에 바뀌지 않았수? 곽현진 놈에서 유시후 고놈으로 바뀌니까 이제 큰 지각변동이 일어났지. 왜 유시후 그놈이 세계적으로 좀 네트워크가 있지 않수? 그러니까 고놈들 맞으려고 지은 합법 술집이라고 하더이다.”
“설마 종로에 있는 청룡파 바를 이야기하시는 것입니까?”
“고거, 거기서 한다 하더니만.”
“빨리 가죠, 형사님.”
김윤종 검사는 재빨리 옷을 챙기며 아직 다 마시지 못한 커피를 목으로 털어 넣었다. 이야기하느라 커피가 식어 버려서 씁쓸한 맛만이 남아 있었다.
“허, 거참.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좋은데 말이우. 아직 아침이잔수. 거기다 오늘은 회담 열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담을 다시 열지 않는다고 하더이다. 그러니 다음 주 중으로 밤에 한번 찾아갑시다.”
“그…… 그래야 할까요?”
“거참, 검사님이 어리지만 경력도 빡시신 분인데, 어찌 그럽니까.”
“알겠습니다…… 후우, 좀 안달이 났었나 봅니다.”
“그럼 어디 정보 수집 좀 하다가 포장마차 가서 술이나 한잔 합시다. 요놈에 커피는 자판기 커피보다 맛이 드릅게 없어서 못먹겠수.”
“그럼 제가 한턱 쏘겠습니다. 정보 알아내시는 것에도 힘드셨을 텐데.”
“오! 좋구먼!”
그렇게 김윤종 검사와 여승호 형사, 그 둘은 유니온에 대해 알아채기 시작했다. 한국의 형사와 검사 중에서도 최고의 수사력을 자랑하는 두 사람이 만난 것이었다.
회담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영원이 진행한 스토리 그 자체로 이야기가 진행이 되자 영원은 일이 술술 풀리는 것을 느꼈다. 최근에는 학교에 가서도 작업을 해야 할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기분만은 상쾌했다.
“으음……. 이 부분이 문제군…….”
학교 점심 쉬는 시간에 영원은 펜촉으로 책상을 툭툭 두드리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우선 대략적인 이야기는 진행이 되었지만 곳곳에 개연성이 없는 부분이 세세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을 조정하는 것이 자신의 할 일이었지만,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툭! 툭!
“음?”
영원은 누군가가 어깨를 툭 건드리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큰 안경을 쓴 소년 한 명이 서 있었다. 물론 말할 것도 없이 김희환이었다.
“뭐하냐?”
“알아서 뭐하게.”
“허! 웃기는 놈. 말해 봐, 도와줄게.”
영원은 코웃음 치는 희환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희환이라면, 아무리 지금이 고등학생이지만, 엄청나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일 처리 능력이나 머리를 쓰는 면에서는 수재 중의 수재니까 말이다.
“음……. 그럼 희환아, 하나 물어볼게. 이건 어디까지나 소설의 이야기야…….”
“말해 봐. 너희 아버지가 이야기 막힌다고 도움 좀 달라던? 아니면 네가 쓰게?”
“닥치고 들어 봐.”
그렇게 영원은 가볍게 어려운 문제들을 알려 주었다. 서론부터 이야기하느라고 10분이라는 소중한 점심 쉬는 시간이 소비되었지만, 아직 10분이 더 남아 있었던지라 편안하게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음……. 그럼 네가 말하는 자본 이야기 말이야. 그 소설의 주인공이 미래를 볼 수 있으니까 주식과 경마 등등으로 돈을 벌 수 있는 한 최대로 버는 거지. 그리고 그 주인공은 자금의 도움이 필요한 조직에만 도움을 주면 돼. 물론 주인공의 출혈이 엄청 나겠지만 사업이 사업이니까 6대 4 비율로 해도 주인공은 50억은 쉽게 벌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또 회사를 무너트리는 방법을 물어보았잖아? 그건 네가 쓴 내용 말고도 더 방법이 있어.”
희환의 이야기는 정말 술술 풀렸다. 알고는 있었지만 할 결심이 서지 못해서 하지 않은 일들까지 해야 하는 이유를 대 가며 일들을 풀어냈다.
“주식을 쓰는 법이 정말 최고야. 그리고 그 방법은 여러 가지 있어. 예를 들어, 주인공이 돈을 조금 써서 주식 세계에서 주식 조작을 잘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부탁을 하는 거지. 주식 조작을 잘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주식 자체도 잘하게 되어 있어. 그러니 그 사람을 따르는 투자자들은 수많을 테지. 그다음은 뭐, 굳이 말해지 않아도 되지.”
희환이 종이에 써 내려가는 내용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영원은 혀를 내둘렀다. 역시 일 처리 능력이 도저히 고등학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대학교에 가서 제대로 된 수업도 받지 않았는데, 정말 놀랍다 못해 경이로웠다.
“최고다. 너…….”
“이 정도는 원래 조금씩 배워 놔야지. 내가 바라는 직업이 사업가 아니냐. 후후후.”
턱을 잡고 웃는 희환을 보며 영원은 몇 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나중에 무조건 끌어들어야겠어.’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후일에 그는 중요한 전력이 될 것이었다. 약간 성격 안 좋은 제갈공명이랄까?
“음, 역시 둘은 매일 싸우면서도 사이가 좋구나.”
“어, 한나연이다.”
“뭐야. 왜 새삼스럽게 놀라는 거야!”
영원과 희환의 대화에 끼어든 것은 다름 아닌 나연이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었다. 요즘은 바빴었던지라 학교를 빠지는 날도 조금씩 있었고,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에도 일기와 계획을 생각하고 구성하느라 바빴었던지라 주위의 환경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도 6반이었었지.
“잘 지내?”
“그건 보통 오랜만에 만난 사람한테 하는 인사 아니야?”
“오랜만에 봤잖아.”
“누구 때문인데!”
꽤 화가 났는지 볼을 붉히며 장난스럽게 언성을 높이는 나연을 보며 영원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희환도 웃겼는지 그에게로부터 풋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솔직히 나연의 외모로 화를 내 봤자 그리 심각하게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자신이 분명 학교에 가게 되면 친하게 지내겠다고 약속했는데, 정작 그 약속을 무시하고 있으니 화낼 만도 했다.
“알았어, 알았어.”
“알았으면 언제 한번 집에 와 줘.”
아직 토라져 있는지 고개를 팩 돌리는 나연을 보고 영원은 미소를 띠우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는데?”
“컴퓨터 고장 났어. 좀 도와줄래?”
“그 정도야. 내가 언제 한번 도와줄게.”
“고마워!”
이런 것으로 벌써 화가 풀렸는지 나연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네.”
영원은 나연의 미소에 답하듯이 밝은 미소를 지었다.
저녁 반찬거리를 시장에서 구입한 영원은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 그렇다고 달리 들를 곳도 없었고 할 것도 없었지만 말이다.
“아니, 하나 있나?”
영원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집으로 향했다. 지금 그의 뇌리에는 한 남성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 남성은 바로 검은색의 기운을 물씬 풍기던 범블비였다.
영원의 일기를 뺏어 달라고 해결사에게 의뢰한 은행 직원, 그리고 어째서인지 해결사 소속의 사람이 아닌 전 세계적 범죄 조직의 유능한 킬러가 나타났다.
다행히 크게 힘들이지 않고 생포할 수 있었지만, 아직도 그 이유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설마 레지스에서는 나를 알고 있는 것인가?’
그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지만 도저히 말이 되지 않았다. 이 세계에 돌아온 지 아직 1달가량밖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그 짧은 시간 동안 수십억 원가량의 돈을 주식을 통해 벌었고, 뒷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조직이었던 청룡파의 보스와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다. 아까 전에도 생각했듯이 세계적 킬러도 생포했고, 이번에는 4대강 사업이라는 거대한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물론 범블비를 생포한 것으로 레지스에게 들킨 것은 필수불가결이자 불가항력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범블비가 자신을 노린 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갔다.
물론 그가 당시에 자신의 의지로 항복을 선언해 왔기 때문에 그의 어금니 속에 숨겨 두었던 자살용 독약을 먹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는 전 세계의 그 어떤 특급 군인들보다도 꿀리지 않는 훈련을 받아 온 킬러였다. 그리고 고문 경험이 없는 자신의 주위 사람들로는 정보를 빼내기는커녕 그 이하의 일도 불가능할 것이다.
물론 일기도 확인해 보았다.
하지만 근 1년분의 일기를 모두 뒤져 보아도 그것에 대한 언급은 일절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 할 일이 끝나면 한번 만나 봐야겠어.”
그는 적으로서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한번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자였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돌발 상황에서도 임무를 우선시하는 냉철함과 주위를 살피고 자신의 상태를 잘 살피는 두뇌, 인간의 그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몸놀림과 순간적으로 움직이는 폭발적인 반응속도. 솔직히 영원은 그의 임무 수행 능력을 보고 그에게 호감을 느꼈다.
어느새 집에 도착했는지, 영원은 무의식중에 집의 대문 앞에 도착한 것을 눈치 챘다. 순간 벨을 누르려고 했지만 집에 부모님이 아직 안 계시다는 것을 깨달은 영원이었기 때문에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스페어 키로 문을 따고 들어갔다.
역시 부모님이 없는 집은 봄의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싸늘했다. 외로운 기운이 풍긴다고 할까?
“이젠 예전과 다르니 상관은 없어. 나는 바뀔 것이고, 나의 주변도 바뀌게 할 것이니까.”
영원은 부정적인 생각을 털어 버리며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가방은 마루에 내던진 후 김치찌개와 부침개, 그리고 몇몇 반찬을 내놓고 식사 준비를 했다.
부모님이 집에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서 밥은 혼자서 차릴 수 있는 영원이었지만 맛은 그렇지 않았다.
“우웩……. 국을 너무 짜게 끓였나?”
김치찌개가 맵지는 않고 짜기만 하니 그것이 고문보다 더 심했다.
부침개와 원래 있었던 밑반찬은 괜찮아서 다행이었지만, 김치찌개는 망작 중의 망작이었다.
그렇게 가볍게 식사를 끝낸 영원은 방으로 들어갔다.
얼마 전 새로 바꾼 컴퓨터가 깨끗하고 멋있는 모습으로 그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오늘도 HTS를 할 생각을 했던 영원이었지만 한번 웃어넘기며 나갈 채비를 했다. 아까 전에도 생각 했듯이 지금부터의 일에 범블비가 필요할지도 몰랐다. 물론 그가 자신의 말에 따를지 따르지 않을지는 몰랐지만 이야기라도 해 봐야 했다.
“또 종로까지 가기는 힘들지만…… 어쩔 수 없나?”
교통카드를 지갑에 넣은 영원은 집을 나섰다. 일기는 가벼운 손가방에 넣어서 가져갔다.
순간 저녁도 늦었고 귀찮은지라 유시후에게 부탁하여 집으로 좀 와 달라고 할까 생각했던 영원이었지만, 지금 한창 바쁠 터인 그에게 이기적인 부탁을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가볍게 넘겼다.
그렇게 영원은 종점으로 향했고, 버스를 타고 청룡파의 본거지인 종로의 20층 빌딩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