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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일기 1권(17화)
5. 사업(5)


버스를 타고 수십 분, 영원은 종로의 한 20층짜리 빌딩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음, 그래, 두목님 보러 왔냐?”
“네, 우선 그런데. 바쁘실 것 같으니 지하로 안내 좀 해 주시겠어요?”
“그래, 따라오거라.”
유시후와 친분을 다진 후 수시로 찾아왔던지라 꽤나 청룡파의 본거지를 지키는 사람들, 아니 조직원들과 꽤나 친해질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 아닌, 이제는 오히려 존중해 주고 있었다. 두목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라서 존대를 쓰려고 했던 자들도 있었지만, 영원은 그것을 거부하고 이렇게 자신만 존대를 하고 있었다.
그들도 이제 영원을 알고 있으니 영원이 말하는 ‘지하’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을 터였다.
공사 현장에서나 쓰이는 엘리베이터가 엄청난 속도로 지하로 향했다. 약간만 얼굴을 내밀어도 코가 잘릴 수 있을 것 같은 속도였다.
쿵!
그렇게 몇 초나 지났을까, 엘리베이터가 묵직한 소리를 자아내며 멈췄다. 역시 옛날의 장치 그대로 있어서 그런지, 멈췄을 때의 반동으로 몸이 부웅 떴다 다시 가라앉았다.
지하에는 정말 영화에서나 보던 감옥의 섬뜩한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유시후가 분명 이곳에 이것이 있다는 것을 듣고 전 두목과 이 땅을 샀었다지 아마.
“크흠.”
영원은 코를 막았다. 청소를 하지 않은 지 얼마나 지났을까, 눅눅한 기운과 여기저기 맡아지는 곰팡이 냄새와 구더기 냄새가 역겨움을 자아냈다.
감옥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때 꼭 가둬야만 하는 독립투사들을 감금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했다. 형광등도 2∼3개로, 양옆으로 감옥이 3개씩, 총합 6개였다.
‘이런 곳에서 지내면 무조건 정신이 이상해지겠지.’
영원은 범블비를 생각하며 빨리 안쪽으로 움직였다. 그와 만난 지 꽤나 시간이 지났었다.
“음.”
그리고 영원은 곧 범블비를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영원의 부탁대로 범블비는 그리 심한 상태는 아니었다. 아니, 여기 있는 자체로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지속적으로 식사를 하고 있는지 식판이 있었고, 쇠사슬이나 밧줄에 묶인 것이 아니라 편안히 풀려 있었다.
“황영원인가.”
도저히 외국인이라고 생각 못할 정도의 능숙한 한국어를 구사하며 범블비는 고개를 들었다.
“그래요. 접니다. 범블…… 아니, 헨리 유닉스 씨.”
“이제 내 이름까지 알고 있나 보군. 대단해.”
짝! 짝!
범블비는 조용히 박수를 치며 순수한 감탄의 의사를 보냈다. 비록 적이지만 그는 영원이 유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다.
당시에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일기에는 그의 코드명인 범블비와 함께 그의 진짜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여긴 어때요? 괜찮아요?”
“괜찮아 보인다면 너는 정신과 의사에게 한번 상담을 받아 봐야 하는 것이겠지. 차라리 형무소의 감옥이 더 편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군.”
“형무소에 가면, 아무리 한국이라지만 당신은 죽게 될 것이에요. 레지스에게든 법으로써든.”
“어떻게 단정하지?”
“저는 알 수 있습니다.”
단호하게 대답하는 영원을 보며 범블비는 한 번 실소를 흘렸다. 하지만 영원이라면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엄습해 왔다. 영원을 보자면 도저히 그가 고등학생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래, 오늘 온 이유는 나를 정부에 넘기기 위해서인가?”
“솔직히 말할게요. 당신한테는 돌려 말해 봤자, 결국 제 속내를 밝히게 될 것 같으니까요.”
영원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입을 활짝 열고 말을 시작했다.
“저의 손발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건 또 기대도 못한 제안이군그래.”
범블비는 앉은 채로 땅을 바라보던 얼굴을 들어 올리고는 영원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분명 저 안은 그림자로 어두웠지만 범블비의 시퍼런 눈동자만은 이질적이게도 그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났다.
“저는 레지스를 무너트릴 것입니다.”
“그건 정말 불가능한 일이군. 지금 당장이 아니고 미래의 일이어도 말이야. 네가 얕잡아 볼 수 있을 정도로 레지스는 기반이 약한 조직이 아니다. 그리고 레지스의 총수는 네가 생각할 수 있는 범인의 범주에서 훨씬 벗어나 있어.”
아직 레지스에 관한 대략적인 내용밖에 모르는 영원이어도 그것은 알 수 있었다. 마치 벽에 막힌 것처럼 자신의 일기에 레지스에 대한 모든 내용이 적히지 않는 것은 분명 레지스의 수장의 힘이었다. 그것은 왜인지 알 수 있었다. 아직 그를 본 적도 없고, 그의 이름조차 모르지만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당신이 도와주신다면, 제가 레지스를 무너트린다고 약속을 드리지요.”
“음…….”
범블비는 생각을 하는 듯이 다시 고개를 떨어뜨리며 침음성을 흘렸다.
“우선 거절을 하지.”
역시 범블비는 10초 정도의 생각만을 한 후 곧장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영원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는 어투로 제안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가 한 번 굳힌 자신의 생각을 바꿀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후.”
영원은 한 번 씁쓸한 웃음을 지은 후 일단 물러나기로 했다. 그는 지금부터의 영원의 전력에 큰 도움이 될 텐데,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뭐,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무조건 말씀하시고요.”
“무조건? 총을 달라고 해도 말인가?”
고개를 떨어트렸던 범블비의 눈가에 장난기가 서렸다.
“물론입니다. 당신이 쓰던 권총과 당신이 머물던 호텔에 있던 저격총은 저희 쪽에서 보관 중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감금당하고 있는 나에게 그걸 준다는 말인가? 내가 자물쇠를 총알로 부수고 엘리베이터의 문을 부순 후 탈출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당신에게 탈출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겠지요.”
영원의 한마디에 범블비의 눈빛은 신기한 기운을 뿜어냈다.
호기심과 호승심, 그리고 흥미로움의 눈빛이었다.
“역시 넌 재밌군. 도저히 이 평화로워서 위기의식이라고는 없는 나라의 고등학생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겠어.”
“칭찬으로 받아들이지요.”
“왜인지, 총수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군.”
범블비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혼잣말을 하였다. 그때 영원은 몸을 돌리고 있어서 그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그렇게 영원은 그대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렇게 첫 회담을 가진 후 드디어 두 번째 회담의 시간이 다가왔다. 첫 회담 이후 희환의 도움이나 범블비와의 만남 등등으로 꽤 바쁜 시간을 보낸 영원은 두 번째 회담을 준비하며 저번처럼 회담에 필요한 기구들을 모으고 있었다.
다행히 사려고 했던 물품들은 청룡파에서 싼 값에 구해 주었고, 문제가 생기면 만날 수 있는 비밀 아지트도 구해 주었다.
“하하하! 이거 연합주님이 오는군.”
표창파의 두목 김도환이 껄껄 웃으며 영원을 맞이하였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회담에 참석한 23명의 두목들이 밝은 얼굴로 그를 맞이하였다. 사실 그들이 영원을 밝게 맞는 이유는 최근 그들이 하는 일들이 모두 영원의 한 말대로 진행되기 때문이었다.
최근 4대강 사업 때문에 그 주변의 모든 깡패들을 청소한다고 검문이 심해진 탓에 계속 조직의 크기가 줄어들고 있었건만, 영원의 말대로 일을 진행하자 모든 것이 술술 풀렸다. 물론 몇 가지 막히는 일들도 있었지만, 그것은 모든 조직들의 일을 총괄적으로 진행하는 청룡파의 유시후 두목이 해결했다.
물론 자금의 문제를 가진 조직들은 연합주인 영원이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적당한 금액을 지원해 주었다.
아직 어린 영원이었고, 영원이 연합의 주인이 되는 것을 마음에 안 들어 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영원의 일 처리 능력이나 유니온을 이끄는 실력은 능히 한국의 암흑가 조직들을 위에 서서 이끌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 조직과 표창파는 A용달을 접수했다네. 2억에서 2억 5천까지 벌었어.”
점점 달아오르는 분위기를 가라앉히며 말을 건넨 것은 영산강의 무적파의 두목 김철수였다.
“우리 금강의 마적파와 낙동강 검도파는 B건설을 접수했다.”
마적파의 두목 구영훈과 검도파의 두목 임동현은 기쁜 듯이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우리 조직은!”
“잘됐다 아이가.”
이렇게 멈추지 않고 자신들이 인수한 조직들의 이야기를 하던 그들은 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자 입을 다물었다.
드디어 영원이 다음 단계의 이야기를 진행할 것을 눈치챈 것이었다.
“이제 다음 달에 추진되기 시작합니다. 일단 일이 추진되기 시작하면 모든 언론들과 매스컴, 그리고 정부의 눈길은 4대강 사업으로 향합니다. 그때 빨리 소문을 퍼트려서 투자자들을 속여야 해요. 그리고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방법으로 주식들을 매각해서 기업을 무너트려야 합니다. 만약 정부에서 눈치채면 제가 알아서 조치할 테니 걱정 마시지요.”
영원은 달아오른 분위기를 잔잔하게 가라앉혔다.
조직의 두목들은 이제 영원의 일 진행 능력에 놀라지도 않고 고개를 계속 끄덕이며 영원의 말에 경청했다. 누가 보면 신흥종교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일이었다.
“그럼 이제 청룡파의 유시후 형님의 네트워크를 이용할 시간이 왔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유시후에게로 향했다.
청룡파의 두목인 유시후는 미소를 짓고 있던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며 영원을 바라보았다. 그도 아직 영원에게 그 어떤 언질도 받지 않았기에 영원이 무슨 말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최대한 정부의 시선을 분산시켜야 해요. 지금 정부 자체에서는 저희가 연합한 것을 알고는 있지만, 저희가 불법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저희의 행방을 알기란 쉽지 않지요.”
“그건 그렇지. 하지만 그거면 됐지 어째서 정부의 눈을?”
“제가 알아본 바로는 지금 김윤종 검사라는 분과 여승호 형사라는 분이 저희의 뒤를 캐고 있다고 하더군요.”
“김…… 김윤종 검사랑 여승호 형사?”
“네.”
순간 표창파의 김도환과 청룡파의 유시후가 놀랐다.
사실 그들은 김윤종 검사와 여승호 형사와 악연으로 똘똘 뭉친 사이었다. 여승호 형사는 원래 청룡파와 표창파의 불법 업소를 어떻게 알았는지 줄창 영업정지를 시켰다.
그것뿐인가, 구역 다툼으로 잡히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김윤종 검사가 엄청난 언변 능력과 각종 자료, 증거 제출로 소중한 부하들을 영창에 멈춤 없이 보냈다.
물론 그 외에도 김윤종 검사와 여승호 형사는 여러 방면에서 유명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이 암흑가의 사람들에게 가장 유명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