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미래일기 1권(21화)
6. 새로운 시작(3)


“여동생과 당신의 어머니가 인질로 잡혀 있지요? 중국 쪽에.”
쾅!
갑작스런 범블비의 강력한 지르기에 철창이 무너질 듯이 울렸다. 내공을 끌어 올린 것일까, 분명 녹슬기는 했지만 철로 된 철창이 기형적으로 휘었다.
“전 당신을 제 쪽으로 끌어들일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당신의 가족을 살려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해 드릴 테니 제 쪽으로 와 주십시오.”
순간 범블비의 기세가 드세졌다. 마치 영원을 죽일 듯이 그의 살기가 스멀스멀 주위로 퍼져 나갔다.
“설마 레지스 대신 네가 내 가족을 인질로 삼겠다는 이야기인가!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면 난 기필코 네놈을 죽일 것이야!”
우우웅!
갑자기 범블비에게서 가공할 만한 기운이 폭사되었다.
그것은 기(氣)였다.
하지만 청량한 기의 본질과는 다르게 사람의 근본부터 공포심에 물들게 만드는 기운이었다. 그리고 영원은 그 기운을 간신히 받아 내고 있었다.
영원은 동네의 합기도나 태권도 도장에서 중학교 때까지 배운 것 이외에는 무술을 배운 적도, 몸을 단련한 적도 없었다. 정말 식은땀을 흘리면서, 마치 칼로 찔리는 기분을 참아 가면서 간신히 그의 기운을 받아 내고 있었다.
“전 단지 그들을 레지스로부터 구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아니! 넌!”
“인질이 아닙니다. 단순히 그들을 살릴 의도입니다. 알아주십시오.”
점점 약해지는 기운을 느끼자 영원은 말을 모두 내뱉은 후 숨을 크게 내쉬었다. 공기가 저릿거릴 정도로 따끔했던 기운이 지금 조금 누그러졌다.
“아니, 넌 못한다. 그들은 나에게 내 가족을 살리러 오거나 탈출시키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을 죽인다고 했어. 만약 네놈이 구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어디에 숨길 거지? 레지스의 정보망은 전 세계로 펼쳐져 있단 말이다.”
범블비는 마치 체념을 하듯이 말을 내뱉었다. 자신이 그렇게 구하려 하다가 봉변을 당한 적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 모습에 영원은 그의 눈빛에서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딱 한 곳 있지 않습니까.”
“…….”
영원의 말에 범블비가 툭 떨어뜨린 고개를 영원 쪽으로 돌렸다.
“이 나라를 말하는 것이군.”
범블비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조소를 흘렸다. 레지스에게서 도망치는 곳으로 그들에게 점점 침식당하고 있는 나라를 고르다니 웃길 따름이었다.
이 소년의 생각이 기발하기는 했지만 어찌 되었든 이 나라도 레지스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지금 이 나라의 실질적인 뒷세계의 힘은 제 손에 있습니다. 그리고 차례차례로 이 나라를 침식하려는 레지스의 세력을 밀어내고 있지요. 그들의 힘으로 말이에요.”
“뭐?”
“사실대로 말해서 전국의 23개의 거대 조직들, 그리고 그 밑에 붙은 중소 조직들까지 합하면 최대 100개의 조직들이 저희 조합에 있습니다.”
“조합? 사실이냐. 거짓말이 아니고?”
범블비는 진실로 놀라고 말았다. 지금 자신이 생각한 것을 마치 알고 있다는 듯이 자신이 생각한 것에 대한 답을 내놓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말한 것이 놀라웠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레지스가 이 나라를 침식하기는커녕 자신의 가족들을 지킬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건 당신이 밖으로 나오면 알게 되겠지요. 어떻게 하겠어요. 아무리 제게 뒷세계의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당신이 없으면 당신 가족을 구할 수 없습니다.”
“…….”
범블비는 입을 굳게 다물고 말았다.
지금 이 소년이 하는 말에 희망을 걸기라도 하는 것일까, 이 자신이?
하지만 이 소년에게는 신기한 느낌이 있었다. 오랜 킬러로서의 감이자, 수련했던 무술로 얻은 사람 보는 눈이기도 했다.
“정말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가?”
“당신이 제게 오면 충분히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럼 좋다. 네 수족이 되어 주지. 대신 내 가족을.”
“당연합니다.”
영원은 함박웃음을 지어 보냈다.
범블비는 그 영원의 미소를 보며 갑자기 얼굴을 찌푸리고 말았다. 표정이 없는 그가 얼굴을 찌푸렸다는 것은 꽤나 신기한 일이었다.

“푸하아아!”
영원은 간신히 숨을 내쉬며 집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긴장이 풀려서 다리의 힘이 탁 풀려 버렸다. 간신히 팔의 힘이 살아 있어서 팔로 땅을 기어서 방 안으로 향할 수 있었다.
아까 전에 아무리 담담하게 대화를 했다고는 하지만, 범블비와 대면해 그의 살기를 온몸으로 받은 영원이 괜찮을 수는 없었다.
그 기분은 이로 말할 수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맹수를 만난 약한 동물의 기분이랄까? 죽음에서 도망칠 수 있다는 생각이 아니라 오히려 언제 죽임 당할지를 생각해야 하는 그런 기분이었다.
“설마 소설에서만 나오는 그게 존재하다니.”
그 기운은 도저히 과학적으로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는 중국 소림사에서 무술을 배웠다고 일기에 적혀 있었다. 하지만 소림의 무술이 아닌 수련만을 거기서 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가 배운 무술은 철저하게 살인무술이리라.
그리고 그가 내뿜던 기운은 기였다. 그렇다면 그는 내공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오래전에 사라졌다던 내공심법과 그에 연계된 무술을 그는 다룰 수 있었던 것이었다.
“으!”
부르르!
영원은 아까 전 그 섬뜩했던 상황을 생각하며 몸을 한 번 떨었다. 아무런 힘도 없는 자신이 어떻게 범블비의 기운에 버틴 것인지는 몰랐지만, 어쨌든 버텼다.
어찌됐든.
영원은 지금 지친 몸을 쉬게 할 생각뿐이었다.
지금 몸이 여러 가지 의미로 지쳐서 푹 처지고 있었다.
영원은 침대에 몸을 던진 후 몸의 긴장과 힘을 모두 빠지게 하였다.
침대에 누운 영원은 눈을 살며시 감고 짧은 휴식에 들어갔다.
최근 너무 무리를 했다.
매일이라고 할 정도로 밤을 지새웠고, 어울리지도 않는 성격을 연기하며 김윤종 검사와 여승호 형사, 거기다가 가까이만 다가가도 공포를 느끼게 하는 킬러 범블비와 담판도 지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재미있었어.”
영원은 한숨과 미소를 한 번에 내쉬며 그동안 했던 일들을 되짚어 보았다.
그동안 자신이 했던 일들이 도저히 자신이 한 것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았다. 주식으로 억 단위의 돈을 벌었고, 한국의 뒷세계의 실질적 권력도 잡았다. 그리고 그 힘으로 나라의 사업에 동참하고 있었다.
영원은 그동안 했던 일에 한편으로는 놀라며 한편으로는 미소를 지었다.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이렇게 거한 일 하나 터트려 놓았으니 재미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압!”
영원은 하체에 힘을 실어 튕겨 오르듯 침대로부터 방문으로 향했다.
방문을 열어젖힌 영원은 미래일기가 있는 서재로 향했다. 약속을 했다면 응당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레지스에게 직접적으로 한 방 먹일 수 있는 일을 터트릴 수 있는 것이었다.
영원은 일기를 펴고, 언제나처럼 그 옆에 A4용지를 놓은 후 손에 착착 감기는 싸구려 500원짜리 볼펜을 쥐었다.
이제 좀 휴식을 취하려고 했더니 오늘도 쉽게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한번 거하게 일을 벌여 볼 생각이었다.
휘리릭!
일기의 책장이 마치 바람에 날리듯이 영원의 손에 넘겨졌다.
평화로운 이야기가 적혀 있었던 것과는 달리, 그 일기에는 레지스에게서 범블비의 가족들을 구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읽어 볼 필요도 없었다.
무조건 성공이었으니까.
“으음.”
영원은 일기를 읽은 후 미소를 흘렸다.
그곳에는 역시 자신이 썼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하고 확실한 순서대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일을 진행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범블비가 빨리 기력을 회복해야 했고, 유니온의 두목들에게 부탁하여 조직원들의 힘도 빌려야 했다.
영원은 일기를 내용 하나하나까지 모두 외울 기세로 읽기 시작했다. 비록 일기라서 내용이 너무 자신 중심이었지만 오히려 이것이 더 도움이 되었다.
영원은 일기를 모두 외우고 나서 옆에 두었던 A4용지에 내용을 적기 시작했다.
일의 시작은 7일 후. 그러니까 정확히 일주일 후 중국의 산동성에서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 예정에 청룡파의 네트워크부터 범블비의 능력, 그리고 유니온의 힘이 들어갈 것이었다.
이것만으로도 무언가를 이룬다면, 설령 적이 레지스라고 한들 무섭지만은 않은 영원이었다. 그리고 거기다 미래일기까지 있으니, 이건 뭐 지피지기라고 할 것도 없이 백전백승이었다.
“자, 한 방 먹여 주마, 레지스!”
영원은 비장한 눈빛으로 허공에 외친 후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영원은 시험 기간을 맞은 학교 풍경을 감상하듯 보고 있었다.
마치 신흥종교 믿는 사람들처럼 선생님 말을 하나라도 더 들으려고 귀를 쫑긋 세우는 친구들을 보며 영원은 한숨을 쉬었다.
원래 시험의 취지라는 것이, 자신의 실력을 자신이 스스로 책정하기 힘드니까 도와주는 것으로 시험을 보는 것이건만, 이건 마치 어린아이들을 고문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물론 미래에는 더 심했다.
미래에 더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었다.
오히려 아이들을 고문하듯이 지금과는 격이 다른 공부를 시켰다.
“후우.”
영원은 한 번 숨을 내쉬며 밖을 내다보았다.
외국에서는 이렇게 공부를 무식하게 가르치지 않는다. 정말 한탄스러울 따름이었다. 그저 주입식에 주입식. 이해시키기는커녕 마치 컴퓨터에 파일을 다운받게 하듯 그저 선생의 지식만을 주입받는 그런 무식한 수업 방식이었다.
딩! 동! 뎅! 동!
생각에 잠겨 있던 영원은 마침 치는 종을 들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물론 그렇다고 갈 곳이 있는 것이 아니었지만 잠깐 바람을 쐬고 싶었다.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그냥 앉아서 멍 때리고 있었겠지만 정신이 조금 성숙해진 이유에서인지, 아니면 그저 성격이 변했는지 답답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타다닥!
“어.”
나가려고 문을 열자마자 영원은 조그마한 사이즈의 무언가가 옆으로 달려오는 것을 느꼈다.
“같이 가자.”
“역시 너였구나.”
영원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갔다. 쉬는 시간은 10분이어서 지금 나가 봤자 그리 많이 있지도 못하겠지만, 영원은 그냥 한숨을 쉬면서 굳이 나연이 따라오는 것을 막지 않았다.
“희환이는?”
그러고 보니 나연은 희환과 꽤 죽이 맞았다. 아니, 정확히는 나를 갈굴 때만이겠지만 말이다.
“학생회의 준비.”
“으음……. 그 녀석도 고생이구먼.”
지금쯤 우애부장과 선생님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희환을 생각하며 영원은 한숨을 쉬었다.
그 녀석도 그 녀석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 것이겠지.
휘이잉!
“음……. 곧 장마철이라서 그런지 바람이 그리 좋지 않구나.”
영원은 문을 열자마자 불어오는 끈적끈적한 습기 많은 바람을 맞으며 한숨을 쉬었다.
아직 비도 오지 않았건만 눅눅한 기운이 있었다.
“한국의 여름은 눅눅하게 더워서 싫다니까.”
“한국?”
나연은 갑자기 치를 떨듯이 한 번 몸을 흔들며 말을 흘렸다. 그런데 잘 들어 보니, 그 말은 도저히 국내에서만 살아온 사람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었다.
“아, 이야기하지 않았구나. 난 사실 미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온 거야. 광주 쪽은 사실 사투리 쓰는 사람도 있으니까. 말을 이해하기 힘들더라고. 뭐, 그래서 언제나 영어는 100점!”
승리의 V를 만들며 손을 내미는 나연을 보며 영원은 솔직히 놀라고 말았다. 아니, 물론 그녀와 말을 섞은 적이 거의 없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말이다.
물론 나연에게는 약간 이국적인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설마 정말 외국에서 살다 왔을 줄이야.
“그럼 이중국적?”
“으음……. 아니, 익스체인지 스튜던트(Exchange Student)? 그게 한국어로……. 아, 그래, 교환학생이야.”
그렇다면 국적은 미국이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이야기로 듣거나 소설로 읽었던 영원이었지만 또 가까이에 이런 사람이 있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아!!! 시간 지났다! 뛰어!”
영원은 갑자기 진동하는 핸드폰을 열어 보고는 놀란 마음으로 나연의 팔을 힘껏 끌어서 달렸다. 그러고 보니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우리 학교 종이 밖에서는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마침 마음에 안 드는 대머리 과학 선생님의 시간이었다.
“뛰어, 빨리!”
“어? 으응!”
왜인지 얼굴을 붉히는 나연을 잡고 영원은 그대로 반으로 질주했다. 의외로 나연은 잘 달렸다. 아니, 50m를 7초에 돌파하는 나와 동급으로 달리다니. 무언가 너무 빠르긴 했다.
‘아니, 뭐 상관없겠지.’
어찌 됐든, 간신히 영원은 과학 선생님보다 먼저 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전히 나연은 뭔가 상기된 얼굴로 한숨을 쉬고 있었다.
“으음…….”
그래도 이런 게 학교생활 아니겠는가.
영원은 수업 시간에 자리에 앉아 있지 않았다고 소리 지르는 과학 선생님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다시 창문 밖으로 눈길을 돌리며 또다시 자신만의 세계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