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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일기 1권(22화)
6. 새로운 시작(4)


집에 돌아온 후 영원이 한 일은 다름 아닌 준비였다.
학교는 의무니 어쩔 수 없었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일기에 적힌 그대로 행동을 진행하고 계획을 하려면 지금부터 준비해도 한참 부족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가방을 내던진 영원은 가볍게 손만 씻은 후 서재로 향했다.
그곳에는 꽤 많은 양의 일기들이 이리저리 펴져 있었고, 창문에는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여져 있었다.
그 포스트잇 하나하나에 무언가가 빼곡히 적혀 있었고, 그 뒤로는 사진들도 몇 장 보였다. 이것이 모두 영원이 세운 계획이었다.
지금은 4대강 사업으로 바빴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 어쩔 수 없이 이것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었다.
그 일은 다름 아닌 일명 ‘범블비 가족 구하기’였다.
“이 루트로 가면 걸린다고 적혀 있구나. 그럼……. 이 태산 능선 따라 죽 돌아가면……. 아니, 이럼 너무 오래 걸리는구나.”
영원은 창문을 보드 삼아 유성펜으로 이리저리 긋기도 하고, 무언가를 적기도 하면서 연구를 했다. 아니, 말이 연구지 영원은 일기에 적혀 있는 내용을 정리하고 그것을 계산하고 계획을 짜는 것이었다.
범블비의 가족이 있다는 산동성은 중국 화베이 지역의 성(省)이다. 산동성 자체는 내륙보다는 해안가였지만, 우리나라와는 달리 땅덩어리가 크다 보니 산동성 지역이지만 내륙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산동성을 포함한 장수성, 저장성, 푸천성은 레지스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었다. 결국 들어가려면 내륙을 통해 가는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자금도 자금이지만 해안보다 더 위험했다.
“뭘 그리 열심히 생각하나 했더니 이동 수단이었나?”
“헉!”
순간 영원은 뒤에서 들려오는 능청스러운 목소리에 놀라 뒤로 넘어져 버렸다.
그곳에는 예전과는 달리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인 외국인 남성 한 명이 서 있었다. 아아, 그는 다름 아닌 범블비였다.
“어째서 여기에? 문 분명히!”
“접쇠를 땄다. 따자마자 붙여 놓았으니 걱정은 마라.”
“허…… 허 거참.”
영원은 기겁했다.
잊고 있었다. 이 사람 킬러였지.
집에 침입하는 초보적인 것은 수십 가지 알고 있을 것이었다. 이런 사람과 적이 될 뻔했다니, 등골이 서늘했다.
“음, 꽤 조사를 제대로 했군. 그런데 이 화살표 모양은 뭐지?”
“저희들의 진행 방향입니다……. 그런데, 아니 왜 벨 누르면 되지 굳이 침입을 하는 거죠? 그리고 병원에서 치료 중이신 분이 왜 여기까지 나와서.”
“오, 대단하군. 설마 정찰 루트까지 조사하다니.”
“무시합니까…….”
자신의 말을 가볍게 무시해 주며 창문을 바라보는 범블비는 연신 감탄을 터트렸다.
어찌 됐든, 사실 범블비가 보고 있는 것의 대부분이 일기에 적혀 있었던 것을 자신이 조금 더 정확히 한 것이었다.
아무리 일기라지만, 아니 일기라서 모든 레지스의 정찰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적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걸리지 않는 루트는 적혀 있었다.
그렇기는 했지만, 그것으로만 가자니 무언가 부족한 것 같아서 이렇게 적혀 있는 것을 토대로 정찰 루트를 만든 것이었다.
“음, 역시 레지스의 직속 부대는 아니었군.”
“네. 사실 그 주변에 있는 천산파라는 깡패 조직이 당신 가족을 감시하는 것이었어요.”
“음…….”
사실 조금 조사를 해 보았더니 산동성 태산의 중턱에 감금 중인 범블비의 가족들은 모두 레지스에 속한 사람들이 아닌, 레지스에게 합병당한 중국의 조직 중 하나에게 감금당해 있었다.
“큭.”
영원은 갑자기 침음성을 흘리는 범블비를 바라보았다.
그는 입술에서 피가 날 정도로 잘근잘근 씹으며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그는 몇 번 가족을 구하기 위해 단신으로 침입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레지스가 단 일 초의 차이도 없는 정확한 타이밍에 방해를 했다고 한다. 그러고 난 후에, 한 번이라도 다시 구하기 위해 오면 가족을 몰살시키겠다는 레지스의 수장의 협박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가족의 안위를 위해 뒷조사도 하지 못했다.
가족의 안녕도 듣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범블비…… 아니, 헨리? 음…….”
“범블비라 불러도 된다.”
“아, 네. 범블비 씨는 어떻게 그렇게 한국어를 잘하지요? 고급 단어나 속어도 잘 아시던데?”
영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솔직히 그렇다.
지금까지 생각해 보았더니, 자신이 그와 영어로 대화한 것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영원이 영어를 못한다는 것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원어민만큼의 발음이 가능했다.
하지만 범블비는 단 한 번도 영어로 말한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가족이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네?”
“내 아버지는 이탈리아인이지. 어머니는 한국인이고. 참고로 여동생은 양아버지의 자식이다.”
“그……럼 친아버지는?”
“그도 킬러였다. 나를 철저히 교육시킨 후 레지스에 의해 척살당했다고 하더군.”
“으음…….”
영원은 입을 다물었다.
실수로 꺼내서는 안 되는 이야기를 꺼내 버렸다.
물론 그는 아무렇지도 않는지 평상시의 무감정적인 표정이었지만 말이다.
“그보다, 뭐가 그리 잘되지 않아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던 거지?”
“아, 이동 경로예요. 중국 안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지 못하겠어요.”
“음…… 확실히. 네가 데려갈 인원이 몇 명이라고?”
“50명이요.”
“내륙으로 간다면 좋겠지만, 그럼 레지스의 눈이 있을 테고. 바다로 가자니 마침 레지스의 밀집 구역이군. 사방팔방 레지스라.”
그 말대로였다.
일기에는 어느 경로로 들어갔는지에 대한 언급이 일절 없었다.
혹시나 해서 조금 후의 일기까지 모두 뒤져 보았지만 단 하나의 이야기도 없었다.
“비행기는 돈도 많이 들고, 위험도도 높아.”
“하이잭이나 테러를 말하시는 거예요?”
“그놈들은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야.”
“하긴.”
영원은 조소를 흘렸다.
전쟁도 아무렇지도 않게 일으키는 놈들인데 하이잭이나 테러 한두 번은 우스울 것이다.
“음, 방법이 있군. 그것도 좋은 방법이.”
“뭐죠?”
“지도를 잘 봐. 산동성과 마주치고 있는 지역 중에 하남성이 있지 않아?”
“네, 있네요.”
영원은 중국의 지도의 산동성에 아주 조금 접하고 있는 하남성을 손으로 톡톡 쳤다.
“하남성 등봉현(登封懸) 소실봉(少室峰). 확인해 봐.”
“음……. 등봉현이면 이곳이고, 소실봉? 이쪽이네요.”
“거기 뭐가 있지?”
“아? 아아!!!”
영원은 탄성을 질렀다.
그곳에는 소림사가 있었다.
수천 년 동안 중국 무술의 본고장이었고, 지금도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곳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아직 레지스에게 먹히지 않은 곳이었다.
“이곳까지만 간다면 내가 처리해 주지. 한국으로 따지면 이곳의 주지 스님이라는 자가 나와 친분이 있으니까 말이야.”
“정말, 당신은 유능해요.”
영원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쯤이면 일기에도 정보가 들어가서 새로운 내용이 적혀 있을 것이었다. 아니, 아마 지금쯤 내용이 변하고 있으리라.
“몸 상태는 어때요?”
“저번에 봤듯이 난 내공을 다룰 수 있다. 며칠 먹지 않거나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도 아무렇지 않다.”
‘하긴, 몇 달 동안 갇혀서 지낸 사람이 아팠다면 남의 집 접쇠를 따고 들어오진 않았겠죠.’
“그럼 제가 하남성까지 가는 루트를 찾아볼게요. 대신 당신은 그쪽의 지인을 소개해 주거나 물품을 조달해 주세요. 권총 50정이랑. 뭐, 각종 둔기들로요.”
“둔기라. 그 깡패 놈들의 것이냐?”
“네. 당신을 잡았던 사람들 중에서 요즘 그들의 보스에게 훈련받은 분들이에요.”
“걸림돌은 되지 않겠군.”
범블비는 팔짱을 끼며 콧로 숨을 내쉬었다.
“상관없으면 자고 가지 그래요?”
“그렇게 할 생각이다만?
“아, 네. 그럼요. 당신이 그렇죠 뭐.”
마치 당연한 듯한 표정으로 말하니 뭐라 반론할 수 없었다.
뭐 어찌 됐든, 준비는 끝나 가고 있었다.
이제 당일만 되면 영원과 50명의 청룡파 조직원, 그리고 범블비는 중국에 있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