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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 습득의 공식 1화
1. 사람 한 명과 개 한 마리 (1)
어라.
윤은 발걸음을 늦췄다. 조금만 더 가면 제집이지만 집 근처 어귀에 누워 있는 저것이 아무리 봐도 짐승 같은 데다, 죽은 건지 살아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윤은 주위를 둘러봤다. 골목엔 아무도 없었고, 제 입김만 하얗게 올라오고 있을 뿐이었으며 이 추운 겨울에 아스팔트 바닥은 잠자리로 쓰기엔 영 별로였다.
윤이 최대한 발소리를 줄여 짐승에게 다가갔다. 전체적으로 띤 회색빛에 군데군데 흰 털이 섞여 있는 개였다. 덩치가 굉장히 커다란 게 아주 어린 개는 아닌 것 같고, 몸이 약간 마르고 털에 윤기가 희미한 걸 보면 누군가 잃어버린 개도 아닌 듯하니 언제부터 길거리를 배회하고 다녔을지 모를 유기견 같았다. 죽었나, 생각하는 틈에 개의 가슴이 미약한 들숨으로 움직였다. 아직 죽진 않았구나. 윤은 한참을 망설이다 쓰러진 개의 털을 슬찍 쓸어내렸다. 개는 낯선 사람의 손길에도 미동이 없었고,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손에 닿은 털은 부드럽고 차가웠다.
개의 몸통에 가만히 손을 올려놓고 있으면 그제야 온기가 배어 나왔다. 이 날씨에 여기 계속 누워 있다간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기에 몸통을 슬쩍 흔들었다. 흔들면… 일어나지 않을까? 어림도 없었다. 개는 일어나지 않았다. 윤이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숨은 쉬는데, 왜 안 일어나는지. 윤의 머릿속 생각들은 어떤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흩어졌다. 어째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집에 가서 쉬고 싶은데, 이 작은 생명을 그냥 두고 갈 수가….
한참 개를 바라보던 윤이 결국 일어났다. 계속 앉아서 지켜만 본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일단 움직이는 편이 더 나았다. 개가 깨지 않기 최대한 조심스레 움직이며 뒤로 몇 발짝 물러나다가 몸을 돌려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집에 오는 길목에 편의점이 하나 있었다.
윤은 편의점에서 생수 한 병과 강아지용 간식 캔 몇 개를 샀다. 태어나 처음 사 보는 캔에 하얀 강아지 그림이 있었다. 말티즈 같은데, 저 개가 먹어도 되나? 소형견용은 아니겠지? 저 개는 어떻게 봐도 소형견은 아니니까…. 윤이 코트 주머니에 캔을 넣고 빠르게 뛰어갔다. 아직 개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빨리 가야 할 것만 같았다.
다행히 개는 아직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이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저 개가 멀쩡히 일어나 움직이는 게 더 다행일 일인데. 윤이 간식 캔을 뜯어 누워 있는 개의 코언저리에 놓아 줬지만 개는 간신히 숨만 쉬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개는 일어나지 않았다. 캔을 코에 더 가까이 밀었다.
코에 닿기 직전이 되어서야 윤은 포기했다. 오늘 눈 온다고 했는데. 벌써 10시가 가까워졌다.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기온에, 눈까지 오면 더 말할 것도 없이 개는 죽을 것이다. 내일 아침 출근길에 보게 될 풍경이 눈앞에 그려졌다. 이 위치, 이 자세 그대로 여기에 누워 있는 개와 그 위로 잔뜩 쌓여 있을 눈… 그걸 알면서 방치한 나 자신…. 윤이 손등으로 미간을 눌렀다. 방법이 없었다.
윤이 조심스레 개의 몸통을 잡고 일으켰다. 끄응, 하는 소리가 개의 잇새로 새어 나왔다. 소리도 낼 줄 아네. 윤이 코트 안쪽으로 개를 넣어 안았다. 워낙 덩치가 큰지라 코트로는 그 몸통을 덮으나 마나였다. 게다가 무겁기까지 해, 들어 안기도 힘들었다.
아, 완전 무거워. 윤이 울상을 지었다. 약간의 후회가 밀려오려던 차, 코트 자락 밑으로 개의 뒷발과 꼬리가 축 늘어져 바닥에 닿았다. 팔이 저릴 만큼 무거운 무게는 바닥에 다소 분산되었으며 개에게 스몄던 차가운 공기가 셔츠를 뚫고 살갗으로 파고들었다. 윤이 몸을 떨며 걸음을 재촉했다. 이렇게 된 거 일단은 집으로 데려가야겠다. 일단은 살리고 나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무거운 개를 끌고 가다시피 하는 발걸음이 마음과 다르게 느려졌다.
개는 침대 위에 가만 눕혀 놨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한참을 안은 채 망설이다 겨우 한 일이다. 윤은 조용히 개의 털을 쓰다듬었다. 살짝 벌어진 개의 입 사이로 드러난 이빨이 날카로워 보여 쓰다듬던 손길이 한층 더 조심스러워졌다. 일어나야 밥을 먹든 물을 마시든 할 텐데. 윤이 개의 옆에 슬며시 누웠다. 이불 하나 걸치는 것도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제 몸에 덮으면서도 개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잠깐을 망설이다 개의 몸통 위로 이불자락을 건네 덮었다. 따뜻해지면 일어나겠지. 다른 행동을 하기에는 제가 너무 피곤했다.
어딘가 불편한 느낌. 그가 눈꺼풀을 얄팍하게 들어 올렸다. 제 옆에 개가 엎드려 있었다. 아… 깜짝이야. 윤이 그저 눈만 깜빡였다. 개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그를 응시했다. 멀뚱히 시선을 주고받던 중, 윤이 개에게 손을 뻗다 멈췄다. 절대 아까 슬쩍 보인 이빨이 날카로웠기 때문이 아니다. 애매하게 팔을 편 상태로 손등을 개 앞에 내뻗다 슬그머니 제 쪽으로 다시 집어넣었다.
개가 흥, 하고 크게 콧김을 내뿜으며 고개를 내밀어 윤의 손등 냄새를 맡았다. 그러면서 눈을 치켜들어 시선을 맞춰 왔다. 오. 마치 교감하는 기분이 들었다. 개가 조용히 윤을 쳐다보다 푹, 다시 엎드리면 그제야 안심이 들었다. 적어도 날 싫어하진 않는 것 같아. 개에게 다시 이불을 덮어 주고 싶었지만, 여전히 자신을 노려보는 그 눈빛이 너무… 낯설어서, 윤은 그냥 눈을 감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자는 게 중요했다. 지금은 정말로, 너무 피곤했다.
그래도 깨어나서 다행이야. 윤의 입가에 조그만 미소가 걸렸다. 까만 어둠 속 은은한 스탠드 조명만 빛을 내는 방 안. 개는 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알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 바람에 그는 간신히 눈을 떴다. 아직도 기분이 몽롱해서 몇 번이나 눈을 깜빡이며 아침에 적응하려 애썼다. 그때, 옆자리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개가 엎드린 채 윤을 쳐다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지? 알람 소리에 깬 건가? 하긴, 개들은 워낙 소리에 민감하니까 제 알람이 잘 자던 개를 깨운 것일 수도 있었다. 윤은 눈을 몇 번 더 깜빡였다.
“안녕.”
잘 잤어? 대답 없는 인사가 민망했다. 집에서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하게 되다니. 윤이 바람 빠지는 소리로 웃었다. 개의 오른쪽 귀가 쫑긋거렸다.
“배고프지. 밥 먹어야 하는데.”
윤이 식탁에 올려놨던 캔을 하나 땄다. 개는 캔 따는 소리에 우아하게 침대에서 뛰어 내려왔다. 길쭉한 다리가 유독 돋보였다. 윤은 눈을 크게 떴다.
“너… 뛸 힘은 있어? …이거 먹어.”
개는 윤을 힐끔, 올려다보더니 제 앞에 놓인 캔으로 이내 시선을 돌렸다. 캔의 냄새를 몇 번 맡아 보고 앞발로 몇 번 툭툭, 쳐 보다 입을 댔다. 먹는 게 제법 예쁘기도 하고. 환할 때 보니 생각보다 덩치가 많이 컸다. 어제도 이만했던가? 일반 대형견만 한 줄 알았는데, 그것보단 훨씬 컸다. 그러고 보니 이 개, 생긴 게 허스키랑 비슷했다. 털색이 허스키보다 더 연하고 색이 여럿 섞여 있었지만, 원래 그런 앤가 보다 넘겼다. 허스키는 원래 이렇게 다리가 길구나.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어디 아프진 않고? 아픈 곳 있으면 두 번 짖어 봐.”
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저 개를 어째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였다. 사실 윤은 어릴 때부터 개를 키우고 싶었다. 그것도 아주 큰 개. 큰 개와 함께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고, 그러다 개가 내 무릎을 베고 잠들고, 개의 꼬리를 베개 삼아 잠드는 삶…. 어린아이라면 당연한 수순처럼 평화를 그리며 꿈꾸던 삶이 아니던가. 비록 부모님의 반대로 키우지 못했지만, 지금은 저 혼자다. 혼자라는 점이 마음에 걸려도 나쁘지 않았다. 얘도 지금 혼자니까, 혼자인 개와 사람끼리. 윤은 어느새 고기 캔을 다 비운 개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너 나랑 살래?”
개는 대답이 없었다.
“나랑 살자. 나랑 사는 거다? 우리 집 네가 지켜 주는 거다?”
윤이 활짝 웃었다. 가족이 생긴 셈이다. 그는 개의 목덜미를 덥석 끌어안았다. 개가 윤의 귓가에서 낮게 목울대를 울리며 위협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가족이야.
다음 날, 개를 두고 떠나는 윤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집을 나서기가 걱정돼 신발을 신으면서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고, 문을 완전히 닫기까지 한참이 걸려도 개는 개의치 않아 보였다. 윤이 보이는 위치에 멀찍이 떨어져 앉아 가만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제법 의젓한 개였다.
***
윤은 컴퓨터 앞에 앉아 의미 없이 스크롤을 내리며 집에 있을 개 생각만 했다. 이제 가족이니까 이름도 지어 줘야 하는데, 이름은 뭐가 좋을지 전혀 모르겠고 언제까지 캔만 먹일 수는 없으니 사료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형견… 이니까 큰 걸로 사야겠다. 화장실은 배변 패드만 두면 되는 건가? 간식도 사야 하고, 장난감도…. 윤은 정신을 집에 보낸 상태라, 제 옆에 누군가가 다가오는 기척을 눈치채지 못했다.
“고윤? 눈 뜨고 자?”
“어?”
입사 동기 재영이 어깨를 툭 치자 그제야 윤은 정신을 다잡았다. 머쓱해진 윤이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흘렸다. 재영은 이 전쟁터 같은 회사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였다. 재영은 윤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표정이 왠지 멍하고 묘하게 상기되어 하얀 뺨이 발그레했다. 재영이 물었다.
“뭐야. 더워?”
“아니, 하나도 안 더운데.”
“그럼 무슨 일 있어? 왜 정신을 빼놓고 있어.”
아, 그게. 윤이 입술을 달싹였다. 말할 듯 망설이다 다시 다물리고. 그 꼴이 두어 번 반복되자 재영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지금 말하기 좀 그러면 이따 술이나 한잔하든가.”
“나 개 키운다.”
그래서 술은 안 돼.
뭐? 재영이 생각보다 크게 소리를 내는 바람에 파티션 너머로 이쪽을 향하는 날카로운 시선들이 느껴졌다. 재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틀어막았으며 윤도 깜짝 놀라 재영의 배를 주먹으로 툭, 쳤다. 재영이 눈을 두루룩 굴리다 슬그머니 손을 내리곤 입을 크게 벌려 입 모양으로 대화를 시도했다.
1. 사람 한 명과 개 한 마리 (1)
어라.
윤은 발걸음을 늦췄다. 조금만 더 가면 제집이지만 집 근처 어귀에 누워 있는 저것이 아무리 봐도 짐승 같은 데다, 죽은 건지 살아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윤은 주위를 둘러봤다. 골목엔 아무도 없었고, 제 입김만 하얗게 올라오고 있을 뿐이었으며 이 추운 겨울에 아스팔트 바닥은 잠자리로 쓰기엔 영 별로였다.
윤이 최대한 발소리를 줄여 짐승에게 다가갔다. 전체적으로 띤 회색빛에 군데군데 흰 털이 섞여 있는 개였다. 덩치가 굉장히 커다란 게 아주 어린 개는 아닌 것 같고, 몸이 약간 마르고 털에 윤기가 희미한 걸 보면 누군가 잃어버린 개도 아닌 듯하니 언제부터 길거리를 배회하고 다녔을지 모를 유기견 같았다. 죽었나, 생각하는 틈에 개의 가슴이 미약한 들숨으로 움직였다. 아직 죽진 않았구나. 윤은 한참을 망설이다 쓰러진 개의 털을 슬찍 쓸어내렸다. 개는 낯선 사람의 손길에도 미동이 없었고,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손에 닿은 털은 부드럽고 차가웠다.
개의 몸통에 가만히 손을 올려놓고 있으면 그제야 온기가 배어 나왔다. 이 날씨에 여기 계속 누워 있다간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기에 몸통을 슬쩍 흔들었다. 흔들면… 일어나지 않을까? 어림도 없었다. 개는 일어나지 않았다. 윤이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숨은 쉬는데, 왜 안 일어나는지. 윤의 머릿속 생각들은 어떤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흩어졌다. 어째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집에 가서 쉬고 싶은데, 이 작은 생명을 그냥 두고 갈 수가….
한참 개를 바라보던 윤이 결국 일어났다. 계속 앉아서 지켜만 본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일단 움직이는 편이 더 나았다. 개가 깨지 않기 최대한 조심스레 움직이며 뒤로 몇 발짝 물러나다가 몸을 돌려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집에 오는 길목에 편의점이 하나 있었다.
윤은 편의점에서 생수 한 병과 강아지용 간식 캔 몇 개를 샀다. 태어나 처음 사 보는 캔에 하얀 강아지 그림이 있었다. 말티즈 같은데, 저 개가 먹어도 되나? 소형견용은 아니겠지? 저 개는 어떻게 봐도 소형견은 아니니까…. 윤이 코트 주머니에 캔을 넣고 빠르게 뛰어갔다. 아직 개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빨리 가야 할 것만 같았다.
다행히 개는 아직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이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저 개가 멀쩡히 일어나 움직이는 게 더 다행일 일인데. 윤이 간식 캔을 뜯어 누워 있는 개의 코언저리에 놓아 줬지만 개는 간신히 숨만 쉬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개는 일어나지 않았다. 캔을 코에 더 가까이 밀었다.
코에 닿기 직전이 되어서야 윤은 포기했다. 오늘 눈 온다고 했는데. 벌써 10시가 가까워졌다.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기온에, 눈까지 오면 더 말할 것도 없이 개는 죽을 것이다. 내일 아침 출근길에 보게 될 풍경이 눈앞에 그려졌다. 이 위치, 이 자세 그대로 여기에 누워 있는 개와 그 위로 잔뜩 쌓여 있을 눈… 그걸 알면서 방치한 나 자신…. 윤이 손등으로 미간을 눌렀다. 방법이 없었다.
윤이 조심스레 개의 몸통을 잡고 일으켰다. 끄응, 하는 소리가 개의 잇새로 새어 나왔다. 소리도 낼 줄 아네. 윤이 코트 안쪽으로 개를 넣어 안았다. 워낙 덩치가 큰지라 코트로는 그 몸통을 덮으나 마나였다. 게다가 무겁기까지 해, 들어 안기도 힘들었다.
아, 완전 무거워. 윤이 울상을 지었다. 약간의 후회가 밀려오려던 차, 코트 자락 밑으로 개의 뒷발과 꼬리가 축 늘어져 바닥에 닿았다. 팔이 저릴 만큼 무거운 무게는 바닥에 다소 분산되었으며 개에게 스몄던 차가운 공기가 셔츠를 뚫고 살갗으로 파고들었다. 윤이 몸을 떨며 걸음을 재촉했다. 이렇게 된 거 일단은 집으로 데려가야겠다. 일단은 살리고 나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무거운 개를 끌고 가다시피 하는 발걸음이 마음과 다르게 느려졌다.
개는 침대 위에 가만 눕혀 놨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한참을 안은 채 망설이다 겨우 한 일이다. 윤은 조용히 개의 털을 쓰다듬었다. 살짝 벌어진 개의 입 사이로 드러난 이빨이 날카로워 보여 쓰다듬던 손길이 한층 더 조심스러워졌다. 일어나야 밥을 먹든 물을 마시든 할 텐데. 윤이 개의 옆에 슬며시 누웠다. 이불 하나 걸치는 것도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제 몸에 덮으면서도 개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잠깐을 망설이다 개의 몸통 위로 이불자락을 건네 덮었다. 따뜻해지면 일어나겠지. 다른 행동을 하기에는 제가 너무 피곤했다.
어딘가 불편한 느낌. 그가 눈꺼풀을 얄팍하게 들어 올렸다. 제 옆에 개가 엎드려 있었다. 아… 깜짝이야. 윤이 그저 눈만 깜빡였다. 개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그를 응시했다. 멀뚱히 시선을 주고받던 중, 윤이 개에게 손을 뻗다 멈췄다. 절대 아까 슬쩍 보인 이빨이 날카로웠기 때문이 아니다. 애매하게 팔을 편 상태로 손등을 개 앞에 내뻗다 슬그머니 제 쪽으로 다시 집어넣었다.
개가 흥, 하고 크게 콧김을 내뿜으며 고개를 내밀어 윤의 손등 냄새를 맡았다. 그러면서 눈을 치켜들어 시선을 맞춰 왔다. 오. 마치 교감하는 기분이 들었다. 개가 조용히 윤을 쳐다보다 푹, 다시 엎드리면 그제야 안심이 들었다. 적어도 날 싫어하진 않는 것 같아. 개에게 다시 이불을 덮어 주고 싶었지만, 여전히 자신을 노려보는 그 눈빛이 너무… 낯설어서, 윤은 그냥 눈을 감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자는 게 중요했다. 지금은 정말로, 너무 피곤했다.
그래도 깨어나서 다행이야. 윤의 입가에 조그만 미소가 걸렸다. 까만 어둠 속 은은한 스탠드 조명만 빛을 내는 방 안. 개는 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알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 바람에 그는 간신히 눈을 떴다. 아직도 기분이 몽롱해서 몇 번이나 눈을 깜빡이며 아침에 적응하려 애썼다. 그때, 옆자리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개가 엎드린 채 윤을 쳐다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지? 알람 소리에 깬 건가? 하긴, 개들은 워낙 소리에 민감하니까 제 알람이 잘 자던 개를 깨운 것일 수도 있었다. 윤은 눈을 몇 번 더 깜빡였다.
“안녕.”
잘 잤어? 대답 없는 인사가 민망했다. 집에서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하게 되다니. 윤이 바람 빠지는 소리로 웃었다. 개의 오른쪽 귀가 쫑긋거렸다.
“배고프지. 밥 먹어야 하는데.”
윤이 식탁에 올려놨던 캔을 하나 땄다. 개는 캔 따는 소리에 우아하게 침대에서 뛰어 내려왔다. 길쭉한 다리가 유독 돋보였다. 윤은 눈을 크게 떴다.
“너… 뛸 힘은 있어? …이거 먹어.”
개는 윤을 힐끔, 올려다보더니 제 앞에 놓인 캔으로 이내 시선을 돌렸다. 캔의 냄새를 몇 번 맡아 보고 앞발로 몇 번 툭툭, 쳐 보다 입을 댔다. 먹는 게 제법 예쁘기도 하고. 환할 때 보니 생각보다 덩치가 많이 컸다. 어제도 이만했던가? 일반 대형견만 한 줄 알았는데, 그것보단 훨씬 컸다. 그러고 보니 이 개, 생긴 게 허스키랑 비슷했다. 털색이 허스키보다 더 연하고 색이 여럿 섞여 있었지만, 원래 그런 앤가 보다 넘겼다. 허스키는 원래 이렇게 다리가 길구나.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어디 아프진 않고? 아픈 곳 있으면 두 번 짖어 봐.”
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저 개를 어째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였다. 사실 윤은 어릴 때부터 개를 키우고 싶었다. 그것도 아주 큰 개. 큰 개와 함께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고, 그러다 개가 내 무릎을 베고 잠들고, 개의 꼬리를 베개 삼아 잠드는 삶…. 어린아이라면 당연한 수순처럼 평화를 그리며 꿈꾸던 삶이 아니던가. 비록 부모님의 반대로 키우지 못했지만, 지금은 저 혼자다. 혼자라는 점이 마음에 걸려도 나쁘지 않았다. 얘도 지금 혼자니까, 혼자인 개와 사람끼리. 윤은 어느새 고기 캔을 다 비운 개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너 나랑 살래?”
개는 대답이 없었다.
“나랑 살자. 나랑 사는 거다? 우리 집 네가 지켜 주는 거다?”
윤이 활짝 웃었다. 가족이 생긴 셈이다. 그는 개의 목덜미를 덥석 끌어안았다. 개가 윤의 귓가에서 낮게 목울대를 울리며 위협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가족이야.
다음 날, 개를 두고 떠나는 윤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집을 나서기가 걱정돼 신발을 신으면서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고, 문을 완전히 닫기까지 한참이 걸려도 개는 개의치 않아 보였다. 윤이 보이는 위치에 멀찍이 떨어져 앉아 가만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제법 의젓한 개였다.
***
윤은 컴퓨터 앞에 앉아 의미 없이 스크롤을 내리며 집에 있을 개 생각만 했다. 이제 가족이니까 이름도 지어 줘야 하는데, 이름은 뭐가 좋을지 전혀 모르겠고 언제까지 캔만 먹일 수는 없으니 사료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형견… 이니까 큰 걸로 사야겠다. 화장실은 배변 패드만 두면 되는 건가? 간식도 사야 하고, 장난감도…. 윤은 정신을 집에 보낸 상태라, 제 옆에 누군가가 다가오는 기척을 눈치채지 못했다.
“고윤? 눈 뜨고 자?”
“어?”
입사 동기 재영이 어깨를 툭 치자 그제야 윤은 정신을 다잡았다. 머쓱해진 윤이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흘렸다. 재영은 이 전쟁터 같은 회사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였다. 재영은 윤의 얼굴을 이리저리 살폈다. 표정이 왠지 멍하고 묘하게 상기되어 하얀 뺨이 발그레했다. 재영이 물었다.
“뭐야. 더워?”
“아니, 하나도 안 더운데.”
“그럼 무슨 일 있어? 왜 정신을 빼놓고 있어.”
아, 그게. 윤이 입술을 달싹였다. 말할 듯 망설이다 다시 다물리고. 그 꼴이 두어 번 반복되자 재영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지금 말하기 좀 그러면 이따 술이나 한잔하든가.”
“나 개 키운다.”
그래서 술은 안 돼.
뭐? 재영이 생각보다 크게 소리를 내는 바람에 파티션 너머로 이쪽을 향하는 날카로운 시선들이 느껴졌다. 재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틀어막았으며 윤도 깜짝 놀라 재영의 배를 주먹으로 툭, 쳤다. 재영이 눈을 두루룩 굴리다 슬그머니 손을 내리곤 입을 크게 벌려 입 모양으로 대화를 시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