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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 습득의 공식 2화
1. 사람 한 명과 개 한 마리 (2)
언제부터?
어제.
왜?
딱히 대답할 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왜냐니… 그냥. 재영은 기가 막혀 허, 소리를 냈다. 너 이따 봐. 재영이 손짓을 했다. 이제 돌아가겠다는 신호였다. 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퇴근하면 아마 대체 무슨 일이냐고 잔뜩 물어볼 게 뻔했다. 다시 컴퓨터 앞에 바로 앉았지만 복잡한 머리는 조금도 바르게 정돈되지 않았다. 나도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윤은 조용히 장바구니에 담아 놓은 10kg 사료 한 봉지와 배변 패드 한 세트, 장난감 공 세 개, 누르면 삑 소리가 나는 인형 두 개를 결제했다.
“그래서 네가 키우겠다고?”
“응.”
내가 데려왔으니까 책임져야지. 재영과 퇴근길을 함께하던 윤이 덤덤하게 말했다. 재영이 그의 옆모습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시선을 견디다 못한 윤이 재영을 마주 보며 눈썹을 슬쩍 들어 올렸다.
“그래서, 개 이름은 정했어?”
재영의 물음에 윤이 목덜미를 긁적였다. 누가 봐도 정하지 못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건 아직….”
“잘 지어 봐. 예쁜 걸로 지어 줘야지.”
“내내 생각해 봤는데 마땅한 게 없어서. 뭐가 좋은지도 모르겠고.”
“흠….”
“아. 허스키니까 숙희 어때. 허숙희.”
“미쳤냐?”
“그럼 시베리안이니까 시벨?”
“이런 시벨…. 욕 같잖아.”
“그럼 어떡해. 나 이것밖에 생각 안 했어.”
“너 그냥 걔 입양 보내.”
“이름 못 짓는 게 입양까지 보내야 될 일이야…?”
“아니. 그냥 널 못 믿겠어.”
“아니야. 다른 건 잘해. 진짜 잘해 줄 거야.”
“모르겠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일부러 눈을 가늘게 뜬 재영은 이미 포기한 듯싶었다. 그의 단전 깊은 곳에서 오기가 치솟았다. 진짜라고. 윤이 입을 삐죽이며 걸었다. 신발 끝에 눈덩이가 채였다.
어제 눈이 온다던 예보가 맞긴 했던 모양이다. 새벽에 눈이 얼마나 많이 내렸는지 길 변두리에 흰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가만 걷고 있으니 구둣발에 눈 밟히는 소리가 빠드득, 울렸다. 제가 데려오지 않았으면 아마도 개는 이런 눈을 이불처럼 덮고 죽음의 문턱을 넘었을 것이다.
“그럼 설이는? 눈 오면 큰일 날까 봐 집에 데려왔으니까. 눈도 왔고, 허스키잖아.”
“그래, 이제야 정상적인…. 괜찮네. 강아지한테 사람 이름 붙이면 오래 산대.”
“정말? 잘됐다. 오래 살아야지.”
“말 나온 김에 나 강아지 보러 너희 집 가도 돼? 지금.”
“지금? 상관없긴 한데…. 그럼 간식 사 줘. 나 얘 간식 못 샀어.”
“당연하지. 첫 만남인데 잘 보여야 한다고. 허스키면 연어 좋아하려나? 얼음 깨고 연어 사냥하잖아.”
“뭔 소리야. 얘가 곰이야?”
아님 말고. 편의점에 간식 파냐?
많이는 없는데 있긴 있더라.
연어도?
생연어 말하는 건 아니지?
그건 비싸. 첫 만남에 너무 부담스러워해.
네가 부담스러운 건 아니고?
편의점이 너희 집 앞에 있었나?
웃음이 나왔다. 말 돌리기는. 코트 주머니에 차갑게 얼어 가는 손을 집어넣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집에서 누군가 기다린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윤은 자기가 없는 텅 빈 집에서 혼자 있을 개를 떠올렸다. 볼을 베는 칼바람에도 기분이 좋았다.
윤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고개만 슬쩍 문안으로 밀어 넣고 손은 바깥으로 빼, 밖에 서 있을 재영에게 신호를 보냈다. 소파 위에 엎드려 문을 노려보던 개는 윤이 보이자 풀쩍 뛰어 현관 앞으로 걸어왔다. 개는 현관과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윤을 응시했다. 윤이 문을 열고 들어가며 재영에게 고갯짓을 했다. 재영은 저도 모르게 발뒤꿈치를 들고 소리를 최대한 줄였다.
“혼자 잘 있었어? 내가 친구 데려왔는데….”
문이 닫히자, 개의 시선이 윤에게서 재영에게 넘어갔다. 개와 조우한 재영의 입이 벌어졌다.
“고윤, 저게 허스키라고? 늑대 아니야?”
“늑대?”
그때, 개가 재영에게 달려들었다.
재영이 우아악, 비명을 지르며 굳게 닫힌 문에 기대 주저앉았고 개는 그의 앞까지 달려가 큰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당장이라도 물어뜯을 기세에 재영은 눈을 튀어나올 만큼 크게 뜬 채로 애타게 윤을 불렀다. 윤아, 얘 왜 이래?
당황스럽기는 윤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얌전한 애였는데. 이런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은 미처 검색해 보지 못한 탓에 개의 뒤에서 이리 오라고 불러 대기만 했다. 착하지, 이리 와. 개는 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점점 더 재영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얼른 이리 와. 떨리는 목소리는 아무리 침착하려 애써도 감춰지지 않았다.
“윤아… 나 무서워….”
“이리 와. 착하네, 이리 와.”
“하나도 안 착해…. 안 가잖아….”
재영은 울기 직전이었다. 허스키라며. 허스키라며! 이렇게 덩치가 산만 하다고는 말 안 했잖아! 눈앞의 허스키는 콧잔등을 잔뜩 찌푸린 채 귀를 밭게 세우고 이빨까지 드러내며 위협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는 재영에게서 반드시 피를 보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까지 느껴졌다. 뾰족하고 긴 어금니가 저를 노리고 있었으며 저 어금니에 스치기만 해도 피가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재영은 최대한 문에 몸을 밀착시켰다. 아까 문을 닫은 걸 진심으로 후회했다. 오지 말고 얌전히 집에나 갈 것을, 괜히 와선 이런 일을 당하고 있었다. 안광이 흉흉하게 빛나던 개는 이내 컹, 하고 짖으며 입을 벌렸다. 세상아, 안녕. 재영이 끝내 눈을 감았다.
“설원아!”
뭐, 누구? 재영이 꾹 감고 있던 눈을 한쪽씩, 슬쩍 뜨고는 윤을 쳐다봤다. 아직 개는 저를 물지 않았고 윤이 개를 부르고 있었다. 조용한 정적 속에서 윤이 다시 개를 불렀다. 설원아. 개가 크게 벌린 입을 천천히 다물었다. 저를 부르는걸 알기라도 하는지 살기 어린 눈빛도 조금씩 사그라졌다.
“설원아. 이리 와.”
응? 착하지. 빨리.
상황이 훨씬 나아지고, 윤의 음성에 떨림이 잦아들었다. 개를 부를 때마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귀를 움찔거리던 개가 마침내 재영에게서 등을 돌렸다. 우아하게 흔들리는 풍성한 꼬리를 보자 재영은 미처 감지 못해 시린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윤은 제 쪽으로 오는 개에게 손을 내밀었다. 개는 손바닥에 머리를 한번 대더니 소파 위로 뛰어 올라가 엎드렸다. 개의 노란 눈과 간신히 멀어진 재영이 그제야 안도의 긴 숨을 내뱉었다. 윤도 짧게 숨을 골랐다.
“나 이제 집에 갈래….”
재영이 우는소리를 했다. ‘왜 가. 신고식도 했는데. 하, 하하.’ 윤의 얼굴에 미소가 퍼졌다. 이제야 제법 긴장이 풀렸다. 그러나 재영은 전혀 웃지 못했고 개는 콧김을 뱉으며 현관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2. 개가 아니라 (1)
그렇다고 진짜 가 버리다니. 내심 섭섭해진 윤은 선물이랍시고 재영이 두고 간 연어와 소고기 맛 캔을 냉장고에 넣었다. 별거 없는 냉장고 한 켠에 차곡히 쌓인 애견용 캔을 보니 마음 구석 어딘가가 간질거렸다. 제 몫이 아닌 음식들이, 혼자 살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윤이 새어 나오는 미소를 틀어막느라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렇게 해도 곱게 접히는 눈매는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고 그 묘한 얼굴을 설원이 잠자코 보고 있었다.
윤이 연어 캔 하나를 꺼냈다. 사료를 오늘 주문하는 바람에 지금 당장은 먹일 게 이런 것밖에 없었다. 못내 미안한 마음에 캔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 캔을 따 설원이의 앞에 놓자 설원이가 힐끗, 눈을 추켜올렸다. 윤은 그 시선이 어색해질 때쯤 제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잠시 후, 설원이 연어 캔을 먹는 소리가 났다. 달그락거리며 캔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해도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그는 그 와중에도 어제 사 온 간식 캔과는 다른 맛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지그시 설원이를 바라봤다.
따지고 보면 재영의 말이 틀린 게 없었다. 어제는 어둡고 당장 정신이 없어서. 오늘은 잠이 덜 깨서. 그냥 당연히 허스키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설원이를 보고 있으면 허스키… 개와 다른 점을 하나하나 꼽아 낼 수 있었다. 이모저모 뜯어보면 같은 점도 별로 없었다. 모색도 확실히 허스키와는 다른 잿빛에 덩치 역시 훨씬 크다. 허스키를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제가 아는 그 어떤 대형견도 설원이보다는 작을 것 같았다. 그렇겠지… 어떤 대형견이 성인 남자 허리까지 오겠냐고. 곰곰이 생각해 봐도 확실히 제가 본 개 중에는 없었다.
사실 제 머리보다 설원이 머리통이 더 컸다. 저 입으로 내 머리를 으깨려고 한다면 충분히 으깰 수 있겠지. 점점 맹수 재난 영화로 장르가 바뀌는 머릿속 상상에 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설원이가 연어 캔을 다 먹어 치우고 제 입가를 느지막이 핥아 올렸다. 허공에서 얽히는 눈빛에 깜짝 놀란 윤은 그제야 깨끗하게 비워진 캔을 확인했다.
“다 먹었어? 물도 마셔야 하는데. 갖다줄게.”
간혹 이런 순간이 올 때마다 설원이는 개가 아니란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눈이 마주칠 때. 탁한 노란빛의 홍채가, 그 눈에 담긴 힘을 보면 누가 봐도 맹수인데.
윤이 집에서 제일 큰 그릇을 꺼냈다. 하얗고 반질반질한 그릇은 사 놓고 한 번도 쓴 적이 없었다. 언젠가, 집에서 누군가에게 요리를 해 줄 때가 오면 쓰려고 산 그릇은 한 번 꺼내 보지도 못했다. 윤이 생수를 잔뜩 부어 설원이에게 주었다. 설원이는 물 냄새를 한참 맡더니 금세 혀로 물을 감아올렸다. ‘이거 네가 처음 쓰는 거야. 이제 너 줄게.’ 물을 마시면서도 제 목소리를 따라 설원이의 귀가 앞으로 쫑긋 세워졌다. 하하하. 윤의 웃음소리에 곧추선 귀가 움찔거렸다. 귀여워. 윤이 설원의 앞에 쪼그려 앉아 무릎에 턱을 괴었다.
너 잘 생각해. 야생동물 보호… 뭐 그런 걸로 잡혀간다.
재영이 한 말을 곱씹었다. 아무리 그래도 잡혀가기까지 할까…? 윤은 설원의 앞에 가만 쪼그린 채로 늑대를 검색했다. 사진을 보면 볼수록 설원이랑 똑같이 생겼다. 이렇게 전형적인 늑대 상인데. 왜 몰랐지. 윤은 애써 부정해 오던 생각을 인정했다. 사실 아주 모르진 않았다. 다만 애초에 늑대가 이 도심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설원이가 실은 개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렇지 않다고, 개라고 확신하려 했다. 지금 보니 영 틀린 말이었지만.
1. 사람 한 명과 개 한 마리 (2)
언제부터?
어제.
왜?
딱히 대답할 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왜냐니… 그냥. 재영은 기가 막혀 허, 소리를 냈다. 너 이따 봐. 재영이 손짓을 했다. 이제 돌아가겠다는 신호였다. 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퇴근하면 아마 대체 무슨 일이냐고 잔뜩 물어볼 게 뻔했다. 다시 컴퓨터 앞에 바로 앉았지만 복잡한 머리는 조금도 바르게 정돈되지 않았다. 나도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윤은 조용히 장바구니에 담아 놓은 10kg 사료 한 봉지와 배변 패드 한 세트, 장난감 공 세 개, 누르면 삑 소리가 나는 인형 두 개를 결제했다.
“그래서 네가 키우겠다고?”
“응.”
내가 데려왔으니까 책임져야지. 재영과 퇴근길을 함께하던 윤이 덤덤하게 말했다. 재영이 그의 옆모습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시선을 견디다 못한 윤이 재영을 마주 보며 눈썹을 슬쩍 들어 올렸다.
“그래서, 개 이름은 정했어?”
재영의 물음에 윤이 목덜미를 긁적였다. 누가 봐도 정하지 못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건 아직….”
“잘 지어 봐. 예쁜 걸로 지어 줘야지.”
“내내 생각해 봤는데 마땅한 게 없어서. 뭐가 좋은지도 모르겠고.”
“흠….”
“아. 허스키니까 숙희 어때. 허숙희.”
“미쳤냐?”
“그럼 시베리안이니까 시벨?”
“이런 시벨…. 욕 같잖아.”
“그럼 어떡해. 나 이것밖에 생각 안 했어.”
“너 그냥 걔 입양 보내.”
“이름 못 짓는 게 입양까지 보내야 될 일이야…?”
“아니. 그냥 널 못 믿겠어.”
“아니야. 다른 건 잘해. 진짜 잘해 줄 거야.”
“모르겠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고.”
일부러 눈을 가늘게 뜬 재영은 이미 포기한 듯싶었다. 그의 단전 깊은 곳에서 오기가 치솟았다. 진짜라고. 윤이 입을 삐죽이며 걸었다. 신발 끝에 눈덩이가 채였다.
어제 눈이 온다던 예보가 맞긴 했던 모양이다. 새벽에 눈이 얼마나 많이 내렸는지 길 변두리에 흰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가만 걷고 있으니 구둣발에 눈 밟히는 소리가 빠드득, 울렸다. 제가 데려오지 않았으면 아마도 개는 이런 눈을 이불처럼 덮고 죽음의 문턱을 넘었을 것이다.
“그럼 설이는? 눈 오면 큰일 날까 봐 집에 데려왔으니까. 눈도 왔고, 허스키잖아.”
“그래, 이제야 정상적인…. 괜찮네. 강아지한테 사람 이름 붙이면 오래 산대.”
“정말? 잘됐다. 오래 살아야지.”
“말 나온 김에 나 강아지 보러 너희 집 가도 돼? 지금.”
“지금? 상관없긴 한데…. 그럼 간식 사 줘. 나 얘 간식 못 샀어.”
“당연하지. 첫 만남인데 잘 보여야 한다고. 허스키면 연어 좋아하려나? 얼음 깨고 연어 사냥하잖아.”
“뭔 소리야. 얘가 곰이야?”
아님 말고. 편의점에 간식 파냐?
많이는 없는데 있긴 있더라.
연어도?
생연어 말하는 건 아니지?
그건 비싸. 첫 만남에 너무 부담스러워해.
네가 부담스러운 건 아니고?
편의점이 너희 집 앞에 있었나?
웃음이 나왔다. 말 돌리기는. 코트 주머니에 차갑게 얼어 가는 손을 집어넣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집에서 누군가 기다린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윤은 자기가 없는 텅 빈 집에서 혼자 있을 개를 떠올렸다. 볼을 베는 칼바람에도 기분이 좋았다.
윤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고개만 슬쩍 문안으로 밀어 넣고 손은 바깥으로 빼, 밖에 서 있을 재영에게 신호를 보냈다. 소파 위에 엎드려 문을 노려보던 개는 윤이 보이자 풀쩍 뛰어 현관 앞으로 걸어왔다. 개는 현관과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윤을 응시했다. 윤이 문을 열고 들어가며 재영에게 고갯짓을 했다. 재영은 저도 모르게 발뒤꿈치를 들고 소리를 최대한 줄였다.
“혼자 잘 있었어? 내가 친구 데려왔는데….”
문이 닫히자, 개의 시선이 윤에게서 재영에게 넘어갔다. 개와 조우한 재영의 입이 벌어졌다.
“고윤, 저게 허스키라고? 늑대 아니야?”
“늑대?”
그때, 개가 재영에게 달려들었다.
재영이 우아악, 비명을 지르며 굳게 닫힌 문에 기대 주저앉았고 개는 그의 앞까지 달려가 큰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당장이라도 물어뜯을 기세에 재영은 눈을 튀어나올 만큼 크게 뜬 채로 애타게 윤을 불렀다. 윤아, 얘 왜 이래?
당황스럽기는 윤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얌전한 애였는데. 이런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은 미처 검색해 보지 못한 탓에 개의 뒤에서 이리 오라고 불러 대기만 했다. 착하지, 이리 와. 개는 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점점 더 재영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얼른 이리 와. 떨리는 목소리는 아무리 침착하려 애써도 감춰지지 않았다.
“윤아… 나 무서워….”
“이리 와. 착하네, 이리 와.”
“하나도 안 착해…. 안 가잖아….”
재영은 울기 직전이었다. 허스키라며. 허스키라며! 이렇게 덩치가 산만 하다고는 말 안 했잖아! 눈앞의 허스키는 콧잔등을 잔뜩 찌푸린 채 귀를 밭게 세우고 이빨까지 드러내며 위협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는 재영에게서 반드시 피를 보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까지 느껴졌다. 뾰족하고 긴 어금니가 저를 노리고 있었으며 저 어금니에 스치기만 해도 피가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재영은 최대한 문에 몸을 밀착시켰다. 아까 문을 닫은 걸 진심으로 후회했다. 오지 말고 얌전히 집에나 갈 것을, 괜히 와선 이런 일을 당하고 있었다. 안광이 흉흉하게 빛나던 개는 이내 컹, 하고 짖으며 입을 벌렸다. 세상아, 안녕. 재영이 끝내 눈을 감았다.
“설원아!”
뭐, 누구? 재영이 꾹 감고 있던 눈을 한쪽씩, 슬쩍 뜨고는 윤을 쳐다봤다. 아직 개는 저를 물지 않았고 윤이 개를 부르고 있었다. 조용한 정적 속에서 윤이 다시 개를 불렀다. 설원아. 개가 크게 벌린 입을 천천히 다물었다. 저를 부르는걸 알기라도 하는지 살기 어린 눈빛도 조금씩 사그라졌다.
“설원아. 이리 와.”
응? 착하지. 빨리.
상황이 훨씬 나아지고, 윤의 음성에 떨림이 잦아들었다. 개를 부를 때마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귀를 움찔거리던 개가 마침내 재영에게서 등을 돌렸다. 우아하게 흔들리는 풍성한 꼬리를 보자 재영은 미처 감지 못해 시린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윤은 제 쪽으로 오는 개에게 손을 내밀었다. 개는 손바닥에 머리를 한번 대더니 소파 위로 뛰어 올라가 엎드렸다. 개의 노란 눈과 간신히 멀어진 재영이 그제야 안도의 긴 숨을 내뱉었다. 윤도 짧게 숨을 골랐다.
“나 이제 집에 갈래….”
재영이 우는소리를 했다. ‘왜 가. 신고식도 했는데. 하, 하하.’ 윤의 얼굴에 미소가 퍼졌다. 이제야 제법 긴장이 풀렸다. 그러나 재영은 전혀 웃지 못했고 개는 콧김을 뱉으며 현관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2. 개가 아니라 (1)
그렇다고 진짜 가 버리다니. 내심 섭섭해진 윤은 선물이랍시고 재영이 두고 간 연어와 소고기 맛 캔을 냉장고에 넣었다. 별거 없는 냉장고 한 켠에 차곡히 쌓인 애견용 캔을 보니 마음 구석 어딘가가 간질거렸다. 제 몫이 아닌 음식들이, 혼자 살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윤이 새어 나오는 미소를 틀어막느라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렇게 해도 곱게 접히는 눈매는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고 그 묘한 얼굴을 설원이 잠자코 보고 있었다.
윤이 연어 캔 하나를 꺼냈다. 사료를 오늘 주문하는 바람에 지금 당장은 먹일 게 이런 것밖에 없었다. 못내 미안한 마음에 캔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 캔을 따 설원이의 앞에 놓자 설원이가 힐끗, 눈을 추켜올렸다. 윤은 그 시선이 어색해질 때쯤 제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잠시 후, 설원이 연어 캔을 먹는 소리가 났다. 달그락거리며 캔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해도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그는 그 와중에도 어제 사 온 간식 캔과는 다른 맛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지그시 설원이를 바라봤다.
따지고 보면 재영의 말이 틀린 게 없었다. 어제는 어둡고 당장 정신이 없어서. 오늘은 잠이 덜 깨서. 그냥 당연히 허스키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설원이를 보고 있으면 허스키… 개와 다른 점을 하나하나 꼽아 낼 수 있었다. 이모저모 뜯어보면 같은 점도 별로 없었다. 모색도 확실히 허스키와는 다른 잿빛에 덩치 역시 훨씬 크다. 허스키를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제가 아는 그 어떤 대형견도 설원이보다는 작을 것 같았다. 그렇겠지… 어떤 대형견이 성인 남자 허리까지 오겠냐고. 곰곰이 생각해 봐도 확실히 제가 본 개 중에는 없었다.
사실 제 머리보다 설원이 머리통이 더 컸다. 저 입으로 내 머리를 으깨려고 한다면 충분히 으깰 수 있겠지. 점점 맹수 재난 영화로 장르가 바뀌는 머릿속 상상에 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설원이가 연어 캔을 다 먹어 치우고 제 입가를 느지막이 핥아 올렸다. 허공에서 얽히는 눈빛에 깜짝 놀란 윤은 그제야 깨끗하게 비워진 캔을 확인했다.
“다 먹었어? 물도 마셔야 하는데. 갖다줄게.”
간혹 이런 순간이 올 때마다 설원이는 개가 아니란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눈이 마주칠 때. 탁한 노란빛의 홍채가, 그 눈에 담긴 힘을 보면 누가 봐도 맹수인데.
윤이 집에서 제일 큰 그릇을 꺼냈다. 하얗고 반질반질한 그릇은 사 놓고 한 번도 쓴 적이 없었다. 언젠가, 집에서 누군가에게 요리를 해 줄 때가 오면 쓰려고 산 그릇은 한 번 꺼내 보지도 못했다. 윤이 생수를 잔뜩 부어 설원이에게 주었다. 설원이는 물 냄새를 한참 맡더니 금세 혀로 물을 감아올렸다. ‘이거 네가 처음 쓰는 거야. 이제 너 줄게.’ 물을 마시면서도 제 목소리를 따라 설원이의 귀가 앞으로 쫑긋 세워졌다. 하하하. 윤의 웃음소리에 곧추선 귀가 움찔거렸다. 귀여워. 윤이 설원의 앞에 쪼그려 앉아 무릎에 턱을 괴었다.
너 잘 생각해. 야생동물 보호… 뭐 그런 걸로 잡혀간다.
재영이 한 말을 곱씹었다. 아무리 그래도 잡혀가기까지 할까…? 윤은 설원의 앞에 가만 쪼그린 채로 늑대를 검색했다. 사진을 보면 볼수록 설원이랑 똑같이 생겼다. 이렇게 전형적인 늑대 상인데. 왜 몰랐지. 윤은 애써 부정해 오던 생각을 인정했다. 사실 아주 모르진 않았다. 다만 애초에 늑대가 이 도심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설원이가 실은 개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렇지 않다고, 개라고 확신하려 했다. 지금 보니 영 틀린 말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