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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나간 지가 언젠데 아직 거기까지밖에 못 갔어?”

가희는 등 뒤에서 들리는 지훈의 목소리에 움찔 놀라다 걸음을 재촉했다. 전학을 가자는 엄마의 의도는 단지 집과 가깝다는 의도였지만 본의 아니게 서로가 껄끄러웠다. 재혼 가정의 동생과 누나로 같은 학교를 다닌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서로 암암리에 밝히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기에 그나마 다행이라 여겼다.

“떨어져서 걸어.”

“여기가 학교냐?”

핀잔을 주듯 말하는 지훈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보던 가희는 혀를 찼다. 네가 어디를 가든 눈에 띄는 족속이라는 것을 진정 모른단 말이냐, 하고 묻고 싶었다.

전학을 와 약간의 텃새를 경험했지만 그건 곧 잠잠해졌다. 자신이 상대를 하지 않았고 문제를 만들지도 않았다. 찐맛 떨어진 애들은 곧 시들해졌고 자신은 조용히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훈과 가족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귀찮아질 것이 뻔했다. 남들의 관심은 절대 사양이었다.

“학교는 아니지만 떨어져 걸어. 너랑 얽혀 좋을 일이 없어.”

“어쭈, 완전 막가판데?”

아침부터 시비를 거는 지훈과 실랑이를 하려니 지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가희는 버스 정류장을 향해 방향을 휙 꺾었다.

“야, 너 방향치냐? 지하철역은 저기라고.”

“나 지하철…… 우왁!”

가방을 꽉 움켜쥔 지훈에게 질질 끌려가듯 뒷걸음으로 걷던 가희는 지하철 계단 앞에서 몸을 바로 세울 수 있었다.

“아침에 지각하고 싶으면 버스 타든지.”

자세는 바로 잡았지만 자신의 가방 끈을 잡고 걷는 지훈 때문에 가희는 또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뗐다.

“난 지하철 싫어.”

“……왜?”

멀뚱한 얼굴로 묻던 지훈이 고개를 살짝 갸웃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마.”

자신이 걱정하는 게 무엇인지 다 안다는 듯 지훈이 피식 웃어 보였다. 그 웃음이 정말 걱정을 잡아먹기라도 한 듯 불안하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덜렁거리듯 대충 처리하는 것 같은데도 이상하리만치 안도가 되는 지훈이었다.

“조심해.”

역시 사람에 치여 떠밀리는 지하철은 끔찍했다. 벌을 서듯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 지훈의 바로 앞에 서서 이리저리 치이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리고 착각인지 모르지만 아까부터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느낌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탁.

“윽!”

“야, 이 새끼야! 너 죽고 싶어?”

지훈의 서릿발 같은 음성에 스멀거리던 소름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 어, 어린것이!”

남자의 기고만장한 목소리가 크지는 않았지만 기가 질리게 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훈은 한 치도 밀리지 않고 낮게 뇌까리고 있었다.

“부러뜨려 줄까?”

“뭐. 이, 이게…… 으윽!”

“손모가지 부러뜨리기 전에 조용히 사라져라.”

“쳇, 재수 옴 붙었네!”

남자는 자기 죄를 모르는 듯 큰소리를 치며 사람들을 밀치고 멀어졌다. 가희는 지훈이 남자의 손을 낚아채는 순간부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남자를 죽일 듯 노려보던 지훈의 눈빛이 자신을 향하는 순간 순하게 탁 풀어져 있었다. 자신을 보며 안심하라는 듯 입가에 미소를 지었지만 같이 미소가 지어지지 않았다. 식은땀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힐 정도였다.

“괜찮아?”

말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입술을 떼는 순간 지훈에게 이래서 지하철이 싫다고, 하며 버럭 소리를 지를 것만 같았다.

“저 새끼 한 번만 더 걸리면 진짜 죽여 버릴 거야.”

지훈이 내뱉는 말이 현실에서 정말 일어날 것만 같아 가희는 어깨를 움츠렸다. 그냥 동생처럼 봤던 지훈이 낯선 남자의 체취를 안고 다가왔다.

“이제 괜찮아…….”

손잡이를 잡고 있는 자신의 손마디가 하얗게 불거진 것을 봤지만 손에 힘을 뺄 수가 없었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지훈의 눈빛이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착 가라앉아 있어 당황스럽기도 했다.



칠판에 ‘자습.’이라고 적힌 글자를 멍하게 바라보던 가희는 책상에 힘없이 엎드렸다. 영어 선생님이 일정에 없던 하루치 교육을 가시는 바람에 수업을 하지 않는 자습 시간이었다. 가희는 잡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어 곤혹스러웠다.

“하아.”

가희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난 아까워서 만지지도 못하는데.’

지하철 타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보통 버스를 타는데 지훈이 막무가내로 끌고 가는 바람에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예전 안 좋은 경험을 한 뒤로 사람들이 붐비는 시간에 타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나란히 설 줄 알았던 지훈이 병풍을 치듯 뒤에 서자 든든함이 들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에, 뒤에 지훈이 서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에 방심을 하고 있었다.

스멀거리며 더듬는 느낌에 소리를 질러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눈치가 빠른 것인지, 우연히 본 것인지 몰라도 지훈이 그놈의 손모가지를 비틀었다. 겨우 숨을 몰아쉬며 서 있는 자신의 이마를 손등으로 쓰윽 문지른 지훈이 사람들을 헤치고 자신을 이끌어 지하철 출입문 근처로 갔다.

‘숨 쉬어. 이제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거야. 내가 안 일어나게 할게.’

다독이는 듯한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지훈의 시선을 끝까지 받아 내기가 어려워 고개를 돌렸었다. 그런데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아까워서 못 만지고 있다니.

“자?”

“어? 아니.”

가희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눈높이를 낮추며 같이 엎드린 효진을 향해 미소 지어 보였다.

“우리 중간고사 끝나고 뭐할까?”

전학을 오는 순간부터 친구가 된 효진이었다.

“영화 볼까?”

“좋아. 내가 오늘 집에 가서 예매를 할게.”

환하게 웃는 효진을 향해 가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팔에 머리를 뉘였다. 오늘 지하철을 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니 지훈이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냥 가족이라는 이유로 어깨를 토닥이며 일진이 나빴다고 위로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면 좋았을 텐데. 언짢아진 얼굴로 혼잣말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가희는 이미 일어난 일임에도 자꾸 가정을 하며 시간을 되돌리고 있었다. 지훈에게 의지해 버린 마음을 되돌리고 싶었다.



“점심 먹고 나니 춘곤증인지 나른하다.”

열어 둔 교실 창을 통해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더운 듯 시원한 바람이었다.

“이미 4월의 마지막 주다만?”

“야, 말이 그렇다고!”

“윽.”

가희는 효진에게 핀잔을 주다 어깨를 맞고는 어이없다는 듯 웃고 말았다. 나무들이 푸름을 자랑하는 교정은 점심 휴식 시간을 즐기는 아이들로 수를 놓고 있었다.

“저기 농구 시합하나 본데?”

“어디?”

가희는 무심결에 돌아보다 눈을 가늘게 떴다. 거리가 있어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기가 애매한 거리였는데도 그 무리에 섞여 있는 남학생들 중 지훈이 있음을 알아볼 수 있었다. 똑같은 교복 때문에 다들 엇비슷하게 보였지만 농구공을 바닥에 튕기며 걷는 특유의 느릿한 걸음이 있었다. 몇 달 같이 살았다고 걸음걸이를 구분할 수 있다니. 가희는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와! 3점 슛!”

효진이 호들갑을 떨며 어깨를 와락 끌어안자 가희는 성가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신이 난 효진은 가희의 표정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네 애인이라도 있어? 왜 그렇게 열심히 응원이야?”

시큰둥한 얼굴로 효진을 나무랐다.

“어? 그냥 신나잖아. 우리 내려가서 볼까?”

“곧 종 울릴 시간이야.”

가희는 효진의 팔을 밀어내며 교과서를 꺼냈다. 아직 휴식 시간은 충분히 남아 있었다. 교실에서 운동장으로 몇 번이나 다녀올 수 있는 시간이었다.

“쟤 지훈이네?”

“……!”

가희는 교과서를 펴다 누군가의 말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무렇지 않게 넘기면 되는 일인데 영우가 지훈을 알아본 순간부터 가희는 좌불안석이 되었다.

“쟤 유명한 얘야?”

효진이 영우를 돌아보며 묻자 가희는 마른침을 삼켰다.

“유명하다기보다는 같은 중학교 후배여서 좀 알아.”

“그래? 쟤 농구 선수야?”

“아니이.”

영우가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이며 대답을 길게 늘였다. 그러자 효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고 가희는 그런 둘을 빤히 바라봤다.

“같은 학년이 아니었으니 같은 반은 아니었을 테고. 어떻게 알아? 같은 동아리였어?”

자신이 하고 싶었던 질문을 효진이 야무지게 하고 나왔다.

“쟤가 아마 그 당시 2학년 중에서 톱이었을 걸?”

“뭐가 톱이야? 노는 걸로 톱이었다는 거야?”

“아니, 시험만 쳤다 하면 쟤가 일등이었는데 중 3땐가 아니구나, 중 2 기말 고사 때 어머니 돌아가시고 완전 성적이 바닥을 기었지. 너무 급작스러운 성적에 다들 이해를 못하겠다는 얼굴이었지. 그러다 나중엔 그동안 컨닝으로 성적을 유지한 건 아닐까, 하고 의심을 하기도 했어.”

“공부를 그렇게 잘 했다고?”

가희는 저도 모르게 영우와 효진의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어? ……어. 그때까지만 해도 그랬지.”

떨떠름한 표정이던 영우가 어깨를 으쓱하며 인정하고 나왔다.

“전교 30등…….”

“어?”

“아! 아, 아니 아무것도.”

가희는 당황한 낯빛을 숨기며 교과서로 시선을 내렸지만 머릿속은 암전이었다. 설마 했는데 지훈이 정말 전교 30등을 할 것만 같았다. 생각할수록 지훈에게 말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쿵!

벽을 울리는 소리에 가희는 미간을 찌푸렸다. 오늘은 방에서 나가지 않고 버틸 작정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저 소리 때문에 방을 나가면 어김없이 지훈이 자신에게로 왔다.

쿵! 터엉!

공이 바닥을 신경질적으로 튀는 소리가 나다가 잠잠해지자 가희는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아침에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로 인해 하루 종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깊게 생각하지 않으면 그만인데도 그럴 수가 없었다.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지훈의 눈빛이 심장에 시리도록 깊게 박혀 빼낼 수가 없었다. 잘못 본 것이라고 치부하며 머리를 저어 보는데도 그 눈빛은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하아…… 공부해야 하는데.”

가희는 들고 있던 볼펜을 내려다보다 눈을 가늘게 떴다.

“전교 30등을 하든 300등을 하든 무슨 상관이야. 결과가 아직 나온 건 아니잖아.”

신경질적으로 혼자 중얼거린 가희는 탁 소리 나게 볼펜을 내려놓고는 침대로 풀썩 드러누웠다.

딸깍. 끼이익.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 있던 가희는 지훈의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자 당황해 벌떡 일어났다. 마루를 밟는 소리가 나고 바닥을 스치는 발소리가 이어지는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러다 가희는 갑자기 자신이 왜 이러나 싶었다. 지훈이 물을 마시러 아래층으로 갈 수도 있고 욕실에 갈 수도 있는데 왜 긴장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지훈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평범하지 않다고 해서 자신이 동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내색하지 않으면 지훈도 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쉽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 받아 주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시작한 것이 없고, 시작한 것이 없는 채로 자신은 졸업하고 한국을 떠나면 되는 것이다.

“그러게 재혼은 왜 하냐고. 아니지, 1년만 더 견딜 것이지.”

가희는 투덜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다가갔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시간은 가기 마련이었다. 그러니 있는 동안 최대한 이 집에서 눈에 띄지 않고 지내고 싶었다.



“고등어가 맛이 좋은데 비해 값이 장난 아니네요.”

“요즘 물가가 다들 장난이 아니지.”

엄마의 말에 대꾸하는 새아버지의 말을 흘려들은 가희는 식탁에 올라온 고등어를 힐끗 보다 물 잔을 들었다. 최대한 부딪치지 않고 살려면 몸을 낮추는 것이 옳은 방법이듯이 될 수 있으면 말수도 줄이려 했다.

그런데 툭, 식탁 밑으로 자신의 발을 차는 이가 있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지훈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순간 든 생각은 왜 하필 마주 앉는 자리일까, 였다. 가만히 바라보는 눈동자에 자신이 오롯이 담겨 있다는 것이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아니다, 그냥 쳐다보는 것일 뿐이니 오버하지 말자.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지훈이 먼저 일어서며 인사를 건네고 주방을 빠져나갔지만 가희는 미적거리고 있었다. 아직 밥을 덜 먹은 척하며 국을 숟가락으로 천천히 휘젓고 있었다.

“그래, 차 조심하고 잘 다녀와라.”

현관에서 지훈을 배웅하는 엄마를 보다 가희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3분 아니, 5분만 늦게 나가면 지훈과 맞닥트리지 않을 거라는 계산 중이었다.

“넌 안 늦어? 왜 이리 미적거려?”

“어? 나, 나도 이제 가야지.”

“태워 줄까?”

“…….”

새아버지의 말에 가희는 갈등했다. 만일 태워준다면 지훈과 학교 가는 길에 맞닥트릴 일은 없었다.

“버릇 나빠져요. 얼른 서둘러.”

새아버지의 말을 대신 거절해 버린 엄마가 오늘따라 얄미웠다.

“……다녀오겠습니다.”

가희는 자신의 밥과 국그릇을 싱크대 안에 넣고 가방을 멨다. 잘 다녀오라는 두 분의 인사를 뒤로하고 나온 길이 개운하지 않았다.

“먼저 갔겠지?”

가희는 대문을 나서 골목길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버스를 타든 지하철을 타든 저 골목길을 벗어나야 했다. 가희는 부지런을 떨어야 지각을 면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종종걸음으로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왜 이렇게 늦게 나오냐?”

“……!”

막 골목길을 벗어나 버스 정류장으로 방향을 꺾으려던 가희는 지훈의 목소리에 움찔 놀랐다. 삐딱한 자세로 한 손은 주머니에 찔러 넣고 서 있는 지훈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