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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연금술사 리덴 1권(7화)
2. 죽음이 내려앉는 풍경(3)
서걱.
세나의 검이 왼쪽 집 벽을 부수고 튀어나온 좀비의 몸을 갈랐다. 그와 동시에 좀비의 몸이 화염에 휩싸였다.
“어라?”
세나는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였지만 곧 아무래도 좋다는 식으로 오른쪽 집 벽을 부수고 나온 좀비를 베었다.
화륵.
세나의 검에 베인 좀비는 반으로 갈라지자마자 불길에 휩싸여 재가 되었다.
‘자세한 건 선생님께 물어보면 되겠지. 그런데 웬 좀비? 어째서? 흑마법사가 있나? 수도 타로스에?’
의문에 휩싸인 세나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밤이라고 해도 성벽 근처에는 병사가 있을 테고, 흑마법사 관련 일이라면 병사에게 보고하는 편이 나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실책이었다. 세나가 길을 따라 성벽 근처로 이동하니 좀비가 되어 버린 병사가 세나를 향해 덤벼들었다. 느렸기에 세나는 별 부담 없이 피해서 검을 휘둘러 베어 버렸다.
‘병사도 좀비가 되었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어째서? 그러고 보니 선생님이 묘한 소리를 했던 것 같아. 그대로 죽어서 언데드 몬스터가 되고 싶으면 그대로 있든지 아니면 물 떠오라고. 그렇다는 건 바보 선생님이 뭔가 알고 있다는 뜻이야.’
판단을 내린 세나는 즉시 발을 돌려 연금술사 리덴의 집으로 향했다. 도중에 좀비 몇을 베어야 했지만 신경은 쓰지 않았다.
쿠벤베르크 연금술은 엔버의 스승 쿠벤베르크가 창시했지만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3개의 연금술 학파와 1개의 신비학파, 1개의 고대 유산이 묶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본래 쿠벤베르크는 수도사였다. 크리스트교 내부에 은밀히 존재하는 엑소시즘을 행하는 자들 중 하나였는데 어쩌다 보니 고대 유산을 손에 넣게 되었고, 그 결과 세 명의 연금술사와 1명의 신비학자에게서 그들의 지식과 힘을 전승받았다.
우연의 우연이 몇 번이나 겹쳐져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쿠벤베르크 연금술이었다.
리덴은 이러한 역사를 간략하고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하지만 이븐에게 있어서는 하늘의 별을 따는 일만큼이나 난해했다.
지구? 중세 유럽? 마녀사냥? 신비학?
이게 다 뭐란 말인가. 때문에 순간적으로 ‘줄을 잘못 섰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러한 생각은 세나가 돌아오면서 180도 바뀌게 되었다.
덜컹.
굉음이 울리며 지하실 문이 난폭하게 열렸다.
“선생님!”
세나가 나타났다. 쿠벤베르크 학파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 강의하던 리덴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불청객 세나를 노려보았다.
“뭐야, 들어오지 말랬더니.”
리덴이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은 뭔가 알고 있죠? 좀비랑 싸웠어요. 성벽에서 보초를 서는 병사들도 좀비가 되어 있었구요.”
세나가 본론만을 요약해서 말했다.
“아, 그랬지.”
리덴은 깜빡했다는 듯이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는 ‘쿠벤베르크 학파의 역사와 전통을 설명하는 일은 조금 미루어야겠다. 생각해 보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라고 이븐에게 양해를 구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선생님.”
이븐이 물었다.
“정확하게는 몰라.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우리들 모두 누군가의 공격을 받았다는 거야.”
리덴이 그런 말을 하고는, 자신이 공방에서 기르고 있던 생물형 연금 재료들이 죽어서 언데드가 되었다는 말을 했다.
“……!”
“……!”
이븐도 세나도 놀랐다. 리덴의 연금술사 집에서 리덴의 공방은 가장 중요한 장소였다. 따라서 외부의 간섭을 배제하기 위한 리덴표 방어 결계가 시전되어 있었다.
“아무튼 좀비가 나타났다는 것은. 내가 기절한 채로 시간이 꽤 흘렀다는 건데. 게다가 공격 받은 건 우리 건물만이 아니고. 일단 밖으로 나가 봐야 알 수 있으려나. 망할…… 건질 수 있는 재료들은 어떻게든 건졌으면 좋겠지만. 대부분 죽음의 기운에 오염이 되어 있겠지. 하지만 건질 수 있는 건 건져야지. 노예는 상품으로 진열되어 있는 성수 전부 가져오고. 돈줄은 너 가진 돈 좀 있지? 보석이나 금화나 은화나. 좌우간 그런 거 싹 다 끌어모아 와. 나도 가져올 테니.”
리덴이 지시를 내렸다.
30분 후.
리덴의 지하실에 리덴의 연금술사 상점이 가진 모든 재산이 모이게 되었다. 이에 리덴은 성수를 부었다.
치이이익.
뿌연 연기가 모락모락 뿜어졌다.
‘역시, 전부 오염되어 있군. 도대체 이게 무슨 난리야. 망할.’
리덴은 인상을 한번 찌푸리고는 성수를 아낌없이 사용해 금화와 은화 그리고 보석을 정화하였다. 그러고는 이븐에게 배낭을 가져오게 한 후, 배낭에 그 전부를 넣었고, 그 배낭은 이븐이 관리하게 했다.
“스승님은 정식 제자를 압사시킬 생각이십니까?”
이븐이 항의를 했다.
이븐은 리덴을 스승님이라고 불렀다. 정식 제자가 된 것을 기념해서 호칭을 살짝 바꾼 것이다.
“재미없다. 웃기지 말고 들어. 이 정도는 가뿐히 들 수 있을 텐데, 뭘 그래.”
리덴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이븐의 항의를 흘려버렸고 정식 제자가 된 이븐은 하늘같은 스승 리덴의 말을 믿고 배낭을 멨다.
리덴의 연금술사 집의 모든 재산이 들어 있는 배낭은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세나와 이븐이 들어가 있어도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컸다. 그 안에 금은보화를 비롯하여 돈으로 사용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 연금 재료들이 잔뜩 들어 있는 것이다. 배낭의 무게가 이븐 그 자신의 무게의 몇 배는 될 터였다. 그럼에도 이븐은 별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돈줄, 오늘은 네가 앞장을 선다. 가로막는 것이 있으면 좀비든 뭐든 베어 버려. 나는 뒤를 따르지.”
리덴이 말했다.
“에에! 선생님. 선생님이 있는데 내가 왜 앞장을 서요. 선생님이 앞장을 서세요. 제가 뒤를 따를게요.”
세나가 항의를 했다.
“너는 뒤통수에 눈이 달리지 않아서 안 돼. 아니면 눈알 하나 박아 줄까?”
리덴이 대꾸했다.
“뒤통수에 눈이요? 그러는 선생님도 뒤통수에 눈 없잖아요.”
세나는 납득하지 못했는지 다시 한 번 저항을 했다.
“괜찮아. 나는 뒤통수에 눈이 없어도 기척을 감지할 수 있어. 너보다 100배쯤 낫지. 알았으면 잔소리 말고 앞장서.”
리덴은 그렇게 세나의 항의를 묵살했다. 이때, 이븐이 끼어들었다.
“스승님, 목적지가 어디입니까?”
라고.
“일단 도날드 검술 아카데미로 간다. 그러고는 연금술사 길드 지부, 마법사 길드 지부, 최종적으로는 황궁이겠지.”
리덴의 이 말에 세나의 눈이 커졌다. 도날드 검술 아카데미로 가겠다는 리덴의 말에서 리덴이 자신을 배려하고 있음을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뭘 그런 눈으로 쳐다봐. 불만이야? 조용히 앞장이나 서, 돈줄.”
리덴이 눈을 치켜뜨며 세나에게 지시를 내렸고 세나는 더 이상 항의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리덴과 세나, 이븐은 연금술사 리덴의 집을 떠났다.
도날드 검술 아카데미 정문.
리덴은 세나에게 안에 들어가 살아 있는 사람은 있는지, 상황이 어떠한지 보고 오라고 말했다.
“네, 선생님.”
세나는 지시를 받자마자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세나가 리덴의 시야에서 사라졌을 무렵 이븐이 입을 열었다.
“어째서 여기를 1차 목표로 삼으신 건지 의문입니다. 바보는 스승님이 자신을 위해서 결정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만 선생님은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여기 관장은 익스퍼트 최상급이지. 돈줄은 중급. 노예, 너는 공격을 받자마자 쓰러졌지만 돈줄은 꽤 멀쩡했어. 그렇다는 것은 어쩌면…… 물론 그것 때문은 아니야. 조금 정확한 상황을 알고 싶었다.”
리덴이 답했다.
“도날드 검술 아카데미에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이븐이 물었다.
“그렇지는 않겠지. 죽음의 기운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대기만 해도 그래. 지면도 죽음의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다. 구름도 아주 두꺼워서 햇빛이 전혀 쏟아지지 않아. 이 정도라면…… 글쎄. 길드 지부들의 상태도 어떨지. 황궁의 상태도 장담할 수 없을 정도야. 하지만 세상은 넓고 기인은 많다. 살아 있는 사람이 우리뿐은 아닐 거다.”
리덴이 신중하게 의견을 말했다.
“그런데 우리는 살아 있다 이거군요.”
이븐이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후후.”
리덴은 그냥 웃고 말았다. 마음 같아서는 이러쿵저러쿵하고 싶은 말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말을 아끼고 싶었다. 사방에서 묘한 기척이 다가오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한편 도날드 검술 아카데미 내부로 진입한 세나는 조심스럽게 좌우를 살펴가며 걸음을 옮겼다.
정원, 도장, 연못.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걸음을 관장과 더스틴의 숙소 쪽으로 옮겼다. 동시에 입을 열어 소리쳤다.
“관장님, 도날드 관장님. 더스틴, 더스틴.”
하고.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래서 계속 걸음을 재촉했다. 좁은 복도를 지나 모퉁이를 도니 이윽고 관장 도날드의 숙소가 눈에 들어왔다.
“……!”
세나의 걸음이 정지했다. 시야의 끝에 토막 난 것으로 보이는 사람의 신체 여러 부위와 그 바로 앞에 목이 없는 사내가 앉아 있었다.
목은 바로 옆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제법 멀었지만 세나는 목의 주인이 도날드 관장임을 알 수 있었다.
설마…… 아닐 거야.
세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몇 걸음 움직였고 근처에서 굴러다니는 더스틴의 목을 발견하였다. 표정이 하나도 없는 평온한 얼굴이었다.
아닐 거야, 아닐 거야.
세나는 그런 말을 중얼거리고는 멍하니 10초 정도 있다가 ‘꺄아아악! 아닐 거라고 했잖아!’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쿵.
그리고 쿵.
굉음이 울렸다. 누군가가 벽을 치는 모양이었다. 세나는 이와 같은 소리를 알고 있었기에 허리춤에 달려 있는 검을 뽑았다.
쿵, 와르르.
벽이 무너지며 도날드 관장의 아내이자 더스틴의 어머니, 그리고 더스틴의 여동생이 모습을 드러냈다. 잠옷 차림이었고 눈은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나는 그녀들도 좀비가 되었음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래서일까? 세나는 주저 없이 뛰어가서는 검을 휘둘렀다.
화르륵.
더스틴의 동생과 더스틴의 어머니가 반으로 쪼개져서는 화염에 휩싸였다. 동시에 세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결심했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 이 일의 원인을 찾아내어 책임을 묻겠다고. 절대 용서치 않겠다고. 누가 범인이든 상관없이 반드시 죽이겠다고.
끼익.
끼익.
무언가 마찰을 일으키는 기분 나쁜 소리가 있었다. 간간이 쾅 하는 굉음과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도 울렸다.
연금술사 리덴의 집의 전 재산을 등에 메고 있는 이븐이 몸을 움찔거렸다. 뭘까? 하고.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 이렇게 되나.”
리덴이 말했다.
“스승님.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이븐이 말했다.
“별거 아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말이야.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아무것도 안 보이지? 풍경도 거의 밤이고.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누군가의 공격은 이 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지. 그리고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이야. 너하고 돈줄은 호문클루스의 잔재하고 섞였으니 살아 있는 인간의 냄새가 그리 강하지 않아. 하지만 나는 다르지. 팔팔하게 살아 있는 인간이다. 살아 있는 인간의 냄새를 강하게 풍기고 있지. 아마도 녀석들은 그 냄새를 쫓아오는 걸 거다. 설마, 설마 했는데 말이지.”
리덴은 그렇게 말하고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여러 번의 생애를 거치면서 이러한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언제, 어디인지는 모호했지만 3번 정도 죽음의 도시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도시 입구에서부터 죽음의 냄새가 났다. 어느 거리를 가도 살아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시체들만 돌아다녔다. 몸이 반쯤 썩어서 떨어져 나갔어도 녀석들은 움직였다. 느릿하지만 모든 장애물을 돌파했다.
그때마다 리덴은 볼일을 마치는 대로 도시를 떠났다. 녀석들을 상대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생존자를 확인하여 구출한다거나 원인을 제거하여 도시를 구한다거나 하는 일은 번거로울 뿐이었다.
레인보우 플라워에 관한 것 말고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다른 점이라면 레인보우 플라워를 만들기 위해 제작해 두었던 재료 중 거의 대부분이 쓸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덕분에 이번 생애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레인보우 플라워를 만들 수 없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