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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연금술사 리덴 1권(8화)
2. 죽음이 내려앉는 풍경(4)
리덴의 나이 28.
리덴이 10살 무렵부터 레인보우 플라워를 위해 마련해 둔 모든 재료가 한꺼번에 날아가고 말았다. 그것들을 다시 만든다는 것은 그만한 시간을 투자해야 만들 수 있음을 의미했다.
“호문클루스의 잔재입니까? 그건 또 무엇입니까?”
이븐이 물었다.
“나중에. 지금은 한가롭게 대화나 나누고 있을 때가 아니야.”
리덴은 그렇게 말하고 호흡을 가다듬고는 빛 속성의 연금 도형을 연성하였다. 그러고는 검지로 방향을 지정하자 일직선으로 빛이 뿜어졌다.
빛은 물리적인 타격력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죽음의 기운에 언데드 몬스터가 되어 버린 것들에게는 치명적이었다.
푸쉭, 푸쉭.
빛에 닿은 그것들은 순식간에 재가 되어 소멸했다. 이쪽 거리의 끝에서 저쪽 거리의 끝. 양쪽은 물론이고 도날드 검술 아카데미 맞은편에서도 벽을 뚫고 녀석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리덴의 손가락이 한 번 훑고 지나가면 그걸로 끝이었다.
‘줄을 제대로 선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리덴의 활약을 지켜보던 이븐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잠시 후.
도날드 검술 아카데미에 들어갔던 세나가 돌아왔다. 인상이 잔뜩 굳어 있었다. 그러나 눈가에는 물기가 있었다. 눈물을 흘린 탓이다.
“선생님.”
세나가 리덴에게 말을 걸었다.
“왜?”
리덴이 대답했다.
“나, 결심했어요. 말리지 마세요. 무슨 대가를 치러서라도 이 일의 원인을 알아내서 책임을 물을 거예요.”
세나가 결의를 전했다.
“돌았구나.”
리덴은 간단하게 세나의 결의를 비웃었다.
“멋대로 떠드세요. 뭐라고 해도 저는 정했어요. 말려도 소용없어요.”
세나는 진지했다.
“안 말려. 이 멍청아. 이 일에는 나도 꽤 울화가 치민 상태거든. 어떤 놈인지 잡히기만 하면 회를 떠 버릴 거야. 하지만 놈이 누군지도 모르고,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 이런 상황에서 함부로 날뛰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지.”
리덴은 딱 잘라서 세나에게 섣부른 짓 하지 말 것을 충고했다.
끄덕.
“그 정도는 나도 알아요. 제가 뭐 바본가요.”
세나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그런 소리를 했다.
“자, 그럼 움직일까? 돈줄, 마법사 길드 지부가 연금술사 길드 지부보다 가까웠지? 나는 자세한 위치를 모르니, 안내해.”
리덴이 지시를 내렸다. 리덴은 레인보우 플라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일 이외의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기에 타로스의 지리에도 어두웠다.
“네. 선생님.”
세나가 대답했다. 세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를 좋아했으니까 대충의 지리는 알고 있었다. 이븐 역시 알고 있었지만 이븐은 조용히 있었다.
마법사 길드 타로스 지부.
아무것도 없었다. 지부가 있어야 할 곳은 잿더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에 리덴의 입술이 비틀렸다. 꼴을 보아하니 직접적으로 누군가에게, 혹은 누군가들에게 공격을 받은 것 같았다.
“스승님.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이븐이 말했다.
“느낌이 이상해? 아니, 이건 웃긴 일이야. 하지만 아직은…… 연금술사 길드 지부로 가 보자.”
의문을 표시하던 리덴이 화제를 돌렸다. 뭔가 좀 더 생각할 것이 있다는 식이었다. 이에 세나가 앞장을 섰고 얼마 정도 걷자 살아 있는 시체들이 이쪽저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별 의미는 없었다. 리덴이 손가락을 들어 빛 속성의 연금 도형을 연성하기만 하면 간단하게 재로 돌아갔으니까 말이다.
연금술사 길드 타로스 지부.
마법사 길드 타로스 지부와 마찬가지로 여기도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인근에서 터를 잡고 영업을 하고 있던 몇 개의 연금술사 상점들도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건물도 사람도 연금 재료 및 물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역시, 이건. 살아 있는 인간의 짓이야.”
연금술사 길드 타로스 지부와 몇 개의 연금술사 상점들을 둘러본 리덴이 말했다.
“무엇이 말씀입니까? 스승님.”
이븐이 물었다.
“연금술사 길드 타로스 지부 건물은 마법이나 그런 신비적 현상이나 자연적인 현상으로 불탄 것이 아니야. 누군가가 불을 지른 거지. 누군가들일지도 모르겠고. 발화 원인은 기름 항아리. 이쪽저쪽 잘 살펴보면 검게 눌어붙은 자국이 있지? 그 부근에서 기름 항아리가 깨졌고 불길이 치솟은 거다. 하지만 그것뿐이라면 건물의 벽이 어느 정도는 남아 있어야 정상이야. 보통의 화염이라면 건물 내부의 가구나 벽지 같은 것은 몰라도 외벽까지 태워서 말소할 수는 없어. 하지만 봐. 외벽의 흔적은 물론이고 인간의 것으로 보이는 뼛가루 한 줌도 없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
리덴이 이븐을 바라보며 물었다.
“연금술사의 짓이라는 뜻입니까?”
이븐이 대답했다.
“쯧쯧.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설퍼. 연금술사의 짓? 이건 그런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야. 잘 들어.”
여기까지 말한 리덴은 잠시 말을 멈추고는 무언가 생각하더니 ‘생각해 보니 아직 단정 지을 수 있는 단계는 아니군. 전부 사로잡혔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누구에게 사로잡혔느냐가 문제겠지.’라며 화제를 돌렸다.
“마법사 길드 지부의 마법사들과 연금술사 길드 지부의 연금술사들이 누군가에게 사로잡혔다는 말씀입니까?”
이븐이 물었다.
“아니면 도망쳤겠지. 연금술사 길드 타로스 지부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연금술사 상점들도 불에 완전 연소되어 있는 걸 보면. 음,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했다는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어.”
리덴이 또 다른 가설을 제시했다.
“선생님. 황궁으로 가요.”
세나가 의견을 제시했다.
“그래. 가 봐야지. 결과는 뻔하겠지만.”
리덴은 약간 질린다는 반응을 보였다.
“뻔합니까?”
이븐이 물었다.
“가 보면 알아. 가 보면. 하지만 명색이 황궁이니. 뭔가 건질 만한 것이 있을지도 몰라.”
리덴이 묘한 소리를 했다. 세나와 이븐은 리덴이 뭘 건지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토를 달지는 않았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리덴이 알아서 잘하겠지, 하고 생각한 것이다.
웨이랜더 제국 수도 타로스에서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가장 높은 장소는 마법사 길드 지부도 연금술사 길드 지부도 아닌 황궁이다. 텔레포트 마법을 익힌 암살자의 침입이나 원거리에서 전개되는 고위 마법에 당해서야 황궁의 자격이 없었다.
제2내성 성벽에 연결된 다섯 개의 항마탑과 다섯 개의 항마탑에서 등거리에 있는 황궁 지하 대규모 마법 방어 결계 핵이 외부에서 전개되는 마법 혹은 마법적 힘으로부터 황궁을 보호하고 있었다. 7써클 이하의 마법이라면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타로스에 전개된 마법은 9써클 흑마법이었다. 아니, 그 이상의 무언가였다.
쩌적.
리덴이 적의 공격을 받았던 그 순간, 타로스 제2내성 성벽의 5개 항마탑의 핵이 부서지고 황궁 지하 대규모 마법 방어 결계 핵이 깨졌다.
그와 거의 동시에 황제의 침소가 있는 태양궁 앞에 로브를 눌러쓴 이십여 명의 불청객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나타나자마자 몬스터를 소환하기 시작했다.
서먼 몬스터(Summons Monster).
흑마법사의 전매특허이자 기본기로, 마계 또는 이계, 혹은 어딘가에서 괴물을 불러 사역하는 마법이었다.
시전자의 마법 실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강한 몬스터를, 많은 몬스터를 소환하여 부릴 수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태양궁 앞에 나타난 이십여 명의 흑마법사들이 불러낸 몬스터의 숫자는 100이 넘었다. 고블린이나 코볼트 같은 그저 그런 녀석들부터 오우거나 가고일 같은 녀석들까지 천차만별이었다.
난데없이 나타난 100여 마리의 몬스터들은 태양궁을 기습하여 황제와 황비를 도살하고 태양궁을 점거하였다.
그런 후에야 태양궁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황실 근위대 100명이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다.
황실 근위대의 평균 실력은 익스퍼트 상급.
개중에는 최상급도 있고 하급도 있었지만, 녹록한 자들은 아니었다. 황실 근위대인 만큼 엄격한 기준에 의해 뽑힌 자들이었다.
하지만 흑마법사들 쪽이 싸움에 있어서는 한 수 위였다. 그들은 태양궁을 점거하기 전에 황실 근위대가 올 것임을 알고 덫을 준비하였다.
황실 근위대 100명 중 70명이 흑마법사들의 덫에 걸려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남은 30명은 흑마법사들이 부리는 몬스터들을 도륙하며 착실하게 흑마법사들을 향해 전진했다. 흑마법사들이 부리는 몬스터들의 숫자가 크게 줄어 30 안팎이 되었다.
그 순간, 몬스터들을 잃은 흑마법사들이 덫에 걸려 죽은 황실 근위대를 언데드 몬스터로서 부활시켰다.
흑마법사들은 황실 근위대 소속 100여 명의 기사들을 처리하고 그 대가로 50명의 황실 근위대 소속 기사 좀비들을 손에 넣었다.
직후, 흑마법사들의 등장을 알게 된 황실 근위대 대장인 소드 마스터 크레이웬이 300의 황실 근위대 기사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이에 흑마법사들은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해 도망쳤다.
그러고 황궁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황궁은 제2내성의 5개 항마탑과 황궁 지하 대규모 마법 방어 결계 핵이 부서졌지만 덕분에 9써클 흑마법에 직격당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태양궁이 함락되었고 황제 부부가 피살되었다. 흉수인 흑마법사들은 도망쳤다.
언제 또 공격을 받을지 모르는 상황.
황제가 되어 웨이랜더 제국을 다스리게 될 태자는 아내와 함께 몸을 피하기로 했다. 그를 보좌하기 위해 황실 근위대 대장 소드 마스터 크레이웬을 비롯하여 대다수의 황실 마법사, 황실 연금술사 등이 태자와 함께 몸을 피하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황궁에 설치되어 있는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 황궁을 떠났다. 하지만 전부 떠난 것은 아니었다.
제2내성 수비 부대, 5,000명.
황실 근위대 부대장인 소드 마스터 소이 엘렌과 그녀가 이끄는 500의 기사.
태자의 뜻에 반대하고 황실의 일원으로서 황궁에 남아 황궁과 함께하겠다고 선언한 3황자, 7황녀.
3황자, 7황녀의 뜻에 동의하는 몇몇 황실 연금술사와 황실 마법사.
그 외 5천 명의 병사와 2천 명의 궁인들.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남고. 수시간 뒤, 제2내성 성벽을 향해 다가오는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이었다. 살아 있는 시체들이었다. 녀석들은 제2내성에서 흘러나오는 살아 있는 인간의 냄새를 맡고 다가오고 있었다.
끼익, 끼익.
고요를 찢는 불길한 마찰음들에 제2내성 수비병들은 황실 마법사와 황실 연금술사를 불렀고 그들은 살아 있는 인간들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리덴과 세나, 이븐이 연금술사 타로스 지부를 떠난 지도 한나절이 지났다. 연금술사 리덴의 집을 떠난 지는 만 24시간이 넘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살아 있는 시체들은 점점 더 많이 몰려들었다.
리덴의 빛 속성 연금 도형을 사용하여 한 번 훑으면 풍선이라도 터지듯 먼지로 돌아가는 녀석들이었지만 이놈들에게는 공포라는 것이 없었다. 꾸역꾸역 몰려들 뿐이었다.
간혹 리덴이 처리하지 못한 녀석은 세나가 처리했다. 검을 한 번 휘두르면 그걸로 끝났다.
“우라질. 뭐가 이리 많아.”
리덴이 투덜거렸다.
“스승님. 휴식을 취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븐이 의견을 냈다.
“벌써 지친 거야? 난 아직 팔팔해. 더 갈 수 있다구.”
세나는 기세가 등등했다.
“휴식이라, 취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 상황에서 휴식은 무슨.”
리덴은 그렇게 말하고는 빛 속성 연금 도형을 사용하여 사방을 한 번 훑었다. 십여 마리의 좀비들이 먼지가 되었다.
“아직 제1광장에도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황궁까지는 먼 길입니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체력을 비축하면서 이동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븐이 지지 않고 의견을 냈다.
“노예, 힘드냐?”
리덴이 물었다.
“아직은 버틸 수 있습니다. 스승님.”
이븐이 대답했다.
“씁. 할 수 없군. 이븐, 배낭 안에서 썬 라이트 토파즈 몇 개 꺼내서 던져. 아깝지만 할 수 없지.”
리덴이 지시를 내렸다.
썬 라이트 토파즈.
20캐럿 이상의 천연 토파즈에 하지의 태양빛을 가두어 만든 것으로, 연한 황금색의 아름다운 보석이었다. 한 개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분 내외로 오래 걸리지는 않았지만 일 년에 한 번만 가공할 수 있는 것이 흠이었다.
하지에만 가공할 수 있는 녀석이니까 말이다.
“여기요. 스승님.”
이븐이 리덴의 지시대로 썬 라이트 토파즈 몇 개를 리덴에게 건넸다. 리덴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는 썬 라이트 토파즈 세 개를 공중으로 띄우고는 연금 도형을 소환하여 그것들을 가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