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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연금술사 리덴 1권(9화)
2. 죽음이 내려앉는 풍경(5)


번쩍.
세 개의 썬 라이트 토파즈가 한 군데로 모이더니 빙글빙글 돌며 빛을 뿜었다. 일시적으로 태양의 대용품을 만든 것이다.
빛은 리덴의 머리 위 1.5m 상공에서 세나와 이븐의 주변을 비롯한 인근 골목 구석구석까지 비추었다.
푸쉭, 푸쉭.
빛에 닿은 좀비들이 먼지로 변했다. 그와 동시에 리덴은 대지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곤 이븐에게 은 막대를 꺼내라고 했다.
“네, 스승님.”
이븐이 지시를 이행했다. 리덴은 은 막대를 지면에 꽂고는 대지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죽음의 기운을 은 막대 쪽으로 유인하였다. 그러자 지면에 꽂혀 있는 은 막대의 아랫부분이 검게 변했다.
이에 리덴은 이븐에게서 가공되지 않은 다섯 개의 수정을 달라고 하여 주변 지면에 꽂았다.
위에서 보면 정확하게 5각형 모양이었다.
리덴은 다시 다섯 개의 수정을 하나하나 가공하여 힘을 부여하였다. 그러자 각 수정은 하얗게 빛이 나더니 선을 연결하여 팬타그램이 되었다.
“한나절 정도는 쉴 수 있을 거다.”
리덴은 그렇게 말하고는 팬타그램 안쪽에 벌렁 누웠다. 적이 살아 있는 시체라면 이것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꼬르륵.
리덴의 배가 울었다. 눈을 감고 쉬려던 리덴은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나더니 한숨을 푹 내쉬고는 주변을 바라보다가 이븐에게 은가루를 달라고 했다.
은가루, 말 그대로 은을 곱게 갈아 만든 가루다. 리덴은 이것을 가지고 조물락조물락거리더니 하얀색의 떡 비슷한 것으로 가공하였다. 그것을 건빵만 한 크기로 잘라서는 세나와 이븐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고 자신도 딱 그만큼만 먹었다. 약간 남은 것은 이븐에게 주어 관리토록 했다.
“으. 맛없어.”
세나가 불평을 했다.
“먹을 수 있다는 것으로 감사해. 돈줄.”
리덴이 말했다.
“은가루를 음식으로 만든 겁니까? 수분이 함유되어 있는 듯합니다만. 물은 없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것입니까? 스승님.”
이븐이 물었다.
“대기 중에 있는 수분이다. 보이지? 지면에 그려진 문양. 이 안에 있는 것이라면 정화되어 있는 상태니까 재료로 쓸 수 있어. 그럼 나는 이만 자련다. 작은 거든 큰 거든 일보고 싶으면 빛이 닿는 곳 내에서 알아서 해결해.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일보다가 습격당할 수 있어. 아, 그리고 만일 내가 볼지도 모른다는 것이 걱정이라면 그냥 포기해. 그렇다고 보고 싶다는 건 아니야. 보고 싶지도 않고 볼 생각도 없어. 하지만 재수 없이 보게 될 수도 있지. 그런 일이 발생하거든 똥 밟았다고 생각해. 죽는 것보다 나아.”
리덴은 그렇게 말하고는 팬타그램 중심부에 벌렁 누워서는 눈을 감았다. 세나와 이븐이 어떻게 생각하든 모른다는 뜻이었다.
“으. 바보 선생님. 꼭 말을 해도.”
세나가 질린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세나, 약간의 수치나 부끄러움을 감수하고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면 살아남아야 합니다.”
이븐이 리덴의 입장에서 변명을 했다.
“누가 아니래? 신경 꺼. 너랑 이런 시시한 일로 말다툼하고 싶지 않아.”
세나는 불쾌한 듯이 그렇게 말하고는 리덴의 오른쪽에 누웠다. 팬타그램은 넓지 않으니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건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나, 부디 얌전히 주무시길. 잠결에 결계를 벗어나지 않기를 빕니다.”
이븐도 그렇게 말하고는 리덴 왼쪽에 누웠다. 그녀는 세나에 비해 키가 커서 리덴 쪽에 좀 더 붙어야 팬타그램을 벗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이에 세나는 곁눈질을 하고는 속으로 ‘저 불여우 하는 말 좀 봐. 어우, 재수 없어. 시도 때도 없이 꼬리치는 게 누군데, 누구에게 이래라저래라야. 진짜.’라고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시답잖은 말싸움으로 귀중한 휴식 시간을 소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죽음의 도시로 변한 웨이랜더 제국 수도 타로스에는 생각 이상으로 많은 생존자가 있었다. 9써클 흑마법사 카이롯트가 마법을 시전할 때, 익스퍼트 최상급 정도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도날드 검술 아카데미 관장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관장 이외의 사람들, 이를테면 가족 등이 좀비로 되살아났기에 그들을 죽이고 스스로 자신의 목을 베었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타로스 곳곳에는 생존자들이 있었고 그들의 대부분은 일이 벌어지자마자 타로스를 탈출했거나 혹은 탈출하고 싶어 했다. 어째서 대부분이냐고? 이 기회에 한몫 잡아 보려는 자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둠의 길드.
그들은 흑마법사들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자들이었지만 음지에서 살아가는 자들이었다. 다크 엘프, 암살자, 마족과의 혼혈 등을 비롯하여 도둑놈, 창녀, 강도, 현상금 헌터 같은 부류가 그랬다. 그들은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았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언제든 타로스를 빠져나갈 준비가 되어 있기에 한몫 챙기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 몇 명이 빛을 발견했다. 리덴이 만든 그 빛이다. 하지만 그것을 발견한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타로스를 빠져나갈 수 있었지만 빠져나가지 않고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몇 명의 생존자들이 뭉쳤다.
소드 마스터 1명.
6써클 마법사 1명.
5써클 마법사 2명.
1급 연금술사 1명.
익스퍼트 최상급 2명.
이상 7명으로 신분도 가지각색이었다. 은거하여 술집을 운영하던 소드 마스터와 소드 마스터와 함께 은거하던 6써클 마법사, 여행을 하고 있던 모험가 쌍둥이 2인조, FST라는 직함을 가진 1급 연금술사 등. 사방에서 좀비들이 몰려들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리덴의 빛이 직사광선임을 알아보았다.
그들은 리덴들을 기습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는 어둠의 길드 소속 인간들 몇을 처리해 버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직사광선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
발소리가 들렸다. 이에 자고 있던 리덴이 눈을 뜨고는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고 했다. 왼쪽에서는 세나가, 오른쪽에서는 이븐이 옷깃을 잡은 채 달라붙어 있지 않았다면 바로 일어났을 터였다.
‘허, 이거야 원. 상황이 이러니……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군. 이런 머저리들.’
속으로 있는 힘껏 불평을 터트린 리덴은 양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고는 거의 동시에 세나와 이븐의 머리를 후려쳤다.
“일어나, 이 멍청이들아.”
리덴이 말했다.
“으켁.”
세나가 기겁을 했다.
“꺄앗.”
이븐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둘 다 눈을 떠서는 자신들이 리덴의 옷깃을 붙잡고 있음을 깨달았다. 세나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후다닥 일어났고 이븐은 아쉽다는 얼굴로 입술만 삐죽였다.
저벅, 저벅.
“단잠을 깨워서 미안하군. 이런 상황에서 양팔에 미인들을 안고 잠을 자고 있다니. 거참, 부럽구만.”
어둠 속에서 40대 중년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주방장 옷에 갈색 앞치마, 요리라도 하러 가는 차림이었다. 허리에는 푸줏칼처럼 생긴 두껍고 짧은 두 개의 칼이 달려 있었다.
“여보, 내가 눈 시퍼렇게 뜨고 있다는 거, 알지?”
그 옆에서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웨이트리스가 지팡이를 들고 나타났다.
“연금술사?”
이번에는 안경을 쓴 30대 중반의 사내가 나타났다. 이에 이븐이 의외라는 듯 입을 열었다. ‘FST 1급 연금술사 젠더 베히르만 선생님?’이라고.
“연금술사? 저게?”
듣고 있던 리덴이 신기하다는 얼굴로 안경 쓴 30대 중반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어라? 거기 아가씨는 저를 알고 계시는군요. 이거이거, 너무 유명해도 탈이군요.”
FST 1급 연금술사 젠더 베히르만, 이하 젠더는 놀랍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똑같이 생긴 두 명의 소녀들이 나타나서는 ‘양손에 꽃?’, ‘배짱도 좋아. 딱 우리 취향.’이라고 중얼거렸다. 쌍검을 사용하는 익스퍼트 최상급의 실력자로, 둘 다 올해로 18세인 모험가 쌍둥이 자매였다.
“아, 몰라. 난 더 자련다. 쉴 수 있을 때 쉬어 둬야지. 쓸데없이 체력 낭비할 시간 없어.”
리덴은 귀찮다는 듯이 도로 누웠다. 불청객들에게 살의가 없음을 알아보고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해 버린 것이다.
“어이어이, 그건 아니지. 손님이 왔으면 어느 정도 반응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응?”
주방장 차림의 사내가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는 푸줏칼을 치켜들고는 하얀색의 검기를 펼쳤다.
우웅.
매우 강력해 보이는 검기였다. 그가 소드 마스터라는 증거였다. 이에 이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세나는 입술을 삐죽이며 일어났다.
“그래서 어쩌라고. 선생님이 자는 거 방해하지 마. 너희들에게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우리들은 아니란 말이야.”
라고 말하면서.
“호오. 꼬마 아가씨가 당돌하군.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 나를 상대할 셈인가? 나는 대화를 원하지 싸우러 온 것이 아니야. 하지만 싸우겠다면 상대는 해 주지.”
상대도 지지 않았다.
“아, 진짜 시끄럽게.”
때문에 리덴이 일어났다. 무척이나 짜증 난다는 얼굴로 푸줏칼을 든 소드 마스터를 바라보았다. 할 말이 있으면 빨리하고 사라지라는 의미였다.
“내 소개부터 하지. 도이페논이라고 하네. 은거한 지 백 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팔팔한 한창때의 소드 마스터지.”
소드 마스터 도이페논이 말했다.
“그래서? 용건이나 말해. 졸려.”
리덴은 귀찮았다. 귀찮았기에 귀찮다는 식으로 대꾸했다. 덕분에 도이페논의 관자놀이에 위치한 혈관이 끊어질 듯 부풀어 올랐지만 젠더가 나서서 도이페논을 제지했다. 그러고는 헛기침을 한 번 한 뒤, 조심스럽게.
“내가 보기에 지금 우리들을 비추고 있는 이 빛은 태양의 직사광선 같은데. 그렇다면 이 빛은 우리에게 매우 필요한 것. 그쪽의 목표가 타로스에서 탈출하는 것이라면 여기 폴리아로 이동하는 텔레포트 스크롤이 있네. 3장 줄 수 있지. 거기 아가씨들 것까지.”
라며 젠더가 미끼를 던졌다.
“그래, 맞아. 이 빛은 직사광선이야. 이것만 있으면 언데드들은 접근을 할 수 없지. 그러니까 이렇게 휴식을 취할 수도 있는 거고.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 휴식은 무리야. 땅에서 올라오는 죽음의 기운이나 대기를 가득 메우고 있는 죽음의 기운도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 돼. 어쨌든 안 돼. 우리의 목적지는 황궁이다. 탈출이 아냐.”
리덴이 제안을 거절하며 답을 했다.
“황궁은 어째서?”
젠더가 물었다.
“일단 가는 게 목적이다.”
리덴은 ‘웨이랜더의 수도 타로스를 이 지경으로 만든 놈의 정체나 목적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타로스 전체를 이렇게 했다면 십중팔구 그 목적은 황궁과 관련이 있을 거야. 가서 단서를 건지든가, 재수가 좋아 만나게 되면 엉덩이를 때려 주려고 그런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말하지는 않았다. 설명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탈출용 아이템은 있나?”
젠더가 물었다.
“없어. 필요도 없고.”
리덴이 답했다.
“필요도 없다? 직사광선을 만들 수 있으니 언데드 몬스터는 위협조차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젠더가 물었다.
“그래.”
리덴이 답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황궁까지 동행했으면 하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을 거야.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 그런 의미에서 직사광선의 도움을 받고 싶은데 괜찮겠지요?”
젠더가 물었다.
“마음대로 해. 하지만 앞으로…… 음. 상태를 보니 반나절 정도 하겠군. 그 이후는 몰라. 그럼 잘 거니까, 깨우지 마.”
리덴은 그렇게 말하고는 멋대로 대화의 종료를 선언하였다. 그에 맞춰 세나와 이븐도 리덴의 옆에 누워 잠을 청했다.
“건방진 놈일세. 새파랗게 어린놈이.”
도이페논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아무튼 직사광선이 비치는 구역에서 쉴 수 있게 되었으니 좋은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리덴의 일행이 늘어났다.
그리고 반나절 후.
기계처럼 눈을 뜬 리덴은 세나와 이븐을 깨워서는 떠날 준비를 했다. 그에 맞춰 도이페논을 리더로 하는 자들도 휴식을 마쳤다.
목적지는 황궁.
가는 동안 도이페논 일행들은 리덴의 빛 속성 연금 도형이 만들어 내는 직사광선의 도움을 받았다. 살아 있는 시체들이 접근도 하지 못했다. 그 빛 때문일까? 리덴의 일행은 가면서 점점 불어났고 하루가 더 지나자 50명 정도로 증가했다.
‘왜 이리 따라오는 거야? 이것들이 단체로 돌았나.’
리덴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하지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휴식 때 사용하는 직사광선의 범위는 50명 정도는 커버하고도 남았으니까 방해만 받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리덴은 몰랐다. 사람들이 자신을 일행의 리더라고 생각하며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