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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연금술사 리덴 1권(10화)
3. 불타는 황궁(1)


황궁은 지금 두 쪽으로 갈라져서 전투를 수행하고 있었다. 하나는 제2내성 성벽과 정문이고 다른 하나는 별빛궁이다.
태양궁이 황제와 황비가 머무르는 궁전이라면 월광궁은 태자와 태자비가 머무르는 궁전이고, 별빛궁은 태자가 아닌 황자, 황녀들이 머무르는 궁전이었다.
전투가 시작됐을 쯤에는 제2내성 성벽 및 정문을 수호하는 것이 전부 다였다. 좀비들은 생각하는 능력이 없기에 공격이 단순했다. 성벽이고 정문이고 가리지 않고 그저 몸으로 들이받았다.
제2내성 성벽은 다섯 개의 항마탑이 무너졌다 하더라도 좀비들의 몸통 박치기 정도로 공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단은 성벽이니까, 인간의 육체로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하지만 정문은 달랐다. 구조상 안쪽으로 열리게 되어 있기에 계속 흔들리면 경첩이 떨어져 나갈 가능성이 있었다. 게다가 나무로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정문으로 몰려드는 좀비들은 어떻게 해서든 처리를 해야 했다.
좀비는 끝도 없이 몰려왔다. 타로스에서 황궁은 살아 있는 인간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으로, 살아 있는 인간의 냄새가 가장 심했다. 그렇기에 제법 멀리 있는 좀비들도 냄새를 맡고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하지만 3황자와 7황녀는 걱정하지 않았다. 황궁이 황궁인 이유는 연금 아이템이건, 식량이건, 뭐건 잔뜩 있기 때문에 황궁이었다. 성수? 남아돌았다. 화염 계열 마법 스크롤?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좀비들이 끝도 없이 몰려든다면 끝도 없이 상대해 줄 수 있었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다.
이러한 상황은 50여 명 정도의 흑마법사들이 제2내성 성벽 안쪽에 나타나면서 크게 바뀌었다.
흑마법사들은 제2내성 성벽에서 전투를 수행 중인 제2내성 수비군 외 황실 마법사, 황실 연금술사 등의 시야가 닿지 않는 지점에 떡 하니 나타나 서먼 몬스터를 시전, 많은 수의 몬스터를 불러내서는 무차별 공격을 개시하였다.
명령을 받고 각 궁전에 쌓여 있는 여러 아이템을 제2내성 성벽으로 옮기던 궁인들이 공격을 받았다.
즉, 보급선이 끊겼다. 그에 황실 근위대 부대장인 소드 마스터 소이 엘렌이 100여 명의 황실 근위대 기사들을 이끌고 상황 파악에 나섰다. 그리고 사태를 파악했을 때는 흑마법사들이 이끄는 몬스터들에 의해 포위되었고 그 결과 소이 엘렌만이 살아서 별빛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별빛궁이 포위되었다. 별빛궁에 머무르고 있는 3황자와 7황녀는 이제 죽겠구나 싶었지만 흑마법사들은 공격을 해 오지 않았다. 아직 별빛궁에는 400의 황실 근위대와 소드 마스터 소이 엘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섣불리 공격을 가했다가 반격을 받느니 포위를 하고 기다리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하루가 지났다.
흑마법사들의 포위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3황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신의 처소에서 목을 매달았다.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절망의 수렁에 빠지고 만 것이다.
남은 황족은 7황녀 하나뿐.
상황이 그렇게 되자 7황녀 역시 목숨을 끊고 싶었지만 자신만 바라보는 황실 근위대 부대장 소이 엘렌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 때문에 죽을 수도 없었다. 이대로 있다 사로잡히는 한이 있어도 살아서 황실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가운데 궁인들 중 얼마가 독단적으로 흑마법사들에게 공격을 시도했다가 전멸했다.
이제부터 어떻게 되는 것일까? 7황녀는 그저 하늘이 돕기를 바라며 소이 엘렌과 남은 황실 근위대 기사들과 함께 발만 동동 굴렀다. 그러는 사이 제2내성 수비대 대장이 1천 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흑마법사들을 향해 전투를 시작했다. 보급선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때는 흑마법사의 수도 200으로 늘어나 있었다.
1천의 병사와 흑마법사 200의 싸움.
수치상으로 따지면 1천 병사가 압도적으로 유리했지만 흑마법사 200의 단합된 힘은 병사 1천을 가볍게 능가했다. 때를 맞춰 별빛궁 측에서 소드 마스터 소이 엘렌을 앞세워 공격을 하였더라면 이야기는 달라졌겠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제2내성 수비대 대장과 1천 병사가 흑마법사 200과의 전투 끝에 전원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가 언데드로 부활하였다.
흑마법사들은 언데드가 된 제2내성 수비대 대장을 비롯한 1천 병사에게 별빛궁을 공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소이 엘렌이 황실 근위대 400을 비롯하여 남아 있는 궁인들과 함께 결사 항쟁에 들어가는데…… 이때, 서남쪽에서 하늘을 향하는 빛줄기가 나타났다. 한 줄기 서광이었다. 그 정체가 무엇인지는 7황녀도 소이 엘렌도 흑마법사들도 몰랐지만 흑마법사들에게는 꺼림칙한 일이었고 수세에 몰리고 있던 7황녀와 소이 엘렌에게는 희소식이었다.
그래서 약 50명의 흑마법사들이 빛의 정체를 알아보기 위해 전선을 이탈했다.

리덴은 황궁을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일행들을 점검하였다. 어째서인지 따라오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서 100명에 육박하게 되었다. 한 명 한 명이 익스퍼트 상급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리덴이 그들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는 그저 직사광선을 만들어 길을 비추는 것뿐이었다. 따라오는 사람들이 없어도 살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니까 큰 상관은 없었다. 없는데 조금 귀찮아졌다.
“왜 이리 잔뜩 따라오는 거야. 정신들이 가출을 했나. 왜 이래? 진짜.”
라고 투덜거릴 정도로.
“직사광선 아래라면 휴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승님.”
이븐이 답했다. 답하지 않아도 그 정도는 리덴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리덴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는 이븐을 노려보았다. 그러면서도 빛 속성 연금 도형을 만들어 사방으로 직사광선을 뿌리는 일을 중단하지 않았다.
푸쉬식.
살아 있는 시체들은 직사광선에 스치기만 해도 재가 되어 흩어졌다.
“선생님.”
세나가 리덴을 불렀다.
“왜?”
리덴이 답했다.
“황궁에 가면요. 대체 왜 가는 거예요?”
세나가 뜬금없이 그런 질문을 했다.
“빨리도 물어본다. 돈줄.”
리덴이 한심하다는 어조로 말했다.
“그치만요. 생각해 보니 이상해서요.”
세나가 입을 삐죽 내밀고는 뚱한 목소리로 말했다.
“스승님, 바보를 한 대 때리고 싶습니다.”
이븐이 약간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제안을 했다. 이븐은 리덴의 생각을 조금은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만둬. 우리끼리 싸워서 뭐 어쩌자고. 돈줄이 멍청하긴 해도, 행동력이 좋아. 그러면 됐지. 그에 걸맞게 지능도 좀 키웠으면 더욱 좋겠지만. 그건 무리잖아. 너도 알지, 노예.”
리덴은 이븐을 말린다며 그런 말을 했다.
“선생님! 너무해요. 내가 뭘요. 확실히 약간 급하게 움직이기는 하지만 생각이 없지는 않다구요.”
세나가 항의를 했다.
“닥치고 한눈팔지 마. 녀석들의 움직임에 주의해. 내가 직사광선으로 잔뜩 처리하고는 있지만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리덴은 세나의 항의 따위 귓등으로 흘려버리고 되레 주의를 주었다.
그때였다.
리덴이 걸음을 멈췄다. 그에 흑마법사들이 이쪽, 저쪽에서 리덴과 일행들을 포위하듯 나타났다.
“드디어 왔냐?”
리덴이 중얼거렸다.
“흑마법사들이 확실합니다. 스승님.”
이븐이 설명을 했다.
“으. 기분 나빠. 까만 로브에 후드도 까매.”
세나도 한마디 했다.
―네놈들은 누구냐. 무엇하는 자들이냐. 목적이 무엇이냐.
위와 같은 음성이 사방에서 울렸다. 하지만 육성은 아니었다. 텔레파시 같은 거였다. 이에 리덴은 피식 웃었고 그에 맞춰 리덴을 리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무기를 꺼냈다. 놈들은 직사광선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인간인데다 포위하듯 자리를 잡고 있으니까 리덴 혼자서의 힘으로는 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음? 어쭈, 이것 봐라. 그냥 따라오기만 할 줄 알았더니 무기를 꺼내? 같이 싸워 주겠다는 거네? 그렇다면 나야 편하지만.’
리덴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최초로 일행에 합류한 자들 중 리더인 소드 마스터 도이페논이 리덴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소리쳤다.
“어이, 리더. 뭐 하는 거야. 빨리 한 마디 해. 이깟 피라미들 후딱 처리하고 황궁으로 가야지. 몇 놈 정도는 생포해 둘까?”
라고.
피식.
리덴이 슬쩍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알고 있으면 그렇게 하면 되지. 뭘 묻고 그래. 빨리 해치워.’라고 답해 주었다.
그리고 5분.
아니, 5분도 걸리지 않았다. 타로스의 빌어먹을 상황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하나같이 백전노장 같은 놈들뿐이어서 흑마법사들이 소환하는 몬스터 따위는 순식간에 포를 떠 버리고 흑마법사들을 생포했다.
끝나고 보니 50명의 흑마법사 중 죽은 자는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마법이 봉쇄되고 손발이 묶인 채로 리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대장, 누구야? 나와.”
리덴이 물었다.
“…….”
답은 없었다.
“전부 쫄따구냐? 에이, 씨. 그럼 그냥 뒈져. 네놈들 먹여 살릴 식량도 없고 살려 두고 싶은 마음도 없다.”
리덴은 그렇게 말하고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흑마법사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바람 속성 연금 도형과 응집 연금 도형을 불러내 바람을 가공했다. 그러자 화살과도 같이 가늘고 뾰족한 회오리바람이 흑마법사의 목에 구멍을 뚫었다.
“커헉.”
흑마법사 한 명이 죽었다.
“다시 한 번 묻는다. 대장 있으면 나와.”
리덴이 말했다. 하지만 손을 들거나 대답을 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 것이다.
“거참, 짜증 나는 놈들이네. 알았다. 너희들이 이겼다. 다른 놈을 찾지.”
리덴은 그렇게 말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죽일 가치도 없다는 뜻이었다. 다시 말해, 살아 있는 시체들에게 죽으라는 뜻이었다. 그들은 마법을 봉쇄당하고 손발이 묶였으니까,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몇 걸음 걷지도 않고 리덴은 발을 멈췄다. 몸을 틀어서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흑마법사들을 훑어보고는 ‘편하게 죽고 싶은 놈 있으면 손들어. 목에 바람구멍을 뚫어서 금방 죽게 해 줄게. 싫으면 할 수 없고. 그냥 놔두고 갈 거야. 그럼 좀비들이 와서는 좋다고 팔다리를 뜯어 먹을걸.’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몇 명 정도 손을 들었다. 그리고 묘한 조건을 달았다. 시체를 남기지 말아 달라는 조건이었다.
동료 흑마법사들에 의해 언데드로 되살아나 보복을 당할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리덴은 이를 수락하고 그들에게서 몇 가지 정보를 얻었다.
9써클 흑마법사가 존재한다는 것이나 지금 황궁의 상태라거나 흑마법사들이 원하는 세상이라든가 뭐, 그런 것들이었다.
덕분에 리덴은 조금 뚜껑이 열려 버렸다. 이번 생애에서야말로 레인보우 플라워를 만들겠다고 다짐하며 애써 만들어 두었던 재료들이, 별 같잖은 이유 때문에 파괴되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세상에서 소외 받은 흑마법사들이 원하는 세상은, 흑마법사가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살 수 있는 세상이었다. 우대 받는 세상이었다. 어깨에 힘줄 수 있는 세상이었다. 흑마법사들에게는 절실한 이야기일지 몰라도 리덴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였다. 오히려 그런 흑마법사들의 열망이 리덴의 소망을 부수고 말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그런 세상이 오게 놔둘까 보냐고.
때문에 리덴은 죽인 다음 시체조차 남기지 않겠다며 흑마법사들과 약속했던 것을 지키지 않았다.
좀비에게 실컷 뜯어 먹힌 후 뒈지든 말든 알 바 아니라는 식이었다.

제2내성 성벽 정문, 제2내성 수비군 대장과 1천의 병사들이 궤멸당한 이후.
제2내성 수비군 병사들의 사기는 바닥을 기었다. 압도적인 화력으로 좀비들을 날려 버리던 몇 명의 황실 마법사와 황실 연금술사는 신체적 한계에 부딪혀 넉다운 상태였고 적의 숫자는 점점 늘어났다.
콩나물시루보다 더한 밀도로 오른쪽 시야 끝에서 왼쪽 시야 끝까지 빼곡히 몰려들어서는 좀비와 몬스터들은 성벽이고 성문이고 가리지 않고 쿵쿵 부딪혀 댔다.
덜컹, 덜그락, 덜컹, 덜그락.
성문 경첩이 삐걱이기 시작했다. 제2내성 수비군 부대장 아리한트는 이제 곧 성문이 열리고 놈들이 몰려들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서남쪽 부근에서 수상하게 번쩍이는 빛기둥이 점점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아군일까? 적군일까? 아무래도 좋았다. 피곤하고 지쳤으며 희망이 없었다. 그런 아리한트에게 디셀이 ‘부대장, 성문이 무너질 것 같습니다. 아래에 내려가서 놈들을 막죠.’라고 제안을 했다.
디셀, 제2내성 수비군 3조 7분대 대장.
모두가 죽음을 떠올리는 가운데 그만큼은 아직 쌩쌩했다. 그만이 아니다. 그의 지휘를 받는 3조 7분대 전체가 그랬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고 끝없이 몰려오는 적들과의 희망 없는 전투를 수행하고 있는데, 참으로 묘한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