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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연금술사 리덴 1권(12화)
3. 불타는 황궁(3)


빠직.
리덴은 순간적으로 울화가 치밀었지만 여기서 세나와 말다툼을 할 수는 없었기에 한숨을 내쉬고는 잠자코 따라오라고 말했다.
“어디 가는데요?”
세나가 물었다.
‘에이, 씨. 망할.’
속으로 욕설을 퍼부은 리덴은 재빨리 세나의 배후로 돌아가 세나의 입을 막고는 귀에 대고 입을 열었다.
“7황녀에게 뜯어내러 간다. 알았으면 얌전히 굴어. 까불면 내가 여기까지 오면서 사용한 모든 연금 물품의 배상을 네가 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하마.”
라고.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 의미는 명백한 협박이었다. 세나는 리덴이 연금 물품에 대해서 얼마나 빡빡하게 구는지 알기에,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자살을 생각하던 7황녀는 소드 마스터 소이 엘렌으로부터 흑마법사가 후퇴하였다는 보고를 받았다.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흑마법사들이 사라지자 황실 근위대는 차분하게 좀비들과 흑마법사들이 소환해 둔 몬스터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황실 근위대 소속 기사 몇 명이 리덴들과 조우하게 되었다. 다짜고짜 7황녀를 만나겠다는 리덴의 행동에 기사들은 다소 당황하였지만 무기를 겨누지는 않았다.
하얀 기류를 몸에 두르듯 뿜어내고 있는 리덴의 모습 때문이었다. 몇몇 황실 근위대 기사들은 리덴이 흑마법사들을 물러가게 하는 광경을 보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요구를 들어줄 수도 없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7황녀 전하께 안내한다는 것은 황실 근위대 기본 수칙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돈줄. 어떻게든 해 봐.”
리덴은 귀족 가문의 따님인 세나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휘. 휘이. 휘휘.”
세나는 하지도 못하는 휘파람을 부르며 딴청을 피웠다. 가문의 이름을 7황녀 삥 뜯겠다는 리덴을 돕는 데 사용했다가는 메리스 가문에 날벼락이 떨어질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이었다. 그건 싫었다.
“돈줄.”
리덴이 세나를 부르며 손을 뻗어 세나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세나는 키도 약간 작은 편이고 머리도 작은 편이었다. 간단하게 잡힌 세나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네. 네?”
세나가 반응을 보였다.
“순순히 협조할래? 아니면 혼날래.”
리덴이 말했다.
“서, 선생님. 봐주세요. 이건 농담이 아니라구요. 가문은 관계없잖아요.”
세나가 항의를 했다.
“스승님.”
이때, 이븐이 리덴을 불렀다.
“엉?”
리덴이 시선을 돌렸다.
“저쪽을.”
이븐이 그렇게 말하며 고갯짓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이에 리덴은 세나를 괴롭히던 것을 그만두고 이븐의 말대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피떡칠을 한 여기사가 한 명 있었다. 그녀는 리덴을 노려보며 다가오고 있었다.
“웬 소란이냐. 뭣들 하는 거냐. 누가 놀라고 했나.”
쩌렁쩌렁 울리는 호통 소리에 황실 근위대 기사들이 몸을 움찔거렸다. 단장보다도 무서운 부단장 소이 엘렌의 등장 때문이었다.
“거기 여자, 네가 이놈들의 대장이냐?”
리덴이 물었다.
“웬 놈이냐? 정체를 밝혀라. 여기는 황자와 황녀 전하들이 머무는 별빛궁. 허가를 받지 않은 자의 출입을 금한다.”
소이 엘렌이 소리쳤다.
히죽.
리덴의 오른쪽 입가가 씰룩였다. 이에 세나와 이븐이 한 발 물러났다. 그녀들에게는 리덴의 인내심이 뚝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수도 타로스는 물론이고 황궁도 개판인 상황에서 뭐가 어째? 기껏 달려와서 구해 주니까 한다는 말이.”
리덴이 그 말을 끝으로 소이 엘렌을 향해 달려들었다. 탄환과도 같은 속도였다. 갑작스러운 공격. 소이 엘렌은 즉시 검을 뻗어 대응하려고 했지만 리덴 쪽이 한 발 빨랐다.
빠각.
소이 엘렌이 착용하고 있는 하프 플레이트 복부에 리덴의 주먹이 꽂혔다.
“커헉.”
소이 엘렌의 허리가 기역 자로 꺾였다.
소이 엘렌이 소드 마스터이긴 하지만 소드 마스터 가운데서도 낮은 단계인 입문 수준이었다. 그렇다 해도 소드 마스터는 소드 마스터.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새로운 육체를 손에 넣어 수명이 300년 정도로 늘어난 초인이었다. 그런데 리덴은 한순간에 제압했다.

쿠벤베르크 연금술 정식 연금술사 오의.
자가 신체 연성 9식 중 신성(神性)과의 합일.
일명, 반신체(半神體) 홀리 바디(Holy Body).

‘모든 인간은 신이 될 수 있다.’는 명제에서 출발한 신비학의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 낸 연금 기술. 쿠벤베르크가 신의 종으로서 교회를 위해 활동했을 당시 익혀야만 했던 크리스트교의 비전을 엔버로서의 삶을 마치고 다시 태어난 리덴이 활용하여 만들었다. 사용하게 되면 연금술사는 일시적으로 인간을 초월한 육체 능력과 모든 종류의 어둠의 힘을 소멸시키는 신성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소드 마스터 정도는 가볍게 제압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해졌다.
푸캉.
복부를 얻어맞은 소이 엘렌의 하프 플레이트 등판이 산산이 부서지며 허공으로 비상했다. 예상치 못한 강렬한 타격에 소이 엘렌이 입에서 피를 토했다.
“진짜, 까불고 있어. 안 그래도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미는 중이란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시한 원칙 따위 들이대지 마.”
리덴이 그런 말을 하고는 한 걸음 물러났다.
“으. 저질렀어.”
세나가 망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븐이 한마디 보탰다.
“하긴.”
세나도 이븐의 말에 동의했다. 짜증이 머리끝까지 솟구친 리덴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악마 중에 악마였다.
“쿨럭쿨럭.”
소이 엘렌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피를 토했다.
“야, 거기 너.”
리덴이 휙 시선을 돌려 주변에 멍하니 있는 황실 근위대 중 하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인상을 팍 찌푸리고는 ‘7황녀 처소까지 안내해.’라고 말했다.
“에. 네?”
지명 받은 황실 근위대 기사가 몸을 움찔거리며 반보 물러났다. 소드 마스터 소이 엘렌을 일격에 제압한 누군가에게 저항할 수 있을 리 없고 그렇다고 지시에 따르자니 후환이 두려웠다.
이때.
“스승님. 그 여자 이용 가치가 있을 듯합니다.”
이븐이 말했다.
“응? 왜? 아, 교섭 재료로 쓰라고? 그것도 좋겠지.”
리덴은 납득을 했는지 소이 엘렌의 백금색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소이 엘렌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았다.
“큭.”
소이 엘렌이 신음을 터트렸다. 오랜 전투로 인한 피로와 단숨에 복부를 꿰뚫은 충격으로 인해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상태였지만, 리덴에게 머리카락을 잡혀 치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음은 인식하고 있었다.
“야, 너. 빨리 앞장 안 설래? 말 안 들으면 이거, 홀딱 벗겨 버린다.”
리덴이 으름장을 놓았다.
“으.”
세나가 신음을 흘리며 몇 걸음 물러났다. 이에 ‘세나, 이제 와서 도망칠 생각입니까? 우리는 한 배를 탄 운명 공동체입니다.’라고 말한 이븐이 세나의 곁에 다가와서는 팔짱을 꼈다.
“놔. 놓으라고. 너, 너, 너 때문이잖아. 이 멍청아.”
세나가 이븐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틀립니다. 내 잘못이 아닙니다. 스승님께서 제 말을.”
이븐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돈줄, 노예. 너희들도 홀딱 벗고 싶냐?”
리덴이 그렇게만 말했다.
도리도리.
절레절레.
세나와 이븐은 번개와 같은 속도로 머리를 흔들고는 재빨리 리덴이 지목한 황실 근위대 기사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지목 받은 황실 근위대 기사를 노려보며 압박을 가했다.
잠자코 말 들어.
라는 식으로.
결국 지목 받은 황실 근위대 기사는 속으로 ‘망했다. 내 인생은 이제 끝이야.’라는 중얼거리고는 앞장을 섰다. 후환이 두려웠지만 소이 엘렌이 발가벗겨지는 것을 방치해도 후환은 ‘그냥 스스로 목숨을 끊을걸. 살아 있어서 죄송합니다.’라는 수준으로 전개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7황녀의 처소.
행운인지 불행인지 가는 도중 마주치는 황실 근위대 기사는 없었다. 리덴은 길 안내를 맡은 황실 근위대 기사에게 문지기를 맡겨 놓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꺄악!”
7황녀가 비명을 토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며 상황을 파악했다. 소드 마스터 소이 엘렌이 머리채를 붙잡힌 채 질질 끌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가 7황녀냐?”
리덴이 말했다.
“네. 제가 7황녀 미네 엘 파르…….”
7황녀가 자신의 길고 긴 이름을 늘어놓기 시작했을 때였다. 리덴이 귀찮다는 듯이 ‘7황녀가 맞으면 됐어. 일일이 이름 말하지 마.’라고 말했다.
“아, 네.”
7황녀 미네 엘 파르 어쩌고저쩌고, 이하 7황녀 미네 혹은 미네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리덴을 흑마법사의 우두머리 정도로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론부터 말하지. 나는 너희들을 흑마법사들로부터 구했다. 뭐 줄래?”
간단명료한 문장이었다.
“네? 실례지만 지금 뭐라고.”
7황녀 미네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뭐 줄 거냐고 물었다. 여기까지 오느라고 사용한 연금 물품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블러드 루비와 홀리 다이아몬드까지 사용했어. 그래 놓고도 7써클 흑마법사인가 뭔가 하는 병신 머저리가 도망치는 바람에 9써클 흑마법사 카이롯트인가 하는 놈이 어디서 뭐 하고 있는지도 알아내지 못했단 말이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리덴이 벌컥 화를 냈다.
“스승님.”
이븐이 끼어들었다.
“닥쳐, 노예.”
리덴이 매섭게 이븐을 노려보며 한마디 했다.
“…….”
뭐라고 말하려던 이븐은 서둘러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실례지만 그렇다는 것은 흑마법사가 아니라는 뜻인가요?”
7황녀 미네가 물었다.
“내 몸을 감싸고 있는 하얀 기류 안 보여? 이 신성한 에너지가 넘쳐 나는 내가 흑마법사? 네 눈은 장식이냐?”
리덴이 쏘아붙였다. 하지만 리덴을 제외한 세나, 이븐, 7황녀 미네는 한결같이 속으로 ‘이런 상황에서라면 악당이죠. 악당입니다. 악당이 아닐까요?’라고 생각했다. 물론 누구도 그 말을 입 밖으로 낼 생각은 없었다.
“그렇네요. 실례했습니다. 에헴. 죄송합니다만 질질 끌려온 여기사는 인질인가요?”
7황녀 미네가 물었다.
“아, 이거? 상황이 상황인데 헛소리를 해서 그만. 필요해? 줄까?”
리덴이 말했다. 소이 엘렌을 물건 정도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소이 엘렌, 황실 근위대 부단장으로 소드 마스터예요. 가능하시다면 아량을 베푸시어 해방시켜 주셨으면 좋겠어요.”
7황녀 미네는 침착하게 예의를 갖추어 제안을 했다. 덕분에 리덴의 기분도 조금 풀어졌다. 그래서 휙 하고 짐짝 던지듯 소이 엘렌을 7황녀 미네 쪽으로 던졌다.
“악!”
소이 엘렌이 비명을 질렀다. 머리가 뽑혀 나가는 것 같은 고통과 수치와 모멸감에 죽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리덴을 죽여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가 없었다.
물먹은 솜처럼 천근만근이었다.
“난폭한 분이시네요. 여성은 상냥하고 부드럽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7황녀 미네가 조심스럽게 항의를 했다.
“왜? 너도 저렇게 질질 끌려다니고 싶어? 닥치고 뭘 줄 건지나 말해.”
리덴이 으름장을 놓았다. 이에 7황녀 미네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미소를 가득 머금으며 ‘무엇을 가지고 싶으신가요?’라고 물었다.
“무엇을 가지고 싶냐고? 내가 달라면 다 줄 수 있을 거라는 거냐? 그럼 좋아. 현자의 돌, 레인보우 메탈, 소울 스톤, 요정의 씨앗, 죽은 호문클루스의 심장, 오리하르콘 결정 정도면 돼.”
리덴이 말했다.
“에, 또. 죄송하지만 뭐라고 하셨나요. 현자의 돌, 레인보우 메탈, 소울 스톤, 그리고…….”
7황녀 미네는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는지 조심스럽게 의문을 표했고 이에 리덴은 짜증 넘치는 얼굴로 ‘요정의 씨앗, 죽은 호문클루스의 심장, 오리하르콘 결정이다. 있냐?’라고 말했다.
“죄송하지만 제가 모르는 것들이네요. 영지나 작위 같은 건 어떠세요?”
7황녀 미네가 화제를 바꿨다.
“그런 건 필요 없어.”
즉답이었다. 리덴은 귀족이 된다거나 영지를 가진다거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하지만 세나와 이븐은 거의 망했다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