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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연금술사 리덴 1권(13화)
3. 불타는 황궁(4)


세나와 이븐은 리덴이 언급한 연금 재료들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귀족이 되어 영지를 하사 받으면 연금 재료 따위 구하기 쉽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리덴의 목적이 무엇이고 리덴이 필요로 하는 연금 재료들이 어떤 것인지 모르니까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그러시다면 뭔가 드릴 수 있을 만한 것이 없어요. 작위와 영지라면 제가 교섭을 통해 어떻게든 마련해 드릴 수 있습니다만 그것으로는 안 될까요?”
7황녀 미네가 의견을 제시했다.
“그딴 건 필요 없다고 했지? 아, 그럼 좋아. 할 수 없지. 황금이나 보석 같은 걸로 줘. 가능하다면 오랫동안 태양에 노출되지 않은 것이 좋은데. 비명횡사한 처녀의 액세서리 같은 것도 좋고. 수상쩍은 식물이나 곤충도 좋아. 그리고 보니 무한의 가방도 필요하네. 그런 거 없어?”
리덴의 요구는 오직 연금술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에 세나와 이븐은 못 말리겠다는 얼굴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고, 미네는 반색을 했다. 하지만 곧 미네의 안색이 굳어졌다.
황실 비밀금고라면 리덴이 말했던 것들이 있을 터였다. 하지만 거긴 황실의 일원이라고 해도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현재 황궁에 있는 황족이라고는 7황녀 미네뿐이었으므로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지만 결정적으로 들어가는 법을 몰랐다. 위치 정도는 알고 있지만 그뿐이었다.
“안색이 휙휙 변하는 걸 보니, 흥미롭군. 짚이는 것이 있나?”
리덴은 7황녀 미네의 안색이 변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게 역시. 다른 걸로 했으면 좋겠네요. 안 될까요?”
미네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너도 저것처럼 땅에 질질 끌려 볼래?”
리덴이 으름장을 놓았다.
“그건 사양하겠어요. 오해는 하지 마세요. 말씀하셨던 조건에 해당하는 물건들이 있을 만한 곳은 알아요. 하지만 저에게는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권한이 없고, 따라서 들어가는 법도 모른답니다. 주는 것이 아까워서 이러는 것이 아니에요.”
미네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동시에 세나와 이븐은 망했다, 라는 얼굴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좋아. 가자.”
리덴이 말했다.
“네?”
미네가 의문을 토했다.
“빨리 앞장서. 들어가는 법이 문제라면 그 문제 내가 해결하면 돼.”
리덴은 자신만만했다.
“역시.”
세나가 미치겠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이븐은 세나와 사고의 방향은 달랐지만 마음은 같았다. 이에 리덴이 휙 시선을 돌려 세나와 이븐을 바라보고는 ‘돈줄, 노예. 쫑알거리지 말고 따라와. 특히 돈줄, 그러게 따라오지 말지 그랬어. 응?’이라고 말했다.
“네.”
세나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이븐도 답했다.
“자, 그럼 가 볼까. 쓸 만한 것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리덴은 의욕 120퍼센트였다.
“저, 저기요. 하지만 거기는 들어갈 수가.”
미네가 항의를 했다.
“말로 할 때 들어라. 자꾸 까불면 황녀고 나발이고 홀딱 벗겨서 머리끄덩이 잡고 질질 끌고 다니는 수가 있어.”
연금 재료에 눈이 먼 리덴은 아주 대놓고 협박을 했다.
“아, 알겠어요. 안내하면 되죠? 안내하면. 하지만 들어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저를 탓하시면 안 돼요. 그 점 약속해 주세요.”
미네가 백기를 들었다.
“그 점은 걱정 마라. 거기에만 도착하면 너 따윈 필요 없어.”
리덴은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었다.
“네. 그럼 이쪽으로.”
미네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이 늘 사용하고 있는 침대 쪽으로 걸어가서는 침대를 힘껏 밀었다.
그르릉.
침대가 밀려나며 지하로 향하는 통로가 나타났다. 하지만 미네는 머뭇거릴 뿐 걸음을 옮기지 않았다.
“뭐 해? 빨리 안 가?”
리덴이 재촉을 했다.
“죄송하지만 앞장서 주시면 안 될까요? 길은 알고 있지만 여러 가지로 곤란하다고나 할까 무섭다고나 할까…….”
미네가 싫다는 어조로 말했다.
“돈줄.”
리덴이 한마디 했다.
“왜 또 나예요. 함정이라도 있으면 어쩌려구요.”
세나가 항의를 했다.
“함정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지하통로를 사용해도 되는 것은 황족뿐이랍니다. 함정 같이 위험한 것은 없어요.”
미네가 참견을 했다.
“들었지? 돈줄. 헛소리 말고 좋게 말할 때 앞장서.”
리덴이 으름장을 놓았고 세나는 몸을 한 번 움찔 떨더니 결국 앞장을 서게 되었다. 그렇게 미네를 앞세운 리덴들이 지하통로로 빠져나가고 얼마 후 리덴들을 7황녀 처소로 안내한 기사가 노크를 하고는 안으로 들어왔다. 문에 귀를 대고 대화를 엿듣고 있었기에 거침이 없었다.
“황실 근위대 9조 7분대 기사 긴.”
잠자코 쓰러져 있던 소이 엘렌이 말했다.
“네, 넵! 황실 근위대 9조 7분대 56번째 기사 긴!”
긴이 대답을 했다.
“녀석들이 황녀님을 납치했다. 나를 업고 놈들을 뒤쫓는다. 실시.”
소이 엘렌이 묘한 소리를 했다.
“네? 네?”
긴은 소이 엘렌의 명령에 당황하여 머뭇거렸다. 이에 소이 엘렌은 ‘실시!’라며 언성을 높였다.
‘넵. 알겠습니다. 황실 근위대 9조 7분대 56번째 기사 긴, 부대장 소이 엘렌 님의 명령을 받아 소이 엘렌 님을 업고 놈들을 추격하겠습니다.’라고 긴이 대답했다. 그리고 긴은 소이 엘렌을 업었다. 그러고는 리덴들이 사라진 침대의 비밀통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쪽이 아니다. 침대를 밀어서 통로를 닫고 내 지시대로 움직여라.”
소이 엘렌이 말했다.
“네?”
긴은 당황했는지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머뭇거렸다.
“황족만이 사용할 수 있는 비밀통로를 황실 근위대 기사가 사용해서 어쩌자는 것이냐. 놈들의 목적지는 알고 있다. 걱정하지 말고 침대를 원위치로 돌리고 나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황실 근위대에게는 황실 근위대만의 비상통로가 있다.”
소이 엘렌이 재차 지시를 내렸다. 이에 긴은 속으로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이라고 항의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상사의 명령엔 절대복종이라는 규율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긴은 소이 엘렌을 업고 소이 엘렌의 지시에 따라 침대를 원상 복귀시켰다.

미네의 안내로 시작한 황궁 지하통로 탐험은 몇 시간이 흘러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길이 복잡하다는 뜻은 아니다. 간혹 갈림길 정도는 나왔지만 대체적으로 외길이었다.
넓이는 3명 정도가 나란히 걸을 수 있을 정도.
통로 곳곳에 빛을 뿜고 있는 라이트 스톤이 박혀 있어 어둡지는 않았다. 얼마나 가야 하는 걸까? 미네의 말에 따르면 아직 한나절은 더 걸어야 했다.
“에헴. 실례합니다만 질문이 있어요.”
불쑥, 미네가 입을 열었다. 여태껏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가 이제야 말을 건 것이다.
“뭐야.”
리덴이 답했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성함이라도 알려 주지 않으시겠어요?”
미네가 조심스럽게 예의를 갖추어 물었다.
“알아서 뭐하게. 나중에 보복이라도 하게?”
리덴이 퉁명스러운 어조로 반응을 보였다.
“그런 것은 아니에요. 단지…… 이렇게 되었으니 이름 정도는 알아 두었으면 해서요.”
미네는 최대한 리덴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신경 꺼. 목적지에 도착하면 되돌려 보내 줄 테니, 긴장할 것 없어.”
리덴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하아. 선생님도 참.”
세나가 못 말린다는 반응을 보였다.
“흠? 아, 내 이름은 몰라도 이 녀석 이름을 가르쳐 줄 수 있는데. 어때?”
리덴은 슬쩍 세나를 가리키며 대안을 제시했다.
“하, 하지 마세요. 선생님!”
세나가 항의했다. 7황녀 미네에게 있는 실례, 없는 실례 다 저질러 놓고 이제 와서 자신의 이름을 대겠다니, 그런 일은 사절이었다.
“아, 그래요. 그것도 좋아요.”
미네는 상관없다는 듯이 생긋 웃으며 세나를 바라보았다.
슥.
세나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몸을 반쯤 돌려 미네의 목에 검날을 들이대며 말했다.
“신경 끊어. 내 이름 따위 궁금해하지 마. 알 것 없다구.”
“돈줄, 너도 이제 막가는구나. 감히 황녀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눈에 뵈는 게 없나 보지? 네 이름 말할 생각 따위 처음부터 없었으니까 헛짓거리하지 말고 걷기나 해.”
보고 있던 리덴이 말했다.
“이게 누구 때문인데요. 선생님 때문이잖아요.”
세나가 볼을 부풀리고는 검을 거뒀다. 그러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스승님.”
이븐이 리덴을 불렀다.
“왜?”
리덴이 답했다.
“황녀님을 아내로 맞이함이 어떠십니까?”
이븐이 뜬금없이 굉장한 제안을 내뱉었다.
“돌았냐?”
리덴이 물었다.
“아닙니다. 스승님.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7황녀 미네 님을 아내로 맞이하여 대공이 되시면 권력을 손에 넣으실 수가 있습니다. 그럼 스승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좀 더 빠르게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븐의 의견은 더없이 이치에 맞았다.
“노예. 너, 권력이 가지고 싶었구나. 그렇다면 네가 해. 내가 허락한다.”
리덴이 아무러면 어떠냐는 식으로 받아쳤다.
“스, 스승님. 저는 여자입니다. 여자가 어찌 여자와 결혼을 합니까?”
이븐이 항의했다.
“남장해. 들키지만 마라.”
리덴이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식으로 톡 쏘아붙였다.
“스승님. 그건 어떻게 생각해도 무리입니다. 여자가 여자와 결혼하면 아이를 만들 수 없습니다.”
이븐이 다시 한 번 항의를 했다.
“노예.”
리덴이 진지하게 이븐을 불렀다.
“네, 스승님.”
이븐이 답했다.
“좋은 말로 할 때 그 입 다물어. 자꾸 까불면 입을 꿰매 버린다.”
리덴은 별 대수롭지도 않다는 식으로 이븐에게 협박을 가장한 진심을 전했다. 이븐은 리덴의 말이 거짓말이나 그냥 하는 협박이 아님을 알기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듣고 있던 7황녀 미네는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 눈앞에 있는 막돼먹은 인간 망종에게 시집가고 싶은 생각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런 건 아니지만 여자로서 자존심이 상했다. 7황녀라는 타이틀이 없어도 미네는 자타가 인정하는 미인이었기 때문이었다. 황실 삼장미 중 백장미(White Rose)로 불릴 정도였다.
그런데 예의라고는 약에 쓸라고 해도 찾아볼 수 없는 무뢰한에게 무시당했다.
‘여자 보는 눈이 없는 사람이군요. 어떤 여자를 아내로 맞을지 훤히 보이네요.’
때문에 미네는 위와 같은 식으로 리덴을 잘근잘근 씹으며 걸음을 옮겼다.
침묵.
누구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가운데 리덴과 그 일행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반나절 후 리덴이 불쑥 ‘언제까지 걸어야 하는 거야? 어이, 너. 설마 나를 엿 먹이려고 하는 건 아니겠지?’라고 말하며 미네를 바라보았다.
“아니에요. 이 길이 맞아요. 제가 직접 안내를 하고 있잖아요. 저는 자신을 인질로 잡고 있는 사내를 골탕 먹일 정도로 어리석지 않아요.”
미네가 항의를 했다.
“좋아. 좀 더 걸어 보지.”
리덴이 일단 납득을 했다.
그로부터 반나절 더하기 몇 시간이 지나서야 출구에 도달하였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했는데 세나가 앞장을 서기 싫다며 투정을 부렸다. 치마를 입고 있으니 치마 속이 리덴에게 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
“네 속옷 따위에 만 벌을 준다고 해도 관심 없다. 지린내 풍기지 말고 후딱 올라가.”
리덴이 짜증을 섞어 말했다. 이에 세나는 얼굴을 붉히며 ‘제 속옷은 깨끗해요. 지린내 따위 풍기지 않는다구요.’라고 항의하고는 홱 몸을 돌려 사다리에 올랐다. 항의는 하더라도 반항할 용기는 없는 것이다. 상대가 리덴이니까, 무슨 보복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밖.
비밀통로의 입구는 비나 눈 혹은 짐승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결계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하늘은 여전히 짙은 구름 덕에 밤인지 낮인지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휘잉.
바람 소리가 요란했다.
“아무것도 없구만.”
리덴이 주위를 둘러보고는 중얼거렸다. 결계 밖은 사람 허리만큼이나 크게 자란 억새풀로 가득했다.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을 정도다.
“이쪽이에요.”
미네가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세나가 따르고 리덴이 따르고 이븐이 따랐다. 미네는 억새풀 사이를 헤치며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