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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연금술사 리덴 1권(14화)
3. 불타는 황궁(5)


웨이랜더 황궁.
리덴을 따라왔던 사람들은 승리를 자축하느라 리덴과 그 일행이 사라졌음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황실 근위대 쪽도 별빛궁에 침입해 있는 몬스터들과 좀비들을 처리하느라 7황녀와 황실 근위대 부대장 소드 마스터 소이 엘렌 외 1명이 사라졌음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그러한 사실을 인식했을 때는 리덴들이 미네를 앞세우고 지하통로로 들어간 지 반나절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난리가 났다. 리덴을 따라왔던 사람들이야 리덴이 따라오라고 해서 따라온 것도 아니고 리덴의 정체도 모르는데다 리덴에게 목숨 바쳐 충성을 맹세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상황이 묘하다는 것을 눈치챈 자들부터 하나둘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황실 근위대 쪽은 달랐다. 7황녀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할 대상이고 황실 근위대 부대장 소이 엘렌은 그들을 이끌어 주는 리더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왕좌왕, 지리멸렬하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복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정체를 감추기 위해서인지 모두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검은 옷, 검은 두건, 검은 후드.
드러난 신체 부위라고는 오직 두 눈뿐이었다. 그들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들이 아닌 모든 자를 공격하였다. 황실 근위대, 어물어물 상황 파악 못하고 남아 있던 몇몇 사람들은 물론이고 제2내성 수비군 병사들까지 전부 말이다.
반나절 정도가 지나자 전투가 종료되었다. 도망갈 수 있는 자들은 전부 도망갔고 남은 것은 복면인들뿐이었다. 그들은 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약탈을 시작했다. 돈이 될 만한 것은 전부 한 곳으로 모아 어디론가 이동시켰다.
“흔적을 남기지 마라. 철저하게 흑마법사들의 짓으로 해 둔다. 우리 어둠의 길드가 중간에서 한몫 거들고 있다는 사실이 발각되면 안 된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복면인이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복면인들은 자신들의 손에 죽은 자들의 시체를 없앴다. 약품 같은 것을 뿌리니 시체가 검은 기체로 변화하였다.
이후.
복면인들은 시체를 없애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황궁 곳곳에 기름과 약품을 붓고 불을 질렀다. 그러자 불길의 색깔이 푸른색으로 변하더니 벽이든 철이든 뭐든 태워서 재로 만들기 시작했다. 더러는 검게 눌어붙은 액체가 되기도 했다. 복면인들은 잠시 황궁이 불타는 모습을 지켜보다 철수하였다.

황궁의 북쪽에는 선황들의 묘와 황실 비밀금고가 숨어 있는 금역이 있었다. 거기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고 황제를 포함한 황족 대부분의 출입이 허가되지 않았다. 출입할 수 있는 자는 황족들 가운데 묘지기로 정해진 3인과 그들의 선택을 받은 황실 근위대 중 몇 명의 기사들뿐이었다.
소이 엘렌은 그 몇 명의 기사들 중 하나였다. 때문에 황궁에 남게 되었다. 황실의 묘지기로 선택 받은 3인이 소이 엘렌에게 책임을 미루어 두고 도망친 탓이었다. 그런 이유로 소이 엘렌은 7황녀가 리덴들을 어디로 인도하는지 알 수 있었다.
황실 비밀금고에는 리덴이 언급했던 햇빛을 받지 않은 금은보화나 비명횡사한 황실 처녀의 유품을 비롯하여 정체를 알 수 없는 해괴한 물건들이 잔뜩 있었다. 황실 묘지기의 선택을 받은 황실 근위대 기사로서 조금은 들은 것이 있었다. 오히려 7황녀가 황실 비밀금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보통의 황족이라면 ‘금역은 들어가면 안 되는 곳’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을 터이기 때문이었다.
좌우간.
소이 엘렌은 자신을 업고 있는 긴을 재촉하였다. 7황녀를 악당들의 손에서 구출하기 위해서라도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무, 무겁습니다. 봐주세요. 전 소드 마스터가 아니라구요.”
긴이 우는소리를 했다.
긴 자신도 플레이트 메일에 황실 근위대 전용 투구를 쓰고 있었다. 신발은 철제 부츠고 장갑은 철제 건틀렛이다. 소이 엘렌 또한 반쯤 부서진 하프 플레이트 갑옷에 철제 부츠, 철제 건틀렛을 착용하고 있었다.
“우는소리 하지 마라. 가녀린 내가 무거우면 얼마나 무겁다는 것이냐. 움직이기나 해라.”
소이 엘렌은 용서가 없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긴이 속으로 ‘더 이상은 무리. 죽어도 좋아.’라고 중얼거릴 때였다. 소이 엘렌이 걸음을 멈추게 했다. 신체 능력이 조금은 회복된 것이다.
“지금까지 수고 많았다. 이제 돌아가도 좋다.”
소이 엘렌은 그렇게 말하고는 멋대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긴은 ‘에엑!’ 괴성을 토하고는 소이 엘렌의 뒤를 따랐다.
“버리지 마세요. 어디가 어딘지 모른다구요. 방향치란 말입니다.”
긴이 그런 말을 했다.
“큭.”
소이 엘렌이 걸음을 멈추고는 죽일 듯한 얼굴로 긴을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오기와 근성으로 해결해라.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어떻게든 되는 법. 우는소리 하지 마라.’라고.
“게엑. 무, 무리입니다. 오기와 근성으로 방향치를 어떻게 해결해요! 그런 건 없어요. 없다구요.”
긴이 항의를 했다.
“알아서 해라. 너는 근위대 기사다.”
소이 엘렌은 그런 말을 진지하게 쏟아 놓고는 휙 발을 돌렸다. 긴을 돌보는 일보다 지금은 7황녀를 구출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판단한 것이다.
약 반나절 후.
소이 엘렌은 갑자기 주변에 환해졌음을 깨닫고는 무심코 발을 돌렸다. 그리고 황궁 쪽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크윽.”
소이 엘렌은 신음을 삼켰다.
그러고는 ‘어째서 이런 일이? 무슨 일이?’에 이어 황실 근위대 기사들을 향해 ‘이런 바보 같은 녀석들, 뭣들 하고 있는 거냐!’ 등등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휘저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이미 황궁은 불에 타고 있으니 이렇게 된 이상 7황녀와 황실 비밀금고 쪽이 우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리덴과 세나, 이븐은 미네를 따라 억새밭을 통과하여 야트막한 산자락에 들어섰다. 그러고는 길이라고는 부를 수 없는 나무 사이를 약 1시간 정도 걸었다. 그러자 여태까지와는 다른 풍경이 있었다.
낡은 대리석이 깔려 있는 반경 10m 정도의 공터.
공터의 안쪽에는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바위 문이 있었다. 사람의 얼굴이 그려진 태양, 하늘로 손을 뻗고 있는 사람들, 구름, 드래곤, 나무, 눈물, 엘프, 드워프 등등. 이것저것 아무 연관도 없어 보이는 것들이 아무렇게나 새겨져 있었다.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미네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리덴은 그렇지 않았다.
“고대문명의 나부랭이 같군.”
리덴이 시큰둥한 어조로 그런 말을 했다.
“이 그림의 의미가 이해되시나요?”
미네가 놀랍다는 얼굴로 물었다.
“몰라. 하지만 이런 것과 비슷한 것을 본 적은 있어.”
리덴은 그렇게만 말했다. 더는 말하기 귀찮다는 식으로 문의 이쪽저쪽을 살펴보다가 ‘칫. 역시 연금술 관련은 아니야. 기대도 안 했지만.’라고 말했다.
“에헴. 그럼 저는 안내해 드렸으니 물러가겠어요.”
미네가 말했다.
“어딜 가. 문을 열어서 확인하기 전까지는 안 돼.”
리덴은 그렇게 말하고는 세나와 이븐에게 눈짓을 했다. 이에 세나가 ‘가지 말래잖아.’라고 말하며 미네의 왼팔을 잡았고 ‘이대로 돌아가면 곤란합니다.’라고 이븐이 미네의 오른팔을 잡았다.
“신뢰를 저버리겠다는 건가요?”
미네가 표독스러운 음성으로 리덴에게 말을 건넸다.
“뭔 신뢰를 저버려. 바보냐? 확인도 하지 않고 돌려보낼 정도로 내가 어리석어 보여?”
리덴은 농담하지 말라는 식으로 대꾸해 주고는 문 앞에 섰다. 그러고는 표면에 손을 대고는 힘껏 밀었다.
“바본가요? 그렇게 해서 열릴 것 같으면 여는 법을 모른다고 하지 않아요.”
미네가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리덴은 이에 ‘열려.’라고 대답하고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리덴의 전신에서 뿜어지고 있는 하얀 기류가 리덴의 손끝으로 몰리더니 문을 흔들기 시작했다.
“하압!”
난데없이 기합성이 울렸다. 갑자기 무슨 일일까 하여 세나, 이븐, 미네가 주위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없었다.
쿵.
하늘에서 부서진 하프 플레이트를 입은 여기사 소이 엘렌이 나타났다. 그녀는 착지한 자세 그대로 방향을 바꿔 리덴을 향해 달려들었다.
우웅.
소이 엘렌이 검을 치켜들었다. 푸른 하늘과도 같은 옅은 하늘색의 검기가 검을 휘감듯 뿜어지고 있었다.
“하여간 이놈이고 저놈이고.”
리덴은 그렇게 말하고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소이 엘렌의 행동을 무시했다. 문을 여는 데만 집중할 뿐이다. 그에 세나와 이븐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리덴이 금방이라도 살해될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콰쾅.
폭음이 울렸다. 놀랍게도 소이 엘렌이 허공으로 튕겨져서는 수 미터를 날았다. 그러고는 데굴데굴 지면을 굴렀다.
“커헉.”
신음을 토한 소이 엘렌은 어째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지금은 미네를 구하는 일이 중요했다. 황실 비밀금고에 들어가려는 불청객을 배제하는 것이 중요했다.
“으아아압.”
소이 엘렌이 일어났다. 내장이 뒤집히고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이 고통스러웠지만 그런 것 따위 꾹 눌러 참았다. 그러고는 다시 한 번 자세를 잡고 땅을 박찼다.
“진짜, 수고하는구나.”
리덴이 소이 엘렌을 비웃었다.
콰쾅.
또 한 번의 폭음이 울리며 소이 엘렌이 허공을 튕겨져 수 미터를 날아갔다. 소이 엘렌은 다시 한 번 일어서려 했지만 사지에 힘이 없었다. 거칠 것 없이 용솟음치는 구역질을 참지 못하고 피를 두 모금 정도 토했다.
“너무 용쓰지 마라. 그러다 죽는다.”
리덴은 그렇게 말하며 손에 더욱더 힘을 실었다. 문은 아직 열리지 않고 있었다. 문이 아니기라도 한 걸까? 그것은 아니었다.
“아, 안 돼. 아, 안 돼.”
소이 엘렌이 말했다. 움직일 수 없어도 어떻게든 리덴을 말리려고 했다. 그때 빠각, 하는 소리가 울렸다.
‘……?’
리덴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문은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 탓이다.
쿠르릉.
문이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문에 세로금이 생겼다. 자로 잰 것 같이 일직선이었다.
뭘까? 리덴이 생각하는 순간 세로금 아랫부분이 부서졌다.
“녀석, 까불긴. 순순히 열릴 것이지.”
리덴이 이제 되었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어떤 목소리가 모두의 뇌리를 강타했다.
―때가 되었으렷다. 최후의 안배니라.
라는 내용이었다.
“뭐?”
리덴이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동시에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함정에 빠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쿠르릉.
한바탕 지면이 흔들렸다. 그러고 공터 이곳저곳에서 돌기둥이 솟구쳤다. 그것들은 서로 공명하더니 강력한 결계를 구축했다.
“자, 거기 7황녀. 이게 무슨 일인지 설명 좀 해 보실까?”
리덴은 자신을 여기로 안내한 미네를 노려보며 설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런 일, 미네도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둘러 힘차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몰라?”
리덴이 물었다.
끄덕. 끄덕. 끄덕. 끄덕.
미네는 미친 듯이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보복당하기 싫다는 뜻이었다. 이에 리덴은 한숨을 푹 쉬고는 ‘돈줄, 한 바퀴 둘러보고 와.’라고 말했다.
“에엑! 왜 또 저예요.”
세나가 전력으로, 진심으로 거부했다.
“반항하지 말고 해. 너랑 놀고 있을 시간 없어.”
리덴은 그렇게 말하고는 이븐에게 다가가서는 배낭을 열었다. 그러고는 이것저것 보석류를 한 움큼 챙겨서는 하나씩 삼키기 시작했다.
보석을 먹는 인간, 그것도 그냥 보석이 아니라 연금 재료였다.
이런 모습은 미네와 소이 엘렌은 물론이고 세나와 이븐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멍하니 리덴을 바라보고 있는데 리덴이 보석을 전부 먹고는 트림을 했다.
“역시 이런 짓은 안 좋아. 그럼 난 잔다. 깨우지 마라. 좀 오래 잘 것 같으니, 알아서들 해. 참고로 말해 두는데, 날 해코지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면 맘대로 해 봐. 단, 뒷일은 책임 못 진다.”
리덴은 그런 말을 하고는 일행들에게서 떨어졌다. 그러고는 허공에 둥실 떠올라서는 몸을 웅크렸다.
그르릉.
굉음이 울리며 리덴의 몸에서 바위 같은 것이 피어나더니 리덴의 전신을 감쌌다. 잠시 후 리덴은 달걀 모양의 돌덩어리로 변했다.
“인간?”
미네가 의문을 표했다.
“아닐지도.”
세나가 답했다.
끄덕.
이븐도 옆에서 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