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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연금술사 리덴 1권(15화)
4. 선생님이 자고 계셔(1)


리덴이 잠을 자야겠다며 달걀 형상의 돌멩이가 되어 버리고 1분? 2분? 대충 그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조금 쉬어서 정신이 들었는지 소이 엘렌이 입을 열었다.
“미네 전하, 이 틈입니다. 어서 몸을 피하세요.”
“어? 어.”
미네는 뭔가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고는 약간 느릿한 움직임으로 발을 돌렸다. 황실 비밀금고의 문이 열린 지금, 리덴의 정체도 알아내지 못하고 이대로 떠나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발목을 잡았다.
“미네 전하!”
소이 엘렌이 재촉을 했다. 그녀는 자신이 전투 능력을 상실하였음을 알기에 악의 수괴가 돌덩어리가 된 지금, 7황녀 미네가 자리를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알고 있어요. 소이 엘렌.”
미네가 걸음을 옮겼다.
“어? 얘는 놔두고 가는 거야?”
세나가 소이 엘렌을 가리키며 말했다. 명색이 황녀라는 자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부하를 내팽개치는구나, 라는 의미였다.
우뚝.
미네가 걸음을 멈췄다. 한숨을 내쉬고는 이런 일 본의가 아니라는 듯이 소이 엘렌에게 다가가 소이 엘렌을 한쪽 어깨에 걸쳐서는 끌어안았다.
“미네 전하, 소신은 괜찮사옵니다. 놓고 가시길.”
소이 엘렌이 말했다.
“조용히 있어 주길 바라요. 소이 엘렌.”
미네는 웃으면서 말했지만 가식적인 얼굴이었다. 여러 가지로 복잡한 기분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기우뚱.
미네가 균형을 잃고는 소이 엘렌과 엉켜서 넘어졌다. 소이 엘렌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미네는 순수하게 7황녀인 여자일 뿐이니까, 부서졌다고는 하지만 하프 플레이트에 이것저것 쇠붙이를 착용하고 있는 소이 엘렌의 무게를 견딜 수가 없었다.
“아, 진짜. 어휴.”
보고 있던 세나가 못 봐 주겠다는 듯이 얼굴을 돌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소신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미네 전하. 미네 전하만 무사하다면 저는 죽어도 여한이 없사옵니다.”
소이 엘렌이 말했다.
“조용히 하라고 했지요? 나에게 더 이상 수치를 주지 마세요. 소이 엘렌.”
미네가 따끔하게 일침을 놓았다. 하지만 여전히 소이 엘렌은 무거웠다. 결국 세나가 나서서 소이 엘렌이 착용하고 있는 하프 플레이트 갑옷, 건틀릿과 부츠 등을 강제로 벗겨 냈다. 그러자 속 갑옷이 나왔다. 쇠붙이로 만들어진 갑옷으로부터 피부가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옷감, 솜, 얇은 철판, 솜, 옷감으로 만들어졌다. 압축이 되어 있어 두껍지는 않았지만 만만한 무게는 아니었다.
때문에 미네는 여전히 소이 엘렌을 지탱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지탱하기 위해 이를 악물로 힘을 썼지만 기우뚱하고 균형을 잃었다.
“으.”
보고 있던 세나가 안쓰러운 나머지 시선을 돌리고 신음을 토했다. 그러고는 이븐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좀 하라는 식으로.
“알겠습니다, 세나.”
결국 이븐이 나섰다. 메고 있던 배낭 속에서 은그릇 하나를 꺼내서는 세나에게 손짓을 했다. 블러드스톤을 만들려고 하니 피를 달라는 뜻이었다.
“왜 또 나야?”
세나가 인상을 찌푸리며 항의를 했다.
“저들을 돕고 싶어 하는 것은 당신이지 내가 아닙니다.”
이븐이 딱 부러지게 이유를 댔다.
“으.”
세나는 질린다는 얼굴로 이븐을 바라보다가 할 수 없다는 듯이 미네에게 갔다. 그러고는 강제로 소이 엘렌을 빼앗아서 이븐에게 끌고 왔다.
“무슨 짓이냐! 나는 자랑스러운 황실 근위대 부대…….”
소이 엘렌이 있는 힘껏 항의를…… 하려고 했지만 세나가 반 강제로 입을 꽉 틀어막아 버렸다. 그러고는 이븐에게 ‘얘 걸로 하자. 나 얼마 전에 피 뺐잖아. 피, 너무 자주 빼면 몸에 안 좋아. 그 정도는 너도 알지?’라고 말했다.
“당신은 바보입니까? 환자의 피를 뽑아서 어쩌자는 겁니까.”
이븐이 딱 잘라서 세나의 잘못을 지적했다.
“저, 실례지만 무슨 일을 하려고 그러시는지.”
미네가 조심스럽게 세나와 이븐에게 질문을 건넸다. 이에 세나가 얼싸 좋구나, 하고 미네의 팔을 잡아서는 이븐에게 들이밀었다.
“그럼 얘로 하자.”
라고 말하면서.
이븐은 세나의 제안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미네를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고는 ‘당신 마법사입니까?’라고 물었다.
“에? 아, 아니요. 마법 같은 건 사용할 줄 몰라요. 검술도요.”
미네가 대답을 했다. 이에 이븐은 시선을 돌려 세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진지하게 ‘역시 당신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으. 싫은데.”
세나가 질색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때였다.
“부대장님! 7황녀 전하. 여기 계셨군요.”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러고는 저쪽에서 갑옷을 입은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방향치인 긴이었다.
“쟤로 하자.”
세나가 이때다 하고 제안을 했다.
끄덕.
이븐이 긍정을 표했다. 그와 동시에 세나는 붙잡고 있던 소이 엘렌을 대충 팽개쳐 두고 한 줄기 바람이 되었다.
덥썩.
세나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긴의 팔목을 잡고는 이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에 긴은 어리둥절해져서는 멀뚱멀뚱 세나가 이끄는 대로 딸려 왔다.
“자, 여기.”
세나가 이븐에게 말했다.
“건틀릿 정도는 벗겨야 피를 뽑을 수 있습니다. 모릅니까?”
이븐이 깔보듯이 말했고 세나는 인상을 한 번 찌푸리더니 순식간에 긴의 건틀릿을 벗겨 버렸다.
“네? 에?”
긴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는지 아직도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이에 미네가 헛기침을 하고는 긴에게 ‘7황녀로서 명령합니다. 얌전히 저들의 행동에 따르세요.’라고 말했다.
미네는 세나와 이븐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지는 못했지만 소이 엘렌에게 도움이 되는 짓이라고 판단해서 그런 말을 했다.
“네, 넵! 알겠습니다. 황녀 전하.”
긴이 즉답을 했다.
“조금 따끔할 거야. 눈 감는 편이 좋아.”
세나가 말했다.
“넵.”
긴이 즉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팔뚝에 무언가가 꽂히는 느낌이 났다. 20초 정도가 지나자 몸에서 힘이 빠졌다.
“야야. 너무 빼는 거 아냐? 죽일 셈이야?”
세나가 소리쳤다.
“저는 아직 미숙합니다. 그리고 이 정도로 인간이 죽지는 않습니다.”
이븐이 답했다.
“그, 그만. 그마―안. 죽지는 않겠지만 한도라는 게 있는 법이라구.”
세나가 있는 힘껏 항의하자 이븐은 인상을 한 번 찌푸리고는 피 뽑는 작업을 중단했다. 이후 해방된 긴은 얼마간 비틀거리더니 풀썩 쓰러졌다.
그리고.
이븐은 긴에게서 뽑아낸 피를 가공하여 블러드스톤으로 만들었다. 그러고는 블러드스톤을 생명수로 변환하였다.
“이걸 마시면 괜찮아질 겁니다. 다행히도 작업에 성공하여 중급 생명수가 되었습니다.”
이븐이 말했다.
“뭐? 야, 너 미쳤어. 네가 무슨 중급 생명수야! 하급 생명수 만드는 게 고작인 주제에.”
곁에 있던 세나가 항의로 언성을 높였다.
“성공했으니 된 겁니다.”
이븐이 말했다.
“너, 이러려고 피를 그렇게 잔뜩 뺀 거지? 수상하다 했어. 앙큼한 계집애.”
세나가 신경질을 부렸다. 하지만 이븐은 신경 쓰지 않고 소이 엘렌에게 다가가 그녀의 입가에 은그릇을 대며 말했다.
“이걸 마시면 괜찮아질 겁니다. 그전에 한 가지. 완쾌가 되더라도 우리들을 공격하지는 말길 바랍니다. 약속할 수 있습니까?”
라고.
“그건 제가 약속드리지요. 소이 엘렌, 마시세요.”
보고 있던 7황녀 미네가 말했다.
“7화, 황녀 전하. 지금 무슨 말씀을.”
소이 엘렌이 그렇게 말하고는 중급 생명수를 거부했다. 아니, 거부하려고 했다. 세나가 소이 엘렌의 관자놀이 양쪽을 무릎에 끼고는 입을 강제로 벌리지 않았다면 분명 입을 열지 않았을 터였다.
꿀꺽. 꿀꺽. 꿀꺽.
강제로 중급 생명수를 마시게 된 소이 엘렌은 소드 마스터이고 황실 근위대 부대장인 자신이 어쩌다가 이런 치욕을 당해야 하냐며, 돌덩어리가 되어 버린 리덴에게 욕을 퍼부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몸에 활기가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
소이 엘렌의 표정이 바뀌었다.
“이제 움직일 만하지?”
세나가 질문을 건네고는 소이 엘렌의 머리를 무릎 사이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이븐도 물러났다.
“움직일 수 있나요? 소이 엘렌.”
미네가 질문을 건넸다.
벌떡.
번개처럼 일어난 소이 엘렌은 미네를 향해 ‘이제 괜찮사옵니다. 7황녀 전하. 7황녀 전하의 말씀이 저를 살리셨사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그대로 발을 돌려 지면 여기저기를 구르고 있는 건틀릿이며 투구며 부츠 등등을 회수하여 착용하였다.
“이제 돌아가죠. 소이 엘렌. 저들에게는 건드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어요. 내 얼굴을 봐서라도 이 자리에서 저들에게 해를 가하지 말아 주세요.”
미네가 그렇게 말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소이 엘렌이 ‘알겠사옵니다. 7황녀 전하.’라며 따랐다.
“야, 쟤도 데려가야지.”
세나가 긴을 가리키며 소리를 쳤다.
멈칫.
미네가 걸음을 멈췄다. 그에 소이 엘렌이 발을 돌려 긴을 등에 업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길을 향해 출발했다.
“갔습니다.”
이븐이 말했다.
“응. 갔어.”
세나가 말했다.
“세나, 당신은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원한다면 저들과 함께 떠나셔도 됩니다. 당신은 쿠벤베르크 연금술 학파의 제자가 아닙니다. 굳이 남아서 스승님이 깨어날 때를 기다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븐이 말했다.
“자기도 얼마 전에 제자가 된 주제에. 됐어. 참견 마. 내가 지금 저 사람들이랑 같이 갔다가 나중에 무슨 꼴을 당하라고. 선생님이야 나 같은 거 없어져도 신경 안 쓰겠지만 저들은 아니야.”
세나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 점에는 동의합니다.”
이븐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대화가 끊어졌다. 세나와 이븐은 오랜 시간 함께 하여 미운 정 고운 정이 붙었지만 성격이 잘 맞는 편은 아니었다. 신분도 과거도 완전히 달랐다. 그래서 둘만 있으면 약간 서먹한 관계가 됐다.
그렇다고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었다. 그녀들 사이에는 리덴의 밑에서 같이 고생한다는 동료애 같은 것이 있었다.
1시간 정도가 흘렀다. 그동안 세나와 이븐은 주변에 굴러다니는 돌이나 나뭇가지 같은 것을 꺾어다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자리를 잡고 쉴 준비를 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저쪽에서 그러니까, 미네와 소이 엘렌 외 1명이 사라진 방향과는 90도 정도 틀어진 왼쪽 방면에서 미네와 소이 엘렌 외 1명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