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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연금술사 리덴 1권(17화)
4. 선생님이 자고 계셔(3)
좌우간.
자리에서 일어난 이븐은 미네에게 사정을 물었다. 미네는 자신들이 경험했던 것을 털어놓으며 은근슬쩍 ‘저기 자고 계신 저분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해 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그건 제가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닙니다.”
이븐은 대답을 피했다. 섣불리 답했다가는 후에 책임을 져야 했기에 당연한 판단이었다.
“저, 그리고 뭐라고 불러야 되나요? 저는 미네라고 불러 주세요. 그러면 돼요.”
미네가 조심스럽게 화제를 바꾸었다.
“황녀임을 내세우지 않겠다는 뜻입니까?”
이븐이 물었다.
“상황이 이런데, 내세워서 뭐 어쩌겠어요. 여기서는 미네면 충분해요.”
미네가 답했다.
“알겠습니다. 미네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노예면 충분합니다. 저쪽에 있는 바보는 돈줄이면 됩니다. 둘 다 스승님이 저희들을 부르는 별명 같은 겁니다. 이상하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븐도 답했다.
“그, 그래요. 하하. 하하하.”
미네는 머쓱한 얼굴로 웃고 말았다. 그렇게 세나와 이븐, 미네와 소이 엘렌 외 1명의 공동생활이 막을 올렸다.
세나와 이븐 그리고 미네와 소이 엘렌 외 1명의 공동생활 최초의 과제는 식량난 해결이었다.
묘하게도 세나와 이븐은 먹지 않아도 딱히 배가 고프지 않아 상관없었지만 미네와 소이 엘렌 외 1명은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미네와 소이 엘렌 외 1명은 신분이 좋은 사람들이어서 아무것도 없는 산속에서 식량을 구한다는 과제를 수행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세나와 이븐이 나서게 되었다.
세나와 이븐은 리덴 덕분에 돈 주고도 체험할 수 없는 극악의 야생 서바이벌 체험을 무료로 몇 번이고 겪어야 했다.
이를테면 무덤가에서 3일 동안 알아서 살아남기라거나.
폐허에서 5일간 알아서 살아남기라거나.
대강 그런 식이었다. 때문에 산속의…… 햇빛이 있고 흙이 있고 나무가 있고 풀이 있는 곳에서의 서바이벌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세나가 나무의 잎사귀든 나무뿌리든 벌레든 먹을 만한 것들을 가져오면 이븐이 먹을 수 있는 것, 독성이 있는 것, 연금 재료가 될 만한 것을 분류하여 약간의 가공을 했고 그중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말리거나 해서 빻았다.
일련의 과정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하려고 하면 10일 이상이 걸리는 작업이었지만 7급 연금술사이자 쿠벤베르크 연금술에 입문한 이븐에게 있어서는 반나절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미네와 소이 엘렌은 좀처럼 입에 댈 수가 없었다. 미네와 소이 엘렌은 이븐의 작업을 옆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이었다.
나뭇잎이나 풀잎, 나무뿌리, 버섯 같은 건 그렇다 쳐도 지네라든가 애벌레라든가 그 외 몇 종류의 곤충의 일부도 섞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가공을 해서 곱게 빻았기에 보기에는 약간 누르스름한 가루일 뿐이었다.
냠냠, 쩝쩝.
참고로 외 1명에 해당하는 긴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꾸역꾸역 잘도 먹었다. 고소하다는 둥, 정말 맛있다는 둥 하는 말을 해 가면서.
“먹지 않습니까?”
이븐이 의문을 건넸다.
“무엄하다. 그런 재료로 만든 것을 7황녀 전하께 내밀다니, 네놈의 머릿속에는 예의라는 단어가 존재하질 않는 것이냐!”
소이 엘렌이 신경질을 부렸다.
“그렇다면 굶어 죽으면 됩니다.”
이븐은 그렇게 말하고는 미네와 소이 엘렌 앞에 두었던 은그릇에 손을 뻗었다. 먹지 않겠다니 치우려는 것이다.
“먹을게요. 먹으면 되죠? 먹으면.”
미네가 서둘러 소리쳤다. 인간은 먹어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식량 문제가 해결되었다.
이후.
세나와 이븐, 미네와 소이 엘렌 외 1명은 하는 일없이 식량을 만들거나 축내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태양이 지고 밤이 오고, 태양이 뜨고 밤이 지고.
리덴이 잠을 자겠다며 돌덩어리가 된 지 30일이 지난 그다음 날, 오후.
쿠르르릉.
굉음이 울리며 달걀 모양의 바위가 사라지고 리덴이 모습을 드러냈다. 체내에 있는 홀리 다이아몬드를 없애는 작업을 마친 것이다. 그러고는 사방을 휙 한 번 둘러보고는 세나와 이븐을 불렀다.
“쟤네들 왜 아직도 있어?”
리덴이 물었다.
“그게 말입니다. 스승님.”
이븐이 나서서 설명을 했다. 이에 리덴은 인상을 한 번 찌푸리고는 말았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식이다.
“황실 비밀금고에 들어간 사람은?”
리덴이 화제를 돌렸다.
“제가 알기론 없습니다. 스승님.”
이븐이 답했다.
끄덕끄덕.
옆에 있던 세나가 고개를 끄덕여 이븐의 말에 긍정을 표했다.
“그래? 그럼 됐어. 노예, 가방 가져와.”
리덴이 지시를 내렸다.
“네, 스승님.”
이븐은 리덴의 지시대로 리덴의 연금술사 집에부터 메고 온 가방을 가져왔다. 리덴은 거기에서 얼마간의 연금 재료를 꺼내고는 ‘나는 저 안에 들어가 볼 테니, 너희 둘은 쟤네들하고 밖에서 대기해. 혹시라도 들어오려고 하거든 알아서 말려. 너희들하고 쟤네들을 위해서 하는 말이다. 알았지?’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세상의 모든 일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듯이 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다가 말았다. 하늘을 한 번 보고 땅을 한 번 보고 주변을 휙 둘러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이곳에 올 때만 해도 하늘은 구름이 가득해서 직사광선이 들지 않았고 대지에서는 죽음의 기운이 뿜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생기가 가득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바람은 상쾌했다.
너무나 극명한 변화였다. 1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해도 자연적으로 이렇게 되었다고는 볼 수 없었다. 리덴은 죽음이 내려앉은 도시가 자연적으로 정화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지 알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리덴은 세나와 이븐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1초도 지나지 않아 그만두고 발을 돌렸다.
돈줄과 노예 따위가 자연의 흐름과 변화의 이치를 알고 있어 지금 상황의 기묘한 점을 눈치챘다면 그 점을 먼저 말했을 터이기 때문이었다.
즉, 물어도 헛수고라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아무래도 좋은 일이기도 했다. 지금은 황실 비밀금고를 살펴보는 일이 급했다.
저벅저벅.
리덴은 황실 비밀금고 안으로 들어가서는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황실 비밀금고 문이 있던 자리에 배낭에서 꺼낸 보석들 중 몇 개를 던져 두었다.
쿠벤베르크 연금술 견습 연금술사 오의.
바위 문 연성.
보석을 중심으로 연금 도형이 빛을 발했다. 그리고 주변에 널려 있던 돌문의 잔해들이 스르르 모이더니 자기들끼리 엉겨 붙었다.
쾅.
반쯤 부서져 있었던 황실 비밀금고 문 아래쪽에 새로운 형태의 돌벽이 만들어졌다. 빈틈 하나 없었다. 리덴은 자신 외에 다른 누구도 이 안에 들어오게 놔둘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콰콰쾅 굉음이 울리며 돌벽에 금이 갔다.
리덴이 멋대로 황실 비밀금고에 들어가는 것을 본 소이 엘렌이 달려들어 검기를 사용한 것이다.
“진짜, 귀찮게 하네.”
한바탕 투덜거린 리덴은 몇 개의 보석을 소비하여 바위 문을 강화하고 결계를 설치했다. 상당 수준의 초자연적 힘에도 영향을 받지 않도록 말이다. 그러고는 발을 돌려 본격적인 황실 비밀금고 탐험을 시작하였다.
5. 예상외의 곳에서 예상외의 흔적이(1)
리덴은 빛 속성 연금 도형을 사용하여 빛을 만들었다. 그리고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다. 전체적으로는 그저 뻥 뚫린 공터였다. 하지만 안쪽에는 가구 같은 것이 있었다. 리덴은 걸음을 옮겼다.
책상, 의자, 탁자, 화장대 등등.
가구들이 아래에서부터 위까지 잔뜩 쌓여 있었다. 중간중간 보석함이나 의상함, 무기 상자로 보이는 네모난 상자들이 끼어 있었다. 공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들은 그리 오래전 물건이 아니다. 누적된 세월이 길지 않아. 최근까지 누군가가 이곳을 들락날락했던 모양인데. 대체 여긴 뭐지? 이야기를 좀 들어 둘 걸 그랬나.’
리덴은 그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문득 이름표 같은 걸 발견했다.
<바레아, 웨이랜더 황실력 1325년∼1342년.>
묘한 표기였다. 물건들의 주인이 누구이고 그 누가 언제 태어났고 언제 죽었는지 알려 주고 있었다.
‘어째서?’
리덴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아무튼 걸음을 계속 옮겼다. 일단 둘러보기나 하자는 식이었다.
1시간 정도 걷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가구의 도열이 끝났다. 그리고 5개의 동굴이 나타났다.
각 동굴 안에는 3개의 마법진이 있었는데 은은한 빛을 뿜고 있었다. 텔레포트 마법진이었다. 마법은 이 세계의 문명을 주름잡는 주요 학문으로 이 세계의 연금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리덴은 그중 하나에 발을 댔다.
우웅.
빛이 번쩍하며 리덴을 낯선 곳으로 이동시켰다. 마찬가지로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동굴이었는데 빛이 있었다.
작은 연못 하나가 있고 사방에는 수정이 있었다. 가공이 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수정이 바닥과 천장에 달려 붙어 있었다.
‘이거 횡재했군.’
리덴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천연의 수정은 쿠벤베르크 연금술에 있어 가치가 높았다.
연못에는 황금빛을 뿜어내는 물고기 몇 마리가 살고 있었다. 빛이 들어올 곳이 없는데도 빛이 있는 이유였다.
‘이건 뭐지?’
리덴은 조용히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들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한참을 생각해도 모르는 생물이었다.
‘일단 다른 곳도 둘러보자.’
리덴은 마법진을 통해 원위치로 돌아와서는 옆에 있는 마법진에 발을 들여놓았다. 마찬가지로 사방이 막혀 있는 동굴 같았다.
빛이 있었다. 공터 중앙에 있는 나무에서 뿜어지고 있었다. 사과가 달려 있는데 황금색이었다.
“……!”
리덴의 안색이 대변했다.
황금사과.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열매로 크리스트교의 성경에 등장하는 선악과와 동일시되기도 했던 환상의 과일이었다. 먹으면 신처럼 된다고 전해졌다. 때문에 금단의 지식, 금단의 과실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실존하는 과일은 아니었다. 리덴이 알기에는 그랬다.
때문에 리덴은 ‘농담이지? 있을 리가 없어. 가짜야. 만들어진 거야. 어떻게?’라는 식으로 당혹스러워했다.
‘화, 확인해 보자. 확인해 보면 알 수 있다.’
리덴은 그렇게 생각하고는 걸음을 옮겨 나무로 다가갔다. 그리고 황금사과에 손을 댔다. 하나 따서 이래저래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따지지 않았다. 가지를 때려 보고 흔들어 보아도 황금사과는 떨어지지 않았다.
“얼씨구.”
리덴이 중얼거렸다.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잠시 생각을 하다 일단 여기는 이대로 놓아두고 다른 마법진을 살펴보기로 했다.
우웅.
다음 마법진 역시 사방이 가로막힌 동굴이었다. 거기에는 가공이 되지 않은 금광석이나 은광석 따위가 잔뜩 있었다. 자세히 보니 구멍이 뚫려 있었고 리덴이 빛을 비추자 작은 애벌레 같은 것들이 불쑥 머리를 내밀었다.
‘농담이지?’
이번에는 리덴이 알고 있는 것이었다. 레인보우 플라워의 6가지 재료 중 하나인 레인보우 메탈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메탈 웜(Metal Worm)이라고 하는 생물이었다. 직사광선을 받지 않은 광석을 먹고 사는 생물로 레인보우 플라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양의 레인보우 메탈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수가 필요했다.
‘다, 다른 석실도 살펴보자. 불길한 느낌이 든다.’
리덴은 서둘러 다음 석실의 첫 번째 마법진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다음, 다음.
다음 석실의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마법진.
두 번째, 세 번째 석실도 첫 번째 석실과 다를 것 없이 리덴에게 있어 꼭 필요한 것들이나 리덴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리덴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
어쨌든 네 번째 석실의 마법진들을 조사하고 다섯 번째 석실의 마지막 마법진에 발을 내딛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