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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연금술사 리덴 1권(20화)
5. 예상외의 곳에서 예상외의 흔적이(4)


고민.
고민.
결국 리덴은 낮 시간을 전부 소모해서야 하나의 웃기지도 않는 결말에 도달하게 되었다.
혼자서 할 수 없다면.
혼자가 아니면 되는 것이다.
이븐을 제자로 받아들였으니까 혼자가 아니지 않냐고?
리덴은 이븐을 제자로 받아들였지만 적당히 이용해 먹다, 적당한 시기에 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 말을 바꾸자.
리덴이 제자를 받은 것은 이번 생애가 처음이 아니었다. 과거에도 몇 번의 생애에 몇 명의 제자를 받아 쿠벤베르크 연금술을 가르쳤다. 하지만 때가 되면 리덴을 떠났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자신의 신념이나 뭐 그런 것들 위해 연금술을 사용하였고, 그 결과 죽거나 떠나거나 뭐 그랬다.
그런 이유로 해서 리덴은 제자라고 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스승 쿠벤베르크가 그랬고 자신이 그랬듯.
생각해 보면 리덴 역시 엔버였던 시절 스승 쿠벤베르크를 죽게 만들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속아 넘어간 것이 잘못이었다. 자신이 진심을 보여 주고 비밀을 가르쳐 주면 달콤한 삶으로 이어질 거라고 믿은 것이 잘못이었다.
리덴은 그때의 일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제자의 잘못에는 관대했다. 제자가 자신을 배신해도 그런 거지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제자에게 오의니 극의니 비의니 하는 것들을 쉽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 특히 자신의 진짜 목적인 레인보우 플라워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언제 자신을 배신할지, 언제 자신을 떠날지 알 수 없으니까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이다. 레인보우 플라워를 완성할 때까지는 적어도.
그러나 스승 쿠벤베르크는 입버릇처럼 제자에게 배신을 당한다고 해도 전부 가르쳐 주는 게 스승의 도리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잡혀가면서도 리덴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저 웃고 말았다.
그 마지막 웃음은 아직도 리덴의 눈에 선했다. 그러니까 레인보우 플라워의 완성이 우선이었다.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제자를 거둘 수가 없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제자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타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제자들을 키워 그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레인보우 플라워도 만들 수 있고 의도적으로 남겨진 6권의 책을 해독할 수 있을 터였다.
이것이 리덴이 고민 끝에 도달한 웃기지도 않는 결론이었다. 그렇기에 리덴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전의 생애들에서는 무시했던 이야기였다. 그래야 할 이유가 없었다. 레인보우 플라워만 만들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쿠벤베르크 전기라는 것이 발목을 잡았다.
까놓고 말해, 리덴이 말하는 쿠벤베르크 연금술의 삼분의 이는 리덴 자신이 레인보우 플라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다 얻은 결과물이었다.
스승 쿠벤베르크는 기본적인 토대와 이론, 원리를 만들고 목표를 제시했을 뿐이었다. 레인보우 플라워를 만드는 과정도 리덴은 옆에서 구경만 했다. 대충 설명만 들었다. 그래서 쿠벤베르크가 레인보우 플라워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온갖 시행착오를 경험해야 했다. 이론을 다시 세워야 했다.
그리고.
쿠벤베르크 전기에는 스승이 레인보우 플라워를 만드는 부분도 나와 있었다. 작업 과정은 백지 상태였지만 그때 나누었던 잡담 같은 것이 완벽하게 일치했다. 따라서 스승의 방식을 알기 위해서는 비밀을 풀어야 했다.
그러니까 리덴으로서는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처음부터 무시한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레인보우 플라워를 만드는 일보다 책을 해독하는 작업을 우선시해야 했다. 그럼에도 리덴은 쉽사리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레인보우 플라워 하나만 보고 달려왔는데 스승과 관계되어 있는 무언가가 발견되었다고 지금까지 달리던 것을 중단하고 방향을 틀 수는 없는 것이다.
“스승님. 이걸로 되는 겁니까?”
리덴이 중얼거렸다. 벌렁 누워 밤이 되어 버린 하늘의 달을 바라보았다. 지구의 달이었다.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였다. 이 세계의 달은 하나가 아닌 두 개니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지금 하늘에는 하나의 달이 떠 있었다.
이는 틀림없이 이 시설을 만든 누군가의 배려였다. 그저 취향일 수도 있지만 리덴은 배려로 느껴졌다.
“후아암.”
리덴이 하품을 하고는 눈을 감았다. 한숨 자고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다음 날.
눈을 뜬 리덴은 세면을 마치고 세나와 이븐, 미네를 불렀다. 소이 엘렌과 긴은 미네의 덤으로 따라왔다.
“돈줄, 깍쟁이, 너희 둘. 이제부터 쿠벤베르크 연금술을 배우는 나의 제자다.”
리덴이 다짜고짜 그런 말을 했다. 앞뒤 말을 전부 생략하고 결과만 툭 던진 것이다. 이에 세 명 다 놀랐다.
“에에. 선생님, 미쳤어요? 전 싫어요. 싫다구요. 제가 연금술을 왜 배워요.”
세나가 항의했다.
“…….”
이븐은 그저 멍하니 리덴을 바라볼 뿐이었다.
“당신의 제자가 되는 건가요? 싫지는 않아요. 싫지는 않지만 갑자기 어째서죠? 그리고 지금 저를 깍쟁이라고 불렀나요? 제 귀가 이상해진 것이 아니라면 좋겠어요.”
미네는 미묘하게 저항적인 의사를 표명했다.
“질문을 바꾸지. 살고 싶냐? 죽고 싶냐?”
리덴이 뚱딴지같은 소리를 했다.
“힉!”
세나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리덴의 상태가 매우 진심이니까 어설프게 저항하는 것은 좋지 않음을 깨달은 것이다.
“돈줄, 대답은?”
리덴이 세나를 바라보았다.
“하면 되잖아요. 하면. 말로 하자구요. 왜 매일 좋은 말 놔두고 그렇게 사람을 윽박질러요. 선생님도 참.”
세나는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결국 리덴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연금술은 싫지만 리덴의 제자가 되는 일은 그렇게 싫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거부한다는 선택지는 없는 건가요?”
미네가 신중한 어조로 물음을 던졌다.
“없어.”
리덴이 대답했다.
“…….”
미네는 말문이 막혔다.
“무엄하다! 감히.”
때문에 소이 엘렌이 나섰다. 검 손잡이에 손을 가져가서는 조용히 리덴을 노려보았다. 미네의 명령이 떨어지면 그대로 달려들 기세였다.
“까불지 마라. 내가 반신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너 정도에게 질 것 같아? 궁금하면 시험해 보든가. 아아, 걱정은 하지 마. 너 같은 반항아나 저기 있는 깡통까지 제자로 받을 생각은 없어. 내 신경을 긁는 바보 제자는 한 명이면 족해.”
리덴은 그렇게 말하고는 본의는 아니라는 식으로 세나를 바라보았다. 신경을 긁는 바보 제자가 누구인지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스승님. 여기 있는 모두에게 별명을 붙이신 겁니까?”
이븐이 끼어들었다.
“노예. 넌, 가서 물이나 떠와.”
리덴은 이븐에게 좀 빠져 있으라는 식으로 지시를 내렸다. 그에 이븐은 약간 질린다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고는 발을 돌렸다. 리덴이 말하는 바를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소이 엘렌, 그대도 잠깐 뒤로 물러나 있어 주세요.”
미네가 소이 엘렌에게 말했다.
“하지만 미네 전하.”
소이 엘렌이 반항의 뜻을 비추었다.
“엘렌 경, 부탁이에요.”
미네는 제법 강경한 의사를 비추었다. 이에 소이 엘렌은 더 말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긴이 ‘큭큭.’ 하고 웃음을 참았다.
빠득.
소이 엘렌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쫄따구 주제에 상관을 비웃어? 있다 보자는 뜻이었다.
“읍.”
긴이 급히 입을 막았다. 그리고 리덴이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분명히 말해 두는데, 이건 내 본의가 아니야. 사정이 사정이라 할 수 없을 뿐이지. 그리고 이 문제는 쿠벤베르크 연금술과 무척이나 연관이 깊다. 외인에게는 한 마디도 해 줄 수 없어.”
“제가 제자가 되지 않겠다고 했나요? 이유가 궁금할 뿐이에요.”
미네는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누가 깍쟁이 아니랄까 봐. 말 하는 꼬라지하곤. 그래서 할 거야? 말 거야. 그것만 말해.”
리덴은 물러나지 않았다.
“할게요. 하겠어요. 그러니 알려 주세요.”
미네가 확답을 했다.
“기다려. 일단 의식부터 하고. 돈줄부터 준비해.”
리덴이 화제를 돌렸다.
“에? 뭘 준비해요? 선생님.”
세나가 물었다.
“노예가 물을 떠올 거다. 제자는 스승의 발을 씻기고, 스승은 제자의 머리를 감겨 준다. 이것이 바로 쿠벤베르크 연금술 입문 의식이다. 이걸 하지 않고는 제자가 되었다고 할 수 없어. 그리고 깍쟁이, 네 뒤에서 서성이고 있는 외인 두 명 멀리 떨어져 있으라고 해. 이왕이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놀라 그래. 노예가 오면 그때부터는 쿠벤베르크 연금술 학파만의 영역이야.”
리덴이 말했다. 이에 미네가 소이 엘렌과 긴에게 리덴의 말에 따를 것을 명했고, 소이 엘렌은 불쾌한 기색을 보였지만 결국 미네의 명령에 따라 긴을 데리고 저쪽 어딘가로 사라졌다.
이후, 이븐이 흙과 나뭇가지를 이용해 만든 엉성한 대야에 물을 가득 담아서 가져왔다. 이븐은 육체파가 아니기에 무척이나 힘겨운 일이었지만 한마디 불평도 하지 않았다. 리덴은 그것을 가지고 세나부터 입문 의식을 시작하였다.
시간이 흘러 미네까지 입문 의식을 마쳤다. 덕분에 이븐은 파김치가 되었다. 대야에 물을 떠온답시고 4번이나 왔다 갔다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리덴은 세나에게 있어 날벼락 같은 소리를 했다. 의식 중 대야에 물을 받아 온 이븐이 세나와 미네에게 있어서는 쿠벤베르크 연금술 선배니까 의견을 존중하고 무시하지 말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게 어딨어요. 선생님, 말도 안 돼요. 내가 왜 저것의 말을 들어야 해요!”
세나가 항의했다.
“네가 지금 반항하냐?”
리덴이 으름장을 놓았다.
“…….”
세나는 입을 꾹 다물고 합죽이가 되었다.
이들 3명은 훗날 빛의 연금술사 리덴의 루비, 사파이어, 다이아몬드라 불리겠지만 이 시점에서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이제야 누군가가 목적을 가지고 마련해 놓은 무대에 막 입장했을 뿐이었다.


6. 쿠벤베르크 연금술 견습 연금술사로서의 시작점(1)


리덴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제자가 된 세나, 이븐, 미네를 앞에 두고 쿠벤베르크 연금술의 개념과 정의, 역사에 관해 강의를 시작했다.
이야기는 리덴이 엔버였던 시절 자신의 스승이었던 쿠벤베르크에 관한 것부터 시작되었다. 처음 얼마간은 그저 듣고 있던 제자들이었지만 중간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지 세나가 손을 들고는 ‘선생님, 이야기가 이상해요. 거기 웨이랜더 제국 맞아요?’라고 물었다.
“아냐. 그냥 일단은 들어. 이야기가 복잡해.”
리덴은 그렇게 말하고는 설명을 계속했다.
중세 유럽이 어쩌고저쩌고.
마녀사냥과 귀족과 연금술사가 어쩌고, 사람들은 불노불사의 비약을 원했고 어쩌고저쩌고.
반나절 이상 계속된 이야기는 제자들에게 있어 딴 세상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끝에 리덴이 ‘이건 돈줄이 지적한 대로 웨이랜더 제국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웨이랜더 제국에서 태어났지만 전생, 전전생, 전전전생을 포함하여 이전의 생애들 중 얼마간을 기억하고 있다. 내가 앞서 언급했던 쿠벤베르크 연금술의 창시자 쿠벤베르크의 제자 엔버다.’라고 말했다.
세나를 비롯한 이븐과 미네는 각자의 독특한 제스쳐를 취하며 놀라 주었다. 놀랄 만한 이야기니까 당연한 것이다.
“이야기는 그게 다가 아니야. 저기 있는 저 웨이랜더 제국 황실 비밀금고라는 시설에 어찌 된 일인지 말이야. 쿠벤베르크 연금술의 창시자 쿠벤베르크의 흔적이 있어.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 몰라? 그래, 나도 모른다. 이 바보들아. 후우.”
괜히 한바탕 투덜거린 리덴은 한숨을 내쉬고는 이야기를 계속 진행하여 황실 비밀금고에 있는 6권의 책과 레인보우 플라워에 관해서도 늘어놓았다.
“선생님, 쉬었다 해요! 머리 아파요.”
세나가 손들고 말했다. 이븐과 미네도 동감이었다. 한꺼번에 충격적인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와서 어떻게 정리를 하면 좋을지, 머릿속이 복잡했던 것이다.
“그래? 할 수 없지. 보통의 인간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니. 뭐, 그럼 내일 다시 하기로 하고 깍쟁이는 알지? 네 똘마니들이라고 해도 이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 이야기를 하면 그때는…… 흠. 각오해 두는 것이 좋아. 어떤 재앙이 닥칠지 궁금하다면 시험해 봐도 좋다. 기꺼이 그 기대에 응답해 주마.”
리덴이 으름장을 놓았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고 시간이 흘러 다음 날이 되었다. 리덴은 어제에 이어 이야기를 시작하여 ‘세계의 진실과 예언의 서’에서 읽을 수 있었던 부분에 관해 말을 꺼냈다.
세나, 이븐, 미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얼굴이 경직되었다. 다른 사람의 말이었다면 혹은 다른 상황에서의 말이었다면 믿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리덴은 그런 주제로 허튼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고 그들이 겪었던 일은 이야기의 신빙성을 증가시켰다.
“뭘 그리 기겁들을 하고 있는 거냐. 세계의 종말이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우리 쿠벤베르크 연금술은 진리를 탐구하고 솜씨를 높여 더욱 어려운 연금 물품을 제조하는 것이 목적이자 사명이다. 종말 같은 건 막고 싶은 사람이 막으면 돼. 신경 쓸 것 없어.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다. 쿠벤베르크 연금술 창시자의 흔적이 있는 한, 우리는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을 해야만 한다. 그 흔적이 지금의 우리에게 별 가치가 없더라도 그가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지금의 너희들이 있는 것이다. 너희들이 나에게서 받을 것은 전부 그에게서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할 수밖에 없는 거다.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알아들었지?”
리덴이 진지하게 그런 말을 했다. 딴에는 제자들이 발을 뺄까 조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명감과 필연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선생님도 참. 당연한 말에 왜 설명을 붙여요. 이 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잖아요. 누군가에 의해 망하게 생겼는데 그걸 방치하는 쪽이 이상한 거죠.”
세나가 같잖다는 듯이 말했다.
이에 이븐이 세나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작은 목소리로 ‘이럴 때는 나서지 말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갑니다.’라고 속삭여 주었다. 딴에는 후배를 챙기는 선배였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호오. 그래, 내가 이상한 놈이라 이거지? 제자 주제에 스승을 얕잡아 보는 거냐!”
리덴이 버럭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요.”
세나가 목소리를 길게 뺐다.
“하아.”
이븐이 옆에서 한숨을 쉬었다.
“쿡쿡.”
미네는 숨죽여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