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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연금술사 리덴 1권(21화)
6. 쿠벤베르크 연금술 견습 연금술사로서의 시작점(2)
“아, 됐어. 화제를 돌리지. 바보랑 말다툼할 시간 따위 없다. 아무튼 지금 우리의 목적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레인보우 플라워를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6권의 책을 해독하는 일. 이 두 가지는 이 세상을 구하는 일과 연금술사로서 실력을 높이고 세계의 진리를 탐구하는 일, 그 모든 것과 목적이 일치한다. 그리고 분명히 말해 두는데 앞서 말한 것들은 전부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달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만 이루면 너희들에게 볼일은 없다. 자유가 되고 싶으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빨리 작업을 끝낼 것. 게으름 피우면 나랑 일생 동안 얼굴을 마주 보고 살게 될 거다. 절대 독립 안 시킬 거야, 절대로. 그러니 마음속에 잘 새겨 둬.”
리덴이 주의를 주었다. 이에 세나와 이븐, 미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저희들끼리 얼굴을 마주 보다가 돌연 가위바위보를 했다.
‘갑자기 뭐 하는 짓들이지?’
리덴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으아악. 져, 졌어. 어째서? 어째서? 너희 둘 설마? 설마?”
세나가 망했다는 듯이 괴성을 지르며 이븐과 미네를 번갈아 바라보았고 이븐과 미네는 조용히 미소를 교환했다.
짜고 세나를 패배자로 만든 것이다.
“뭐냐? 이것들아! 지금은 수업 시간이다. 노는 시간이 아니야.”
리덴이 주의를 주었다.
“선생님, 질문 있어요. 저기요. 저기요.”
세나가 손을 들었다.
“해 봐.”
리덴이 답했다.
“그 목적이요. 이루면 선생님하고 같이 못 있는 거예요?”
세나가 물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너희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그리고 이 작업이 우습게 보이나 본데, 너희들이 이 작업에 대해 알면 알수록 절망하게 될 거야. 너희들의 도움이 있다고 해도 1∼20년으로는 절대 끝나지 않아. 앞으로 50년이 걸릴 지, 100년이 걸릴 지 알 수 없단 말이다.”
리덴이 불쾌하다는 식으로 답변을 했다. 아직 개뿔도 모르는 것들이 쓸데없는 질문이나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저기요, 선생님. 그럼요. 우리들 여자잖아요. 선생님하고 그렇게 오래 살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세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질문을 했다.
“뭐?”
리덴은 기가 막혔다.
“하지만요. 50년이 걸릴지, 100년이 걸릴지 모른다면서요. 그동안 계속 쭉 같이 살면 선생님도 남자고.”
세나는 거기까지만 말했다. 더는 차마 자신의 입으로는 말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이, 이것들이 진짜!”
리덴이 버럭 언성을 높였다. 그러고는 인상을 팍 쓰고는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쿠벤베르크 연금술이 그렇게 우습게 보여? 이제부터 본격적인 쿠벤베르크 연금술 견습 연금술사가 알아야 할 기초 지식에 관한 강의를 시작할 테니 닥치고 준비나 해. 잡념을 지워. 딴생각하지 마라. 나중에 질문해 봐서 모르면 특별히 과제를 내주지. 피도 뽑을 테다. 알았지? 특히 돈줄.’이라며 신경질을 부렸다.
그리고 리덴은 잠깐 한숨 돌리고는 강의를 시작하였다.
리덴이 결심을 하고 제자들에게 강의를 시작할 그 무렵, 바깥세상은 커다란 변혁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먼저 웨이랜더 제국 수도 타로스를 비롯하여 대륙을 좌지우지하는 7개 대국 수도가 죽음의 도시가 되었고, 마법사 길드와 연금술사 길드 본부가 파괴되었고, 모험가 길드와 용병 길드가 두 패로 갈라졌다.
덤으로 웨이랜더 제국 수도 타로스를 제외한 다른 6개 대국 수도에는 대규모 몬스터 소환진이 설치되었다. 시도 때도 없이 소환된 몬스터들은 그들이 소환된 소환진을 중심으로 활동을 개시하였다.
수도 근처의 도시나 마을은 몬스터들의 습격이 있기 수일 전에 흑마법사들의 방문을 받았다.
일명 사신의 방문.
항복을 하면 몬스터들의 공격은 받지 않으나 흑마법사들에 의한 통치를 받아야 했다. 때문에 대부분은 무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건 초반의 얼마 동안만의 이야기였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몬스터 대군은 오랜 동안 평화에 젖어 있던 수도 근처의 도시와 마을들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저항한 사람들에게 죽음보다 더 치욕스러운 결말을 가져다주었다.
흑마법사들은 이 사실을 널리 알리며 항복한 도시나 마을에는 안전을 보장하고 그들에게 저항하다 파괴된 도시나 마을의 주민들을 노예로 제공할 것임을 약속했다. 그러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몇몇 약아빠진 인간들을 중심으로 항복하는 도시와 마을들이 생겨났고 그들은 약속된 노예뿐만이 아니라 넓은 토지도 제공 받았다.
수도의 기능이 살아 있고 길드들이 멀쩡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수도는 기능을 완전히 잃고 몬스터 소굴이 되어 있었으며 길드들은 자기 앞가림하기도 바빴다. 그럼에도 한 군데 예외가 있다면 웨이랜더 제국 수도 타로스였다.
웨이랜더 제국 타로스는 리덴의 개입으로 인해 흑마법사들이 패배하였다. 그 과정에서 타로스를 지배하도록 되어 있던 흑마법사들이 대거 사망했다. 그래 봐야 100명도 되지 않았지만 흑마법사들은 그 공백을 당장에 메울 수가 없었다. 때문에 타로스는 일단 그대로 놔두기로 했다. 하지만 웨이랜더 제국 태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태자만이 아니다. 그 외 황족 어느 누구도 돌아오지 않았다. 어째서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아는 자가 없었다. 그렇기에 웨이랜더 제국의 귀족들은 두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대륙의 정세가 빠르게 변하는 가운데 몇몇 귀족들이 세상의 평화와 안녕을 해치는 악의 무리를 처단하고 수도를 되찾겠다며 병사를 일으켰다. 각 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이며 권세가들이었다. 그들은 다른 영주들에게도 공문을 보내 토벌에 힘을 보탤 것을 요구하였다.
대륙 어딘가에 있는 흑마법사 아지트.
자칭 흑마법사 카이롯트는 직계 부하 십여 명을 모아 놓고는 약간 붉은빛을 띠는 검은색의 보석을 지급하였다. 웨이랜더 제국 수도 타로스에서의 패배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카이롯트의 안배였다.
“이마에 박아 주겠다. 이것이 너희들의 마법을 한 단계 강화시켜 줄 것이다. 마로케이안 무릎을 꿇어라.”
카이롯트가 말했다.
“스승이시여, 감사드립니다.”
리덴에게 패배하여 타로스를 점령하지 못했던 마로케이안이 카이롯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카이롯트는 들고 있는 보석을 마로케이안의 이마에 가져갔다.
우웅.
공명음이 울리고 마로케이안의 이마에 붉은빛을 띠는 검은색의 보석이 반쯤 파고들었다.
“으아아악!”
마로케이안이 비명을 질렀다.
30분 후.
마로케이안이 눈을 떴다. 그리고 말했다. ‘스승이시여, 힘이 넘치나이다. 앞으로 더욱 충성을 다하겠나이다.’라고.
“다음.”
카이롯트는 그렇게 말하며 다른 직계 제자들 이마에도 보석을 박아 주었다. 이후 7써클 흑마법사였던 직계 제자들의 마법 실력이 한 단계 상승하여 8써클 흑마법사가 되었다. 깨달음을 통한 성장이 아니어서 반쪽짜리 8써클 흑마법사들이었지만 그들 중 누구도 그러한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편.
어둠의 길드 총본부에서도 한 가지 결정이 내려졌다. 흑마법사들이 멋대로 날뛰어 세상의 이목이 그들에게 집중된 지금, 그들 어둠의 길드는 대륙 각지에서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흑마법사들에 의한 피해도 많았다. 그래서 안전하게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논의가 되었고 그 결과 ‘흑마법사들의 세력이 미치지 않고 있는 웨이랜더 제국 수도 타로스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하여 웨이랜더 제국의 등골을 있는 대로 뽑아 먹자.’는 방안이 채택되었다.
그나마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웨이랜더 제국에 먹구름이 드리우는 순간이었다.
리덴이 본격적으로 쿠벤베르크 연금술 강의를 시작한 지도 10일이 지났다. 오전에는 기초 이론 강의, 오후에는 황실 비밀금고 광장에 들어가 연금 재료가 될 만한 것을 선별하는 작업을 했다.
황실 비밀금고 광장에는 제명에 죽지 못한 황족들의 유품들이 잔뜩 있었다. 그들이 사용하던 가구, 의상, 장신구, 무기 같은 것들로 소유자에게 저주를 내릴 정도로 강한 원념이 담긴 것들도 많았다. 리덴은 제자들에게 그것들 중 멀쩡한 것과 저주 레벨의 강한 원념이 담긴 것으로 나누는 작업을 맡겼다.
다소의 실수도 있었고 해프닝도 벌어졌지만 작업은 순조로웠다.
리덴은 성실하게 제자들을 가르쳤고 제자들은 어떻게든 리덴의 가르침을 흡수했다. 그렇게 리덴이 깨어나고 한 달 정도가 지났다.
밤.
미네가 조심스럽게 리덴을 찾아왔다. 황궁이 걱정된다며 제자가 된 자신은 몰라도 소이 엘렌과 긴은 황궁으로 돌려보내고 싶다는 말을 했다. 미네는 아직 황궁이 불타 버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소이 엘렌과 긴이 그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탓이다.
“알았어. 며칠만 기다려.”
리덴 역시 밖으로 나갈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기에 미네의 제안을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는 무리였다. ‘세계의 진실과 예언의 서’에 적힌 내용이 진짜라면 지금쯤 바깥세상은 매우 흉흉할 터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준비가 필요했다.
쿠벤베르크 숙련 연금술사 비의.
입문 제자들을 위한 탕약.
리덴은 황족의 누군가가 사용했던 갑옷과 방패 같은 것을 재료로 솥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약초나 나무뿌리, 보석, 원념이 담긴 물건들에게 원념만을 추출하여 만든 망자의 한을 비롯하여 거미라든지 벌레라든지 흙이라든지 이슬이라든지 아침 햇살이라든지 등등을 넣고 가공을 시작했다.
불이 없는데 멋대로 끓어올랐다. 전혀 섞일 것들이 아닌데 용해되어 섞이기 시작했다. 검은색의 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역겨운 냄새가 주변을 진동했다.
“후후후.”
리덴이 기분 나쁜 얼굴로 웃고 있었다.
“불길해. 재앙의 징조야.”
세나가 중얼거렸다. 이븐은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았고 미네는 세나와 꼭 같은 마음이었다.
이틀이 지났다.
무언가가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들어갔던 솥단지 내부의 물건들이 세 그릇의 탕약이 되었다. 검은 갈색의 눅눅하고 진득거렸다. 리덴은 그것을 제자들 앞에 각각 하나씩 놓고는 말했다.
“먹어.”
“히이이익!”
세나가 기겁을 했다.
“먹는 겁니까? 스승님.”
이븐이 의문을 표했다.
“이걸 어째서 먹어야 하는지 설명 좀 부탁드려요.”
미네도 저항감을 드러냈다.
“먹는 거냐고? 어째서 먹는 거냐고? 후후.”
리덴이 웃었다. 무척이나 상쾌해서 도리어 불쾌할 정도였다. 리덴은 자신이 이것을 먹어야 했던 그날을 떠올리고 있었다.
“돈줄.”
리덴이 세나를 부르고는 상큼한 미소를 한 번 지어 주었다. 그러고는 가까이 다가가서는 탕약을 들었다.
“……!”
세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는 리덴을 노려보았다. 리덴이 어떻게 할 것인지를 알고 있다는 식이다.
“선생님이 부르는데 대답 안 하냐? 빨리 대답 안 해? 안 하겠다면 할 수 없지.”
리덴은 혼잣말처럼 그런 말을 늘어놓고는 그릇을 들지 않은 손을 사용하여 세나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꺄핫!”
세나가 반사적으로 비명을 질렀고 그 틈을 타 리덴이 그릇을 세나의 입에 꽂아 주었다. 그와 동시에 세나의 목덜미를 쓰다듬은 손은 세나의 뒤통수를 강하게 움켜잡았고 그릇에 들어 있던 내용물은 폭포수처럼 세나의 목구멍을 통과했다.
“$@%$#$@$@!”
세나는 정신이 육체를 버리고 싶어질 만큼 강렬한 탕약의 맛에 깊은 좌절과 절망을 느꼈다. 어떻게 해서든 항의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감각이 사라지고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털썩.
뒤로 쓰러진 세나는 죽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숨도 쉬지 않았다. 멍하니 풀린 눈동자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에 이븐과 미네는 공포를 느꼈다. 둘의 태도는 달랐다.
이븐.
일단 탕약을 들었다. 먹고 싶지 않아도 먹게 된다는 것을 목격한 만큼 눈을 질끈 감았다. 호흡을 멈췄다. 그리고 탕약을 입에 들이부으려고 했다. 하지만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냥 먹지?”
리덴이 그런 말을 하고는 이븐을 도와주었다.
친절하게 손으로 이븐의 뒤통수를 고정시킨 다음 다른 손으로 탕약의 그릇을 콱 눌러 주었다.
꿀꺽꿀꺽꿀꺽.
이븐의 목구멍에도 탕약이 쏟아졌다.
털썩.
이븐이 쓰러졌다.
슬금슬금.
리덴의 눈치를 살살 살피던 미네는 도망쳐야 한다는 판단을 했다. 황녀가 돼서 세나와 이븐처럼 꼴사나운 모습으로 쓰러질 수는 없었던 것이다.
“넌, 또 어딜 가.”
그런 말을 한 리덴은 미네를 쫓아가 미네의 뒷덜미를 잡았다. 그러고는 다소 거칠게 미네의 몸을 뒤로 잡아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