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빛의 연금술사 리덴 1권(23화)
7. 만드라고라 농지를 확보하기 위해서―상(2)
10분 후.
미네의 뺨에서는 더 이상의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미네도 소리 내어 우는 일을 멈췄다. 그동안 리덴은 시약병 하나를 가득 채우고 다른 시약병에도 1/3 정도 눈물을 담았다.
“귀중한 연금 재료를 그냥 버릴 뻔했네. 참고로 묻겠는데 미네, 너 아직 처녀 맞지?”
리덴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미네에게 질문을 건넸다.
빠직.
미네는 순간적으로 울컥했지만 상대가 상대인지라 그러려니 하고는 ‘네, 남자 경험 없어요. 겨우 18살인걸요.’라고 답했다.
“언니였네.”
세나가 말했다.
“동생입니다.”
이븐도 말했다.
그리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소이 엘렌이 툭 나서서는 리덴에게 검을 들이대며 입을 열었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미네 전하의 스승이라고는 하나 슬픔에 잠긴 미네 전하 앞에서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나는 이 자리에서.”
소이 엘렌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였다.
“너 바보냐?”
리덴이 말했다.
“……!”
소이 엘렌은 인내심의 끈이 끊어지는 것을 느끼며 자세를 잡았다. 지금이라면 리덴을 죽일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동정이나 처녀인 자가 진심으로 애통하여 흘리는 눈물은 그 자체만으로도 쓰이는 곳이 많은 연금 재료다. 하물며 그게 연금술사일 때는 가치가 더욱 높지. 몇몇 연금 물품을 만드는 데는 절대적으로 필요해. 그래서 받아 둔 거다. 지금 받지 않으면 두 번 다시 받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리덴이 그런 말을 했다. 이에 상관없이 소이 엘렌은 검을 휘두르려고 했고 그와 동시에 미네가 리덴과 소이 엘렌 사이에 툭 끼어들어서는 입을 열었다.
“그 말씀은 스승님. 이후 제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일이 없을 거란 뜻인가요?”
“……!”
리덴의 얼굴근육이 살짝 경련했다. 미네가 이해한 바가 틀리지는 않지만 여기서 그걸 인정했다가는 얕잡아 보일 것 같은 느낌이 든 것이다. 그래서 괜히 홱 발을 돌려서는 걸음을 옮겼다.
“지금부터 연금술사 리덴의 집으로 간다. 부피가 커서 놓고 온 물건들 있으니 그것들을 챙겨야지. 자, 빨리빨리 움직여. 서둘러야 한다. 쓸데없는 일이 발생하기 전에.”
리덴은 그렇게 대충 얼버무렸다. 하지만 일행들 중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도 타로스 중앙광장.
타로스 정중앙에 위치한 광장으로 평민도 귀족도 자유롭게 왕래하며 장사를 하거나 사람들과 만나거나 하는 장소였다.
리덴은 중앙광장에 다가서기 전부터 피비린내를 느꼈다. 죽음과 원한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리덴만이 아니다. 세나와 이븐은 물론이고 소이 엘렌도 그 점을 깨달았다. 미네와 긴만이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선생님, 우리 길 바꿔요. 중앙광장 쪽은 안 좋은 느낌이 나요.”
세나가 말했다. 이에 리덴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세나와 이븐에게 ‘여기서부터는 내가 허락할 때까지 빛 속성 연금 도형을 사용하지 마라. 알았지? 명심해. 사용하면 안 돼.’라고 말했다.
“왜요?”
세나가 물었다.
“일단 발이나 옮겨. 때가 되면 설명해 줄 테니.”
리덴은 그렇게 말하고는 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타로스 중앙광장 입구에 도착해서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리덴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발을 멈추고는 중앙광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죽음의 기운을 내뿜고 있는 검고 진득한 대지가 피를 얼마나 마셨는지 검붉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사람의 목이나 팔이나 다리 같은 신체 일부가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처형장 같은데.”
리덴이 말했다.
“누가 누구를 처형한단 말입니까?”
소이 엘렌이 의문을 표했다.
“몰라. 지금은 그런 게 문제가 아냐. 중요한 건, 이 상태가 딱 좋다는 점이지.”
리덴의 말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일행들은 머리 위에 하나같이 물음표를 띄웠다.
“길을 바꿔서 이동한다. 밟으면 안 돼.”
리덴은 그렇게 말하고는 발을 돌렸다. 그러고는 연금술사 리덴의 집으로 향하며 연금 재료 만드라고라에 관한 설명을 시작했다.
만드라고라.
리덴이 엔버였던 시절의 사형대는 마을 중앙의 넓은 광장에 위치하고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무대가 있고 그 위에서 사람의 목을 베었다. 그도 모자라 사형된 자의 머리를 소금에 절여 사형대 옆에 걸어 두었다.
본보기로 삼으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사형대의 아래에는 햇빛이 들지 않고 사형수들의 피가 떨어지는 지점이 있었다. 그 부분은 사형수들의 피와 원한으로 인해 토질이 변했다. 그곳에 연금술로 가공한 식물의 씨앗을 심으면 만드라고라라고 하는 식물이 탄생하였다.
엄밀히 말해 식물이 아니다. 사형수들의 원념을 먹고 자란 괴물들이었다. 당시에는 죽을 만한 죄가 아니어도 귀족이나 교회가 사형을 명하면 죽어야 했으니까 억울한 이야기도 잔뜩 있었다.
하지만 모든 사형대 아래에서 만드라고라가 자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먼저 토질이 합당해야 했다. 피와 원념에 오염된다고 모든 땅이 만드라고라가 자랄 수 있는 토질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게다가 1∼2명 처형당했다고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하루에 한 명씩은 피를 쏟고 죽은 사형대 아래여야만 했다. 그 외에도 3가지 정도 특수한 조건이 있었다.
사신(Grim Reaper)이 태어나지 않은 상태여야 한다.
씨앗을 뿌린 뒤에는 아무도 사형당하지 말아야 한다.
씨앗을 뿌린 뒤 100일 내로 햇빛이 들지 말아야 한다.
본디 만드라고라는 죽음과 원념으로 오염된 토지를 원상태로 돌리는 데 사용하는 정화 술식의 결과물이었다. 죽음과 원념으로 오염되어 사신(Grim Reaper)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태어나기 이전에 토지를 정화하여 사신(Grim Reaper)의 탄생을 막고 대지를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돌리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만드라고라를 연금술로 가공하여 만드는 물품의 유용함이 알려지자 만드라고라 농지를 만들기 위해 억울한 사형수를 만들어 내는 귀족들도 생겨났다. 물론 쿠벤베르크 연금술과는 관계없는 이야기였다. 쿠벤베르크 연금술에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 만드라고라 농지를 만드는 방법이 있었다. 대신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많은 동물을 학대하고 죽여야 했다.
사람 대신 동물을 죽인다는 개념이다. 만드라고라는 현자의 돌을 비롯한 다양한 연금 물품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연금 재료이기에 무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선생님, 그 말은요. 중앙광장에서 사람이 잔뜩 죽었다는 뜻이죠? 하지만 전에는 그렇지 않았잖아요.”
세나가 의문을 표했다.
“그렇지.”
리덴이 답했다.
“그럼 그사이에 사람들이 잔뜩 죽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만.”
이븐이 말했다.
“그래.”
리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는 것은 사람을 마구마구 죽이는 누군가가 이 근처 어딘가에 있다는 뜻이죠?”
세나가 물었다.
“조금 달라. 싸우다 죽은 사람들의 피는 만드라고라를 자라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독하지 않아.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사형된 사람들의 원념이 필요하지. 즉, 사형시키는 사람이 이 근처 어딘가에 있다는 뜻이다. 두 개는 달라. 하지만 사실 그게 문제가 아니야. 저대로 두면 사신(Grim Reaper)이 탄생하게 될 거야. 그것도 아주 강한 녀석으로.”
리덴이 말을 약간 바꾸고는 설명을 첨가해서 말해 주었다.
“많이 위험해 보입니다.”
이븐이 걱정스레 말했다.
“그래, 많이 위험하지. 사실은 그래도 상관없긴 한데, 저런 땅에서 사신(Grim Reaper)이 태어나게 되면 나로서도 글쎄. 그러니 만드라고라 농지가 좋겠지. 광장은 넓고. 저기 전체에다가 만드라고라를 키운다고 치면. 후후.”
리덴은 뭐가 좋은지 웃었다. 만드라고라를 심지도 않았는데 만드라고라를 수확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진짜 못 말려.”
“그러게 말입니다.”
“…….”
세나와 이븐이 리덴 모르게 감상을 주고받았으나 미네만은 이에 참가하지 않았다. 중앙광장이 처형장이 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너무나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미네가 아는 한 웨이랜더 제국 황실은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중앙광장을 떠나 2시간 정도 걸었을까? 리덴의 시야 끝에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리덴들을 발견하고는 리덴 쪽으로 걸어왔다.
“선생님.”
세나가 불안한 목소리로 리덴을 불렀다.
“반항아, 너 싸움 잘하지?”
리덴이 소이 엘렌에게 질문을 했다.
홱.
소이 엘렌은 모른다는 식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에 미네가 조용히 ‘부탁하겠어요. 엘렌 경.’이라고 말했다.
“알겠사옵니다. 미네 전하.”
결국 소이 엘렌이 나서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여어. 못 보던 얼굴들인데, 신참들이냐?”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저쪽 사람들 중 하나가 목청을 높였다.
이에 리덴은 능청맞은 목소리로 ‘아. 예.’라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슬쩍 소이 엘렌에게 작은 목소리로 ‘생포해. 이야기를 들어 봐야겠다.’라고 말했다.
끄덕.
소이 엘렌도 같은 생각이었기에 동의를 표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소이 엘렌이 땅을 박차고 뛰쳐나가 검을 뽑았다. 그와 동시에 녀석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모두 다섯 명이었는데 두 명은 후방으로 빠졌고 나머지 셋 중 하나는 왼쪽, 다른 하나는 오른쪽, 마지막 하나는 검을 뽑아 소이 엘렌의 공격에 맞섰다.
“도망간 놈이나 쫓아.”
리덴이 지시를 내렸다. 그와 동시에 긴이 왼쪽을, 세나가 오른쪽을 맡았다. 소이 엘렌의 공세를 피해 왼쪽, 오른쪽으로 흩어졌던 두 명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퍽.
소이 엘렌은 자신에게 맞서는 사내의 공격을 흘린 뒤 그 복부에 팔꿈치를 꽂아 넣었다. 그러고는 리덴의 지시에 따라 후방으로 물러난 두 명을 쫓았다. 놈들은 전속력으로 물러났지만 소이 엘렌 쪽이 훨씬 빨랐다.
결국 후방으로 도망쳤던 2명이 사로잡히고 그와 동시에 리덴들을 향해 공격해 들어왔던 2명도 사로잡혔다. 세나와 긴이 상대를 묶고 있는 사이 리덴이 연금술을 사용하여 그들의 사지를 결박했다.
“자, 그럼 이야기를 들어 보도록 할까.”
리덴이 말했다. 그러고는 사로잡힌 5명을 한 곳에 모아 놓고 먼저 몸수색을 했다. 단검과 같이 간단히 휴대하고 숨길 수 있는 무기들과 일인당 2개씩 분홍색 약병을 수거하였다. 리덴은 분홍색 약병 뚜껑을 열어 이래저래 살펴보고는 씨익 웃으며 5명에게 ‘네놈들 뭐냐?’라고 물었다.
답은 없었다. 다섯 명은 하나같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이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소이 엘렌이 ‘어딜!’이라고 소리치며 발길질을 했다. 잔상만 남을 정도의 빠른 움직임. 하지만 다섯 명 중 2명은 웃으면서 뒤로 넘어갔다. 그러고는 검은 피를 토하며 팔다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고문을 받거나 하기 전에 목숨을 끊은 것이다.
씨익.
리덴이 웃었다. 죽음으로 자신의 손아귀를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다니 참으로 어리석었다.
“2명이나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소이 엘렌이 망했다는 얼굴을 했다.
“괜찮아. 오히려 잘됐어. 이 녀석들 아직 뭘 몰라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실수를 저질렀거든. 잘 봐. 돈줄, 노예, 깍쟁이 잘 봐 둬.”
리덴은 그런 말을 하고는 아직 경련이 가시지 않은 두 구의 시체를 한쪽으로 끌어내더니 형질의 5개 연금 도형 중 비물질을 상징하는 연금 도형을 구축하였다. 그러고는 정신의 7개 연금 도형 가운데 환상과 절망을 차례로 구축하였다. 세 개의 연금 도형이 빛을 발하더니 시체의 위에 시체와 똑같이 생긴 반투명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들의 영혼이었다.
“이름은?”
리덴이 물었다.
“빈.”
“로쿠스.”
그것들이 대답했다.
“정체는?”
리덴이 물었다.
“어둠의 길드 6급 길드원.”
“어둠의 길드 5급 길드원.”
자신을 빈과 로쿠스라 밝힌 그들은 리덴의 질문에 고분고분 모든 것을 대답하였다. 이에 살아남은 자들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리덴이 죽은 자의 영혼과 소통하는 것을 보고 흑마법사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죽어도 소용없다, 라는 생각이 공포가 되었다.
1시간 후.
리덴은 알아내야 할 정보를 전부 알아내었다. 그러고는 연금 도형을 해제하여 영혼들을 풀어 주고 살아 있는 3명을 바라보았다.
“너희들 부탁 좀 들어주지 않을래? 들어준다고 하면 이 자리에서는 풀어 주고. 들어주지 않겠다고 하면 글쎄. 일단 죽인 다음 그 영혼을 어딘가에 가두어서는 엑토플리즘 같이 나에게 필요한 연금 재료를 얻는 데 부려 먹을까 생각 중인데, 어때?”
리덴이 말했다.
“……!”
살아남은 자들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그들도 착하게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눈앞에 있는 자는 단순히 사악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을 정도로 악질적인 녀석이었다.